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란
현대엔 널리고 널린 게 떡볶이지만 떡볶이는 원래 궁중 음식이었다. 레시피는 떡과 소고기 등을 간장으로 볶은 음식으로 현재의 ‘궁중 떡볶이’와 비슷하다. (이 부분에 대해 이견은 있는데 엔하위키의 주석을 참조) 다사다난한 역사를 거치며 우리 옆으로 추락(?)한 현대의 떡볶이는 간단한 조리와 저렴한 재료(가래떡, 고추장 양념)로 가장 인기있는 길거리 음식이 되었다.
주 재료인 떡은 밀이나 쌀로 만든다. 저렴했던 밀떡에서 점차 쫄깃한 쌀떡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중, 밀떡의 식감을 선호하는 층도 많고 밀가루값 폭등으로 가격 차이가 줄어들어 취향의 문제로 나뉘는 추세.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양념! 떡볶이 맛의 차이는 거의 양념에서 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떡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떡볶이를 명품화, 세계화하겠다면서 정작 떡을 직접 뽑아 쓰는 곳을 찾기 힘든 건 아이러니다) 고추장과 물엿, 설탕 등의 재료 배합이 꽤나 미묘해 열 개의 떡볶이집이 있으면 각각 열 개의 맛이 나니(어느 곳은 만들 때 마다 다르기도) 흔하지만 개성있는 음식이라 할 수있다.
꿀같은 휴가날이 다가왔지만 어디론가 떠나기는 뭐한 상황이었다. 신혼여행으로 해외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휴가 피크기간이라 휴양지는 죄다 붐빌 날짜였으며 신혼부부의 미숙한 가계 운영으로 휴가비도 넉넉치 않은 상황. 그러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떡볶이 투어- 는 아니고, 걍 떡볶이 많이 먹고 싶어서 하기로했다. 나와 아내가 얼만큼 떡볶이를 좋아하는지는 내내 떡볶이만 먹고다니는 휴가를 보냈다는 점에서 이미 증명되리라.
고르고 골라진 떡볶이 10선
떡볶이 집들은 서울 인근일 것, 체인점이 아닐 것, 팬시하지 않을 것, 매운맛으로 승부하지 않을 것 등을 기준으로 골랐다. 편의상 들르거나 후보에 있었으나 휴가로 문을 닫거나 영업시간에 늦어 들르지 못한 곳도 많기 때문에 이 가게들이 ‘서울 떡볶이 탑 텐’ 같은 분류는 아님을 명심하시길. 객관적 별점식 평가는 애당초 불가능하니 집어치우고 주관과 편파를 떡볶이 양념에 MSG넣듯 부어넣은 것임에도 유의.
1. 개포동 왕떡볶이
부산식 가래떡 떡볶이가 주무기. 떡볶이를 주문하면 가지런히 익힌 가래떡을 주걱으로 뚝뚝 끊어서 담아주신다. 떡볶이 뿐만 아니라 가게에서 직접 만든 튀김과 오뎅이 모두 평균이상이다. 왕떡볶이로 알려져있지만 상호는 ‘부산어묵’이다. 스마트폰으로 찍고 찾아갈 때 주의.
2. 은마상가 만나분식
워낙 유명한 집이라 그런지 건너편 가게와 대비될 정도로 손님이 북적거렸다. 밀떡과 쌀떡이 섞여나와 다양한 식감이 구강에서 댄스댄스. 여러 세트중 고민하다 A세트를 골랐는데 떡볶이, 사리, 계란, 튀김, 오뎅 모두 맛있었다.
3. 충정로 철길떡볶이
원숙한 양념에 밀과 쌀 혼합 떡. 멸치로 우려낸 오뎅국물에 담백한 김밥이 특징할만. 조미료가 적게 사용되어 먹고난 뒤 깔끔한 느낌적인 느낌. 조미료에 질색하시는 분들은 아주 좋아할 듯. 사흘간 다녀온 곳 중 가장 조미료 맛이 적었다.
