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나가던 금융인, 전업투자자가 되다
리승환(이하 리):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한상경(이하 한): 전업투자자… 라고 남들은 부르는데, 반백수라고 볼 수도 있네요.
리: 몇 시간이나 일하시죠?
한: 시장이 열리는 날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무실에 있어요. 하루 8~9시간 앉아 있는 셈이죠. 공식적으로 회사에 매여 있지 않으니 백수라고 봐도 되겠지만, 사무실에 꼭 일하러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사무실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밥도 먹고. 말하자면 사랑방인 셈이죠.
리: 주로 어떤 쪽에 투자하세요?
한: 거의 매크로 투자를 주로 해요. 매크로 투자란 경제지표를 예측해서 주가, 금리, 환율 등에 투자하는 걸 말해요. 그러나 흔히들 이야기하는 장기투자자는 아니에요. 중기투자자쯤 되겠네요. 내일 일도 모르는데 어떻게 몇 년 뒤를 내다보겠어요. 하지만 1~3개월 정도는 흐름이라는 게 있어서 예측이 가능해요. 포지션 대부분은 선물로 구축하고 있고요. 개별 주식도 하긴 하지만 전체 포지션의 5% 정도예요. 이쪽은 최소 6개월 정도는 가지고 가는 편이에요.
리: 어쩌다 금융업에 뛰어들게 됐나요?
한: 첫 직장은 제일제당이었어요. 제가 97년 7월 졸업했는데, 외환위기 직전이라 어디든 쉽게 들어갈 수 있었어요. 당시 제일제당이 금융업을 시작하려고 제일투신을 인수했는데 거기서 자산운용사 생활을 시작한 거죠. 그러다가 동원투신을 거쳐 미래에셋에서 상무까지 하고 독립했어요.
리: 외환위기 당시 직장 생활은 어땠나요?
한: 처음 취직했을 당시 한국 금융산업은 매우 낙후돼 있었어요. 어둠의 세계라긴 그렇지만 지금처럼 투명하지 못했죠. 차명거래야 일상이었고,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이 종사했던 시절도 아니에요.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고객 상담하고, 그렇게 모인 돈을 운영하는 펀드매니저도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IMF 터f지고 바이코리아 열풍이 불 때까지도 계속 그랬어요.
리: 이후 외국산 펀드매니저가 들어오며 나아진 건가요?
한: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해외에서 한국 와서 성공한 펀드매니저도 거의 없어요.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조금씩 나아진 거죠. 이건 미국을 비롯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예요. IMF부터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말이에요. 그러면서 계속 발전해왔죠. 투명성도 커졌고, 잘못했던 놈들 퇴출당하고, 부실한 곳은 구조조정 하고…
2. 현재의 한국 시장, 믿을 수 있을까?
리: 그러면 지금 한국 금융시장은 신뢰할 만하다고 보시는 건지요?
한: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사람들에게 펀드를 절대 권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자산운용사가 성공하는 방식을 보면 거의 비슷해요. 다양한 펀드 만들어서 운영하다 보면 한두 개는 성공하거든요. 초창기 펀드 규모 작을 때는, 때때로 엄청나게 높은 성과가 나오니까요. 그러면 안 된 펀드는 포기하고 잘 된 펀드에 집중하고 광고해서 돈을 끌어모으죠. 전체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보다 나을 게 없으면서도. 우리나라에 장기적으로 시장을 이긴 펀드나 운용사가 있나요? 없습니다.
