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시절 가장 힘든 시간은 변수명과 메소드명을 지을 때였다. 서비스나 회사 이름은 그보다도 더 힘들었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우리는 첫 서비스부터 지금까지 1번도 아니고 3번, 회사 이름까지 하면 총 4번의 네이밍 실패를 겪었다. 정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지었는데도 말이다.
네이버 검색이나 구글링, 몇몇 사람한테 물어보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특히 영어 단어를 이용한 네이밍이나 영단어를 합치는 네이밍은 그저 영어 잘하는 한국인이 아닌 영어 사용 국가 현지인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것도 연령대와 성별을 다르게 해서 여러 명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특정 연령층이나 특정 성별, 특정 연령대에서 안 좋게 쓰이는 용어도 있기 때문이다.
1. 만땅
5년 전 배터리 공유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서비스 이름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수십 가지 후보가 나왔고 그중에 재미있는 느낌을 고른 것이 ‘만땅’이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꽉 채울 때 쓰는 표현이자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가득 찬 상태를 표현할 때 쓴다.
만땅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썩 좋지는 않았다. 또한 그 유래가 일본어라서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고 고민하고 내린 결정은 “정말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였다. 약간은 어설프지만 귀여운 히어로 캐릭터와 함께 B급 감성으로 서비스를 친근하게 가져가자는 기획과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첫 서비스 이름이 탄생했다. 몇몇 고객으로부터 “서비스 이름이 조금 걸리긴 하네요.”라든가 기자분들에게 단어의 뜻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도 했지만 서비스 본업에 지장이 있을 만큼의 안 좋은 피드백은 없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버티면서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었다.
2. Mycoon의 Plugger
만땅 서비스를 초기에 본엔젤스로부터 첫 투자를 받고 법인 설립 절차를 진행하던 시기, “회사 이름 지으셔야 해요.”라고 강 대표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회사 이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회사 이름도 우리가 직접 정하는구나! 하고 신기해하던 시절이었다.
서비스 이름은 정해졌지만 회사 이름을 “주식회사 만땅”으로 하기는 좀 그랬다. 며칠 고민 끝에 나온 이름이 모바일(Mobile) 업계에서 거물(Tycoon)이 되자는 뜻의 마이쿤(Mycoon)이었다. 발음도 쉽고 나름 뿌듯했다. 그 당시에는… 시간이 지나 ‘만땅’앱의 두 번째 버전인 충전 장소 위치 정보 공유 앱을 신규로 개발했다. 플러그(Plug)와 사람(-er)을 합성해서 ‘충전을 위해 플러그를 찾는 사람’이라는 뜻의 플러거(Plugger)로 지었다.
팀원들도 다들 괜찮다는 의견이었다.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 ‘끈덕지게 선전하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좋았다. 구글링도 해봤는데 별 특이한 점을 찾지 못했다.
문제는 미국을 건너가서 시작되었다. 2015년 1월 500 스타트업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SF 배치 참가 확정을 받았다. 노점상을 하면서 매일같이 버티던 우리에게는 정말 큰 성장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 최초로 500 스타트업 배치에 선정이 되었고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팀의 절반인 5명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15개 국가에서 건너온 35개 팀과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같은 배치의 35개 팀이 첫날 간단한 인사들을 나누고 펍에서 다 함께 맥주를 먹던 중 한팀의 외국인 친구가 말을 건네 왔다.
“플러거가 뭐냐? 자위기구를 만드는 하드웨어 제조 스타트업?”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아는 단어가 나왔고 분명히 알아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물어보자 그 친구가 구글링 결과를 보여줬다. 검색어는 ‘Plugger for women’이었다. 콘센트를 찾아서 플러그를 꽂는다는 단어를 그런 은어로도 쓰는 것 같다는 상세한 설명을 더해줬다. 여자들은 이런 뜻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6개월 가까이 개고생을 하면서 만든 서비스의 뜻이 자위기구라니… 다음날 전체 배치 인원들이 모여서 갑자기 팀 소개를 시켰다. 안되는 영어에 뭐라도 말하자 싶어서 어제 생각이 나서 말도 안 되는 콩글리쉬를 했다.
