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데이터 체크한 다음 이야기하자.”
명색이 증권시장에서 이코노미스트 일을 하는 터라 누군가의 흥분된 주장을 들으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된 주장에 홀라당 넘어가면 그 뒷감당은 온전히 저 혹은 다른 투자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 이슈도 마찬가지예요. ‘미세먼지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거 동의합니다. 먼지 많이 마셔서 건강에 좋을 리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다른 모든 문제보다 우선할 만큼 시급하며, 더 나아가 심각한 이슈인가에 관해서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먼저 한국의 미세먼지 상황부터 살펴보죠.
서울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2002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개선되다 2012년을 기점으로 다시 ‘보합’ 내지는 소폭 악화되는 수준입니다. 아래 그래프는 한국의 암 발병률입니다. 꾸준히 떨어지는 중이죠.
대기오염, 특히 미세먼지 오염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면 폐암을 포함한 여타 암 발병률이 꾸준히 떨어지는 문제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한국 기대여명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는 중이죠. 따라서 아래와 같은 중간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 최근 한국 대기 문제가 악화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데이터로 이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 주요국의 경제성장과 환경오염의 관계를 보면, 경제성장의 초기부터 중기에는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다 경제가 성숙국면에 진입할 때 환경문제 관심이 증가하고, 이에 대한 지출 여력이 높아짐에 따라 환경 여건이 개선되는 과정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 따라서 현재 한국 정부가 맞닥뜨린 수많은 현안 중 대기환경 개선이 최우선 순위에 올라야 할 요인인지 의문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문제가 여기서 끝날 리 없죠. “서울시에서 측정한 지표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에 제가 찾은 것이 ‘국립환경 과학원’에서 발간한 ‘대기환경연보(2015년)’에서 발견한 통계입니다.
나타난 것처럼 서울뿐 아니라 한국 주요 도시 모두 미세먼지 농도가 떨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랑 가까운 인천의 공기 질이 2012년부터 악화된 것을 보면 최근 미세먼지 문제의 근원이 중국 때문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통계죠.
물론 여기서 논란은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2016년 이후 숫자가 높아졌을 거고, 월별 변동성이 커졌을 테니 평균은 의미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저도 이쯤에서 접으려는데 양승훈 교수님이 이 귀찮은 작업을 수행하셨더군요.
월별 미세먼지 농도 데이터입니다. 중간에 있는 진한 선은 ‘추세선’이고요. 간단하게 말해 미세먼지 농도는 월별 계절성이 큰 것은 사실이나 추세적으로 볼 때 우하향 중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통계도 이전에 비해 꾸준히 고점이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급기야 일부 관측소(백령도 등)의 부정확한 데이터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아예 우리나라 정부 데이터를 못 믿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관측소가 서울에만 25개 있습니다.
백령도 등 도서 지역 관측소야 인력 부족 등으로 데이터가 잘못 관측될 가능성이 있다 쳐도 서울의 데이터까지 다 엉망으로 관리되었다고 볼 근거가 있을까요? 저도 몇 년 공직에서 근무했습니다만, 그 강도 높은 감사(부서/감사원/국정감사)와 집요한 환경 운동 단체의 추적 등을 감안할 때 데이터를 조작하는 게 오랫동안 유지될까요?
결국 이상의 이야기에서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한 가지 편향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확증편향’이죠. 결론을 정해놓고 자신의 맘에 드는 근거만 짜 맞추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반박은 아예 쳐다보지 않는 현상입니다. 물론 이건 인간 본연의 문제입니다. 저도 이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예를 들어 지난번 KOSPI 예측치가 2,350이었으면 새로 작성하는 자료에서도 이 숫자에 구애됩니다.
이런 편향에서 벗어나기 참 힘들죠. 그렇지만 저희 증권맨들은 이런 편향을 벗어나기 위해 무척 애를 씁니다. 안 그러면 시장에서 도태될 테니까요. 그래서 데이터를 모으는 데 온 힘을 기울이죠. 대표적인 예가 아래의 그래프입니다.
파란 선은 세계 전체, 검은 선은 북반구를 가리킵니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허리케인 등 열대성 저기압의 발생이 빈번해지고 그 에너지도 커졌다는 주장이 많지만 전혀 근거 없음을 보여줍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끊임없이 소음에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하도 많은 정보를 듣다 보니 어떤 게 소음이고 어떤 게 신호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고, 결국 선정적인 주장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항상 데이터를 체크하고 또 점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그래, 데이터 체크한 다음 다시 이야기하자.”
원문: 시장을 보는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