리: 괜찮은 방법이네요(…)
한: 여기까지면 그나마 나은데… 밀어주는 펀드에서 주식을 산 다음에, 들어온 돈으로 그 펀드가 산 주식을 계속 사요. 어느 정도까지는 계속 이런 식으로 주가를 올릴 수 있거든요. 주식시장은 자기강화가 강한 시장이에요. 그런데 사이즈가 커지면 문제가 돼요. 그 비싼 주식을 아무도 안 사주면 펀드 수익률이 나빠지죠. 사실 성공했다는 곳 보면 거의 비슷해요. 이 사이에서 수수료 수익 챙기고…
리: 아무리 그래도 자산운용사 한 곳이 그렇게까지 주가를 움직일 수 있나요…
한: 시가총액 1조 주식이라 해도 대주주 지분 빼고 외국인 빼고 등등하면, 실제 유통 주식은 얼마 안 돼요. 시가총액 1조 회사 주가 움직이는데 몇백억이면 충분해요. 그게 다 작전인 거고… 그래서 자산운용사 사짜들 보면, 다들 중소형주 가지고 있어요. 수익률 높다고 해서 포트폴리오 까보면 PER, PBR 등에서 고평가 주식이 많은 경우가 허다하죠. 주식형 펀드는 성과 좋다고 쉽게 가입하면 안 돼요. 차라리 잘하는 매니저가 고전할 때 들어가는 게 맞죠.
리: 하지만 가끔 기적의 투자자가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한: 피터 린치가 전설의 매니저잖아요. 그런데 그 펀드 가입한 사람들 사실 손해 본 사람들도 많아요. 피터 린치도 작을 때 큰 수익을 낸 거지, 자금 규모가 클수록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미 수익률이 높아졌을 때 들어간 사람들은 손해 볼 가능성이 크죠. 애초에 펀드는 수수료가 보통 2~3%고 아무리 낮아도 1% 이상이에요. 그런데 1년은 그렇다 치고 5년 아웃퍼폼할 수 있을까요?
리: 적립식 펀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마찬가지예요. 꾸준히 계속 넣으면 수익률이 평균에 가까워질 뿐이죠. 지속적인 상승장이라면 모를까, 하락장에서는 오히려 피해가 더 커져요. 펀드에 투자하려면 정말 고민 많이 해야 해요. 판매사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자료나 지인 말 믿고 넣을 게 아니에요. 전 차라리 일반 투자자라면 수수료 싼 ETF에 투자하라고 권해요.
리: 금융권에서 20년 일하며 높은 자리까지 가봤으니 고수 많이 보지 않으셨나요?
한: 물론 봤죠. 그런데 솔직히 고수의 비율은 자산운용사에서도 극히 드물어요. 정말 스테디하게 운용을 잘하는 사람은 주식, 채권시장 통틀어서 몇 명 안 돼요. 더군다나 마음에 드는 매니저를 발견했다면 아마 이미 성과 많이 낸 시점이라 미래에 좋은 수익률을 낼 확률은 더 낮을 거예요.
좋은 매니저를 발견하는 건 좋은 주식 고르는 것 이상으로 힘들어요. ETF, 인덱스 꽂는 게 확률상으로도 더 좋아요. 운 좋게 내 펀드 운영하는 매니저가 탁월한 성과를 내서 높은 수익률을 내는 경우도 물론 있긴 하죠. 그런데 많은 경우 이건 ‘운’이에요.
리: 아니, 본인은 계속 수익률 좋지 않습니까…
한: 전 기본적으로 채권 투자자라서 주식에 비하면 좀 더 안정적이긴 하겠죠. 또 지금까지 성과를 통해 시장 평균보다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고요. 그런데 채권펀드는 개인들이 많이 투자하는 영역이 아니잖아요. 사람 믿고 무작정 돈 넣는 건 기본적으로 반대입니다.
리: 어느 정도 성과였기에…
한: 미래에셋에서 2006년부터 국내채권펀드를 운영했어요. 성과는 솔직히 몇몇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지만 업계 탑급이긴 했어요. 특히 금융위기 때 금리가 내려가며 채권의 시기가 열리며 어마어마하게 좋았죠. 연평균 7~8% 찍었고 금리 하락 시에는 연 10% 수익을 낸 적도 있어요.
