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쩌다 디자이너가 되었을까?
Airbnb의 디자인 팀을 보면 이전에 도서관 사서, 정비사, 보험 설계사, 테라피스트, 그리고 심지어 현대 무용수였던 사람도 있다. 모두 창의적인 무언가를 찾다가 결국 디자인을 하게 된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좋게 생각한다. 하지만 어딘가에선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가 될 생각조차 못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디자이너를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코파운더들이 RISD[1] 출신인 Airbnb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조금은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고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들은 좋은 디자이너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기준에 부합하는 디자이너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서 큰 기대감을 가지고 디자이너를 찾다가 결국 좌절했다는 이야기를 매주 듣는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그리고 다른 기업의 디자인 리더들도 이런 현상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비록 피라미드의 상위 계층 문제라고 해도, 기업들에게 좋은 디자이너가 정해진 수순대로 절차를 밟고 나타나길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리소스가 적은 스타트업들에게는 더욱이 해당 사항이 아니다. 컴퓨터 게임을 해킹하고 수정해서 인터넷에 공유하는 아이? 어쩌다 친구의 밴드를 위해 판촉 포스터를 만든 과학 전공 학생? 친구 회사를 부업으로 돕기 위해 포토샵을 배운 재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나는 부모님이 디자인이 유망한 직업이 되리란 걸 몰랐다면 아마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수많은 방법이 존재하고 그 역할도 다양하다. 잠재적인 디자이너들이 상위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 다음 세대의 디자이너를 찾기 위해 운에 기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회사들이 디자이너에 대한 수용적인 환경과 업계 전반에 더 명확히 정의된 길을 만들기에 앞서, 우리의 역할을 가로막는 주요한 문제들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디자인 역할에 대한 홍보와 교육의 부재
디자인 분야 밖에 있는 일부 사람들은 UI와 UX에 대해서 들어봤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제품 디자인[2]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브랜드와 마케팅 디자인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제품 디자인, 특히 인터랙션 디자인[3]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없고 정의가 명확하지도 않다. 인터랙티브한 디지털 제품과 플랫폼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는 분야로서(그리고 모든 사람의 삶에 점점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제품으로서) 단순히 기능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디자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디자인을 반향실에서 꺼내고 회사 구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표준화되지 않은 조직 구조
상대적으로 명확한 보고 체계가 있는 개발자와 PM에 비해, 많은 회사들은 디자인 팀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든다. 몇 회사는 디자이너가 프로젝트 단위로 팀을 옮기면서 전체 조직을 서포트하는 에이전시 모델을 따른다.
이것은 회사가 취할 수 있는 쉬운 선택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디자인 조직을 어느 때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 및 PM 수장들과 동등한 급의 디자인 대표를 세우고, 제품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책임지는 역할로서 디자인 팀을 구성하는 회사도 있다. 어떤 회사는 디자인 팀을 제품, 개발, 혹은 마케팅 밑에 두기도 한다. 우리가 디자인을 일관성 있게 정의할수록 디자인의 역할과 문화를 회사 안팎으로 전파하기 쉬울 것이다.
롤모델의 부재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 마리사 메이어는 개발자의 롤모델이다. PM도 순다 피차이, 레이드 호프만, 케빈 시스트롬이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롤모델을 생각할 때, 조나단 아이브나 입스 베하를 제외하고는 (아니 심지어 그들조차도) 생각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게다가 둘 다 산업 디자이너이다!
사람들이 조 게비아나 브라이넌 체스키를 디자이너라고 말할까, 아니면 Airbnb의 파운더라고만 할까? 단지 명성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디자인라는 역할의 성숙한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이고 그 분야의 최정점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식이 되기 때문이다.
IT 생태계가 더 많은 엑시트(매각)를 통해 성장하는 것처럼, 롤모델과 동경의 대상이 되는 리더가 많아질수록 디자인의 역할도 더 커진다. 디자이너들이 모여 나라를 만든다면, 우리의 통화를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적극적으로 디자인 친화적인 문화를 만드는 세 가지 방법
디자인 역할이 직면한 문제는 회사가 조직 내에서 그 역할을 어떻게 위치시키느냐에 달렸다. 디자인 역할에 대한 필요와 요구는 있지만 우리는 불확실한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다행히 회사가 유능한 디자이너의 마음을 사고, 디자인 리더가 우리를 앞으로 전진하도록 지휘하게 하는 좋은 방법들이 있다.
1. 개발, 제품, 그리고 디자인을 처음부터 같이 녹여내라.