4. 상도동 영도분식
달달한 국물에 잡채가 든 떡볶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을듯. 주문하면 바로 말아주는 따끈한 김밥이 특히 맛있다. 시장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 찾기가 어렵지만 고생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
5. 반포 애플하우스
묵직한 맛의 즉석떡볶이와 무침만두가 유명한 가게. 원래는 일반떡볶이가 주무기였다가 즉석떡볶이가 인기를 얻으며 유명해졌다고. 은근히 맵고 양도 많으며 쫄면사리가 특히 맛난 것이 특징. 오뎅국물은 주방서 달라고 해야 받을 수 있다. 괜히 왜 우리는 안 주냐고 투덜거리지 말자.
6. 대학로 나누미떡볶이
마시멜로급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신선한 쌀떡에 은근매콤한 소스가 그레이트. 입에 넣는 순간 여타 떡볶이에선 생소한 프레시함을 맛볼 수 있다. 투실한 오뎅이 특히나 맛있고 3000원으로 조금 비싸지만 속이 튼실한 김밥도 굿.
7. 대학로 옥이모깻잎떡볶이
깻잎에 고춧가루 팍팍뿌린 소스와 밀떡이 잘 어울림. 튀김옷 얇은 김말이와 오뎅도 맛있지만 조개로 우린 오뎅 국물의 개운함이 발군이라 술 한잔 하신 분들이 해장하기 좋을 듯. 큰길가에서 안쪽으로 이전했으니 스마트폰 지도를 믿지 말 것.
8. 옥인동 승혜네떡볶이
밀떡, 양념에 오뎅과 국물, 가격까지 옛날인 가게(떡볶이정식 2,000₩). 너무 싼 것 같아 오뎅을 두개(개당 500₩)시켰더니 따로따로 그릇에 담아 주셨다. 가격도 깡패지만 향수를 자극하는 자잘한 밀떡의 식감이 행복하다. 일반 빌라 지하에 있으니 차분히 찾아갈 것.
9. 남가좌동 엄마손떡볶이
명지대 앞에서 아주 오랜시간 버텨낸 유서깊은 떡볶이집. 아마도 고춧가루 대신 사용한 듯한 카레가루가 고추장과 아우러져 육덕진 향과 맛을 낸다. 가격에 비해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해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듯. 때문에 집근처에 있으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한 떡볶이 집이기도 하다.
10. 남가좌동 이정희떡볶이
엄마손떡볶이와 지척에 있는 라이벌(?)가게. 오뎅국물 맛은 비슷하지만 떡볶이는 부드러운 신맛이 살짝 느껴지는 집고추장이 들어간 정통파 양념이 승부수인듯. 튀김은 떡볶이 범벅보다 양념간장에 찍먹 추천.
떡볶이 투어는 짧은 시간 다녀오기에 적합하다. 떡볶이 한 접시는 끼니를 채우기엔 적은 양이라 여러 집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장점(…나만 안 배부른 건 아닐 거야). 게다가 저렴하다. 커피 한 잔 값도 안되는 가격으로 두 사람이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다. 사람 많은 곳에 가게가 있기 마련이니 대중교통으로 다니기에도 어려움이 적은 것도 큰 장점.
순위는 무의미하다
SNS에 올린 투어를 본 사람들이 어디가 제일 맛있었느냐고 물었다. 허나 최고의 집을 짚어내는 일이란 불가능하다. 떡볶이가게들은 각각의 맛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로 다른 분야에서 탁월해 낫고 못함을 가리는 일이 무의미 했다. 저곳들보다 훨씬 맛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은둔고수 떡볶이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며 소개한 떡볶이집들보다 ‘아딸’, ‘국대’, ‘죠스’ 등 체인점 떡볶이가 더 입에 맛는 분도 있을 것.
무엇보다 직접 가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순위를 매기기 이전에 한 번씩 맛을 보기를 더욱 더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