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서 주최한 테헤란로 펀딩클럽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때 메모했던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여러 번의 테헤란로 펀딩클럽을 보면서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본엔젤스 편은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공지를 보자마자 접수했다.
본문을 쓰기 전에 내가 왜 본엔젤스 편을 들으려고 했는지 그 이유부터 이야기해보겠다. 나에게 본엔젤스는 초기 스타트업의 최후의 보루 같은 이미지가 있다. 처음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준비를 했을 때 초기 단계에 투자해주는 VC는 많지 않았다.
내가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있겠지만 초기투자하는 회사 중에 본엔젤스를 제외하면 케이큐브는 주로 게임에 투자했고 그 외에는 10억 이상의 시리즈 A 단계에 투자하는 회사들이 다수였다. 프라이머라는 엑셀러레이터를 알기 전까지는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본엔젤스가 투자한 회사들의 뉴스나 투자받은 회사의 대표 인터뷰를 통해 내가 했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너무도 유명한 사례인 배달의 민족. 본엔젤스와의 미팅을 앞두고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전단지라는 전단지는 전부 입력시켰고 그걸 좋게 봐줬다는 사례.
그리고 가장 내 마음을 움직였던 건 만땅이라는 서비스였다. 만땅은 O2O라는 말도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핸드폰 배터리를 통째로 바꿔주는 서비스를 했다. 지금은 휴대용 배터리도 많고 배터리와 기기가 일체로 된 핸드폰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보조 배터리를 하나씩 가지고 다니면서 갈아꼈고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기라도 하면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땅은 풀 차지되어 있는 배터리를 통째로 교환을 해주는 서비스를 했다.
서비스 모델도 특이하고 재미있지만 내가 주목했던 건 만땅을 운영하는 마이쿤이 콜드메일로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VC에게 콜드메일을 보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회신율이 극악이다. 회신이 온다고 해도 간단한 수신확인 메일이지 미팅이 잡히거나 추가적인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도 여러 번 보내봤고 추가적인 자료 요청을 받은 경우가 있었지만 미팅까지 이어진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소개나 우연한 자리에서 네트워킹하다가 알게 돼서 미팅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마이쿤은 콜드메일로 본엔젤스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관련된 내용을 펀딩클럽에서 Q&A 시간에 질문했고 그 대답은 다시 적어보기로 하겠다.
이런 이유로 참여하게 된 테헤란로 펀딩클럽 본엔젤스 편. 강석흔 대표는 자신이 생각하는 본엔젤스를 설명하는 3대 키워드를 언급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철학과 비전 : Pace Maker
운용전략 : One Fund
개인적 화두 : New Horizon
돈 자체는 범용재. VC에게 돈은 가장 차별화되지 않는 요소다. 하지만 스타트업들은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시장 자체가 공급자들의 논리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만 있으면 다 될 줄 안다. 본엔젤스는 페이스 메이킹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엔젤스가 잘 알고 있어서 페이스 메이킹할 수 있는 곳에 투자한다. 그래서 Bio 같은 잘 모르는 분야는 안 하고 있다.
VC들이 Early Stage에 투자를 잘 안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VC들은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어 한다. 내가 무언가를 도와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굴러갈 그런 회사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초기단계의 스타트업은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본엔젤스는 초기투자가 노동집약적이라고 생각한다.
본엔젤스는 현재 9명의 파트너가 함께 하고 있다. (윤종일 파트너는 사진 촬영 이후 합류) 처음에 강석흔, 송인애, 장병규 3명의 파트너로 시작했다. 본엔젤스는 본에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다. 근본 할 때 本과 불어에서 Bon은 좋은 이라는 말이다. 직접 창업을 해본 파트너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크 테토 파트너는 제외. 송인애 파트너는 창업가 출신은 아니지만 본엔젤스에서 사내벤처 형식으로 파운더 역할을 함.) 창업가라는 근본과 좋은 엔젤이라는 중의적 뜻이 되는 거 같다.