리: 헐; 왜 나왔나요…
한: 너무 바쁘게 살았어요. 보통 5시 반쯤 일어나서 7시 반 전에 출근해서 미국 시장 보고 리포트 보고 장 열기 전부터 회의하고 장 열면 매매하고 포트폴리오 조정하고… 쉴 시간이 하나도 없었어요. 장 마치면 고객사인 기관들도 만났죠. 주말에 출근을 하든 말든 다음 주 어떻게 할지만 생각했어요.
미래에셋이 다른 회사보다 월급은 더 줬지만 그만큼 일은 더 많았어요. 바쁘기도 했지만 고객사 만나서 하나하나 맞춰주는 일이 많았죠. 실수하면 머리도 조아려야 했고요. 자존심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그런 생활에 지쳤던 것 같아요.
리: 인센티브 꽤 받지 않았나요?
한: 연봉이 적진 않았죠. 하지만 채권 쪽은 인센티브가 크지 않아요. 안정적으로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채권이니까요. 일반 직장인들이 볼 때 부러워할 월급이긴 했지만 금융권에서 어마어마한 수준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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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투자자로 독립한 이후의 삶
리: 그래도 개인투자자로 독립하려니 부담되지 않았나요?
한: 원래부터 와이프는 물론 친한 사람들에게 직급과 성과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회사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일종의 플랜B였죠. 물론 가족 생계가 있으니 두려웠지만, 더 늦으면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올 때 우리나라 나이로 43살이었어요. 독립해서 실패했을 때 다시 누군가 저를 부를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50 다 돼서 실패하면 그럴 수가 없어요. 제 경력이 피크에 있을 때 나오는 게 좋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야 시장에서 이슈도 되고….
리: 독립하니 사람들이 서로 자산관리 해달라 하지 않았나요?
한: 처음부터 순수 제 자본만 투자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효도 차원에서 양가 부모님 돈 받아서 매월 1%씩 배당 드리는 게 전부예요. 생활비 넉넉하게 쓰시라고 해드리는 건데, 나이 들어서 돈 쓰실 데가 없다고 자꾸 더 넣으려 해서 고민이네요.
리: 나머지 개인 돈을 굳이 안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부모님이야 가족이지만, 개인적으로 투자받으면 약간의 불법 소지도 있어요. 그렇다고 정식으로 자문사 차리는 건 너무 귀찮고… 또 거기서 받는 수수료 몇 푼이나 되겠어요? 그 관계에 얽매이는 게 싫어요. 자유롭게 살려고 회사 나온 거잖아요.
저도 초창기에 친한 사람이 하도 간청해서 돈 좀 굴려준 적이 있어요. 그때 내건 조건이 묻고 따지지 말란 거였죠. 그런데 두 달 성과가 이미 5%를 넘었는데도 다음 달 조금 빠졌다고 전화해서 왜 그런지 물어보더라고요. 기분 상해서 바로 빼라고 했어요.
리: 그런 게 투자자 마음인 거 잘 알지 않습니까…
한: 제가 이야기한 게 그래도 최소 연 7%는 해주겠단 거였어요. 이미 두 달 만에 절반 이상 성과 냈는데 그러면 곤란하죠. 투자자는 자기한테 맞는 투자를 해야지 절대 큰 욕심 가지면 안 돼요. 『행운에 속지 마라』는 책에도 이런 내용이 나와요. 사람들은 몇몇 성공한 사람들을 보고 생각해요. 실력이 좋아서 성공했구나. 하지만 알고 보면 그저 운 좀 좋고 성과가 좀 좋았던 사람에 불과해요. 태어나자마자 아빠가 이건희인데 그걸 어떻게 이겨요? 내 아빠가 빌 게이츠 정도가 되어야 이기겠지.
리: 빌 게이츠는 유산 안 물려준다 하고… 아무튼 능력 차이도 있지 않습니까?
