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4월 24일, 토종 문서편집기(워드 프로세서) <아래아 한글>(이하 <한글>)의 첫 상용버전 1.0이 시장에 나왔다. 개발자 이찬진이 1988년 서울대 컴퓨터연구회에서 만난 김형집, 우원식, 김택진과 함께 베타 버전인 0.9판을 발표한 지 한 달 뒤였다.
5.25인치 2D(360KB) 플로피 디스크 3장 용량으로 만들어진 <한글> 1.0판은 세운상가의 소규모 유통업체를 통해 정가 4만7천 원으로 출시되었다.
현재 쓰이는 <한글>에 비기면 거의 석기시대에 가까운 기능밖에 없었고, 컴퓨터 보급이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일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한국의 문서편집기 시장에 획기적인 대사건이었다.
286AT와 <한글> 1.5로 컴퓨터와 문서편집기에 입문하다
<한글>은 이후 판올림을 거듭하면서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토종 문서편집기(워드 프로세서) 시장을 평정했다. <한글>은 2,350개의 한글만 쓸 수 있는 완성형 코드로 된 문서편집기와는 달리 외국어는 물론, 옛한글과 11,172자의 한글을 모두 표현할 수 있었던 조합형 코드를 채택한 문서편집기였다.
<한글>은 국가 표준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두벌식(1987) 자판뿐 아니라 공병우 박사가 만든 세벌식 자판도 지원하는 등 거의 완벽한 한글 입력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한글>은 다양한 글꼴을 갖추고 윤곽선 글꼴을 지원함으로써 탁상출판(DTP)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1989년에 <한글>이 출시되었을 때 나는 그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직 학교에도 컴퓨터가 제대로 보급되기 전이어서 컴퓨터를 구경도 못했던 내게 그것은 멀고먼 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동타자기를 거쳐 일본제 전자타자기를 쓰고 있었지만 컴퓨터로 문서편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해 여름, 학교를 떠나야 했던 내가 컴퓨터(286AT) 이용자가 된 것은 1992년이 되어서였다. 해직된 동료 교사가 운영하던 ‘참컴’이라는 상호의 조립 컴퓨터를 나는 어렵사리 구입했는데 그때 내가 처음 만났던 <한글>은 1.5버전이었다.
기계에 대한 흥미가 얼마간은 있어서 나는 도스(DOS)에 쉽사리 입문하였고 이내 <한글>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언제든지 퇴고가 가능하고 여러 가지 글꼴을 이용해서 문서를 만들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이 열어주는 신세계에 나는 깊숙이 빠져 들어갔다.
당시 교원 단체에서 교육선전을 담당하면서 나는 거의 일주일에 서너 차례 이상 각종 유인물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때 이용한 <한글>은 ‘2.0’이었다. 일반용과 전문가용이라는 구분을 달고 출시되었던 이 버전은 전자출판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판이었다.
‘2.0’은 무엇보다 글자 크기에 제한이 있었던 이전 판에 비해 1포인트부터 127포인트까지의 글꼴 크기가 자유로웠다. 윤곽선 글꼴을 지원함으로써 미려한 인쇄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나 같은 무명의 운동권 편집자들을 만족시켰을 것이다. 표를 작성하고 다단 편집이 가능했던 것도 이 판에서부터 가능해졌다.
1994년 5년 만에 복직했더니 학교에 컴퓨터가 들어와 있긴 했으나 행정전산망에서는 ‘하나워드’라는 금성에서 만든 도스용 문서 편집기를쓰고 있었다. 그건 <한글>에 비기면 문서편집기에 명함을 내밀기조차 어려운 한심한 수준이었다.
문서편집기 <한글>의 진화
1994년에 ‘2.5’가 나왔고 이후 <한글>의 진화는 눈부셨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993년 한글 윈도 3.1로 내놓음에 따라 <한글>도 멀티미디어 피시(PC)라는 개념에 부응하는 쪽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한글>의 윈도버전은 ‘3.0’(1995)부터였다.
<한글> ‘프로96’은 버전 명으로 출시년도를 사용한 첫 버전이다. 이후 흔히 전문가들이 가장 우수한 버전으로 꼽는 ‘97’이 나왔다. 글쎄, 워낙 오래 <한글>로 문서편집을 하면서 엔간한 <한글>의 기능은 모두 쓸 수 있게 되었어도 나는 특별히 성에 차지 않았던 버전은 따로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한글>의 모든 기능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7년 구제금융 시기에 불법복제로 인한 매출 감소 등으로 한글과컴퓨터는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한글> 개발 포기와 소스 코드 제공을 조건으로 한컴에 250억 원의 투자를 제안하였다. 한글을 고사시키고 한국 시장을 <엠에스(MS) 워드>로 장악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한글지키기운동본부에서 100억 원을 지원하면서 계약이 파기되고 한컴은 극적으로 회생하였다. 이때 <한글> ‘97 8·15 특별판’을 장당 1만 원에 내놓아 200만 장을 판매하였다. 이른바 ‘애국심 마케팅’도 성공했지만 이는 1만원의 파격적 가격이 불러온 성공이었다고 봐야 한다.
내가 <한글> 정품 사용자가 된 것은 이 때부터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처음으로 자라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저도 몰래 나는 <한글>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애정을 지니게 된 것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서편집기 시장을 ‘엠에스 워드’에 내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한글의 공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2000년에 출시된 <한글> ‘워디안’도 나는 돈을 주고 샀다. 그리고 패키징 상품인 ‘2010’(2010)에 이어 지금은 ‘오피스 2014 VP’(2014)를 쓰고 있다. ‘2010’은 디브이디(DVD)로 받았지만 ‘2014’는 온라인에서 라이선스 정보를 전달받는 소프트웨어인 ESD(Electronic Software Delivery)제품이다.
지난해(2016)년에는 <한글> ‘네오’가 출시되었다. ‘네오’는 엠에스 오피스 문서와 완벽한 호환이 이루어지고 번역 기능과 3D인쇄 기능까지 갖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현재 쓰고 있는 ‘2014’만으로 더없이 만족하고 있는 편이다. 최근에는 선을 그어 두 그리기 개체를 이을 수 있는 ‘개체 연결선’ 기능을 익혀 심심찮게 이를 활용하고 있다.
48%까지 치고 들어온 <엠에스워드>, <한글>은 시장을 지켜낼까
1990년대만 해도 <한글>의 시장 점유율은 90%에 이르렀지만 <엠에스 워드>는 야금야금 우리 시장을 먹어 들어와 지금은 <한글>이 52%, <엠에스 워드>는 48%라고 한다.
그나마 <한글>이 근소한 우위에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을까. 아니면 아직도 자국산 문서편집기를 갖고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거듭 확인하거니와 <한글>이 한글 11,172자를 표현할 수 있고 옛 한글까지 무리 없이 표기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조합형 코드를 선택하였기 때문이었다.
유니코드(Unicode) 제정 시 완성형 현대 한글 11,172자를 배당을 요구하여 유니코드에서도 이러한 표기가 가능하게 된 것은 <한글>의 존재에 힘입은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관련 글 : 조합형 코드, 한글 이야기(2)]
그러나 앞으로의 상황은 그리 낙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한글>의 존속이 단순히 익숙한 프로그램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용자의 관행에만 의지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다. 변화하는 환경에 부응하면서 <한글>이 사용자들의 사랑과 자국산 문서편집기의 지위를 잃지 않고 발전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문: 낮달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