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PDR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민중민주(People’s Democracy)-혁명(Revolution)의 약자요, 제3세계에서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혁명의 단계적 방법론을 가리키는 범주다. 이 기초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 NL의 역사를 다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때때로 산발적으로 다루어졌던 식민지 문제는 제국주의를 독점자본이 식민모국을 넘어 식민지까지 뻗어 나가는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로 정식화한 레닌에 의해 본격적으로 점화되었다. 레닌이 제시한 제국주의 분쇄의 공식은 선진국에서의 노동자 계급 투쟁과 식민지에서의 민족 해방이 이루는 합으로 구성된다.
레닌의 대전략이 식민모국과 피식민국 프롤레타리아 간의 연대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본주의가 상대적으로 굳건히 자리 잡지 않은 식민지에서 정치적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교적 미발달했다는 점, 그리고 식민모국과 달리 계급 억압에 더해 식민 민족의 피식민 민족에 대한 민족 억압이라는 특수한 억압이 식민지의 근로 인민 대중에 부과된다는 점이었다.
고로 레닌은 민족해방 없는 온전한 국제 연대는 불가능함을 선포하고 단순히 각국의 노동 계급이 연대할 필요를 인지하는 차원을 넘어, 세계 혁명의 지휘부 소련과 각지의 식민지 해방 운동이 형성하는 “연대의 형태는 각국 프롤레타리아 내 공산주의 운동의 발전 정도, 또는 후진국이나 후진 민족 내 노동자, 농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해방 운동의 발전 정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V. I. Lenin, Collected Works, Vol.31, p.141)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스탈린으로 계승되었고 AALA로 불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민족해방운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조선 독립운동도 예외가 아니어서 코뮌테른의 승인을 거쳐 레닌이 한인사회당에 60만 루블을 지원하기도 했다. 식민지 조선 내에서의 좌익 투쟁, 그리고 해방공간에서의 좌익 운동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레닌의 전제들을 수용하였다. 단 한국전쟁 이후 남한 내 좌익은 사실상 소탕당했으므로 198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NL이 과거의 조선 민족해방운동과 계보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상기 언설은 식민지에서의 민족해방에 관해 실천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비록 NLPDR이라는 약어를 통한 정식화는 내가 아는 한 국내에 국한된 것이지만 이 단계적 방법론이 AALA에 속한 타 국가/민족에서의 양상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때 제3세계에서의 운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또 우리의 논지에 적합한 예시로서 언급해야 하는 인물이 마오쩌둥이다.
공산주의자로서의 마오쩌둥은 크게 두 가지 어려움에 부딪혔다. 첫째, 공산주의 운동은 프롤레타리아가 수행해야 하는데, 중국은 대공장 발달이 미약하고 인구의 다수가 농민이다. 둘째, 국민당으로 대표되는 우익 세력을 상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청말민초 시기 이래 서구에 의한 예속에 더불어 일제의 대륙 침략이 가속화되고 있다. 레닌이 문제시했던 식민지 특수성에 부합하는 사례가 중국이었다.
제3세계인 중국에서 공산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외세의 침략을 막고 민족해방을 이룩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노동자 계급만을 중요시하는 대신 유연하게 계급 연합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인구의 다수이자 피지배계급인 농민을 혁명의 주요 주체로 설정한다. 그 결과는 오늘날 오성홍기에 상징적으로 반영되었다.
큰 별인 중국공산당을 따르는 네 개의 작은 별은 각각 노동자, 농민, 소부르주아, 민족자본가를 나타낸다. 일제에 대항해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듯 민족 해방 및 궁극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하여 소부르주아 (지식인), 그리고 제국주의 세력과 결탁한 매판자본가가 아닌 민족자본가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로 중국의 공식 명칭은 소련을 구성하는 ‘사회주의 공화국’들과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인민공화국이란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일계급 독재가 이루어지는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주·객관적 발달 미비로 인해 요청되는, 일종의 과도기적인 계급 연합 국가를 뜻하기 때문이다.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인민이 영어로 people이라는 점으로부터 내가 왜 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는지 간파했을 것이다. 인민공화국의 민주주의는 people’s democracy, 즉 NLPDR의 PD, 민중민주에 해당한다. NLPDR론에 동의하는 이라면 NL(민족해방)을 쟁취하고 PD(민중민주)를 거쳐 R(사회주의 혁명)로 나아가자는 방법론을 기본적으로 긍정할 것이다. 문제는, 레닌의 수사를 빌리자면 해당 국가의 “발전 정도”에 달려 있다.
남한에서 NLPDR론의 성립 배경은 5·18 이후 ‘자유의 나라’로 여겨왔던 미국에 대한 반성,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 텍스트의 유포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남한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아니며, 미국은 선하기만 한 나라가 아니라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북아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레닌을 비롯한 텍스트들은 제3세계 혁명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그렇다면 1980-1990년대 남한이라는 시공간에 부합하는 운동은 무엇이 되어야 마땅한가? 결국 NL과 PD의 분화는 논리적 차원에서 남한의 “발전 정도”에 대한 진단 차로부터 기인한다.
NL이 규정하는 남한 사회는 식민지 반봉건 사회이다. 남한은 아직 자본주의가 정착하지 않았기에 절반은 봉건 사회이고, 남한의 자본주의는 미국이라는 식민 모국에 기대지 않고서는 자립 불가능하며,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으므로 자본가 대 노동자의 계급 모순은 아직 비교적 본격적으로 격화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외세에 의한 분단은 민족 모순의 정점이다. 따라서 지금은 반미자주, 민족해방운동, 통일운동을 중점적으로 전개해야 할 시기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NL(민족해방) 노선이라 불린다. 기본적으로 민족 문제를 중시하는 진영이다. 아울러 그들은 노동 문제를 배제하지는 않더라도 상기된 이유로 인해 농민 문제를 중요시하기도 한다.
반면, PD는 남한이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 국가라고 규정한다. 비록 그들이 남한이 자본주의 중심부가 아니기에 발생하는 모순들을 전면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식민지라는 별도의 규정은 NL 노선의 남한 식민지론과 대립한다. 이미 남한의 자본주의는 충분히 발전하였기에 미국이 아니어도 스스로 작동하고 있으며, 독점자본주의라는 발달 단계에 진입하여 계급 모순이 중대하게 부상한다. 그러므로 이제 반제, 민족해방운동에 중점을 둬야 할 시기는 지나갔으며 민중민주주의를 건설해야 할 때다. PD(민중민주) 노선이라는 이름은 이로부터 말미암는다. 기본적으로 계급 문제를 중시하는 진영이다.
긴 글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레닌 이래 촉발된 이론적 논쟁에 뿌리를 둔 NL과 PD의 대립은 남한 사회의 발전 정도에 대한 인식차, 그리고 그 인식에 따른 실천의 차이로 유발된 것이다. NL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논쟁사를 간략하게나마 알아두어야 온당하다.
원문: 김현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