어렵게 들어간 회사인데 왜 우리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걸까?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열정도 넘치는데 왜 그런 마음이 바뀌게 되는 걸까? 월요병은 왜 생기는 걸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왜 우리는 참고 일해야 하고, 휴가는 그저 스트레스 해소 용도로 써야 하는 걸까? 왜 친구들과 회사 이야기를 나누면 다들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싸매는 걸까?
회사는 꼭 ‘미생’의 모습 이여야 할까? 그렇게 믿는 누군가가 있다면 왜 그렇게 믿고 있는 걸까? 상황을 바꿀 생각은 없는 걸까? 도대체 일이 뭐길래 우리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 걸까?
일이 뭐길래!
나는 ‘일’에 대해 접근할 때 ‘일은 원래 그런 것’,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정도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 일은 그냥 단순히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다. 일은 인생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삶의 너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주 많은 시간이 일을 하는데 소요되고, 그로 인해 매일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가 달라진다. 내가 받는 스트레스와 예민함의 정도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은 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일이 나와 잘 맞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가족들을 위해 혹은 다른 이유로 꼭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더라도 일을 해야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가족을 위해 다양한 희생을 한 것도 사실이고, 당시에는 다른 옵션이 비교적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는 다르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자유가 주어진 시대는 없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볼 수 있고, 배우고 싶은 모든 것들을 – 정말 사소한 것까지도 – 영상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것도 무료로. 아이디어는 좋은데 돈이 없다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이 가능하고,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소셜 채널을 통해 아이디어를 알리는 게 가능해졌다.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최소한의 가격으로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진 게 없어도 예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규모가 큰 도전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이렇게 꿈꾸기 좋은 시대는 없었다. 이런 시대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우리는 단체로 엄청난 경쟁력과 기회, 가능성을 맞은 것이다.
우리가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
딜로이트에 따르면 “경기침체와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얼 세대는 돈으로 동기부여 받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일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내 시간에 대한 가능성이 다양해지면서 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게 되었다.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의미 있지가 않다면, 내가 가진 가치나 목적에 현재 하는 일이 부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변화를 원하게 되었다.
다니엘 핑크의 동기부여 3요소
이제는 고전처럼 된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말하는 ‘동기 부여의 3요소’는 거의 8년 전에 발표된 내용이지만 아직까지도 매우 유효하다. 사실 유효하다고 말하기엔 놀랍게도 이런 내용을 우리가 알게 된 지 몇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일의 성과와 효율을 올리는 이 새로운 방식보다도 일에 오히려 해를 끼치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곳이 많다.
다니엘 핑크는 과학이 알고 있는 것과 비즈니스의 행동 방식에는 미스매치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A를 하면 B를 준다’는 식의 단순 보상은 결과가 너무나 명확하고 크게 생각할 것이 없는 노브레이너 일을 할 때만 효과가 있다. 때문에 다니엘 핑크는 이런 외적 인센티브는 ’20세기형’이라고 말한다.
21세기에 우리가 하는 일들을 떠올려보면 정해진 답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고 넓은 관점의 우뇌형 사고를 요구한다. 전 세계에서 여러 번에 걸쳐 진행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주 기초적인 창의력이 요구되는 경우에도 외적 인센티브는 효과가 없는 걸 넘어 오히려 성과를 떨어뜨렸다. 기계적인 일들은 점점 더 자동화되거나 아웃소싱 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창의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현시대에 더 맛있는 당근, 더 강력한 채찍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
좋은 성과를 내는 비밀은 보상과 처벌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동기부여다.
창조적인 사람들을 움직이는 자발적 동기부여의 3 요인은 자율성(autonomy), 숙련(mastery), 목적(purpose)이다. – 다니엘 핑크
하나씩 따로 떼어놓고 보자면,
- Autonomy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가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욕구
- Mastery 의미 있는 어떤 일을 점점 더 잘하고 싶은(마스터하고 싶은) 바람
- Purpose 나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무언가를 위해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이 세 가지가 충족되면 일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일수록 더 신나게 일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평소에 꼭 열광하고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세 가지가 충족되면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었다.
다니엘 핑크의 TED 영상은 직접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말을 정말 너무 잘해요. 유머감각도 bb
개인적인, 그러나 공감할 만한 경험
다니엘 핑크의 3요소에 개인 경험을 대입해 보았다.
