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경영서적과 에세이집을 많이 읽고 있지만, 사실 어렸을 때부터 제일 많이 읽고 재미있어하는 분야는 소설이에요. 그중에서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책을 좋아합니다. 그의 팬이라서 그가 쓴 책을 빠짐없이 모두 다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그의 방대한 지식과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돼요.
2013년쯤이었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내한 강연에 갔었어요. 그때 메모장에 열심히 적어두었던 내용을 공유합니다. 제가 메모한 내용이라 저의 생각이 살짝씩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크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 나는 누구인가?
- 어떻게 살 것인가?
-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베르베르는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전생에 관한 얘기를 먼저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 사람들 이런 거 안 믿는 사람도 많을 텐데’란 생각을 했다. 그런 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해 또 다른 생각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베르베르는 어떤 여자 영매를 만난 얘기를 했다. 체구가 크고 나이가 꽤 있는 ‘모나크’라는 이름의 여자였는데, 마법사 같은 여자가 계속 천사 등 영적인 이야기만 해서 처음에는 지루함을 느꼈다. 그러다가 전생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만에 하나 지어낸 것일지라도 너무 흥미로워서 그 이야기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의 전생 스토리는 이렇다.
그에게는 111개의 전생이 있었다. 100개는 재미없는 인생이었고, 11개는 흥미로운 인생이었다. 그중 몇 가지는 아틀란티스에서 살았던 삶, 이집트 하렘의 여성으로 살았던 삶, 일본 사무라이, 러시아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의사로 살았던 삶이 있었다. 그는 11가지의 전생이 지금의 현생과 관련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 하렘의 여자였을 때 그는 지루함을 타개하기 위해 별을 봤다. 지금의 베르 베르도 지루하거나 할 일이 없을 때 별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 베르베르는 어릴 적 류머티즘을 앓아서 치료방법으로 검도를 시작했다. 그래서 전생에 사무라이와 연관된 삶이 있다는 게 더 흥미로웠다. 신기하게도 검도 가면을 쓰고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면 평소에는 없었던 난폭한 심리가 생겼는데, 영매에게 이 얘기를 해주자 그건 전생에 이미 사무라이의 삶을 한번 살았기 때문에 검도를 할 때의 동작과 상황이 익숙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 베르베르는 사무라이의 삶에서는 권력에 복종했던 것이 현생과 가장 다른 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복종’에 의해서만 사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인생이다. 그러나 개인이 판단하지 않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
이후 베르베르는 최면의 세계를 알게 되었는데, 전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했던 러브스토리는 아틀란티스에서 보냈던 생에서의 사랑이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바닷가에서 돌멩이를 줍는 한 남자를 보았는데(그의 전생이었다), 그는 매우 평온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베르베르는 그가 821세인데도 나쁜 기억이 전혀 없고, 어떠한 속박이나 압박이 없는 평안한 상태인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단편집 『파라다이스』에 나오는 아틀란티스 관련 얘기를 썼다. 그는 자신이 영적 세계에 대해서 믿는 것이 상상력에 분명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영적 세계에 관한 얘기는 다른 소설, 영화, 예술 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불교의 윤회 사상처럼 종교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다른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공통적인 무언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지어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어떤 것이 있겠거니 싶다.
나는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이런 공통적인 부분들을 찾아 나가는 게 재미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면 나 역시도 상상을 하게 되는데, 돌이켜보면 이런 상상은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나만의 철학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되어주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베르베르는 한국에서 강연을 하기 한 달 전에 최면을 받은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그는 최면을 통해 아틀란티스 전생으로 돌아가 바다 앞에서 돌멩이를 줍고 있던 남자를 만났다. 베르베르는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평안해 보이나? 나도 언젠가 그런 평온함을 가지고 싶다”라고 묻자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당신이 나를 찬양할 게 아니라, 내가 당신을 찬양해야 한다. 당신의 시대에는 책이라는 매체가 있지 않나. 나는 열 몇 명에게 만 내 영향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책에는 국토의 개념이 없다. 프랑스에서 쓴 책이 한국에서 읽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베르베르는 책이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매체이고, ‘나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책은 마치 생각을 전하는 안테나와도 같아서, 그게 또 다른 안테나와 만나서 전파될 수도 있다고, 만약 지금 강의를 듣는 사람 중 몇 명이 작가가 된다면 또 파생된 생각들이 전파될 것이라며 그는 웃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경험한 영적인 세계에 관한 얘기를 공유해주었다. 베르베르를 자신을 ‘책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작가’라고 결론 내렸다. 그의 모든 전생을 통틀어서 현생이 가장 흥미로운 생인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생도 후생도 있는 게 사실이라면 ‘다음 생이 있는 데, 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이번 생도 최대한 즐겨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현생을 충분히 즐기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어떻게 살 것인가?