한: 자라 회장처럼 자수성가할 수도 있죠. 그런데 그 사람조차 그때 유럽에서 그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기회가 있었을까요? 제 말은 노력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제 지론은 인생의 90% 이상이 운이고, 노력은 그 운을 받을 받아들일 그릇을 만드는 거라 생각해요. 그릇이 아무리 커도 운이 빗겨나가면 성과를 낼 수 없어요. 반대로 게을러서 그릇이 작아도 운이 넘칠 정도로 들어올 수도 있고요.
인생이 안 풀린다고 좌절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반대로 잘 된다고 교만할 이유도 없고요. 그래도 그릇을 키울수록 운을 받아들일 확률도 높으니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다만 인생이 운이란 걸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는 게 행복이죠.
4. 채권 투자가 매력적인 이유: 불안이 덜한 중간 정도의 수익
리: 채권을 좀 이해하면 주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나요?
한: 꼭 그렇지는 않지만 아주 모르는 것보다는 당연히 낫죠. 세상에서 가장 큰 자본 시장은 채권, 주식, 외환 이렇게 셋이에요. 이 중 채권의 기본이 되는 이자율은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에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에요. 주식을 위해 채권 시장을 이해하거나 복잡한 이론을 섭렵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채권시장의 기본적인 흐름과 개념을 잡으면 주식시장을 비롯한 각종 자본 시장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지죠.
리: 채권 투자가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한: 저도 주식으로 성공하는 사람 정말 많이 봤고 그 사람들 존경해요. 부럽기도 해요. 그런데 주식으로 성공한 사람은 매우 극소수예요. 대다수 사람들은 주식으로 성공하기 힘들어요. 반면 채권시장 많이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중간 정도의 수익을 원하죠.
저는 확률상 정규분포의 양 끝단에 있기보다는 중간에서 조금 위쪽에 있길 원하는 사람이죠. 주식은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마음이 흔들리고, 거의 대부분은 사실 양극단에 베팅하게 돼요. 그런 사람들에게 채권과 유사한 주식 혹은 채권 개념 가진 상품이 대안이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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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채권과 유사한 주식이라 함은?
한: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대표적인 예는 맥쿼리 인프라, 맵스리얼티같은 게 있겠죠. 어찌 보면 배당주도 가까워요. 이자율이 떨어지면 전반적인 기대수익도 떨어지는데, 이건 자산 가치가 올라간다는 의미도 있어요. 옛날 이자율 5% 시절에 임대료 수익 10%나, 지금 이자율 1.5%에 기대수익 5%나 큰 차이가 없거든요. 거기에 맞춰서 그만큼 기대수익 낼 수 있는 자산을 찾으면 되는 거죠.
리: 채권 투자에서 주로 보는 지표는 무엇인가요?
한: 채권의 기본은 두 가지, 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이에요.이게 펀더멘탈이고 경제의 큰 흐름이죠. 여기에 다른 큰 축이 수급이에요. 주식과 마찬가지로 단기적으로는 수급이 더 중요하죠.
리: 채권은 수익률이 매우 낮은데, 이걸로 충분한 수익률이 나나요?
한: 단순한 채권투자는 높은 수익률을 내기 어려워요. 위험대비 수익이 높은 투자기회가 생기면 레버리지를 조금 쓰죠. 그래서 대부분 채권 선물에 투자해요. 이때 주로 투자하는 대상은 네 가지에요. 국내 장기 채권, 국내 단기 채권, 미국 장기 채권, 미국 단기 채권. 예를 들어 우리나라 채권이 단기적으로 너무 고평가됐다 하면, 국내 채권에 매도포지션을 취하고 미국 채권에 매수포지션을 취합니다.
