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과연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될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15대, 16대 대선 모두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상했다가 연거푸 고배를 들어야 했던 이회창 당시 후보의 기억이 대표적인 반대 근거입니다. 대세론이란 신기루 같다는 것입니다.
사실 까놓고 보자면, 한국갤럽의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로 봤을 때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는 1월 5주 29%에서 3월 5주 기준으로 31%에 불과합니다. 탄핵이 가결되고, 세월호가 인양되고,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초유의 일들이 계속 벌어져 왔던 이 정치적인 격변의 기간에 문 후보의 실질적인 지지율은 꿈쩍도 하지 않았던 셈이죠. 그럼에도 이 기간 모두가 문재인 캠프에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문 캠프는 중량급 인물들을 영입하고,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우며 계속 화제를 주도합니다.
왜 그럴까요? 대세론은 실제로 대세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품질이 비슷할 경우 제품 자체보다 주변의 선택에 영향 받습니다.
J. K. 롤링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때, 『쿠쿠스 콜링』은 대중의 관심을 놓고 경쟁하는 수천 권의 잘 쓰인 추리소설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4억 5,000만 부가 팔린 검증된 작가인 J. K. 롤링이라는 이름은, 잠재적인 독자들이 『쿠쿠스 콜링』을 한번 훑어보게 만들었다. 어쨌든 수백만 명이 선택했는데 어떻게 틀릴 수 있겠느냐며 말이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 80쪽)
민주당 경선 과정 첫 투표지였던 호남 지역의 현장 투표결과가 참관인들 사이에서 유출된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문 후보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압도적으로 문 후보의 지지율이 높았다는 내용이 기정 사실화됐으니까요. 이후 사람들은 문재인을 더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내 경쟁에서 ‘확실한 대세론’이 생기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문재인이 호남 첫 투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대”라는 소문보다 더 확실한 대세론이 있을까요? 심지어 경선 룰은 문 후보에게 훨씬 유리합니다. 당원들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지만 당 밖에선 지지율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문 후보에게는 당원 중심의 투표결과를 먼저 공개한 뒤 비당원들이 많이 포함된 2차 투표 결과를 나중에 공개하는 편이 이런 동조 효과를 훨씬 더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최고 경영대학 중 하나인 와튼스쿨 마케팅학 교수 조나 버거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란 책을 통해 종잡을 수 없는 대중의 마음을 분석합니다. 이 책의 논리를 보면 19대 대선, 그중에서도 문재인 대세론의 불안요소들이 보입니다.
첫 번째 불안요소: 우물 안 개구리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와 함께 크게 움직인 세 가지 세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불안요소를 만들어 냅니다. 우선 같은 민주당의 안희정 후보입니다. 이 기간 지지도가 3%에서 무려 14%로 올랐습니다. 최고를 찍었던 2월 3주에는 무려 22%를 기록했네요. 또 하나의 세력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입니다. 역시 5%에 불과했던 지지도가 19%로 급상승했습니다. 현재 가장 강력한 문재인 후보의 대항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력은 ‘지지 후보 없음’입니다.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이 사람들의 숫자는 같은 기간 26%에서 17%로 급감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일찌감치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문 후보를 지지하는 대신 다른 후보들을 저울질합니다. 민주당 경선 바깥에서의 움직임은 아주 활발하며 크게 변하고 있는데 민주당 내부는 정체돼 있다는 뜻이죠.
