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후쿠오카 호국신사
동갑내기 몇몇과 함께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일본 후쿠오카 일대를 둘러보았다. 후쿠오카에는 호국신사(護國神社)가 있었다. 첫째 날 후쿠오카성과 무슨 호수를 둘러본 다음 저녁 무렵에 찾았다.
들머리에는 커다랗고 멋진 도리이(鳥居)가 서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 호국신사는 아름다웠다. 아름드리나무가 곳곳에 늘어서서 숲을 이루었다. 곱게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는 비둘기가 무리 지어 다녔다. 올려다보는 하늘은 맑았고 내리쬐는 햇살은 다사로웠다. 한켠에 봉납(우리나라 가톨릭식으로 말하면 봉헌, 불교식으로 말하면 시주) 받은 술통이 쌓여 있는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여태 몇 차례 일본에 갔을 때 보았던 여느 신사와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이상으로 안온하고 평화로웠다.
그런 사이로 퇴근하면서 들렀지 싶은 일본 사람들이 띄엄띄엄 찾아왔다. 남자든 여자든 가장 큰 건물 앞에 서서 손뼉 치고 절을 하였다. 약간 지친 듯한 표정들이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이들이 경건하게 여겨졌다. 신사는 일본 신들을 모셔놓은 공간이니까 그에 걸맞게 공경을 하는가 보다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도심 가까운 데에 수풀이 우거져 있고 조용한 공간이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일본 사람들 삶이 나아지겠구나 싶었다.
2. 천황 폐하께서 하사하신 폐백
그러고 있는데 ‘덴노헤이카(天皇陛下)’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대충 읽어보았는데 덴노헤이카께서 무슨 폐백(幣帛) 재료를 하사하시었던 모양이다. 헤이세이(平成) 27년이면 2015년이니까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된다. 잘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덴노’조차 신으로 모셔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일본에서 몇몇 사람은 그들의 이른바 ‘덴노’을 인간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 신인 현인신(顯人神)으로 숭배한다고 한다. ‘군국주의, 제국주의, 집단주의, 침략주의 냄새가 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신사는 일본 사람들의 나름 독자적인 종교 영역이라고 좋게 보았던 생각에 설핏 금이 갔다. 하지만 덴노의 폐백을 받았다고 해서 그렇게 단정해도 된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은 아니었다.
3. 전쟁범죄 은폐용 신조어 ‘법무사’
돌아서 나오는데 종이가 몇 장 붙어 있는 나무판이 보였다. 오른편에는 ‘메이지(明治) 천황께서 만드시고…’ 운운과 쇼켄(昭憲) 황태후께서 노래하시고…’ 운운이 있었다(정확하지 않은 독법일 수도 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아래에도 종이가 하나 있었다. 제목이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고(告)한다”였다. ‘죽음’이라. ‘고한다’라. 뭔지는 잘 모르지만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싶었다. 글쓴이는 짐작건대 바로 이어 적혀 있는 육군헌병조장(曺長) 대정조지명(大庭早志命)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어서 ‘쇼와(昭和) 23년 4월 8일/ 상해에서 법무사(法務死)/ 후쿠오카현 무슨무슨(嘉穗)군 무슨무슨(築穗)정 출신 33세’라고 적혀 있었다. 쇼와 23년이면 1948년이니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고 3년 뒤다.
같은 종이 끄트머리에는 ‘쇼와 44년 4월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 앞 게시/ 편집 야스쿠니신사 사무소(社務所)’라 적혀 있었다. 쇼와 44년이면 1969년이다. 그 해 4월 아마 전쟁영웅 비슷하게 신사 앞에 내걸었었나 보다. 야스쿠니신사에 내건 다음 당사자인 대정조지명이 후쿠오카 출신이다 보니 이렇게 고향의 호국신사로 옮겨왔을 것 같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 도쿄에 있는데 전쟁범죄자들을 모시고 있다. 아베 수상 같은 이들이 공식으로 참배하는 바람에 한국과 중국 당국이 크게 반발한 적도 있는 줄 안다.
대충 짐작은 되었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4월 30일 일본에서 돌아와 찾아보았다. 잘 찾기지는 않았다. 조장(曺長)은 군대조직에서 어떤 단위의 우두머리리라 짐작을 했다. 대정조지명(大庭早志命)은 검색해 보았으나 어떤 사람인지 나오지 않았다.
법무사(法務死)도 처음에는 잘 찾아지지 않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그 뜻이 이랬다. ‘법적인 일로 죽음’인데, 전쟁범죄로 처형당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서 일본어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라 했다. 전쟁범죄, 전쟁범죄자, 전쟁범죄 처형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일부러 지어낸 말이라는 얘기였다.
4. 법무사라는 말로 노리는 효과
그 의도는 빤히 짐작되고 남았다. 첫째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둘째는 침략전쟁에서 군국주의와 덴노헤이카를 위하여 싸운 사람들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슬그머니 지우려는 것이다. 셋째는 전쟁 패망 뒤 국제전쟁범죄재판을 통해 처형당한 이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아야 했다는 느낌을 확산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이라는 국가와 지배집단은 이렇게 일본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 옆에 전쟁범죄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전쟁범죄자가 아니라 패전의 결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으로 부활시켜 갖다 놓고 있었다.
신사는 겉모습만 그럴 듯하고 아름다울 뿐 실제로는 전쟁범죄자를 법적인 일로 죽은 사람으로 둔갑시키며, 덴노헤이카를 위하여 목숨 바친 사람으로 기억하면서 죽어서는 신이 되어 있는 존재로 모시도록 하는 곳이었다.
덴노는 이런 신사에 폐백을 하사함으로써 침략은 악행이라는 사실을 의식은 물론 무의식에서까지 일상적으로 지우고 있었다. 신사처럼 일본 어디에나 있는 공간에서 이렇게 하면 대다수 일본 사람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 정말 무서운 이웃, 일본
이런 것 보면 일본이라는 국가와 그 지배집단은 무시무시한 존재다. 지난날 수많은 죽고 다치게 했던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정당화하고 있다. 일본 대중들한테 알게 모르게 이런 인식을 일상 속에서 꾸준하게 주입한다.
일본이라는 국가와 그 지배집단은 앞으로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데가 바로 우리 한반도다. 우리한테는 정말 무서운 이웃이 바로 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