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역사적 종교인과세를 일단은 환영하며
바야흐로 새하늘 새땅의 새누리시대가 열린 지금, 종교인들도 새마음으로 세금을 낼 수 있는 은혜로운 시대가 열렸다. 종교인에 대한 과세안이 발표된 것이다. 그런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그 문제들을 딱 9가지만 짚어보고자 한다.
1. 한기총만을 위한 개정안: 대체 사례금이란 무엇인가?
이번 개정안 전문은 다음과 같다.
ㅇ 종교인의 소득에 대해 기타소득(사례금)으로 과세
ㅇ 80%의 필요경비인정 (실제경비가 80%를 초과하는 경우 실제경비 인정)
우리는 여기서 뜬금없이 등장한 “사례금”이라는 용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딘가에서 들은거 같다. 기억나는가? 작년 MBC 시선집중에서 아침 출근길부터 짜증을 유발했던 손석희와 홍재철(한기총)회장간의 논쟁을…( 2012년 3월 23일 MBC 시선집중 : http://bit.ly/169jR58 )
“사례비”라느니, “이중과세”라느니, “하나님나라 백성”이라느니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며 대한민국 세법에 대해 엄청난 영적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떠드는 그 소리에 어이없어 웃고만 말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 다시 그 코미디가 재현되었다.
2. 기타소득 과세안은 꼼수: 많이 벌어도 적은 소득으로 집계
애초에 종교인에게는 과세할 수 없다는 것이 한기총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번 기타소득 과세안이 발표된 후 한기총은 사실상 암묵적 지지 내지 묵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타소득 과세안은 그나마 신의 한 수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을 기점으로 중산층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급부상한 3,450만원을 놓고 살펴보자.
근로소득 | 기타소득 | ||||
총수입(총급여) | 34,500,000 | 34,500,000 | |||
공제(필요경비) | (10,425,000) | (27,600,000) | |||
소득금액 | 24,075,000 | 6,900,000 | |||
무려 3.5배 가까이 근로소득의 소득금액이 더 많이 집계된다. 이 소득금액의 차이는 세부담의 차이로 이어진다. 받는 돈은 똑같은데 종교인은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
3. 기타소득 입법취지와 불일치: 종교인의 소득은 일정한데, 왜 기타소득인가?
기타소득은 말그대로 “기타”소득이다. 기타소득은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같은 다른 소득에 비해 들쑥날쑥 예측불가능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세법에서도 이런 유형을 따로 모아놓은 것이라 보면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종교인들의 소득활동이 예측가능한 정액급여에 가깝다는 점이다. 만일 이런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과세하면 세법상 기타소득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 교회의 세금 문제에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온 “교회재정건강성운동”같은 단체들도 이번 개정안에 대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4. 종교기관도 엄연히 비영리법인: 타 비영리법인은 모두 근로소득 과세
대한민국에는 다양한 비영리법인이 존재하고 현행법상 종교기관도 그 중 하나일 뿐이다. 당연하게도 과세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다른 비영리법인의 과세형태를 참고할 수 밖에 없는데 여타의 비영리법인은 모두 근로소득으로 과세하고 있다.
이 땅의 비영리법인은 그 누구도 자신들의 소득이 특수한 형태의 사례비라고 주장하지 않고, 근로소득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도 않다.
5. 저소득 종교인에 대한 차별: 저소득 근로자는 소득세가 없으나, 저소득 종교인은…
저소득 근로자의 경우에는 사실상 소득세 부담이 없으며, 심지어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 같은 장려금도 덤으로 받게 된다. 반면 저소득 종교인의 경우, 기타소득으로 과세할 경우 4.4%의 세부담을 지게 될 뿐더러 각종 장려금 혜택에서 배제된다.
80%이상의 영세한 미자립교회라서 납세의무이행을 반대한다는 한기총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6. 4대보험료를 회피하는 꼼수: 또다시 저소득 종교인만 피해
근로소득자와 비교해도 기타소득과세시 4대보험료 부담이 상당히 적다. 또 다시 3,450만원을 불러보자.
근로소득 | 기타소득 | ||||
총수입(총급여) | 34,500,000 | 34,500,000 | |||
공제(필요경비) | (10,425,000) | (27,600,000) | |||
소득금액 | 24,075,000 | 6,900,000 | |||
4대보험료예상액 | 2,859,320 | 1,054,020 | |||
4대보험예상액은 2.7배 넘게 차이난다. 여기에 회사부담분을 포함할 경우 5배 이상까지 그 차이가 증가한다. 물론 뒤집어 생각하면 저소득 종교인의 경우 근로소득으로 과세할 경우 지금보다 4대보험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소득근로자에게는 4대보험 부담액을 50% 경감해주는 제도가 시행 중이다. 여기에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의 혜택에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까지 감안한다면 저소득 종교인에게는 차라리 근로소득으로 과세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7. 기존의 세금내는 종교인에 대한 우롱: 정직한 종교인만 엿을 먹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종교인들이 납세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가톨릭을 포함하여 몇몇 종교의 교단 및 독립기관들은 자체적으로 근로소득 신고 및 납부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자발적 납세의무 이행에 대한 실태조사 없이 기타소득 과세로 개정방향을 잡았다는 데 있다. 결국 특정한 입장만을 고집하는 일부 종교단체의 편향된 입장만이 관철되면서 선량한 종교인들을 우롱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8. 종교개혁 정신과도 맞지 않는 한기총의 모순: 기독을 부정하는 한기총의 악마적 행태
한기총은 직업종교인의 특수성을 강변하며 종교인 과세에 대해 반대 입장을 지속적으로 개진해 왔다. 문제는 이 주장들이 한기총의 기반인 개신교의 종교개혁 정신과는 상당히 모순된다는 점이다.
종교개혁이 평신도의 일상에서 행해지는 노동을 축복하고 사제적 권위를 배제하기 위해 애써왔음을 감안할 때, “노동의 대가”와 굳이 선을 그어 스스로를 특권화하고 구별하려는 한기총의 태도는 종교개혁 정신에 역행하는 악마적 행태일 뿐이다.
9. 정치적 거래의 흔적
사실 세법에는 종교인에게 비과세한다는 명문규정이 없다. 그래서 일부 종교단체들은 스스로의 소득유형을 근로소득으로 보아 자발적으로 납세의무를 이행해왔다. 종교인 비과세의 전통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총독부에 협조하는 대가로 일부 종교인들이 포교의 자유와 비과세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명문규정이 없는 이 관행은 이승만 정권 때도 특권의 비호 속에 그대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국민적 논의가 성숙되고 사회적 비판이 거세지자, 비로소 종교인 과세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온 셈인데, 이번 세법개정안은 편향된 일부 종교집단의 입장만을 수용함으로써 괜한 의구심을 사고 말았다. 사실 작년 대선때 한기총은 노골적으로 박근혜후보를 지지했고, 문재인후보의 낙선을 위해 편파적인 입장 개진을 계속함으로써 사회적 논란의 중심세력이 되기를 스스로 자처했다.
이런 정황속에서 종교인 과세안이 담긴 이번 세법개정안으로 그간 의혹으로만 존재하던 한기총과 정권의 밀월관계를 정부 스스로 노골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진정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정부가 되길 원한다면, 쓸데없는 오해가 진실이 되어버리는 상황은 제거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