1. Autonomy
내 일에 대한 권한과 자유가 있을 때 나는 정말 신나게 일했다. 어떤 일을 책임지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다는 건 스스로 많은 일들을 해보게 만든다. 그 결과를 오롯이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물론 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더 빠르게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었고, 기존에 하지 않던 일도 제안해볼 수 있었다. 어떤 일에 있어 회사가 나를 믿어준다는 건 생각보다도 많은 동기부여가 된다. 믿어준 만큼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고마운 만큼 더 잘하고 싶어진다.
반면 마이크로 매니징이 지나친 경우 나는 점점 일할 의욕을 잃었다.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모두 컨펌받아야 하는 곳에서는 한 사람이 합리적으로 판단해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느리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시간도 더 오래 걸리지만 컨펌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복잡한 프로세스에 지치게 된다.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일을 관리하는 것밖에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은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사람 매니징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한 명 한 명과 소통이 되어야 좋은 매니징을 할 수 있다. 그게 잘 되지 않을 경우 어떤 일들은 직격타를 맞고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내 의견이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일에 점점 의욕을 잃고 아예 의견을 내지 않기 시작하는데 이런 분위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협업할 때는 협업하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하게 믿고 맡길 때 난 오히려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을 직접 진행하는 사람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시키는 일만 하길 바라는 곳에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만이 남을 가능성이 높다.
2. Mastery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성장 가능성’이다.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지, 내가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내 강점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면 좋은 환경이라고 느껴졌다.
반대로 회사의 어떤 이유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고, 나의 잠재력을 쓰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면 한계가 느껴졌다. 내 성장 가능성에 한계가 느껴지면 이직이든 퇴사든 환경을 바꾸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 독일계 모바일 광고 스타트업에서 일을 할 때, 한 달에 한 번씩 대표와 1:1로 리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스스로 내 다음 달 목표(KPI)를 정하고, 이번 달 목표를 함께 평가해보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한 달 동안 한 일과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돌이켜볼 수 있었고, 대표와 함께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떤 걸 잘하고 있는지, 어떤 걸 개선하면 좋겠는지 서로 공유하며 나는 한 달 한 달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세울 수 있었고, 회사의 일원으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닌 1년간 가장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 배경에는 마케팅 1인 팀으로서 가장 많은 자율권이 주어졌던 점과 나의 성장을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북돋는 회사의 문화와 제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3. Purpose
대학교 때 모든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윤창출’이라고 배웠다. 심지어 시험을 볼 때 모든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윤창출’임을 객관식 문제의 답으로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건 뭔가 아주 중요한 게 빠져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이윤창출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가치를 주는 무언가를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이윤창출’이란 네 글자에만 집중한 채 회사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이나 윤리적인 부분을 모두 배제시켜버린다면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돈은 벌고 있지만 환경이나 사람 등등에 악영향을 끼치는 형태로. 분명한 건 기업이 세계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만큼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의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꾼다고 믿는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아주 작게라도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 한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건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윤창출만이 목표가 아니라 조금 더 인간적이고 재밌고 멋진 철학을 가진 회사에서 사람들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있어서, 혹은 누군가에게는 작게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하는 의미를 찾으며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다.
내가 내 시간(정확히 말하면 내 삶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을 보내는 의미를 일에서 찾게 된다면 그만큼 행복하고 멋진 일도 없을 것이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로 바꾸는 게 바로 일에서 찾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면서도 위에서는 직접적으로 나와 있지 않은 요소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한다. 요소라기보다는 위에서 얘기하는 요소들에 의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회사를 고려할 때 내가 가장 중요시했던 또 다른 요소다. 바로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는가’.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나는 더 즐겁고 행복했다. 일을 하면서 소중한 인연과 좋은 친구들도 정말 많이 생겼다.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배울 것도 많은 친구들. 능력 있고 좋은 사람들은 더욱더 내적 요소에 움직이기가 쉽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 곁에는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지가 그 회사를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도 있다.
여론조사 기업 갤럽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6개월 정도 다닐 때까지 결정을 미룬다고 한다. 한마디로 6개월이면 사람들은 회사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는 얘기다. Inc. 의 기사에서 ‘팩트’라고 쓴 문장은 이렇다.
직원들이 일을 잘하기 위한 도구, 트레이닝, 시간, 개발, 명확한 기대치, 비전, 리소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 그들은 낮은 사기를 경험한다. 이 경우 그들은 안타깝게도 초반부터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열심히하지 않는다.
일하는 의미는 다양한 방면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마다 우선순위를 두는 건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의미를 찾게 된다. 시대가 변한 만큼 새로운 가치를 좇는 사람에게 이전의 가치를 들이밀고 있다면 다른 생각이 드는 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누구든 자신의 신념에 걸맞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원문: yoonash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