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제조사가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는 글이 아니라 ‘붉은 화면’ 논란을 기술적으로 접근하는 글입니다. 해당 제조사나 제품, 소비자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비난 또는 추궁, 방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삼성에서 출시한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 S8’의 붉은 화면으로 인한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붉은 액정’이라 쓰인 많은 기사나 글들은 사실 잘못된 표현입니다. LCD가 아니라 OLED이기 때문입니다. OLED엔 액정이 없죠.
화면이 붉게 보이는 것은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디스플레이의 화이트 포인트(whitepoint) 색온도가 낮아서 ‘상대적으로’ 붉은 기를 느끼는 것입니다. 애플 아이폰의 ‘오줌 액정’ 논란을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이전 아이폰의 ‘오줌 액정’ 이슈와 관련하여 여러 대의 아이폰을 직접 실측해 본 것이 거의 7년 전입니다. 아이폰의 경우 사실 그렇게 불렸던 아이들이 디스플레이의 기준 색온도인 6500K에 가깝게 나와 개인적으로 더 선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비교 제품들이 다 7000K가 넘어가는 색온도를 가졌기 때문에 6500K가 상대적으로 누렇게 느껴졌던 것이죠.
현재 사용하는 아이폰7도 Night Shift 기능을 활용하여 6500K 가깝게 맞추어 쓰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상대적으로’ 누렇게 보이겠네요.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LCD 디스플레이의 경우 일반 소비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의 색온도는 천차만별인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모니터 캘리브레이션’이라는 것도 필요하고, PC 모니터의 고급 라인에는 ‘공장 출하 전수교정’이 있어서 화이트포인트나 톤 재현 특성 등을 ‘교정(calibration)’해 나오기도 하지요.
물론 갤럭시 S8과 같은 플래그십 스마트폰이라면 소비자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양품(정상품)의 통과범위를 좁게 잡았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율이 수요만큼 나오지 않아 양품 범위를 넓게 잡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추정해봅니다. 삼성전자에서 밝힌 바처럼 디스플레이의 색온도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이미 제공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로 인한 소비자들의 비난과 질책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겠지요.
사실 붉은 화면 논란으로 가려지긴 했지만 이번 갤럭시 S8에 탑재된 디스플레이는 디스플레이 쪽과 관계되어 여러 일을 하고 있는 제가 보기에도 상당히 놀랄만한 수준의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 100% DCI-P3 색역 지원
- UHD Alliance의 Mobile HDR Premium 인증을 받은 첫 번째 스마트폰
- 4K UHD Premium 최신 콘텐츠 재생 지원
- 원시 색역(Native Color Gamut)은 DCI-P3의 113%, sRGB의 143% 수준의 초 광색역
- 최대 밝기 1,000 nits
삼성전자 웹사이트의 제품 정보 같은 곳에서는 찾기 어렵지만 디스플레이 자체는 정말 최신 기술의 정점이라고 평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UHD 규격을 만족하기 위해 높은 채도의 ‘Deep Red’ OLED를 사용하여 DCI-P3 색역을 지원한 것이 뭔가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추정해 봅니다.
DCI-P3에 대해선 이미 저번 달에 한번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만, 사실 삼성이 P3 색역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첫 스마트폰은 갤럭시 노트7입니다. 모두가 아는 이유(…)로 단종되었지만요.
지난번의 DCI-P3 포스팅을 보면 아시겠지만 P3 색공간이 가지는 특징 중의 하나가 바로 기존의 sRGB나 AdobeRGB와 달리 보다 깊은, 채도가 높은, 풍부한 Red 채널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sRGB, AdobeRGB 색공간보다 훨씬 깊은 Red를 구현하는 DCI-P3 색공간마저도 113%로 초과하는 광색역을 가지고 있는 디스플레이입니다. 때문에 약간만 컨트롤이 잘못되어도 화이트 포인트에서 시각적으로 눈에 띌 정도의 붉은 기를 보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 8bit 컬러 심도를 기준으로 sRGB에서 2-3step 만큼 적색으로 편향된 백색점이라면 그냥 어느 정도 용인될 만큼 살짝 붉은 기를 느끼겠지만, DCI-P3에선 동일한 양 만큼 적색으로 치우친 백색점을 봤을 때 상대적으로 훨씬 더 붉게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색역으로 가면 계조 step 간 벌어지는 차이를 줄이기 위해 16bit 컬러 심도를 쓰는 것이기도 하구요. 애플은 DCI-P3를 아이패드 프로, 아이폰 7, 맥북 프로레티나 등에 도입하면서 16bit 계조에 대해 대비부터 했죠.
삼성은 최고 성능의 디스플레이와 함께 이를 컨트롤하기 위한 기능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태블릿과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들이 하나의 단일 디스플레이 설정과 색역만을 제공하는 데 반해, 갤럭시 S8은 디스플레이 설정에서 사용자가 스크린 모드를 선택하여 DCI-P3, AdobeRGB, sRGB 등 다양한 색역을 고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색역 에뮬레이션 기능은 보통 전문가급 PC 모니터에서 지원하는 기능인데, 스마트폰이 광색역으로 간다면 반드시 지원해야 할 기능입니다. 컬러매니지먼트를 MacOS, iOS 차원에서 완벽하게 지원하는 애플에선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애플의 아이패드 프로에 탑재된 트루톤 디스플레이 기술과 같이 주변 조명환경의 색온도도 파악하여 이를 스크린에 반영할 수 있는 센서를 내장했더라면 이러한 논란은 애초에 발생하지도 않았을 테니 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람의 눈은 카메라의 자동 화이트 밸런스(Auto White balance, AWB) 기능처럼 주변의 흰색에 순응(chromatic adaptation)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실물도 못 만져 봤으면서 설이 길었네요. 더 자세한 분석은 실 제품을 확보하면 계속 진행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문: 김환 교수의 컬러매니지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