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는 카메라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뮤지션은 음악과 소리로 세상을 느끼듯,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마케팅’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될 때가 많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자연스레 마케팅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 마케팅은 우뇌를 쓰는 말랑말랑한 쪽, 본질과 철학, 스토리가 중요한 브랜딩 측면에 더 가깝다. 물론 논리와 분석을 요하는 퍼포먼스 마케팅이 필요하고 좌뇌와 우뇌가 시너지를 내야 가장 효율적이란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리 데이터와 퍼포먼스 마케팅을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마케팅 대상 자체의 매력이 없다면 효과는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나의 시야를 넓혀준 인생 경험 중 하나는 매년 영국 서머싯 농장에서 5일간 열리는 축제, 글래스톤베리 현대 공연예술 페스티벌(The Glastonbury Festival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이하 글래스톤베리)이다. 내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벌써 2014년과 2016년 두 번을 다녀왔다. 이 글은 그곳에서의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과 내가 바라본 마케팅 관점의 글래스톤베리에 관한 글이다.
세상에 이런 곳이!
글래스톤베리를 처음 알았을 때 나의 반응은 ‘우와! 그런 데가 있어?’였고, 직접 가서 내 두 눈으로 보면서 느낀 건 ‘맙소사 세상에 이런 곳이’였다. 정말 신세계였다. 무엇을 상상하든 상상 이상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말도 안 되게 훨씬 더 넓었고 훨씬 더 큰 재미와 감동, 예기치 못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글래스톤베리에 대한 몇 가지 팩트
- 글래스톤베리는 1970년부터 시작된 페스티벌로 2016년이 46년째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역사 깊고 유명한 페스티벌 중 하나로 서머싯의 워시 팜(Worthy Farm)이라는 농장에서 6월 마지막 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5일간 열린다.
- 면적: 대략 120만 평(900-1,100에이커, 축구장 500개 이상 규모)
- 펜스 길이: 13.5km
- 무대 수: 크고 작은 무대를 포함해 최소 100개
- 관객 수: 메인 무대인 피라미드 무대 앞만 관객 약 10만 명 수용(2016년에는 더 들어갔던 것 같다.)
- 텐트: 7만 6,000개
- 케이터링 벤더: 약 750개
- 간이화장실: 약 5,500개
- 쓰레기통: 4만 개(하나하나 다 다르게 생겼다!)
- 매년 팔리는 표: 약 14-20만 장
쉽게 얘기해서 강남역에서 압구정역까지 4㎢ 정도 전부가 다 페스티벌 사이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진짜 스케일이 어마어마한데, 잊지 말라. 이곳은 원래 농장이다. 사진만 봐도 알겠지만 진짜로 과장 없이 그저 허허벌판이다. 교통편은 당연히 없다. 자전거도 안 되고 페스티벌 사이트 내에서는 무조건 걸어 다녀야 한다. 그리고 농장에서 5일간 열리는 거니까 무조건 캠핑이다. 건물에서 자고 그런 거 없다.
그리고 날씨… 글래스톤베리를 처음 가던 2014년, 영국 공항에 내려서 입국심사에서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영국엔 왜 왔나요?”
“여행하러요. 글래스톤베리에 가요.”
이렇게 얘기하자 입국심사 직원은 웃으면서 티켓을 어떻게 구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운이 좋았다며 그런데 비가 많이 올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또 웃으며 내 여권을 돌려주며 말했다.
“비가 안 내리면 그건 글래스톤베리가 아니지(Well if it doesn’t rain it’s not Glastonbury).”
2014년은 진흙밭 맛보기였다 치고, 2016년은 정말… 어후. 전날까지 며칠간 비가 오는 바람에 페스티벌 기획자인 마이클 이비스(Michael Eavis) 할아버지도 인정한 46년 역대 최악의 진흙밭이었다. 진흙이 너무 끈적거려서 장화를 신어도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2016년도에는 내 체력적 한계의 끝을 경험했다. 비가 내려도 좋으니 좀 덜 내리고 날씨 좋은 글래스톤베리를 한 번만 경험해보고 싶다.
