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장 손쉬운 공약 ‘노동3권 보장’
대통령 후보가 볼 때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공약이 ‘노동3권 보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기도 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비롯한 관련 법률 전반이 제대로 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공약은 이런저런 계산을 해야 하고 새롭게 근거를 만들어야 하고 예산 규모도 함께 차악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3권 보장은 헌법정신을 어기지 않고 이와 같은 법률을 원칙대로 집행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물론 지금 노동법은 파업을 합법으로 할 수 있는 범위(파업 요건)를 지나치게 좁혀 놓았다. 이런 파업 요건을 좀더 폭넓게 인정하도록 바꿀 필요는 있다.
아울러 파업을 해도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를 사실상 사용자 뜻대로 지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필수유지업무제도) 파업이 무력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대목 또한 손질하여야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것이다.
2. 노동3권 보장되면 삶의 수준 높아진다
실제로 노동3권이 보장되면 우리 사회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게 되어 있다.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도 좋아지고 소득재분배 수준도 향상하게 된다.
노동자가 스스로 단결하여(단결권)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실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단체행동권) 개별 사업장은 물론 사회 전반에 대해 교섭력(단체교섭권)을 높일 수 있으면 결과는 당연히 그리 된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국 전직 대통령 오바마처럼 자기 국민들에게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가입하도록 적극 권장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통령이 앞장서서 노동3권을 부정적으로 보고 제약하는 것은 옳지 않다.
3. 노동3권에 대한 안철수의 부정적 태도
나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노동3권에 대하여 부정적인 줄을 알고는 있었지만 여태 그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고 국민의당이 집권여당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뜨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안랩CEO 시절 “노동조합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어요?”라는 직원 물음에 “회사 접어야죠.”라 답했다고 한다. 2014년 3월 25일 박성호씨가 쓴 글 ‘안철수의 미래’에 들어 있다.
노조가 생겼다고 폐업을 하면 밥줄을 무기로 삼아 노동3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노동법 위반이고 분명한 부당노동행위다. 노조가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사용자의 정답은 이렇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하거나 말거나 할 일이다. 알아서들 하시라. 나는 CEO이니까 경영이나 잘하겠다.’
사용자=CEO는 노동조합을 긍정할 의무도 없지만 부정할 권리도 없다는 얘기다. 이게 우리나라 헌법과 노동관계법의 정신이다.
4. 안철수 노조 부정 발언 인정한 국민의당
이를 둘러싼 논란이 올해 들어 또 있었던 모양이다. 안철수가 노동3권에 대해 부정적인 노동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게 해 준 박성호씨의 블로그에서다.
2017년 2월 25일 올라온 ‘안철수 노조 발언 사태’다. 박성호씨가 쓴 글이 허위 사실이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면서도 실제로 안철수나 국민의당에서 고소는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또다시 트위터에서 지난날 박성호씨의 해당 내용을 올렸고 ‘국민의당 신고센터 @kookmincyber’ 계정에서 ‘국민의당 사이버대응팀’이 이렇게 밝혔다.
“안녕하세요 국민의당 사이버대응팀입니다. 선생님의 게시글이 제보가 들어와 연락을 드립니다. 당시 관련 기사를 작성했던 박성호씨의 글은 모두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작성된 유언비어로 확인되었습니다.
논란의 상황은 당시 비공식 간담회에서 안철수 의원은 노동조합이 필요가 없는 건전한 회사를 만들어나가겠다는 포부와 함께,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을 경우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는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만큼 건전한 회사 발전에 대한 CEO로서의 비전을 주위 직원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오해가 풀리셨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5. 안철수의 직접 해명이 필요한 이유
박성호씨의 글이 모두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작성된 유언비어인지 어떤지를 여기서는 살펴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안철수가 당시 ①“노동조합이 만들어졌을 경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발언했음을 확인했다는 데에 눈길이 끌렸다.
다름아닌 안철수가 몸담고 있는 국민의당이 안철수의 문제 발언 진위 여부를 확인해 준 것이다. 이런 마당에 지금 안철수가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까지 되어 있는 만큼 자기가 했다는 노조 부정 발언에 대해 직접 해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 달라졌다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당선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이런 발언은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더욱 후퇴시킬 수 있는 불안 요인이다. 유권자들이 똑바로 판단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해두어야 한다.
6. 노조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는 발뺌
다음으로 ②“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③“노동조합이 필요가 없는 건전한 회사를 만들어나가겠다는 포부” 등등 발언도 새겨둘 만하지 싶다.
②“(노조 생기면 회사 접겠다는 발언이)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지 여부에 대해 팩트체크부터 해 보자. 당시 노조가 설립되었고 이에 대응해 안철수가 안랩을 폐업했다고 가정해보면 간단하게 풀리는 문제다.
안랩이 폐업하면 안랩노조는 자동으로 사라진다.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회사 앞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부당·위장·불법폐업을 규탄하는 장기농성투쟁을 조합원들이 벌이는 상황말고는 없다.
노조 설립을 빌미로 한 폐업은 이처럼 명백하게 ‘노조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그러므로 이 발언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7. 노조가 없는 회사가 건전하다는 착각
③“노동조합이 필요가 없는 건전한 회사”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노동조합을 얼마나 그릇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노조가 있는 회사는 불건전하고 노조가 없는 회사가 건전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꾸로다. 노조가 있는 회사가 건전하고 노조가 없는 회사는 불건전하다.(모든 회사가 그러하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언론노조를 보기로 들어보겠다. 노조가 있는 경우는 편집권 독립을 지키고 재벌친화적·권력친화적·반서민적 기사의 생산을 견제하며 광고에 휘둘리는 경영진의 편집 간섭을 저지한다.
반면 노조가 없거나 무력화된 신문·방송·통신은 편집권 독립이 훼손되기 쉽고 재벌친화적·권력친화적·반서민적 기사가 쏟아져도 어찌할 방도가 없으며 편집 간섭이 벌어져도 오히려 경영진 눈치를 보며 손 놓고 있기 십상이다.
촌지를 받지 말자는 자정 노력도, 노조가 있으면 꾸준히 펼쳐나갈 수 있지만 노조가 없으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노조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둘 가운데 어느 것이 건전한가는 이처럼 뚜렷하다.
8. 침묵하는 안철수와 부인하는 국민의당
노조가 있는 회사가 불건전하다는 잘못된 생각은 노조는 불필요한 존재라는 또다른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진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우리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는 근본 취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여태 한 마디 해명도 않고 있다. 국민의당은 더하다. 하루 뒤인 2월 25일 트위터 국민의당 신고센터 @kookmincyber 계정에서 사이버대응팀장이 앞선 발언을 부인한 것으로 끝이다.
“어제 언철수 의원의 노조발언과 관련하여 사실관계 확인중 실수가 있었습니다.죄송합니다. 안철수 의원은 안랩운영시절 노조가 생기면 회사를 접겠다.고 말할 사실이 없다가 사실입니다. 정정하고 바로잡습니다.”
나는 국민의당과 안철수의 대응이 정정당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만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하늘은 이 세상에 없다.
원문: 지역에서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