버거 교수는 “대중을 끌어모을 가장 좋은 수단은 대중”(88쪽)이라고 말합니다. 일단 사람들을 줄 세울 수 있다면 맛이 특별하지 않아도 음식점은 성공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또한 크로넛이든 일본식 치즈케이크 가게든 요즘 유행하는 음식점 앞에 엄청나게 늘어선 줄이 별 의미 없을 수도 있음을 시사해준다. 틀림없이 그 주변에는 비슷하게 맛있으면서도 50분씩 기다릴 필요가 없는 음식점들이 존재할 것이다. (87쪽)
물론 사람들을 줄 세우는 방법은 필요합니다. 기업이라면 마케팅 비용을 써서 손님을 모으겠지만, 선거는 광고를 늘린다고 표가 따라서 늘어나진 않습니다. 어떻게 대중을 새로이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 이미 민주당에서는 경선 흥행은 별 재미를 못 봤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사람들이 줄을 안 서고 단골들만 오니까요. 이러면 좋은 가게는 되지만 대박 가게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잠깐 기업들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소비자의 수입과 계층에 따라 상품의 광고 메시지를 바꿔서 내보냅니다.
노동자 계층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암시한다. (…) 하지만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는 특별함을 강조했다. (135쪽)
미국 서민들이 많이 사는 도요타 자동차 광고를 보면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와 같은 식으로 대부분 가족을 강조합니다. 미국의 상대적 저소득 계층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보다 가족, 이웃, 동료들과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을 선호하고 편안해 합니다. 또 ‘개인의 발전’보다는 공동체 중심의 생각을 합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는 달라집니다. 보그 같은 패션잡지의 유명 브랜드 광고는 하나같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혹은 “뚜렷한 차이” 같은 개성을 강조합니다. 개인이 우선이고, 남과 다른 것이 중요해집니다.
그 뒤 기업은 외연을 넓힙니다. 도요타는 렉서스를 만들어 개성을 강조합니다. 명품 브랜드는 중저가 라인을 만들어 ‘매스티지’ 시장을 노리죠. 익숙한 브랜드에 뭔가를 섞어서 참신함으로 외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불안요소: 부족한 참신함
한국이 ‘반도체 호황’ 등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하던 1990년대와 2000년대의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TV 토론의 스타가 되고, 인터넷의 스타가 되면서 감성적인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낡은 3김 시대의 후보가 오히려 문화적으로 여유로워 보였고, 김 전 대통령의 후계자 같은 노무현 후보 또한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자유롭고 개성 있어 보였습니다.
반면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성장이 정체된 시기에 당선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욕쟁이 할머니’와 ‘박정희 정서’에 기댔습니다. 10년 전이었다면 먹히지 않았을 ‘옛날 정서’가 오히려 새로운 참신함이 된 것입니다.
지금 대중은 새롭고 참신한 사람을 원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새로운 사람은 싫어합니다. 이른바 ‘골디락스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국 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에 나오는 골디락스가 뜨거운 음식과 차가운 음식, 미지근한 음식을 가진 곰 세 마리의 음식 중 미지근한 음식을 좋아하는 등 적당한 중간을 선호하던 모습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음악이든 패션이든, 혹은 그 어떤 분야든 인기를 끄는 것들은 대개 골디락스 범위에 들어맞는다. (…) 유사성은 참신함을 친숙하게 만들기에 인기를 끈다.
대중의 선택은 대부분 이런 골디락스 범위 안에 들어 있습니다. 친숙하고 많이 봐 왔던 모습이어야 하지만, 어딘가 달라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후보는 과거 이회창 후보를 연상시킵니다. 친숙하고 익숙한 반면, 참신함은 없습니다. 문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약한 계층 사이로 파고 들어가는 참신함이 있어야 외연이 늘어날 텐데 그렇지 못하니 외연은 변화가 없습니다.
도시의 중산층에게 어필해야 할지, 지방의 서민들에게 매력 있어 보여야 할지 선택해야 할 시기인 지금 문 캠프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불안요소: 번지수 틀린 경쟁
스탠퍼드대 밥 자이언스 교수는 요상한 실험을 하나 고안합니다. 바퀴벌레 실험입니다. 빛을 싫어하는 바퀴벌레의 특성을 이용해 투명한 통로를 만들고 한쪽 끝에 어두운 공간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바퀴벌레가 있는 구석부터 통로까지 빛을 밝힌 뒤 바퀴벌레가 도망치는 속도를 계산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를 더해서 실험군으로 유리 벽으로 가로막힌 옆 통로에는 다른 바퀴벌레를 놓아두는 실험을 합니다. 일종의 ‘관객’인 것이죠.