리: 이 네 가지만 가지고 어떻게 판단하죠(…)
한: 나라별로 펀더멘탈이 있어요. 기본적으로 한국 주요 지표를 보고, 미국은 전 세계 바로미터이니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자료를 눈여겨봐요. 그러면 양국 채권 간 금리 스프레드(금리 격차)가 보여요. 어떨 때는 미국 채권은 그대로 있는데 한국 채권이 내려가고, 그 반대 경우도 있어요. 펀더멘탈과 수급을 봤을 때, 이 스프레드가 왜곡된 경우 들어가는 거죠.
리: 너무 단순해 보이는데요(…)
한: 물론 실전 경험이 적잖이 쌓였으니 가능한 이야기이겠죠. 생각보다 감에 의존하는 부분도 커요. 전부 데이터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오랜 기간 시장에 있으면서 몸속에 들어와 있다 해야 하나… 누구나 그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경험과 감이란 게 있을 테니까요…
리: 기타 다양한 지표는 안 보는 건가요?
한: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성과가 좋을까요? 솔직히 전 좀 좀 게으른 매니저였어요. 분석도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하지 않았고요. 회사 다닐 때 대표님께 농담삼아 이런 이야기 한 적도 했어요. 열심히 해서 성과 좋아진다면 회사에 라꾸라꾸 갖다 놓고 숙식할 거라고. 물론 주니어급은 아직 배울 게 많으니까 열심히 해야죠. 그런데 이미 그 과정을 거쳤다면 세상을 넓게 보는 게 더 중요해요. 변수 복잡하게 들어가면, 경제 예측이 더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리: 채권 외 시장에서는 무엇을 보시나요?
한: 여기서도 몇 개 안 봐요. 채권을 중심으로 주식환율을 보고 간혹 유가를 봐요. 주식시장이 어떻게 된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주가지수라는 건 여러 개별 주식시장을 어떤 방법으로든 가중평균 낸 지수예요. 그걸 어떻게 쉽게 예측해요? 주식시장 볼 때도 채권과 마찬가지로 봐요. 지금 경기가 좋은지 안 좋은지, 즉 펀더멘탈을 먼저 보죠. 다음으로 지금 전체 시장에 돈이 많은지 주식이 많은지, 이건 수급이에요. 또 투자자들의 반응도 관찰하고요.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약세시장, 둔감하게 반응하면 강세시장이니까요. 거시적인 시장 PER, PBR 같은 지표도 보고요.
리: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신다면…
한: 우리나라 펀더멘탈은 매월 초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 매월 말 발표하는 광공업생산지수를 봐요. 미국 주요경제지표와 FOMC 결과와의사록 같은 것도 잘 살펴봅니다. 이건 기본이죠. 여기에 더해 누가 채권과 주식을 사는지, 왜 사는지에 관심을 기울이죠. 예를 들면 주식 수급의 경우에는 외국인 비중의 변화를 주시합니다.
5. 그렇다면 대체 언제 때려치우라는 이야기지?
리: 대표님처럼 독립하려는 사람이 조언을 많이 얻으려 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말씀해 주시나요?
한: 대부분 말려요. 먼저 과연 그만큼의 준비가 됐는지 물어봐요. 회사업무가 빡세니까, 힘들어서 나오려는 사람이 많아요. 제가 물어보죠. 회사에서 성과 잘 냈냐? 그렇게 자신 있으면 일단 회사에서부터 수익률 내봐라… 회사 탓을 먼저 하는데, 아무리 회사에 제약조건이 많아도 자기가 잘하면 얼마든지 낼 수 있어요. 회사에서도 못 낸 수익률을 독립해서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에요. 또 회사 월급과 복지가 생각만큼 만만치 않아요. 한국 사회에서 명함의 힘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고요.
