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이 성공리에 끝났다. 점증하는 북핵 위기 속에서 이뤄진 회담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양 정상은 북한의 핵 야욕을 꺾기 위해서는 공동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각론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보여야 하며 대화는 한 번에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2단계론’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원샷 원킬 전략은 북한의 현재 행보를 봤을 때 불가능하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에 사활을 건다.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틈을 보일 때 한·미 연합전력이 무력통일을 벌일 것이라고 오판을 하고 있다. 아니라고 강변해도 들은 체도 안 하고 꾸준히 기술 확보에 주력 중이다.
그리고 핵 보유는 기정사실화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6차 핵실험을 끝으로 기술적인 문제는 거의 해결된다는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핵 보유 열차 탑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한 번에 모든 걸 끝내려는 전략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선 핵동결 후 완전폐기’는 지금 할 수 있는 전략 중 가장 현실적이다. 일단 핵 보유를 인정한 상태에서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설득한다는 복안이다.
양 진영 모두 조건에 만족하면 북한은 동결된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한국과 미국은 체제 보장을 약속한 후 경제·사회적 지원을 다 한다. 북한 입장에선 한 번에 끝내는 전략을 못 미더워할 공산이 크다. 대화 한 번에 핵을 포기하는 셈이기 때문에 미국이 갑자기 약속을 바꿔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2단계론은 다르다. 각 과정마다 보상이 약속되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이 섣불리 북한을 공격할 수 없다. 설득력이 훨씬 크다. 물론 2단계론은 양 진영에게 이득이 되려는 조치다. 북한이 한국과 미국을 믿을 수 없는 만큼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2단계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핵동결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차라리 한 번에 하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은 동결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완벽한 검증’을 내걸었다. 북핵 조사단이 북한의 전역을 돌며 검증을 한다는 뜻이다. 대규모의 핵 전문가팀을 꾸려 여러 차례에 걸쳐 동결을 확인해야 한다. 물론 그들의 안전보장은 필수이며 북한이 혹시 다른 시설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 지속적으로 압박할 필요가 있다.
압박축구의 창시자 아리고 사키 AC밀란 감독은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풋볼이 압박축구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즉 미헬스가 없었다면 사키의 실험은 무위에 그쳤을 것이다.
외교 역시 마찬가지다. 북핵 같은 거대한 변화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히 해야 한다. 단계를 거치며 이견을 좁혀야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화끈함보단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고 두 수를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원문: 시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