캠핑에, 진흙밭에, 글래스톤베리는 몸이 편한 곳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매년 17만 장의 표가 순식간에 매진된다. 홍보도 전혀 하지 않고 전체 라인업 발표도 티켓을 판매한 이후에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매년 이 외딴곳까지 찾아오는 걸까?
글래스톤베리는 태생 자체가 돈 벌려고 만든 페스티벌이 아니다. 처음 시작된 1970년에는 티켓 가격이 1파운드였고 심지어 티켓에 농장에서 만든 우유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비스 할배는 다른 블루스 페스티벌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자기만의 페스티벌을 작게 기획해서 시작했고, 해마다 이게 자연스럽게 진화해오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우리는 글래스톤베리로 간다
글래스톤베리는 가는 길부터가 조금은 달랐다. 2014년에도, 2016년에도 글래스톤베리로 들어가는 길이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평소 같았으면 신경질이 날 만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짜증 내지 않는다는 것. 그저 그 모든 과정을 즐길 뿐이다.
2014년에는 버스 기사가 글래스톤베리로 가는 길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사람들 몇 명이 괜찮다고 웃으며 기사 뒤편에 앉아서 구글 맵을 보며 길을 안내해주었다. 이 기사는 누가 봐도 마약 한 것처럼 이상했다. 갑자기 자기는 잠을 못 자서 잠을 자야겠다며 어느 휴게소로 들어가서 운전하기를 거부했을 때 우리는 다 같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버스 회사에 따져서 택시를 불렀고 우리끼리 그룹 지어 나눠서 타고 들어갔다). 그래도 그전까지는 다들 돌발상황에도 태연하게 웃으면서 대처하려는 모습에 보살인 줄 알았다.
2016년에는 운이 좋게도 런던에서 글래스톤베리로 들어가는 버스와 공연 티켓을 함께 구매했다. 그런데 제시간에 출발하는 버스가 없었다. 2-3시간 기다려서 출발하면 빨리 출발하는 거였다. 이런 상황임에도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3시간, 4시간씩 기다렸음에도 자신이 탑승해야 할 버스가 오면 다 같이 환호하고 손뼉 치면서 좋아했다. 마치 무슨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사람들이 진심으로 환호성을 지르는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계속 낄낄댔다.
“진짜 중요한 건, 내가 글래스톤베리에 간다는 거야.”
“진짜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이곳에 와 있다는 거지.”
글래스톤베리가 주는 불편함은 이뿐이 아니다. 화장실은 말할 것도 없고 샤워도 마음대로 하기 쉽지 않다. 캠핑이니까 아웃도어의 불편함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다 떠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여러 가지로 힘들어진다. 텐트에 물이 샌 적도 있다. 하하. 진흙밭을 걸을 때면 발에 모래주머니를 세 개씩 차고 다니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놓고 이 불편함을 즐긴다.
글래스톤베리로 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상태로 세팅되어 온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이 더럽고 며칠간 제대로 샤워를 하기 힘들다고 해도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그래 뭐, 며칠간 좀 부랑자처럼 지내면 어떠리. 내가 지금 글래스톤베리에 있는데. 우리가 지금 그곳에 있는데. 어쩔 수 없는 것에 기대를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우리를 편리하게 해주는 것들로부터 잠시 떨어져 가장 중요한 목적, 글래스톤베리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 하나에 절로 집중하게 된다.
페스티벌을 가로지르는 공동체 의식
글래스톤베리에는 강력한 커뮤니티의 느낌이 자리 잡는다. 페스티벌 사이트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가 있다. 구석구석 다른 음악이 울려 퍼지는 이곳에서는 인간과 환경을 위한 상위 개념의 가치인 평화, 자연보호, 자유, 평등, 사랑을 중심에 두고 있다. 글래스톤베리의 공연과 행사는 이러한 가치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5일간 그 가치를 수호하는 글래스톤베리의 주민이 된다.
포장이 아닌 진짜
글래스톤베리는 자연스럽게 다르다. 절대 척하지 않는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즉흥적이면 즉흥적 인대로 있는 그대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뿐이다. 어떤 일이든 억지스럽지 않게 벌어진다.