리: ㅠㅠ
한: 두 번째로, 자기를 믿고 자금을 맡겨줄 투자자가 없다면 본인 자산을 어느 정도 모았을 때 나오는 게 맞아요. 최소 5억 정도는 있어야죠. 되도록이면 10억 정도 있어야 할 것 같고… 여기에 중요한 건 집은 따로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담보대출 당겨서 투자한 사람 중에 잘 된 사람 거의 없어요. 나오면 다 돈이거든요. 사무실 비용, 생활비 쓰다 보면 수익률 높아도 자본이 축적되지 못하는 케이스도 많아요. 이러면 복리 투자가 안 되니 겨우 현상 유지하다가 한 번 잘못하면 바로 무너지죠.
리: 세상 참 냉정하군요…
한: 그리고 기왕이면 최소 2~3년은 준비하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2년 정도 준비하고 나와서 버티고 있는 거예요. 자금 축적은 물론이고 모의거래를 통해서 제가 가진 스킴이 어떤지 데이터를 축적했어요. 잘 안 됐을 때도 최소한 우리 가정에 큰 타격은 없겠다는, 그런 자신감이 붙었을 때 나와야죠.
리: ……
한: 또 한 가지, 박수칠 때 떠나야 해요. 그래야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자기 잘났다고 회사와 척지면 안 돼요. 금융업계가 좁으니 레퓨테이션 잘 관리해야죠. 주식은 베팅이라 해도 인생은 베팅이 위험합니다. 늘 플랜 B를 생각해야죠. 물론 크게 성공하려면 올인해야겠지만, 그 높은 자리 갈 확률은 너무나도 낮아요. 누군가 한 명이 성공했다면 그 뒤로는 무수히 많은 시체가 있기 마련이죠.
저 같은 경우도 와이프에게 순 자산 5억 감소하면 돌아가겠다는 데드라인을 잡았어요. 다행히 그렇지 않고 수익이 나서 지금까지 왔지만, 이런 데드라인 없으면 한 번 무너졌을 때 균형을 못 잡을 수 있어요.
리: 뭔가 하는 것마다 잘 된 것 같은데, 실패 사례 좀 없나요(…)
한: 많죠. 지금은 잘 된 결과만 보이지만 금융계 있으면서 성과 안 좋은 적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당연히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압박감, 자책감도 컸고… 독립하고 나서도 한두 차례 큰 손실을 보기도 했어요. 티는 안 냈지만 엄청 힘들었죠.
리: 수조 단위로 돈 굴리다가 몇천 날리는 걸로도 심리적으로 흔들리나요?
한: 그건 회사 돈이고 이건 내 돈이잖아요? 회사 돈은 100억 잃어도 내 돈은 아니에요. 또 제가 미래애셋에서 몇조 굴렸는데, 단위가 너무 커지면 이건 돈이 아니라 그냥 숫자로 보여요. 반면 내 돈은 1,000만 원만 잃어도 내 돈이에요.
리: 투자를 하려면 그만큼 스트레스도 잘 풀어야겠군요.
한: 철없고 어린 시절, 괄괄할 때, 한 번은 운용이 뜻대로 안 돼서 전화기를 부쉈어요. 욕먹을 줄 알았는데 상사들이 되게 근성 있다고 말해줘서… 지금 생각하니 민망하네요(…) 그다음부터는 연필을 사서, 아주 정성스레 깎아뒀다가 부러뜨리기도 했어요. 옆에서는 잘 모르니까(…) 젊었을 때는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요즘은 간단히 와인 한잔하던가 대부분 운동하죠. 드라이브도 하고…
리: 증권사 실적 문화가 사람을 황폐화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증권사 월급 많잖아요. 그만큼 돈 받으면 그 정도 스트레스는 감당할 몫이에요. 취업하기도 힘든 시대인데 그 정도 스트레스를 감내하지 않고 더 많은 돈 벌겠다는 건 욕심이에요.