강연의 2장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예상 밖으로 그는 ‘제대로 숨 쉬는 방법’을 먼저 설명했다. 역시나 예측 불가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삶의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1. 제대로 숨을 쉬면서 사는 것
우리는 생각보다 제대로 숨을 안 쉬고 산다. 사람은 배, 몸통, 어깨 3가지 방법으로 숨을 쉴 수 있다.
어깨로 숨을 쉬는 것은 화가 났을 때 씩씩대며 숨을 쉬는 것이다. 배로 호흡하는 건 명상할 때 쓰이는 방법이다. 그는 뇌로 신선한 공기가 공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대로 숨 쉬는 것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며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요가를 배우던 때를 떠올렸다. 요가를 배우면 처음에는 호흡하는 법을 배운다. 가만히 코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후, 천천히 내뱉는 방법이다. 이 호흡을 계속하면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2. 잘 자기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서 잘 자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이지만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서 신선한 측면도 있었다.
3. 지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 이해하기
그는 삶의 목적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왜 태어났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정의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삶은 성공한 인생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순수하게 ‘내가 즐거운’ 일 10가지를 적어보라고 말햇다. 오로지 나에게만 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게 느껴질까 봐 하지 못하는 것들을 찾을 것.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타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러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을 상상해보길 바란다. 고통스럽다고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계속 애벌레로 남아 있을 테니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
베르베르는 이렇게 말했다.
죽는 순간까지도 웃을 수 있어야 한다. 나 자신에 대해 평온한 상태이고 싶다.
베르베르에 따르면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인생의 성공·실패와 관계없이 나비로 날아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도전해보았느냐 아니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스스로 떳떳한 상태,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자유 의지를 갖추고 스스로의 삶을 설계하고 그를 향해 도전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도 좋지 않다. 이 모든 것에 있어서 나에게 맞는 나만의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하다.
이 이후에 베르베르가 덧붙인 말이 좋았다.
사람의 의무는 가족과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스토리에 대해서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기까지 몇 가지의 우연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굉장히 많은 우연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로또보다 큰 행운일 수도 있다. 3억 마리의 정자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극미한 확률이다. 우리는 수많은 우연이 축적된 결과다. 수많은 사랑의 결과다. 이런 생각은 ‘내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베르베르의 말은 이랬다. 인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인구 증가율 속도를 줄이고, 콘크리트보다는 자연 밀착적인 삶을 추구하고, 누구든 먹고 사는 데 문제 없는 세상이 되는 쪽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미래 세대에 더 큰 의무를 지닌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우리 지구는 경제와 산업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더 의미 있는 행성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그의 책 중 『카산드라의 거울』은 지금 우리 세대가 후손 세대의 부를 모두 착취한 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해 더 이슈였던 책이기도 하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생활하고 있다.
작가는 ‘만일 우리가 미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2300년의 미래세대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 줄 것인지 생각해보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구 자체에 대한 성찰을 해볼 것을 주문했다. 또 그는 지구가 화자로 등장하는 챕터를 설명해주었는데, 그의 책인 『제 3인류』를 보면 지구가 살아있는 생명체로 나온다. 석유는 지구의 피고 나무는 지구의 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인간은 계속해서 지구의 피를 뽑고 털을 밀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생명체로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가 이곳에서 머물다 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들어준다.
베르베르는 인간의 힘의 원천이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상상력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가능케 하고,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고 각자의 역량을 개발시키며 살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을 마무리하며
공식적인 강연이 끝나고 그는 3,000명의 관객을 데리고 한 가지 실험을 했다. 나는 이 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는 우리에게 눈을 감으라고 주문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우리에게 말했다.
- 눈을 뜨고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인식해보라. 책상, 내 필기구, 내 앞에 수많은 사람들과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 사람들의 옷.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오직 보는 것에만 집중하라.
- 그 이후에는 들리는 것에만 집중하라. 지금 들리고 있는 보든 소리. 펜 소리, 타이핑 소리, 말소리, 배경에 들리는 소리. 모든 소리 하나하나까지 들으려고 노력해 보라.
- 그다음은 손으로 피부와 닿는 모든 것을 느껴보라. 종이, 노트 표지, 내 옷, 의자, 신발.
이 모두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내 눈, 귀, 손, 발, 몸에 감사하는 시간을 잠시 가져라. 그는 가끔 이렇게 순간을 정지시키고 온전한 현재를 사는 연습을 한다고 했다. 잠시의 일시 중지를 통해 삶의 힘을 받을 수 있다.
‘온전히 현재를 사는 연습’. 은근히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사족
마지막으로 그가 받았던 질문 중에 기억하고 싶은 답변 하나. “20살로 돌아간다면 무엇이 하고 싶나?”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최대한 여행을 많이 한다. 나와 다른 마인드와 생각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알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경험을 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굳이 20살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는 오히려 지금 20살의 인생을 살고 있다.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젊음에는 나이가 없다. 내 전생이었던 821세 사람이 나보다 더 젊었을 수도 있다.
원문: yoonash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