글래스톤베리 내에는 수많은 섹션이 존재하고, 그 다양한 섹션마다 가진 색깔이 다르다. 목공 체험, 서커스, 연극, 페인팅 등 공연 말고도 5일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볼거리가 넘친다. 예를 들어 블록 9은 밤 10시부터만 입장이 가능해지는 섹션으로 글래스톤베리에 가면 여기서만 노는 사람들도 있다.
입장 가능한 입구가 하나라서 밤이면 긴 줄이 생기기도 하는데, 2014년에도 16년에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노엘 갤러거’를 목격했다(ㅋㅋ).
블록 9에는 다양한 ‘댄스’를 즐길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음악이 다 있다. 일렉트릭, 라틴음악을 비롯해 클럽도 모여 있고 야외 이곳저곳에서도 댄스파티가 열린다. 음악뿐 아니라 무대나 건물들, 야외에 설치된 작품들을 작정하고 꾸며놓은 곳이다. 꽤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많아서 마치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 속 마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샹그리 헬(Shangri Hell)에서는 유명 뮤지션이 시크릿 라인업으로 디제잉을 하기도 한다. 정말 또 다른 세계.
블록 9를 가면 ‘자기표현’의 대가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마음 놓고 원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 기괴해 보이는 메이크업과 복장으로 밤이 되면 마치 다른 종족인 것처럼 변신한다. 건물 야외에 프로젝션 맵핑이 되기도 한다. 공간과 사람들만 봐도 아이디어가 넘치는 곳이다.
더 파크(The Park)는 이비스 할배의 딸인 에밀리 이비스가 기획하고 만들어냈다. 이곳에서 공연한 뮤지션들은 제임스 블레이크, 세인트 빈센트, 그라임스(Grimes) 등 얼터너티브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있다.
벤더도 다 다르게 꾸며져 있다. 그걸 보는 재미도 엄청나고. 밥도 맛있는 게 엄청 많은데 가격도 합리적이다. 영국에 먹을 게 없다고 들었지만 글래스톤베리는 다르다. 주변 농장에서 직접 만든 신선한 채소로 만들어서 그런지 정말 맛있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 필드는 입장 제한이 있지만 차별적이지는 않다. 누구나 자신이 ‘아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 5초간 춤을 추거나 이곳 지킴이들의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따라 하면 들여보내 준다.
힐링 필드는 집시와 히피들의 파라다이스다. 여기 누워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풀밭에 누운 히피족들, 기타 치며 노래하는 아저씨, 훌라후프 돌리는 사람들. 그냥 근심 걱정 없이 마냥 여유롭고 릴렉스한 분위기다.
대망의 피라미드 스테이지. 이 앞은 약 10-15만 명을 수용한다. 10만 명이 다 같이 떼창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진짜 그 순간 그곳에 있으면 미친다.
이 외에도 다른 섹션과 100개가 넘는 무대가 있는데, 각자의 개성을 지닌 구역 중 나와 가장 잘 맞는 곳을 선택해 녹아들면 된다. 워낙 다양해서 누구나 마음이 가는 구역을 찾기가 쉽다.
진정성의 힘
글래스톤베리가 일반 페스티벌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는 상업적인 브랜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타 페스티벌처럼 한 번이라도 사람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해 튀려고 노력하는 브랜드 또는 벤더들, 상업적인 회사나 브랜드는 아예 없다.
글래스톤베리는 NGO 단체인 그린피스와 옥스팸이 후원한다. 페스티벌 사이트 전체를 통틀어 어느 단체의 로고가 보이는 것은 자연보호에 앞장서는 그린피스와 빈곤 해결, 불공정 무역에 대항하는 옥스팸뿐이다. 특히 그린피스 섹션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매년 테마가 정해진다. 2014년은 북극곰 보호.
후원하는 단체마저도 글래스톤베리가 지닌 가치와 너무 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렇게 상업적이지 않은 페스티벌은 처음이었다. 글래스톤베리는 모든 게 그저 자연스럽게 존재할 뿐이었다.