리: 아니, 그래도 자살도 종종 일어나는데…
한: 주로 지점에서 발생하는데, 규정을 지키면 극단적으로 갈 일은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무리하게 권유를 했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임매매를 했다거나 다른 사람 계좌에 손댔다거나, 대부분이 그런 경우예요. 가끔 동양증권 사태 같은 게 생기면 문제이겠지만 그 경우에도 원칙대로 영업했다면 그런 문제 터질 일이 없어요. 내가 정확하게 원칙에 의거해서 영업했으면 투자자에게 미안할 필요도 없고요. 결국, 투자자도 고수익에 눈이 어두워 위험을 감수한 면도 있으니까요.
리: 그래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한: 저는 그래서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 빼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리하게 권유한 사람은 당연히 처벌받아야죠. 그러나 정부가 보상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높은 수익만 보고 투자한 사람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 금융 관련 규정들이 많이 불합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부실하진 않아요. 적정 수준의 보호 절차는 있으니 증권사나 투자자 모두 탐욕을 버리고 정석대로 투자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6. 한국 금융의 미래는… 글쎄다….
리: 우리나라 금융 시장의 특수성이 있다면?
한: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장과 같이 가는 데 가끔 반대로 가요. 변동성이 좀 더 높은 경우가 발생되기도 하거든요. 중국이야 규제가 많으니 제쳐두고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을 엑스재팬 아시아(Asia Ex-japan)이라고 해요. 싱가폴과홍콩은 달러 페그제도라 한국처럼 변동환율이 아니에요. 그래서 사이즈와 수급 면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어요. 한국이 주식 1,300~1,400조, 채권은 1,700조인데 결코 적지 않아요.
리: 무슨 의미죠(…)
한: 예를 들어 어떤 이슈가 발생해서 엑스재팬 아시아 주식을 사야 하는 미국 대형금융기관이 있다고 생각해보죠. 싱가폴, 말레이시아, 태국 같은 나라는 조금만 사도 확 올라요. 한국 시장은 저런 나라들보다 규모가 되는 시장이니 우선 한국을 삽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천천히 사는 거죠. 일종의 프락시 시장 성격이 강합니다. 파생상품시장도 한국만큼 선물, 옵션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나라가 없어요. 주식, 채권, 환 시장 모두 마찬가지예요. 그런 특수성을 감안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죠.
한상경 대표 강의 바로 가기(얼리버드 20% 할인)
2차 얼리버드 번들 할인(최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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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보세요?
한: 기본적으로 상대적으로 조금 어렵다고 봐요. 동력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죠. 그런데도 여전히 경제구조가 과도하게 대기업 위주로 몰려 있고, 여전히 구태의연한 대기업 위주 정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거기다 인구구조도 노령화되는 중이고, 그에 반해 빠르게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좋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쉽게 말해 금리가 바로미터입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금리가 상대적으로 더 하락했어요. 그만큼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말이겠죠.
리: 금융업의 미래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 여기도 별로 안 밝다고 봐요. 한국 금융은 대부분 개발도상국가들이 그러했듯 관치금융으로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선진국이 된 지금도 은행 중심의 관치금융이 이어지고 있어요. 우리나라 주요 시중은행에 대부분 정부 지분 들어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금융 정책당국의 영향력이 너무 커요. 그리고 그들은 공무원이라 쓸데없는 규제와 정책을 내놓고요. 금리가 과거에 비해 이렇게 내려왔는데 은행 예대마진은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잖아요.
리: 갑자기 모두까기 모드인데, 증권사는 어떤가요(…)
한: 증권사도 마찬가지예요. 나라 규모에 비해 너무 많잖아요. 증권사들도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증권사가 살아남은 건 장기적으로 금리가 하락했기 때문이에요. 자기자본을 채권에 투자하고 고객 RP(환매조건부 매매;고객 증권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고 원금과 이자를 받는 상품)에서 난 수익으로 버틴 거죠. 그거 아니었으면 이미 셋 중 둘은 문 닫았을 거예요.
