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무신정권의 이의민 장군은 격동의 역사에서 미천한 신분으로 권력자에 오른 인물입니다. 무신 이의민은 고려 의종 때 무신정변이 일어난 이후 실권을 쥐었습니다. 외적과의 전투에서 세운 공보다는 무신정권의 내부 권력 다툼에서의 권력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저 소금장수 이의민으로 평생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가 어떻게 고려의 장군이 되었는지, 그의 삶을 따라가 봅니다.
고려 무신정변과 이의민
소금장수 아들이 어떻게 고려 무신정권의 장군이 되었는지 보기 전에 무신정변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먼저 알아야겠습니다.
고려 말인 1170년 이전은 군대를 맡은 무신들의 불만이 한껏 높아진 시기입니다. 고려도 초기에는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북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기로 가면서 점점 그 기백은 퇴색하고 모든 실권을 문신들이 쥐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군대의 실권을 문신이 쥐는 경우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조선 초기 4군 6진을 개척한 김종서도 사실은 문신입니다. 즉 전쟁의 실무자는 무관 장수지만 총괄하는 지휘관은 문관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귀주대첩의 강감찬 장군, 동북 9성 점령의 윤관 장군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강감찬과 윤관도 무신이 아니라 문신입니다. 그러므로 무신정변의 진짜 이유는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문신들의 행태 때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고려 중기는 김부식처럼 중화사상에 빠진 보수주의자들이 권력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고려 의종도 나름 무신에게 힘을 실어줘서 문신과의 균형을 맞추려 했지만 문신들의 행태 때문에 무신의 불만만 더욱 높아졌습니다.
어느 날 의종이 참석한 가운데 수박 경기가 열렸습니다. 수박은 택견 같은 전통 무술로 발기술을 주로 사용하는 택견과 달리 손기술 위주의 무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신인 한뢰가 무신 이소응의 뺨을 때립니다. 이소응은 무신으로서는 높은 직책의 나이 많은 장군임에도 문신들이 함부로 대한 것입니다. 무신들이 발끈했지만 의종은 오히려 문신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결국 그날 정중부, 이고, 이의방 등은 무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잔뜩 화가 난 무신들은 왕이 있는 자리에서 칼을 빼 들어 한뢰를 비롯한 문신들을 살육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김부식의 시체를 파내어 부관참시했으며 아들 김중돈은 거열형에 처했습니다.
이의민도 무신정변에 참여해 무신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이때 쿠데타 세력 중에서도 이의민은 가장 많은 문신을 잡아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쿠데타가 성공한 후 이의민은 장군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소금장수 이의민, 장군이 되다
이의민은 평민 소금장수의 아들로 권력층과 비교한다면 미천한 신분이기는 했습니다. 옛날의 소금은 비싼 생필품이었으니 매우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어머니는 노비였으나 노비종모법, 천자수모법에 의해 부모 중 한쪽이 노비면 자식도 노비여야 했던 조선과 달리 고려는 한쪽이 평민이면 한쪽이 노비더라도 평민으로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이의민의 조상을 따져보면 사실은 문벌 집안입니다. 경주에 살았으나 그 조상은 안남 이 씨이며 본관은 강원도 정선입니다. 여기서 안남은 베트남을 말합니다.
이의민의 6대 조상은 베트남의 왕자였는데 송나라에서 살았으나 송나라가 금나라에게 굴욕적인 수모를 당하던 시기였기에 고려로 망명했고, 이의민의 조상들은 지금의 강원도 정선에 살며 벼슬을 하기도 했지만 직계 조상대에서 몰락해 경주에 내려가 살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이의민은 불량배였다고 합니다. 역사에는 기골이 장대해 키가 8척이나 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1척이 32cm 정도니 계산하면 2m 40cm가 됩니다. 과장이 있더라도 190cm는 넘는 거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의민네 3형제는 돈을 뜯고 행패를 부리며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안찰사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받던 중 두 형제는 사망하고 이의민은 끝까지 살아남아 안찰사의 추천으로 군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수박이 뛰어나서 “수박으로 성공한 이의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의민과 정치적으로 적인 두경승과의 대결은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자기가 더 잘한다며 힘겨루기를 할 때, 벽에 구멍이 나고 지붕이 흔들릴 정도였다고 전해 옵니다. 이의민은 이 수박 실력으로 의종의 총애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의민은 의종을 배신하고 정중부의 무신정변에 참여합니다. 이때 중랑장으로 승진했다가 무신에게 대항하는 반란을 진압하면서 상장군에까지 올랐으며, 의종을 죽이고 가마솥에 넣어 연못에 수장시킨 공로로 나중에는 대장군에까지 올라갑니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무신정권
무신정변 이후 무신정권은 매우 많은 문신을 죽였습니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이제는 그만 죽이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닥치는 대로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의민은 무신정권에 반대하는 반란을 모조리 진압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에는 또 쿠데타가 오는 법. 경대승이란 인물이 또 정변을 일으켜서 정중부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합니다. 이의민은 겁을 먹고 병을 핑계로 경주로 내려가서 은둔했습니다.
그런데 경대승이 병에 걸려 갑작스레 사망하는 반전이 일어납니다. 무신정권이 의종을 내쫓고 왕위에 올려놓은 사람은 명종입니다. 경대승이 죽고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명종은 불안해졌습니다. 무신 세력 없이 혼자 권력을 독차지할 능력도 없는 데다가, 경주에 있는 이의민이 언제 반란을 일으킬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명종은 이의민을 중앙으로 불러올렸으나 이의민은 성격이 포악해 바른 정치를 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의민은 도참설을 따르며 이 씨가 왕이 된다는 설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의민뿐 아니라 그 아들과 손자까지도 부정부패해 횡포 부렸습니다. 견제할 권력이 없으니 고려는 더욱 썩어들어 갔습니다.
1196년,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된 미움이 확대되어 최충헌 세력은 외출하려던 이의민을 습격해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의민과 세 아들의 참수된 머리를 길거리에 내걸었습니다.
무신정권의 권력 흐름은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 – 김준 – 임연 – 임유무 순서입니다. 권력을 거쳐서 몽골군이 원나라가 되어 고려에 침입할 때까지 고려 무신정권은 계속되었고 1270년 무신 시대는 끝납니다.
고려의 역사를 보면서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있습니다. 이의민이 소금장수의 아들에서 고려 대장군이 되는 과정은 국가를 위해 공로를 세운 한 인물의 성공신화가 아닙니다. 쿠데타를 이용한 세력이 결국은 똑같이 타락하고 부패하는 과정입니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는 자신들의 쿠데타를 미화시키기 위해서 고려 무신정변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 등 보수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위험한 것입니다. 부정부패를 바로 잡으려는 사람은 스스로 부정부패가 없어야 합니다. 스스로의 도덕성이 없는 쿠데타 정권은 또 다른 쿠데타를 다시 부를 뿐입니다.
원문: 키스세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