“어제 펍에서 한 친구가 자위기구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냐고 물었다(미국인 친구들의 유머 코드를 모르겠지만 이 말을 하자마자 홀에 모였던 미국 친구들이 모두 다 빵 터졌다). 우리는 자위기구를 만드는 스타트업이 아니다. ‘플러그를 찾는 사람들’이란 뜻이고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위치 정보 공유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한국에서 왔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
소개가 끝나자 500 스타트업 CEO 데이브 맥클루어가 진심인지 위로인지 “스타트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비스를 알려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오늘 사람들에게 가장 각인을 잘 시켰다”고 했다. 그 뒤 남자 멘토들과 여자 멘토들이 심각하게 논의를 했고 해당 단어를 일부 여자들만 사용하니 써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내심 찜찜했다. 서비스 이름의 다른 뜻이 자위기구는 아니지 않은가.
자위기구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한번 충격적인 소리를 듣게 된다. 며칠이 흘렀고 몇몇 팀들과 좀 친해져서 인사 정도는 나눌 정도가 되었을 무렵 한 흑인 친구가 찾아와서 말을 건넸다.
“너네 회사 이름의 뜻을 알고 쓰고 있냐? 미국에서 서비스를 정식으로 할 거면 회사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어.”
Coon이 정말 안 좋은 단어인데 너희는 앞에 My까지 붙었다고… Mobile+Tycoon이란 뜻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친구의 해석은 My+coon이었다.
즉 ‘내 깜둥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우린 ‘내 깜둥이의 자위기구(Mycoon의 Plugger)’가 되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플러거 서비스는 종료했고, 회사 이름은 Mycoon에서 Mykoon으로 변경했다. 그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든다.
3. Spoonme
서비스를 종료했고 피벗팅 이후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 목소리로 소통하는 오디오 서비스였다. 또 이름을 정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3번을 이랬는데 얼마나 더 심사숙고했겠는가? 한 팀원이 우리 서비스는 서로 감성과 위로를 전하는 서비스니 영화 ‘그녀(Her)’의 대사 중 하나인 “스푼 미(Spoon Me)”로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해당 영화를 봤고 해당 대사가 나오는 예쁜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네이버 검색 및 구글링을 해도 참 따뜻한 표현이었고 서비스 취지에 맞았다. 다시 한번 여러 외국인 친구들에게 물었는데 별 이상이 없었다. 이게 실수였다. 공부만 잘했던 올바른 친구들(?)에게만 물었고 성별은 이전의 플러거 네이밍 충격으로 여자가 많았다.
신규 서비스의 이름은 그렇게 ‘스푼 미(SpoonMe)’로 지었다. 사용자들도 이름이 좋다고 했고 우리도 어느 정도 만족했다. 설마 또 이름 가지고 문제가 생길까? 그럴 일 없어, 이건 아름다운 영화 대사잖아… 몇 달이 지나서 500 스타트업 멘토들이 한국을 찾아와서 같이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서비스를 피벗했고 열심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서비스 이름은 스푼미다.”
그랬더니 또 몇몇 친구들이 뿜어대기 시작했다. 왜? 또? 설마? 야, 영화에 나오는 대사잖아. 이게 왜 문제야? 재차 물었다. 4~5명의 남자 외국인 멘토들이 또 심각하게 논의를 시작했다. 이게 문제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
결론은 안 쓰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오해할 소지가 플러거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남자들끼리 대화할 때 특정 체위를 표현하는 속어로 쓴다는 것이었다. 몇몇 외국인 친구들한테 똑같은 피드백을 받았다.
또 이름이! 베타 서비스 기간이었지만 비용을 들여서 도메인을 구입했고 각종 디자인과 SNS, 앱에서 스푼미를 사용했다. 팀원들과 다시 한번 논의 끝에 이번에는 초반부터 정말 논란 없게 미리 변경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스푼(Spoon)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수정했다.
그렇게 4번째 네이밍을 실패하고 지금의 서비스명을 정할 수 있었다. ASO와 SEO를 위해 라디오 단어를 추가했다. 하지만 아직도 ‘스푼미’라고 부르는 초기 사용자들이 남아 있다. 네이밍은 한번 정해지면 그 인식을 변경하는데 많은 리소스와 많은 시간이 든다.
스푼 서비스가 앞으로는 지속적으로 성장해서 다시는 네이밍 할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원문: 최혁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