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이 공개한 메모는 그 내용이 사실일 경우 오히려 이를 문제 삼으려는 쪽이 얼마나 대북정책에 무능하고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당시 참여정부가 북측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해 한반도 평화를 이끌었는지를 반증한다.
국정원 메모이기 때문이다. 실제 참여정부가 북 정권에게 의사를 물을 생각이었다면 통일부든 고위급 통로든 다른 공식 대화채널을 사용하면 된다. 어차피 남북 간 전통문 창구가 있다. 그럼에도 대외·대북 정보수집 기관인 국정원이 나선 것은 이 메모가 공식적 통로로는 획득할 수 없는 성격의 첩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 정보의 출처는 휴민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요하면 남한에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알려주는 인물이 비공식적으로 북에 존재하므로,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국정원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특히 ‘우리’라는 표현을 한 것은 그 인물이 북한 정권 내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직에 있고, 그에 따라 북 정권 내의 동향에 가장 실체적으로 접근하여 당사자성을 갖고 알려주었다는 의미다. 어쩌면 당시 참여 정부가 확보할 수 있었던 최고위 휴민트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이용한 정보전에서 각 거점 인물은 양방향으로 운동성을 가진다. 때론 역정보의 위험도 있지만 관리하기에 따라 우리 쪽에게 매우 유리하다. 전쟁 중이더라도 적진 내에 아군에 전향적인 내통자가 있다면 도움이 된다. 가령 이 메모 내용을 전달한 이는 우리 정부가 북한 정권을 압박하는 비공식 수단으로 활용 가능하다. ‘당신들이 우리의 이 사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이러하게 행동할 것이므로 북 정권 내에 기류를 만들어 달라.’라는 압박이 충분히 가능하다. 남북한의 경직성을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한반도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적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다.
메모가 사실일 경우 참여정부는 외교적 공식 창구 외에도 북한의 고위급 내부 결정에 영향을 끼칠만한 강력한 수단을 가졌으며, 이는 한반도의 주체적 정치체로서 상당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뜻이다. 외교적으로 유능했다고 볼 수 있다.
메모 내용을 전달한 이는 북 정권의 입장에선 매우 위험한 인물로 볼 수 있다. 해당 인물은 어쩌면 오래전에 숙청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지금 보수 측에서 이를 문제 삼는 것만으로도 그는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정보전 시대에 가치 있는 정보통로를 제거하고 북 정권 내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도록 스스로 망치는 셈이다.
보면 볼수록 이 문제는 더 깊이 파고들면 안 된다. 남북의 다양한 대화창구라는 측면, 한반도 정세의 주된 역할자라는 측면, 강대국 간 외교에서의 실리라는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런 행위를 하면서 안보와 외교를 자신하는 정치세력은 국민의 위기감을 담보로 장사하는 것이다.
송민순에 대해선 그의 인격적, 실무적 자질이 너무 의심스러워 말을 아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