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 원안(중앙일보)을 찬성한다. 물론 이 중앙일보 기사는 여느 언론매체처럼 본질을 왜곡하는 선동적 표현으로 가득찼지만 한편으로 이번 세제개편안의 본질 또한 담고 있다. 즉 중산층 세부담 소폭 증가, 고소득 세부담 증가… 책임있는 정치인과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인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정치인도 인기만 고려하거나 장기적 안목의 정책만을 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둘 사이 조화의 정도가 그 정치인의 역사적 평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테니까.
보편적 복지를 바라는 사람은 많지만 그 댓가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민들이 많지 않은 것이 아마도 현재의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지난 대선기간중 여야 모두에서 나왔던 무수한 보편적 복지의 절반이라도 제대로 달성하려면 지금의 세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10조 이상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세제개편이 없이는 보편적 복지란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다.
연평균 소득 6-7천만원 소득자의 세부담이 1년에 16만원 증가란다. 이 정도의 추가부담을 각오하지 않고 지난 대선에 가장 뜨거운 이슈로 다뤄졌던 보편적 복지 논쟁을 지켜봤다면 그건 뇌가 없다고 봐야할 거다.
소득구간 3-5천만원의 세금증가분을 제거하면 세수는 1800여억원 감소할테고 소득구간 5-7천만원의 세금증가분을 현재 16만원에서 8만원으로 줄이면 추가 세수 감소는 1100여억원이란다. (경향신문) 세수 감소분만큼 보편적 복지의 입지도 줄어드는 거다. 세금을 더 내지 않고 복지를 증가시키는 방법은 정부가 돈을 빌리는 방법밖에는 없고 이는 우리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갈 미래의 부채일뿐이다.
예전에도 몇차례 얘기(2009년 OECD 재정보고서를 통해 본 한국의 세금부담)했지만 우리나라의 GDP 대비 총담세율은 OECD국가중에서도 정말 유별날 정도로 낮은 편에 속한다. 2012년 발표된 OECD의 재정통계(Revenue Statistics)자료에도 2011년 기준으로 칠레, 터키, 미국에 이어 꼴찌에서 4위의 자리에 있다. 한마디로 국가 규모에 비해 세금부담이 적은 걸로 슈퍼갑의 위치에 있는 거다.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람니가 부자들 앞에서 언급해서 고생을 했던 미국민들 절반 이상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발언에 워싱턴포스트지가 “누가 세금을 내지 않는가?“라는 반박기사를 낸 적이 있다. 여기보면 53%의 미국민이 연방소득세를 납부하고 있고 원천소득세(payroll tax)까지 합치면 80%의 미국민이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물론 자녀가 있는 가정의 경우 the Earned Income Tax Credit 이란 제도를 통해 납부한 세금의 상당분을 돌려 받기는 한다. 그래도 전체 근로자중의 70%는 세금을 낸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로소득세 과세자 비율이 2011년 기준 63.9%란다. (서울신문) 이는 전세계에서 세금 적게 내는 걸로 유명한 미국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물론 법인세와 금융소득세쪽도 손을 보기는 봐야할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세제 개편안을 폄하할 수는 없다. 현재 세금 부담이 증가하는 수준을 3천만원대에서 5천만원대로 올리려는 정치권의 노력과 언론의 질책에 대해서 따로 뭐라고 크게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책임감있는 정치인과 언론인이라면 기본적인 국정의 대차대조표 정도는 염두에 둬야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돈 나갈 복지는 강조하면서 그걸 메꿀 세수증가쪽에 이런식의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과연 옳바른 접근법인가 하는 건 심각하게 반성해 봐야 할 거다.
여야 모두와 진보, 보수 언론 모두에게 하는 말이다.
특히나 민주당이 책임감 있는 정당으로서 각인될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노무현정부때 종부세 인상에 대해 세금폭탄 운운하며 건강한 중앙, 지방 세수 기반을 갉아 먹은 새누리당의 단견도 탓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추가 1: 이상이 제주대교수의 글이 비교적 폭넓게 이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추천한다.
추가 2: 점점 더 잘 정리된 글들이 나온다. 이정환님 글도 추천.
추가 3: 그 와중에도 정신분열증적 여론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