본엔젤스 2.0은 성공한 창업자들의 노동을 끌어들이는 게 특징이다. 이건 단순 노동이 아니라 즐거움이자 인내도 포함된다. 또한 모든 파트너가 LP이다. 제너럴 파트너는 3명이고 벤처파트너도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단순 자문위원이 아니다. 딜을 발제하고 통과시키고 담당 어드바이서 역할까지 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라는 것은 어떤 담당자를 만나서 딜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투자의 운명이 바뀐다. 그래서 9명의 파트너가 딜을 발제하기에 다양한 아이템이 나온다. 각 파트너들이 투자하고 싶은 스타트업에 확신이 들면 발제하기 때문에, 파트너의 구성을 다양하게 함으로써 더 다양한 혁신을 담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성을 흡수하기 위한 체계는 펀드 운영의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초기 스타트업에게 하는 투자는 안 되는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안 되는 이유를 분석하는 일은 재미가 없다. 회사가 커질수록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분석가들이 많아진다. 투자해서 사고만 안 나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공공자본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에 그렇다. 국민의 세금이라는 딜레마가 있다. 국민이 주신 돈을 날리면 안 된다는 제어장치가 생긴다. 하지만 초기 스타트업 투자는 이 돈 날리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
본엔젤스는 우리의 역할을 일종의 ‘통역’이라고 생각한다. 창업자들의 똘끼 어린 언어를 통역해주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통과시킨 투자는 애착이 생긴다. 투자회의를 하면 10개에서 20개의 딜이 올라온다. 각양각색의 코멘트들이 나오고, 그걸 듣는 게 재미있다. 9명의 파트너가 모두 참석하며 외부에 있을 때는 스카이프 등을 이용하여서라도 함께 논의한다. 이렇게 매주 모여서 투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 권의 책을 읽는 기분이 든다.
본엔젤스는 창업경험이 왕이다. 창업자에 대한 존중이 문화로 자리 잡혀있다. 창업자가 진골이라면 창업을 해보지 못하면 육두품이라고 농담처럼 말한다. 또한 본엔젤스는 평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그동안 잘해왔고 앞으로 잘할 것이라고 해도 창업자 커뮤니티에서의 평판을 지켜내는 것이 최고 가치이다. 예를 들어 재원을 조금 모아뒀다가 팔로업투자하는 것을 생각했는데 못 받은 스타트업은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다. 괜한 시그널을 주는 게 아닌가 고민했다. 그래서 기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본엔젤스는 본데이, 다본데이를 통해 포트폴리오사들이 모두 모여 그들 간의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강력한 포트폴리오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고 실제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스타트업 경영에 대한 건 책으로도 배우기 힘들어서 알음알음 조언을 듣는 게 중요하다.
본엔젤스는 한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VC펀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펀드는 백지장처럼 하얀 펀드이다. 꼬리표가 없다. AI펀드, 4차 산업혁명 펀드, 청년펀드 같은 꼬리표를 붙이지 않는다. 본엔젤스는 테마도 없고 오로지 페이스 메이커로써 존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펀드 이름도 페이스 메이커 펀드다. Fund = VC 가 아닌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그렇다. 단 하나의 펀드만을 운용하기에 가능하다. VC는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기관이 아니다. 업의 본질은 펀드를 소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활동을 하나의 펀드에 집중한다. 원 펀드 원 팀이라는 규율로 움직인다.
본엔젤스는 100% 민간 펀드이다. 단 1원의 정부자금, 단 한 번의 모태펀드 자금도 없었다. 이렇게 펀드를 운영하는 VC는 본엔젤스뿐이다. 여기에 대한 큰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민간 자본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VC로서의 최소 관리감독만 받고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다.
본엔젤스의 펀드에 어떤 LP가 투자했는지 모두 공유할 수는 없지만 절반 정도의 LP는 큰 성공을 거둔 국내 창업자들이다. 빅 M&A가 일어나면 다 찾아가고 있다. 그분들도 언젠가는 엔젤이나 투자자가 된다. 그렇기에 본엔젤스는 좋은 학교이다. 이게 결국 순환 생태계이고 긍정적인 리사이클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투자한 창업자 3명이 파트너로 참여했고 7명이 LP로 참여했으며, 심지어 2명의 LP는 딜이 결렬되었던 창업자 출신이다. 이 리사이클링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평판에 집착해야 한다.
얼마 전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에 투자를 했다. 우리는 다양하고 새로운 스타트업들에 많이 투자해왔다. 이 외에도 새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 전산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타트업 몰입캠프’라는 정규 과목을 진행 중이며, 매드 캠프라는 이름으로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 등을 교육하고 함께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EIR뿐 아니라 PR 매니저, 법무 담당자가 내부에 함께하며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서포트하고 있다.
본엔젤스는 매년 스스로 혁신한다. 다음번 펀딩을 잘 진행하려면 실제로 계속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 10년간 114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처음 1년은 2,3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지만 현재는 월평균 2개 정도의 스타트업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본엔젤스의 포트폴리오 중 11개의 스타트업이 M&A에 성공했다. 10개 중 1개 스타트업이 M&A를 했으니 굉장히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11개 중 5개 정도는 10배 이상의 대박을 쳤다.
좋은 VC란 무엇인가?
