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한국사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집단은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한 극우 인터넷 사이트이다. 일베는 5·18 희생자들의 시신을 두고 ‘홍어 말리는 중’이라고 조롱하거나, 시신이 담긴 관을 두고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일컬어 ‘어머니 홍어 택배 왔어요’라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을 늘어놓았다. 일베의 이러한 행태는 몇몇 종편의 5·18 왜곡 보도와 맞물리면서 사회적인 비난을 받았고, 5·18 관련 단체들은 일베를 고소했다.
그렇다면 일베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고, 또 해법은 무엇일까. 몇몇 언론은 역사교육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한겨레는 “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에서 제외되는 등 일선 학교에서 역사 수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학생들의 역사의식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우려는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겨레는 “이 틈을 타고 일베처럼 무지와 왜곡에 기초한 편파적인 논리를 설파하는 세력이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역사수업 축소, 한국 근현대사 백안시…”역사교육이 문제야!”
오마이뉴스는 현장 교사들의 말을 빌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현대사를 아주 짧은 분량으로만 다룬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과정이 개정됐고 근현대사의 비중이 대폭 축소되었다는 점도 꼬집었다. 경향 역시 “역사교육과 대학교육이 없어진 틈을 일베가 채운 것”이라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중·고교 필수과목이었던 역사가 선택과목이 됐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근·현대사나 사회과학 교육이 없는 점으로 인해 이들이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몇몇 방송도 마찬가지다. SBS <현장21>은 두 차례에 걸쳐 일베 현상을 다루며, 필수과목이었던 국사가 기피과목이 되어버린 현실과 근현대사 교육의 부재를 꼬집었다. MBC <무한도전>은 아이돌들을 데려다 장학퀴즈를 열고 그들에게 역사를 가르쳤다. MBC <컬투의 베란다쇼>에서도 역사퀴즈를 내고, 대학생들의 무식을 강조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이어 받아 광주에서는 공무원시험에서 역사과목의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한국사, 특히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수능에서도 국사를 필수로 지정하면 일베와 같은 쓰레기 사이트는 역사의 해프닝으로 사라지게 될까?
학교교육 무너졌는데 수업 늘린다고 해결되나
일베 현상은 역사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교육의 실패다. 한 사회는 사회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교육해 개인들을 사회화시킨다. 그러나 일베인들은 그 교육을 믿지 않는다. 교육을 믿지 않고 팩트(FACT)를 찾는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은 시험을 통해 아이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지 검증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교육을 신뢰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5·18에 대해 가르친다면 일베의 팩트와 거리두기를 하게 될까? 아마 자신들이 자주 방문하는 사이트에 “우리 선생 좌빨인증”이라는 글을 올리지 않을까.
현재의 공교육은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많은 청소년들은 인터넷 활동을 통해 소속감을 느낀다. 일베는 특유의 언어와 그들만의 팩트를 공유하며 공동체로 기능한다. 우리가 교육해야 할 것은 5·18의 전개과정이나 한국사 사건들이 아니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들릴 때 이성을 통해 반격할 수 있는 능력이다.
MBC <베란다쇼>가 역겨웠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베란다쇼에 등장한 패널들은 대학생들이 역사에 무지하다는 사실에 한탄하며 자신이 소싯적에 국사 100점을 맞았느니 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암기로 무장한 한국의 교육현실이 교육의 가치와 기능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켰고, 이 틈을 일베의 팩트가 파고 든 게 아닐까.
역사교육이 아닌 ‘교육’의 실패…본질적 접근 필요해
우리는 역사교육을 약화시키고, 주입식 교육을 통해 공부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면서 무엇을 강요했던 걸까. 학생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여건을 마련하지 않은 채 어디에 돈을 쓴 걸까. MBC 무한도전은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아이돌에게 역사를 가르쳤다.
그렇다면 아이돌은 왜 역사에 대해 잘 모를까. 어렸을 때부터 어딘가에 틀어박혀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사는 아이돌의 모습이 요즘 학생들의 모습은 아닐까. 이러한 문제의식 없이 ‘역사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학생들이 암기해야 하는 것이 더 늘어나는 결과 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베 현상을 한탄하는 언론의 시각이 이러한 본질적인 접근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