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대학원 입학 심사를 해왔습니다. 제 심사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 분야 박사 과정, 특히 생물학 분야로 미국 대학원 유학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도움될 만한 정보를 나누려고 합니다.
준비해야 할 시험은?
요새는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 별로 안 봅니다. 학교마다 전공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특히 과학 분야 대학원생들의 경우 GRE 점수가 학생들의 성공 여부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결과들이 많이 쌓여서 GRE 무용론이 대세입니다. GRE 준비하느라 너무 힘 빼지 마세요. 못 믿으시겠다면 사이언스지의 기사 ‘Student performance measures that don’t perform’를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토플은 대부분 학교 자체 또는 전공별 컷오프가 있어요. 그 컷오프만 넘기면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전공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희 학교(퍼듀 대학교)에서는 대충 80-90점 정도입니다. 총점보다도 토플의 4개 항목 각각의 점수를 봐요. 그러니 항목별로 컷오프가 20-22점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듯하네요. 4개 항목 모두 24점 이상이면 어디를 가도 충분하다고 봐요. 괜히 토플 점수 좀 더 높이려고 시간 돈 투자할 필요 없어요. 몇 점 더 받는다고 전혀 달라질 거 없습니다.
외국어 실력은 기본 중의 기본
실제 영어 실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입학심사를 담당하는 교수님들은 다들 학생이 미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려면 충분히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면 바로 TA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요새는 외국 학생도 스카이프(Skype)로 인터뷰하므로 영어로 소통 안 되면 무조건 탈락입니다. 토플 아무리 잘 받아도 소용없어요. 그러니 영어는 미리미리 충분히 준비하셔야 해요. 전 솔직히 20여 년 전에 영어 서투른 상태로 유학 와서 실험실 동료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많이 배웠거든요. 영어 좀 서툰 학생도 와서 배울 수 있다고 실력 좋으면 뽑자고 하는데 미국인 교수들이 호락호락 안 넘어갑니다.
최소한 자신이 한 연구는 영어로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발음 좀 나빠도 자신 있게 말이 되는 영어를 하는 게 중요해요. 그리고 스카이프로 인터뷰하자고 하면 헤드셋, 마이크부터 제대로 된 걸로 장만하시고 미리 시운전 좀 해 두세요. 가끔 보면 마이크가 안 좋아서 인터뷰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점과 연구 경험
학점도 학점이지만 어떤 과목에서 어떤 학점을 받았느냐가 중요해요. 물론 유학하고자 하는 분야의 전공과목 학점을 잘 받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1-2학년 때보다 3-4학년 때 학점이 더 중요하고요. 1-2학년 때 좀 망쳤어도 3-4학년 때 학점이 올라가면 이해합니다. 전공과목에서 C 있는 건 좀 위험하지만요. 학점은 3.5 정도면 무난하지만 다른 스펙이 좋다면 3.0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본인이 정말 의욕이 있고 박사과정을 꼭 하고 싶다면 학점이 3.0일지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학점이 좀 떨어져도 연구는 잘할 수 있다는 걸 설득하면 됩니다.
연구 경험이 무척 중요합니다. 석사학위가 있다면 당연히 충족이고요, 학부만 했더라도 연구 경험이 1년은 되기를 기대합니다. 연구 경험이 없다면 연구에 관심이 없는 학생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본인이 연구를 안 해봤는데 대학원 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아느냐 의심하죠. 따라서 연구를 경험해 보고 더욱 연구하고 싶게 되었다고 설득을 해야 합니다. 본인이 무슨 연구를 했는지 확실히 이해함을 보여주어야 해요. 지원서에도 잘 설명하고, 인터뷰에서도 잘 이야기하고요. 연구했다면서 무슨 연구를 했는지, 왜 했는지,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설명 못 하면 바로 탈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서류는 상세하게 갖추자
추천서 중요합니다. 특히 연구를 지도했던 교수님의 추천서가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학점이나 GRE 별로여도 지도교수님의 편지가 훌륭하면 다 용서가 될 수도 있어요. 물론 그냥 칭찬 일색은 소용없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칭찬해주셔야 합니다.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이 학생이 아이디어를 내서 해결하더라’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걸 정말 즐기더라’ ‘내가 데리고 있었던 학생 중 상위 10%에 들어간다’ ‘내 방에서 박사를 한다고 하면 기꺼이 받겠다’ ‘○○대학에서 박사를 했는데 거기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더 뛰어나다’ 이런 식의 표현이 필요하죠. 한국에선 때로 학생에게 추천서 써오라 하고 사인만 해주시는 교수님들도 계신 것 같던데 그런 추천서 상당히 쉽게 들킵니다. 추천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지요. 짧게 써주시더라도 교수님이 진심으로 평가해주시는 편지가 도움됩니다.
자기소개서(Statement of Purpose, SOP)도 중요합니다. 일단은 헛소리를 안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헛소리로는
- 현재 과학계의 관심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를 쓴다거나
- 자신이 해온 공부와 완전 무관한 분야를 전공하고 싶다고 한다거나
- A를 공부하고 싶다면서 B를 연구하는 교수님의 연구에 참여하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자소서는 자신의 스펙에 문제가 있을 때 해명할 기회가 됩니다. 예를 들어 ‘1-2학년 때 학점이 안 좋았는데 그건 대학 생활에 처음 적응을 못 해서였다. 하지만 나중에 연구에 참여하면서 과학연구에 관심이 불타올랐고 그 뒤로 학점도 좋아졌다’ 이런 식으로요. 드물게 현재 지도교수님의 추천서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그 경우도 자소서에 설명해주면 됩니다. 다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이해하니까요. 문제가 있는데 설명을 안 해주면 그냥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차라리 적당히 해명하고 넘어가는 게 감추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발표한 논문이 있다면 아주 좋죠. 논문이 아직 없어도 추천서에 ‘논문 준비 중’이라고 되어 있으면 플러스입니다. 그러나 석사를 마친 지 좀 되었는데 아직도 발표된 논문이 없다면 문제가 됩니다. 물론 추천서에 지도교수님이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면 감안하기도 하지만요. 논문은 당연히 질이 중요합니다. 듣보잡 저널에 저자 7명 중 5번째, 이런 논문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다른 사람 논문에 이름 넣으려 할 필요는 없어요.
차라리 자소서에 아직 논문이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하는 것이 낫고, 지도교수님이 추천서에 연구기여도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게 훨씬 나아요. 솔직히 듣보잡 저널에 저자가 떼거리로 들어간 논문이 여러 개 있으면 심사위원들이 오히려 의심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논문 만들어내는 연구실에서 뭘 배웠으려나 싶은 거죠. 논문 실적이 돋보인다기보다 학생의 연구 윤리가 더 걱정되거든요.
대학원이 원하는 학생을 생각해볼 것
이렇게 대충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지원할 때 무엇보다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대학원에서 어떤 학생을 원할까’예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찌 보면 당연해요. 와서 연구를 잘할 수 있는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성실하고 연구생활 자체를 즐기는 학생을 원합니다. 그게 다예요. 그 답에 맞추어서 지원서를 준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지원 준비는 학부생 때부터 시작해야 해요. 박사학위를 받기 원한다면, 또 외국으로 유학을 원한다면 적어도 학부 2학년 때부터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하세요. 그래야 자신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대학원에 진학해서 성공적으로 박사학위과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준비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