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어차피 저 사람들은 표 안 준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있긴 하지만, 대형 삽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선거는 아주 적은 수의 부동층을 어떻게 끌고 오느냐가 관건인 것이죠. 이번 선거는 보수당의 대폭파로 주로 보수 성향의 부동층이 좀 많이 늘긴 했겠습니다만…
어쨌든 저 말에 따르면 그냥 선거운동 같은 거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후보 등록하고 바로 대선 하지 뭐하러 이런 사회적인 낭비를 일으킵니까. 이미 마음을 정해놓고 사실상 선거운동 모드에 돌입한 사람들 말고, 제 주변의 예를 들자면, “문재인이 여유 있게 이길 것 같으면 심상정을 찍을 생각이다” 같은 얘길 하는 사람들을 공략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은 심상정 캠프가 잘하면 “문재인이 여유 있게 이기지 못해도 심상정을 찍을” 수도 있고, 또 이번에 문재인에 표를 주더라도 차후 선거에서는 정의당에 비례대표를 줄 수도 있고,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만일 선거제도가 개편된다면 확실한 한 표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SNS의 극단적인 목소리에 왜 이렇게 매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는 그렇게 게시판의 중심에서 후보자의 이름을 외치는 정치 고관여층들만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심상정이 10%나 20%를 득표하진 못하겠지만, 지분을 충분히 늘릴 수 있는 것을요. 선명성과 확장성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뭐 대부분의 선거전략이 그렇듯 우리가 답을 낼 수 없는 문제겠습니다만, 사실 두 가지는 그렇게 상충되는 목표가 아닐 겁니다.
어차피 홍이나 유 지지자는 제 타임라인에 없을 테고, 다수는 문 지지자에 일부 안과 심 지지자들이 있는 정도이겠습니다만… 사실 심에게 문 지지자들의 비판이 집중되는 것은 홍과 유는 원래 그런 인간들(…)이란 인식 때문이기도 할 테고, 심이 특히 문(을 비롯한 민주당계 정당의) 역린을 심하게 건드렸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심이 문에게서 끌어내려고 했던 대답은 아마 이것이었겠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와 “증세하겠다”. 이건 유, 홍이 문에게서 끌어내려던 대답이기도 합니다만, 그 방향과 결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유, 홍이 이 대답을 문에게서 끌어내려 했던 이유는 이게 콜로니 떨구기 수준의 표 떨궈내는 효과가 있는, 민주당계 정당 최악의 역린이기 때문일 겁니다. 선명성을 드러내 진영을 결속하는 게 아니라 집권이 목표인 민주당에겐 이건 함부로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심의 토론 태도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가지는 디스어드밴티지도 있겠지만, 어떤 분이 말씀하셨듯 심의 질의 태도는 ‘국정감사에서의 국회의원’ 모드에 가까웠습니다. 몰아가고 질타하는 것이요. 네가 공약을 축소했다거나, 사기꾼이라거나, 5년 동안 뭐했냐는 등의 발언은 질문의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질문으로서의 효과보다는 감정을 건드리는 효과가 훨씬 큰 것이었습니다.
뭐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이 허구헌날 쓰는 기술이긴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피감당하는 정부 공무원들에게는 딱히 편이 없지만, 대선후보, 특히 1위 대선후보에게는 응원하는 편이 꽤 많다는 것이죠. 괜히, 심지어 1위인 문과 2위인 안조차, 공세적인 태도보다 여유롭고 (적어도 겉으로는)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게 아닐 겁니다.
문재인
글쎄요, 저는 아쉽게도 궁예가 아니라서 관심법을 쓸 순 없습니다만, 그가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아니었다면 훨씬 선명한 입장을 내놓을 수 있었겠죠. “국방 차원에서는 주적이다. 다만 외교, 통일을 아울러 관장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주적이라 선언하고 들어갈 순 없다” 라거나, 좀 더 아예 사이다로서는 “박정근 못 봤냐, 국보법 폐지한다” “재원 없다, 증세한다, 특히 중산층 그러니까 바로 너” 같은 얘기들이요.
저는 공약 중심 선거라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특히 선거기간 중의 공약은 상당 부분 포퓰리즘에 기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조차, 정책 끝판왕이었다던 힐러리 클린턴이 심지어 TPP 폐지에 기울었던 것을 보세요. 정치 사회적 여건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돌아갑니다. ‘시원한’ 공약은 대신 ‘시원하게’ 다른 문제를 말아먹을 공산이 큽니다.예를 들어 알바노조는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안철수의 공약을 두고 그럼 대선도 2022년에 출마하시라는 논평을 냈습니다. 알바노조의 성명은 무척이나 기발해 저도 박수를 치고 보았습니다만, 사실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인상하는 건 거의 한계 수준(9.2%)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유지할 때나 가능합니다. 2020년에 이를 달성하려면 무려 15.7%가 매년 올라야 합니다.