이런 시기가 거의 끝나가니 앞으론 좀 힘들어질 거예요. 그래서 지금 서로 몸집 불리는 거고요. 다들 활로를 찾으려 노력 중인데, 솔직히 증권사들 여전히 글로벌 경쟁력은 없어요. 더구나 우리나라의 정책당국은 계속 걸림돌이 돼서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역시 잘 되길 바라야죠. 아… 사족으로 더 큰 문제는 보험사에요. 저금리 더 지속되면 여기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리: … 금융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학생들이나 주니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금융에서 성공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해요. 하나는 테크놀로지예요.알고리즘이 됐든 물리학이 됐든, 그걸 가지고 있든 아니든. 또 하나 필요한 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인문학적 소양이랄까?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만 있다면 충분히 승부를 걸 만한 곳이라 생각해요. 그러려면 사람도 많이 만나고 책도 많이 읽고.
리: 주식 책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한: 그것도 읽어야겠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훨씬 중요해요. 기본적으로는 주식시장은 인간이 하는 거잖아요. 심지어 투자에 필요한 테크놀로지 만드는 사람도 인간이고. 예전보다야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성공 못 할 이유도 없어요. 왜냐면 세상이 그렇듯 금융도 탑티어 아니면 나머지는 덤앤더머 싸움이에요. 상대가 더 바보면 내가 이겨요. 물론 탑티어는 다르죠. 다만 모두 탑티어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리: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에서의 조언을 준다면…
한: 워렌버핏, 조지 소로스는 참고만 하면 돼요. 우리는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데다 미국에서도 그런 성공을 한 사람은 몇 안 돼요. 조금 현실적으로 접근하자는 거죠. 한국에서 순 자산 10억이면 대한민국 상위 4.4%에요. 제가 40대 중후반인데 친구들 다 명문대 나와서 좋은 직장 다니고 연봉 1억 이상 받지만 순 자산 10억 안 되는 친구들 많아요. 그럼 우선 자수성가로 10억 20억 30억 모은 사람의 지혜가 더 현실적일 겁니다.
리: 역시 제때 집을 사야…
한: 그것도 옛날에야 큰 도움이 됐지… 대충 87학번 정도? 그때까지가 열심히 일해서 대박 낼 수 있는 시기였다고 봐요. 이제 그런 대박은 힘드니 차라리 주변에 자수성가로 어느 정도 부를 이룬 사람들을 눈여겨보며 배웠으면 좋겠어요.
관악산 가 본 사람이 더 훈련해서 백두산도 가고 에베레스트도 가지, 그 반대는 아니거든요. 일단 여기 들어와야 그 이상이 보이잖아요. 너무 높은 곳 바라보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면, 설사 운이 좀 없더라도 10억 정도는 갈 수 있다고 봐요. 그러면서 안목을 더 기르면 더 많은 부를 이룰 수 있겠죠.
저는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에요. 그런데 운 좋게 회사생활을 잘했죠. 독립해서도 수년간 살아남아서 지금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산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고 큰 성공을 거둔 건 아니라서 이런 인터뷰가 부담스럽기도 하네요. 아무쪼록 보통사람들이 조금 더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며 사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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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일자 / 장소
- 7월 6일 (목) 19:30~21:30 / 비전티움 아카데미
강연내용_세줄요약.txt
- 투자의 기본, 금리와 채권 이해하기
- 매크로 지표로 경제의 흐름 읽고 투자하기
-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성과를 올리는 올바른 투자자의 자세
누가 이 강연을 들어야 할까요?
- 투자를 하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
- 매크로 지표로 경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자 하는 분
- 장기적으로 꾸준히 수익률을 높이고자 하는 분
이 강연을 들으면 뭘 알 수 있지요?
- 채권을 잘 이해하면 주식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수익률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채권은 금리, 환율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에 자연스럽게 거시경제를 이해하고 주식 등을 투자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줍니다. 나아가 개인투자자로 독립을 원하시는 분들께 실제 개인투자자로의 삶을 가져가기 위해 필요한 것과 위험 요소에 관해서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