창업자의 입장에서 좋은 VC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VC의 평판을 직접 알아봐야 한다. 주변 스타트업들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해봐야 한다. 다음으로 VC의 장기근속도 살펴봐야 한다. 심사역이나 투자파트너가 자주 이직하는 곳은 투자 이후에 골치 아파진다. 스타트업의 회사 가치나 현황을 VC하우스 내에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좋은 VC는 구성원들이 장기근속하는 곳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구조를 가진 곳이다. 어떤 LP가 속해 있고 이들이 어떤 의사결정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리워드가 어떻게 산정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펀드의 구조를 잘 살펴보는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을 위해서 중요하다. 평생의 인연으로 이어갈 수 있는지 생각해봐라.
이후 Q&A가 진행되었다.
Q : 투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딜을 검토하는가?
A : 콜드메일은 1년에 천 개는 들어오는 거 같다. 과거에 비하면 수준이 높아지긴 했다. 일 년에 2천 개 정도의 회사가 레이더에 들어오는 거 같다. 1% 정도 투자받는 거 같다.
Q : 본 엔젤스와 어떻게 컨택하는 게 좋은가?
A : 투자한 회사나 네트워크를 통해 소개받는 게 가장 좋다. 콜드메일이 안 좋은 게 보낸 그 사람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개를 받는 게 당연히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Q :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하긴 했지만 서울에 몰려있다. 지방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거나 투자도 하는지?
A : 지역을 가리지는 않는데 지방을 다니면서 하긴 어려워서 아무래도 서울에 투자를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소재지를 따지면서 투자하는 건 아니다.
Q : 대학생이 창업하는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A : 직접 창업하는 것보다는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경험을 쌓아보길 권한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면 그렇게 할거 같다. 하다못해 인턴으로라도 들어가서 성장하는 조직문화를 겪으면 간접체험을 많이 한다. VC한테 투자받은 회사를 가는 게 좋다. 무조건 창업을 하는 건 고생을 많이 한다. 해봐서 안다.
Q : 투자한 스타트업의 관리 노하우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A : 투자를 하면 월례회의는 기본적으로 하고 다양한 채널로 이야기를 한다. 유기적으로 캐주얼하게 친근하게 한다. 시간관리는 일반 파트너들은 딜을 발굴하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 나는 펀드레이징까지 신경 쓰고, LP들도 신경 써야 해서 딜을 발굴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반반 정도 쓰는 거 같다.
Q : 투자를 받아야 하는가?
A :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해라. 적당히 먹고사는 회사를 할 거면 투자가 필요 없고 시장 기회가 있다면 자본을 투입해서 키우기 위해 받는 것. 설득을 해서 투자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Q : 본엔젤스가 지금의 시점에 가장 투자하고 싶어 하는 분야는?
A : 각종 AR, VR, IoT 등 차세대 기술 쪽에 당연히 관심이 많다. 그다음은 동남아의 글로벌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바텀업 전략을 추구한다. 혁신을 체득하고 스터디해서 컨택하고 투자하기도 한다.
Q : 투자하신 포트폴리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타트업은?
A : 너무 많다. 그래도 뽑는다면 아무래도 가장 많이 성장한 우아한 형제들이 기억에 남는다. 개인사업자 때 처음 만나서 법인을 만드는 순간부터 함께 있었다. 김봉진 대표는 정말 스펀지 같은 분이다. 조언하는걸 잘 받아들인다. ‘배달 업소 수’, ‘리뷰 수’, ‘시스템 안정’ 이 3가지에 집중하라고 했더니 포스터에 새길 정도이다.
그리고 내가 했던 질문은 ‘만땅’이라는 서비스를 했던 ‘마이쿤’이라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이쿤이 콜드메일을 보내서 투자를 받았던 사례로 알고 있어서 투자를 하게 된 계기랄까? 그런 것에 대해 궁금했었다.
대부분의 VC들이 회사 홈페이지에 제안서를 받는 이메일 주소를 공개해놓았지만 그렇게 콜드메일을 보내서 투자받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콜드메일로 투자한 회사가 실패를 겪고 아이템을 바꿔서 재도전을 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콜드메일로 접수된 회사에 대해 인식이 바뀌거나 했는지도 궁금했다.
답변은 여전히 콜드메일로 접수된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푼’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로 도전을 계속하고 있는 ‘마이쿤’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표현하였다. 그걸 보면서 본엔젤스가 정말 진정성 있게 투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기투자가 필요한 스타트업이라면 본엔젤스를 1순위로 두지 않아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 앞으로도 본엔젤스가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해주시길 빌어본다.
원문: 최윤웅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