이 수준의 인상률은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통틀어 딱 한 번 이룬 적이 있는데, 당시 최저임금이 (비록 지금도 낮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극단적으로 낮았음을 생각해보세요. 2000년 16% 인상과 2020년 16% 인상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다릅니다.
한때 메니페스토가 인기를 끌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이건 그렇다고 해서 빈 공약을 남발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건 사실 그보다 더 염세적인 이야기죠. 문재인의 정책 파악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전 그럴 리가 없다고 봅니다. 그는 그의 정책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저를 포함한 그 누구보다도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수준일 것입니다. 다만 공약 과정에서 못을 박아놓을 수 없는, 정책 수행 과정에서 지난한 설득이 필요하며, 때로는 후퇴를 피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이 산적해 있을 뿐이죠.
부자 증세로는 어차피 모자랍니다. 중산층에게 증세하겠다 말은 쉽습니다만, 사실 대부분의 중산층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인정조차 않을 것입니다. 그건 ‘사회적 논의’ 과정이 필요한 문제들이겠죠. 아주 사소하게만 틀어져도 난리가 날 거예요. 4대 개혁법 중, 특히 국가보안법과 사학법이 정말이지 뜬금없게도 국민적 저항의 대상이 되었던 것처럼.
전략적 모호성은 토론회에서의 사이다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을 향해선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세상은 원래 모호하고, 대선 후보의 공약은 원래 인기영합적인 것을요. 차라리 증세 없이 할 수 있다고 대담하게 뻥을 치거나, 부자 증세로 폭탄을 떨어뜨릴 거라고 질러버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뭐… 문재인은 원래 그런 후보가 아니죠.
KBS, 언론
그리고 그건 문재인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문재인만 공격받았던 것은, KBS가 토론회를 개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겠죠.
네, 개판입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명백히 KBS의 탓입니다. 스탠딩 토론이 뭐 어떻다고요? 원고 없이 토론하면 후보자의 민낯과 실력이 보인다구요? 토론회 전에도 저는 “TV 토론은 후보자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있는 컨텐츠가 아니”며, “대선이란 이벤트에 불을 붙이는 예능 이벤트”에 가깝지 않으냐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건 그 수준도 안 되는 개판입니다. 스탠딩은 왜 한 겁니까? 대통령 후보자들이 두 시간도 못 서 있을 줄 알았습니까? 미국의 토론회는 후보자들이 서서 토론하면서, 관객이나 상대 후보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교감합니다. 어차피 같은 자리에 서서, 그것도 가슴 이하 신체 부위를 다 가려놓고 있을 건데 스탠딩은 왜 합니까.
자유로운 토론이란 같잖은 환상에 얽매여서는 규칙을 아예 정해놓지 않은 수준이더군요. 다만 후보자 1인당 9분의 발언 시간을 정해놓았을 뿐. 덕분에 토론회는 2시간 내내 1위 후보인 문에 대한 네거티브 공격과 이에 대한 문의 답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문재인, 국민과의 대화’, ‘문재인 청문회’ 등의 표현으로 비꼬았구요.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이 개판인 KBS 청문회(…)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언론에서 말이죠. 한국일보의 토론 평가는 수박 겉핥기 느낌이 강합니다. 한국일보의 다른 기사는 더욱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한국일보는 “원고 없는 토론이라 후보들의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난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후보들 모두가 룰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디테일한 정책 공방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는데요.
이 토론회에 룰이란 게 있습니까? 이 토론회에는 룰이 없었습니다. 원고 없는 토론이라 역량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까? 1차 토론회에 비해 한치도 못 나간 것은 물론이고 기껏해야 색깔론 공방이 전반 전부를 차지했을 뿐입니다.
이건 대책 없이 ‘난상토론’을 기획한 KBS의 명백한 실책입니다. 만일 한국에 Vox와 같은 언론이 있어 지난 토론회의 승자와 패자를 기획기사로 쓴다면 패자로는 KBS와 TV 토론이란 포맷 그 자체, 그리고 민주주의가 기록되었을 것이구요, 승자로는 오직 수화 통역사만이 이름을 올렸을 것입니다. 이 스탠딩 토론회는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언론이 이걸 지적하지 않는 건 글쎄요, 무슨 이유인지 알 듯도 모를 듯도 합니다.
원문: 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