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혁신이 거듭됨에 따라,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요즘 흔히 듣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고민해봐야 할 것은 ‘역사’의 경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벌어질 때 똑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왜 영국 사람들은 더 부유해졌고 또 고용이 증가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비밀을 풀어볼까 합니다.
18세기 영국 런던과 중국 베이징 사람들의 최저생계비 대비 실질임금의 배율은 아래 ‘그림’과 같았습니다. 여기서 최저생계비를 구하는 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루 1800 칼로리 정도의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는, 정말 말 그대로 최저생계를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식료품의 가격을 추산한 뒤 당시의 실질임금이 최저생계비의 몇 배에 이르는지 측정한 것입니다(물론 많은 가정이 뒤따르기에 숫자 그 자체보다 추세를 보아야 합니다).
영국 런던은 1325년(흑사병 발병 당시) 1.5배 수준이었지만, 1725년에는 거의 4배까지 상승합니다. 반면 증국 베이징은 1725년 당시 1.2배 전후에 불과했습니다. 영국 런던의 근로자들은 임금으로 생계를 꾸린 후 저축도 가능했고, 또 아이들도 교육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베이징의 근로자들은 최저생계비 수준의 실질임금을 받는데 불과했기 때문에 이게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실질임금의 격차는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앨런 교수의 지적입니다.
어떤 변화를 촉발하는가? 런던 사람들의 교육수준이나 식자율이 향상되는 한편, 런던의 상대적으로 비싼 임금을 회피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로버트 C. 앨런 교수의 이야기를 청취해보겠습니다(책 54 페이지).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려면, 왜 영국의 발명가들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필요로하는 아이디어를 실행하느라 연구개발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발명한 기계들 모두, 노동을 절약하기 위해 자본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노동이 비싸고 상대적으로 자본이 싼 곳에서 기계를 사용하면 이익이 나기 때문이다. 반면 베이징이나 델리에서는 이익이 나지 않는다.
즉, 경제학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자본재의 상대가치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많고, 또 실질임금도 최저생계비 수준에서 결정되는 곳에서 기업가(혹은 정부)가 굳이 기계장비에 돈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 많이 써서, 물건을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로버트 C. 앨런 교수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겠습니다(책 56 페이지).
(뮬 방적기를 비롯한 혁신적인) 기계의 경제 효과는 비슷했다. 공통적으로 면사 1파운드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감소했다. 동시에 면사 1파운드 당 필요한 자본이 증가했다. 따라서 방적기계는 노동비용이 비싼 곳에서 효과적이었다.
1780년대에 아크라이트 방적 공장을 건설 이후의 수익률은 영국에서는 40%, 프랑스에서는 9%, 인도에서는 1% 미만이었다. 고정자본에 대해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을 기대했기에, 1780년대 영국에만 아크라이트 방적공장이 150개 건설되었지만 프랑스에는 4개가 건설되었다. 인도에는 하나도 건설되지 않은 게 당연한 일이었다.
제니 방적기의 수익률도 그와 비슷했고, 따라서 프랑스 대혁명 이전 영국에는 제니 방적기만 2만 개가 설치된 반면 프랑스에는 900개 그리고 인도에는 단 하나도 설치되지 않았다.
아래의 ‘그림’은 자본재에 비교한 상대 임금을 국가별로 비교한 것입니다. 제일 위에서 상승 흐름을 지속하는 게 영국, 반대로 인도(제일 밑의 굵은 선)는 영국에 비해 거의 1/3 이하임을 쉽게 알 수 있죠. 즉, 인도에서는 그 비싼 방적기계나 방적기를 도입하느니 차라리 싼 인력을 이용해 물레를 돌리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대임금의 격차에 따른 투자양극화는 더 큰 문제를 낳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지속적인 자본투자로 생산성이 향상될 경우에는 아무리 싼 인력을 투입하더라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죠(책 58~59 페이지).
증기기관은 발명을 추동하는 경제적 인센티브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증기기관의 과학은 유럽 전체에 알려져 있었지만, 연구개발은 영국에서 이뤄졌다. 영국에서만 증기기관 개발에 엄청난 자금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중략)
마력시(horse power-hour) 당 석탄 소비량은 1730년대 뉴커먼의 증기관은 44파운드였는데, 이후 크게 줄어들어 19세기 후반의 3단 팽창 선박용 증기기관은 단 1파운드에 불과하다.
아래의 ‘그림’은 면직물 가격의 변화를 보여주는데, 1781년 산업혁명 초기 런던의 영국산 면직물 가격이 은 8그램에 이를 정도로 비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점점 더 생산성이 향상되며, 1821년에는 런던의 영국산 면직물 가격이 은 2그램까지 떨어지고 1901년에는 이윽고 0.5그램 이하로 하락한 것을 발견할 수 있죠.
이 과정에서 인도의 면직물은 가격경쟁력을 잃었으며, 또 영국산 면직물 가격의 인하 공세에 맞서 가격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무시무시한 탈 산업화가 인도에서 벌어졌죠. 인도에서 면직물 산업이 붕괴되며, 제조업 비중이 높았던 주들은 파멸적인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책 96 페이지).
인도는 이제 면사 수입국이 되었다. 규모가 작고 수익성이 낮은 수제 베틀에 기초한 방직은 살아남았지만, 방직산업의 산출이 감소했다. 비하르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력의 비중은 1810년 22%에서 1901년 9%로 감소했다. 엄청난 탈산업화였다!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산 면직물이 조선에 수입되면서 벌어진 일이 인도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던 셈입니다. 결국, 이상과 같은 역사적인 가르침은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 번째, 인건비가 싼 지역에서는 자본재 중심의 투자 활동이 진행되기 힘들다. 즉, 못 사는 나라일수록 자본투자가 부족해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 위험이 높다.
두 번째, 가차없는 자본주의의 수레바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날 길은 실질임금을 높이고 그 과정에서 자본투자의 수익성을 높이는 것 밖에 없다. 이렇게 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고, 20세기 영국 런던의 근로자들처럼 생산성 향상에 따른 수익을 향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의 경우, 일자리가 없어지기는 커녕 실업률이 4.4%까지 떨어질 정도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아무튼 왜 미국과 유럽 등 일부지역에서만 혁신의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는지, 더 나아가 그 외의 지역은 이게 잘 안되는지 이해하는 데 ‘노동력의 상대적 가치’가 핵심적인 부분임을 알 수 있는 듯 합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은 어떨까요?
자본재 대비 임금의 상대적 가치가 선진국에 비해 낮으니, 투자의 매력이 낮은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방치하면 19세기 인도꼴이 날테니 어떻게든 정부가 혁신을 자극하고 경쟁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이강국 교수님의 유려한 번역 글 때문에, 쉽지 않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한나절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귀한 글과 책, 감사합니다.
원문: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