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직후 급속히 가까워지는 美中관계
中 북핵 압박 공조-美 사드 배치 유보 ‘빅딜’ 가능성, 美中은 북핵 문제 해결보다 국익 챙기기가 우선
4월 6일부터 7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미·중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악동’으로 불리는 트럼프와,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었다. 태영호 공사 탈북, 김정남 암살, 연이은 미사일 발사 등으로 악화되기만 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미·중 양국이 어떤 논의를 나누고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회담에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당장 가시적인 성과는 없어 보인다. 사실 없을 수밖에 없다. 첫 대면인 만큼, 회담은 서로의 입장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깜짝 쇼는 전혀 다른 곳에서 등장했다. 정상회담을 하는 도중에 미군이 시리아를 공습한 것이다.
트럼프는 시진핑과 함께 디저트를 먹는 순간에 시리아 정부군의 공군기지를 공격했다. 이는 시리아 문제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피력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실은 중국에 대한 엄청난 압박이다. 그렇잖아도 북한을 사이에 두고 껄끄러운 미·중 사이에 실질적인 미사일 폭격을, 그것도 시진핑이 눈앞에 있는 그 순간에 자행한 것이다. 줄곧 “북한은 인류의 문제다” “중국이 안 하면 우리가 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중국역할론’을 주장하던 트럼프에게 당장 중국에 보낼 수 있는 메시지로 이보다 강력한 방법은 없다.
실제로 정상회담 후 중국은 중국인의 북한여행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미국의 거센 압박에 못 이겨 마침내 대북압박에 보다 전향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졌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인 12일, 시진핑과 전화통화를 한 트럼프는 예상치 못한 말을 꺼낸다. “중국이 북한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달랐다”며 중국의 입장을 옹호한 것이다. 지금껏 중국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악동’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의외였다. 중국이 ‘고작’ 북한여행을 규제했다고 해서 그 답례로 건네는 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무겁다.
이상징후는 다른 곳에서도 포착됐다. 16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함께 한국을 찾은 백악관 외교보좌관이 사드 문제에 대해 “차기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말한 것이다. 외교정세에 대해 사실상 무지했던 트럼프 정부에서 큰 손을 휘두르는 외교정책 담당자가, 사드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그리고 한국에서 야권 성향의 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사드 철회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드 문제로 몇 년간 골머리를 썩인 우리나라는 난리가 났다.
한미 당국은 즉각 사드 배치는 기존 계획대로 진행된다며 논란을 진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미·중정상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은 몹시 의미심장하다. 중국이 대북제재를 강화하며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고, 미국이 이에 호응해 사드 배치를 유보하거나 철회하는 ‘빅딜’의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이유다.
정상회담 후 경제협력 강화하는 美中
북핵 문제,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 한국, 닭 쫓는 개 신세 될 수도
냉정하게 따져보면 ‘빅딜’이 성사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중국이나 미국이나 북한 문제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여력을 쏟기보다, 자국 경제에 노력을 쏟는 편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면서도 국내에서 강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자국의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과의 원활한 공조는 필수적이다. 중국 또한 2016년 이후 하락세로 접어든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대일로 정책, 서부대개발, 동북3성 개발 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의 경제 공조는 필수적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는 미국이 제기한 미·중 무역불균형 문제였다.
실질적인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정상회담 전에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북한에 대해)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며 중국을 압박하던 트럼프는, 회담이 끝나자마자 “중국과 정말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미·중 간) 잠재적인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사라질 것”이라며 시진핑에 대한 친밀감을 드러냈다. 시진핑 또한 “미·중이 협력해야 할 이유는 1,000개”라며 화답했다. 바로 며칠 뒤 트럼프는 대선공약이었던 ‘중국 환율조작국 지정’을 철회했다. 자국의 실익이 가장 중요한 양국 정상에게, 북한 문제가 이보다 중요할 수 있을까? 심지어 북핵 문제는 20년 넘게 1%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들에게 경제 회생과 북핵 해결 중 무엇이 ‘해결 가능성 있는 시급한 문제’일까?
미·중은 이렇게 열심히 짝짜꿍을 맞추고 있다. 이제 눈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보자.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 남아 있나? 미국이 사드를 배치해준다는 말 하나만 믿고 백악관 외교보좌관의 말 한 마디에 당황하며 좌지우지되고 있다. 수도권 방어도 못하고, 장거리 미사일 이외의 수 천 발의 단·중거리 미사일은 막지도 못하고, 그마저도 어설픈 실험만 몇 차례 거친 사드의 효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다.
만약 미국이 미·중 관계의 원활한 전개를 위해 사드 배치를 유보한다고 해도 한국이 미국에게 ‘미·중 관계보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은 아직 그 성능이 불확실해 미국에게 실제적인 위협은 되지 않고, 만약 미국까지 닿는다고 해도 미국에 배치된 사드로 본토 방어에는 별 무리가 없으며, 더구나 ‘아메리카 퍼스트’의 트럼프가 한국의 국익을 미국의 국익만큼 챙겨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희망적 사고다. 한국은 미국의 말에 따라 “알겠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제 손으로 외교적 카드를 전부 내팽개쳐버린 비참한 말로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그리고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민감하고 번거로운 북핵 문제 해결에 별 관심이 없다. 적당히 상황유지만 하면서, 당장 눈앞에 있는 국익만 챙기면 그만이다. 더 이상은 닭 쫓는 개처럼 분별없이 외교정책을 세워선 안 된다. 한반도는 언제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이었으며 강대국 세력갈등의 데모 버전이자 대리전쟁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느 한 편으로 기울면 필연적으로 다른 한 편이 반발해 전쟁의 폐허가 된 곳은 우리가 사는 한반도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원문: BIG 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