Airbnb를 포함한 IT기업에서는 개발, 제품, 그리고 디자인 팀이 동등하게 여겨지며, 보통 EPD(Engineering, Product, Design)라고 불린다.
각 분야가 연합하여 제품의 시작부터 출시까지 관여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기능, 마케팅, 또는 사용자 피드백을 다루는 팀은 각 분야에서 최소한 한 명씩을 포함한다. 이런 협업은 중요한 구성원을 한데 모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부가적인 효과로 구성원의 직업적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
이 세 가지 분야는 하단의 그림처럼 의자(제품)를 떠받치는 세 개의 다리처럼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셋업이 되었다면(Figure A) 각 역할은 동시에 같은 비율로 성장할 수 있다(Figure B).
처음부터 이것을 잘하는 회사는 아래의 두 가지 중 하나, 혹은 둘 다를 만족했다.
2. 처음부터 디자인 리드를 채용하고 막대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전략을 실행한 좋은 스타트업의 예시는 Pocket인데, 린(lean) 팀을 통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Pocket이 시작했을 때 설립자인 Nate Weiner는 개발과 디자인 모두에 대한 지식이 있었지만, 통찰력 있는 디자이너가 팀에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의 첫 채용은 Nikki Will이었는데, 그는 후에 디자인 수장이 되었다. Weiner는 Will을 완전히 신뢰함으로써, 그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총동원하여 정말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왔다.
3. 개발자와 기획자의 숫자에 비례하여 디자이너를 늘린다.
디자이너는 종종 몇 단계의 개발이 끝난 뒤 시각적인 작업을 하기 위하여 채용된다. 이런 종류의 채용은 제품의 UI/UX 결정뿐만 아니라 팀의 상호작용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초기 팀 셋업이 끝난 뒤 디자이너를 후기 멤버로 합류시키면 의사결정이 일관되지 않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디자이너를 개발자와 PM과 같이 채용하는 것이 좋다.
보통 디자이너가 개발자만큼 필요하진 않다. 초기엔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비율을 대략 1:6에서 1:8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 비율은 회사나 부서의 요구나 제품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은(특히 작은 팀이라면) 그 정도의 비율로 팀을 셋업하는 것이 좋다.
초기부터 이러한 전략이 없다면 불완전한 의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초창기에 디자인의 역할이 없거나(Figure C), 제품이 이미 성숙한 다음에 디자인 역할을 추가하는 경우(Figure D)가 이런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
불완전한 의자 혹은 제품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초기부터 각 의자를 세 개의 다리와 함께 만드는 것이다. 같은 사람, 혹은 최소한 서로에게 보고하는 디자이너, 개발자, PM을 채용하거나 할당하라는 의미이다. Airbnb는 각 세 분야의 대표들이 설립자 중 한 명에게 바로 보고를 한다. 이런 조직 구조 덕분에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서 디자인이 수동적이지 않고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EPD 리더쉽만이 이런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세 개의 다리를 가지는 동일한 구조가 개발, 제품, 디자인 리드가 협업함으로써 각 제품마다 적용될 수 있다.
Airbnb에서 이렇게 세 분야의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우리는 Smart Pricing이라는 특정 날짜의 예약 가격을 예측해주고 호스트를 위해 자동으로 가격을 조절해주는 기능을 개발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기능이 실행될 때 호스트에게 맞춤 가격을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단순한 로더(loader) 대신 실제 계산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애니메이션을 적용했다. 디자인이 이것을 추진했고 그 결과 사용자가 더 이해하기 쉽고, 그 기능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가치 있는 사용자 피드백을 이끌어냈다. 이런 세 팀의 동등한 지위는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신속한 제품 개발과 놀라울 정도의 협력을 가능케 한다.
역자의 말
한국에도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디자이너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창의적인 무엇을 하고 싶다면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좋겠습니다.
디자인은 단지 이쁘게 만드는 것이라는 대중의 그릇된 이해와 편견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디자이너가 되는 길을 열어줄 때, 디자인에 대한 오해가 서서히 줄어들고 디자인의 역할이 회사 및 사회에서 점차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Daylight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디자인에 대한 대중의 올바른 인식과 이해를 돕고 디자인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하여 국내외에서 사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디자인 스펙트럼의 한 운영진으로 참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이번 팟캐스트에서는 가족정책학을 전공하고 구글 디자이너가 된 최민상님에 대한 얘기를 담았습니다).
디자이너가 주축이 되긴 하지만, 어느 누구나 참여하여 디자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친숙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작은 바램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 이다윗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