타인의 존재는 성과를 바꿔놓았다. 다른 사람이 주변에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기량을 더 발휘했다.
직선으로 달릴 때 관객이 있는 바퀴벌레는 혼자 도망치는 바퀴벌레보다 더 빨리 달아납니다. 자이언스 교수는 괴짜라서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갈림길을 만들어 동일한 대조군을 두고 실험을 합니다. 선택이 복잡해지는 상황을 고안한 것이죠.
아뿔싸. 이 경우 바퀴벌레는 관객이 있을 때 오히려 도망치는 속도가 줄어들었습니다.
관중의 존재 역시 성과에 영향을 미쳤다. 직선 경로일 때는 관중이 존재하면 평소보다 거의 삼 분의 일 정도로 시간이 단축됐다. 하지만 트랙이 복잡해지자 관중의 존재가 반대 효과를 가져왔다. 관중이 존재하면 평소보다 삼 분의 일 정도 시간이 지연됐다. (269쪽)
즉 타인, 혹은 경쟁상대의 존재는 간단한 일 혹은 수백 번 반복해 익숙해진 일에서는 성과에 도움이 됩니다. 반면 복잡한 상황에서는 긴장을 유발해 성과를 떨어뜨리게 마련입니다.
민주당 경선의 상황이 딱 이렇지 않나 싶습니다. ‘역선택’을 하겠다며 중도주의자, 보수주의자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안희정 후보를 지지하는 상황은 문 후보에게 익숙하지 못한 복잡한 상황을 만듭니다. 그 결과 한때(3월 1주) 34%까지 상승했던 지지율은 31%로 횡보세를 보입니다. 안희정 후보 역시 민주당원이면서 민주당원들로부터 욕을 먹는 복잡한 상황이 됐습니다. 20%를 넘었던 지지율이 급감한 이유입니다.
반면 내부 경쟁을 깔끔하게 승리하고 있는 안철수 후보의 상승세는 놀랍습니다. 게다가 문재인 후보와의 경쟁은 이미 예상돼 왔던 단순한 경쟁 구도입니다. 이것이 안철수 후보 최근 지지율 급등의 배경인지도 모릅니다.
네 번째 불안요소: 역전패의 확률
전반전을 이기고 있는 축구팀은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농구도, 야구도 절반까지 이기고 있다면 역전당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지고 있던 팀이 역전하는 순간이다. (…) 실제로는 1점 차로 지고 있던 팀이 이길 확률이 더 높았다. 단지 지고 있던 팀이 이길 확률만 높아진 게 아니라(약 8퍼센트 정도), 상대팀과 비교했을 때 1점 차로 지고 있던 팀은 실제로 더 많은 경기에서 이겼다. (286쪽)
경쟁은 동기부여에 의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차이가 많이 나면 사람들은 포기하곤 합니다. 시험 점수가 안 나올 것 같으면 전날 밤을 새우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밤을 새우느라 그랬어’라는 자기변명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패배가 확실해질수록 패배를 걱정하는 쪽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논리가 나오는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일 때가 많습니다.
타이브레이크에서 진 선수들에게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매치에서 우승하기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훨씬 어려워진다. 3판 2승제로 진행되는 매치에서는 두 세트만 이기면 우승한다. 그렇기 때문에 첫 세트의 타이브레이크에서 지면 매치 우승을 향한 길에서 절반이나 지고 들어가는 셈이다. (297쪽)
쫓기는 문 캠프의 필승 전략은 하나입니다. 안철수 캠프와의 지지율 격차를 압도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이 격차가 좁아질수록 역전패의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집니다. 과연 이 상황에서 지금 문 캠프의 ‘한 방’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