글래스톤베리의 이런 일관된 철학과 운영 방식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말로만 그런 게 아니다. 자전거를 돌려 핸드폰을 충전하는 곳도 있고, 샤워실은 화학제품이 안 들어간 천연재료로 만든 치약과 비누만이 허용되며, 따뜻한 물은 태양광을 이용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래 깊고 매년 솔드아웃되는 페스티벌 중 하나인데. 스폰서를 구한다면 당연히 쉽게 구해졌겠지만 글래스톤베리는 타협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중요한 게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 돋보이는 배려
글래스톤베리에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감동하는 일이 잦았다. 이곳에서는 나이도, 장애도, 인종도 사람들을 구분 짓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진정으로 음악과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에서도 배려가 돋보인다.
예를 들면 장애인과 가족들의 캠핑 섹션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장애인 섹션은 피라미드 스테이지와 가까운 곳, 어디로든 이동하기 편리한 곳에 마련되었으며 스테이지가 잘 보이는 곳에 휠체어만 들어갈 수 있는 구역도 따로 있다. 또 아이들은 귀가 약하기 때문에 귀를 보호할 헤드폰이 제공된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돌리 파튼의 공연을 볼 때였다.
감동의 순간순간
매일매일 몇 킬로씩 걸어 다니느라 체력의 한계를 느낄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 체력이 진짜 좋은 편인데 내가 힘들다고 느낄 정도면 진짜 힘들긴 힘든 거다. 하지만 그 힘듦 뒤에는 최대치의 행복이 뒤따라 왔다. 예를 들면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술탄 래빗홀 공연은 진짜 대박이었다. 가사는 한국어였지만 관중들은 술탄의 훵키한 음악을 미친 듯이 즐겼고 다 같이 ‘깍뚜기’와 ‘요술왕자’를 따라부르며 진짜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원 모어 송”을 외치며 앵콜을 세 번이나 요청했다. 특히 ‘고스트버스터즈’를 불렀을 때는 대폭발!
2014년 헤드라이너인 아케이드 파이어를 기다리는데 오아시스의 샴페인 슈퍼노바가 흘러나왔다. 조금씩 해가 지는 하늘 아래 10만 명이 다 같이 따라 불렀고, 노래가 끝나자 다 같이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길을 걷다가 마주친 한순간. 아저씨가 움직이기 힘든 할머니를 위해 먹을 것을 사다 주는데 사람들이 모두 동참했고, 이 아저씨의 노래와 춤을 따라 하며 할머니를 즐겁게 해주었다. 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울컥했다. 너무 멋지고 기분이 좋아서.
16년도 피라미드 스테이지의 마지막 무대는 콜드플레이와 이비스 할배가 함께한 ‘My Way’였다.
데이빗 보위 오마주로 디자인된 피라미드 스테이지에서 콜플과 함께 글래스톤베리를 만든 이비스 할배가 불러준 마이웨이는 인생 무대 중 하나였다. 너무 멋지고 감동적이여서 울컥. 마지막 헤드라이너의 마지막 무대로 이보다 멋진 마무리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 10만 명이 다 같이 부둥켜안고 노래하는 순간순간이 행복했다. 나는 사과랑 계속 어깨동무하고 노래하고 방방 뛰고 엉어어엉 울기를 반복했다. (…) 이렇게 전 세계에서 온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국적 종교 나이 다 아무런 상관 없이 순수하게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보면 현실에서 네 편 내 편 가르며 싸우는 모습들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아아. 다시 봐도 좋은 이 순간들. 손을 잡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팔에 가득 찬 글래스톤베리 팔찌, 정말 보고 싶었던 밴드들의 라이브, 처음 보는 아티스트에게 반하던 순간 등. 좋았던 순간이 너무 많다.
글래스톤베리에서는 이런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지구 전체를 통틀어 내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진정성과 철학, 본질, 일관성. 글래스톤베리에는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그리 편한 곳도 아니고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도 하나도 없지만 처음 세워졌던 글래스톤베리의 철학, 그를 수호하는 공동체, 그리고 모두 함께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본질이 아주 단단하고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벅찬 감동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순간과 그 속에 흠뻑 빠진 나 자신, 그것만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 행복의 무게가 너무 커서 작은 불편함이나 체력의 한계는 안중에도 없다.
글래스톤베리는 홍보가 필요 없다. 라인업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글래스톤베리는 글래스톤베리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그 시간 속을 살기 위해 어차피 매년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올 것이다.
원문: yoonash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