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산챔프카에 이어서 F1까지 이른바 ‘최고’에 위치한 모터스포츠로 부가가치를 생산해내는데 실패했다. F1이 작살났는데 이제 그 어떤 기업이 ‘오오오! 모터스포츠에 투자해야겠다!’라고 결심할까? 그 보다는 ‘ㅅㅂ… F1도 저래 망하는데 한국에서 무슨 모터스포츠야?’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더 조장되기 쉬울 수 도 있다.
이 업계 사람으로써 길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대목이지만, 일단 자기 반성 없이 무분별하게 좋은 것만 비췄던 모터스포츠는 반성이 필요하다. 아무튼 관객은 첫 해에 가장 많았고 첫 해 방문객들의 반응은 “다신 안 와”였다. 예상대로 역시나 티켓을 원래 가격 주고 사는 바보는 아무도 없었으며, 밑빠진 독에 물붓는 코리아 F1은 유럽 아이들에게 돈 쪽빨리고 종말을 맞기 위해 대기타는 중이다.
모터스포츠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F1에서 누가 이기고 어떤 드라이빙을 하며 최근 성적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내용은 언제나 ‘엿보고’ 있다. F1 코리아가 남긴 것과 우리가 잃은 것, 그리고 앞으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1. 얻은 것 : 경기장 하나
:: 모두가 공감하듯, 당연히 경기장을 하나 만들며 전라남도를 신용불량자를 만든 것. 7년 계약으로 신용장까지 들이밀면서 4000억 넘게 발라서 경기장 지어 놨더니, 재정은 파탄났고 위약금에 국제 소송까지 예상된다. 내년부터 경기장은 위탁운영이 될 것이며, 아마도 티켓수익은 그대로 F1에 입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특히나 내가 운영하는 레이싱팀 싱크로지는 영암F1 서킷을 통째로 빌려서 하루종일 원없이 타본 팀이기였기에 무조건 감사할 뿐이다.
2. 잃은 것 : 신용과 모터스포츠에 대한 불신
:: F1조직위원회 사람들은 하나 둘씩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에 “내가 F1이야”라며 그간 배짱 튕긴 갑질에 당한, 소위 ‘을’들은 쌤통드립을 날리고 있다. 글쎄… 그렇게 건방을 떨었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난 영암서킷에서 잘해줬던 기억뿐이라…
다만 그간 F1서킷의 운영은 이런 느낌이었다고 한다. “경기장을 ‘보존’하기 위해 지은 건지, ‘달리라고’ 지은건지 모르겠네”라는 느낌. 바닥에 스키드 그리지 마라, 박지 마라, 뭐하지 마라, 마라, 마라, 마라… 공도를 버리고 합법적으로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서울 기준 350km를 달려온 사람들에게 경기장 보존을 요구한다.
왜냐고? “F1이 치뤄질 때 최상의 경기장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라는 조건 때문이랜다. 좋다. F1 선수들이 전세계 최고 연봉수급자들이니 그런 대우를 해줄 법하긴 한데 말이지… 왜 경기장 주인들인 우리가 엎드려 절 받아야 하는 겐가? 다 우리 세금을 걷어서 지방자치단체(전남)에서 쏜 돈으로 만든거고 그 돈이 쭈우우우우욱~~~ F1을 구성하고 있는 조직들에게 빨리는 중인데.
3. F1의 위기? 기업에 도움이 안 되는 레이싱.
:: 거두절미하고 F1은 답이 없다. 포뮬러 타입의 오픈휠 레이스카 자체는 더욱 답이 없다. 10년~20년이 문제가 아니라 하면 안 된다. ‘포뮬러’라는 개념의 오픈휠 레이스카는 사장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 차가 주는 매력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왜? 아니 그럼 지금와서 팽이 돌리기를 세계화 한다고 하면 누가 받아주나? 제기차기를 전세계 투어한다고 하면 누가 봐주냔 말이다. 비약이 심하다고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이제 부터 설명 한번 가보자.
먼저 F1은 기업 입장에서 답이 없다. F1의 존재가치와 활성화의 이유는 지구인에게 가장 중요한 3대 사업중 하나인 ‘자동차 산업’에 공헌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의 가치를 짤막하게 설명하자면, 자동차는 전세계의 생활 필수품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우리 인간이 휴대전화기가 없다면 원시인이 된다. 마찬가지로 차가 없다면? 이동수단은 어쨋든 우리 인간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배와 자동차는 세상의 돈을 비즈니스화 시키고 굴리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자동차산업에 F1이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당신은 세바스찬 베텔이 1등을 했다고 해서 그들의 스폰서인 인피니티의 판매율이 올라가고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잇다고생각하는가? 절대 아니지라는데 500원 건다. 그렇다고 레드불이 더 많이 팔린게 F1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진 말자. 스스로 비즈니스를 모른다고 주장하는 꼴이 될테니.
G-CAST 시즌3의 마지막편을 보면 알 수 있듯, 과거에는 자동차 메이커들의 F1 의존도가 아주 높았다. 하드코어 테스트를 해 줄 드라이버와 기술진들이 F1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얻는 데이터가 상당했기 떄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F1 경기장을 짓는 예산(약 4000억)이 자동차 메이커에게도 있다. 그래서 자동차 메이커들은 그 돈으로 전문 연구소를 세우고 F1에서 간헐적으로 치뤄지는 테스트 대신, 매일 매일 엄격한 하드코어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4. 현기차 기업 이미지 제고가 된다고? 왜 굳이?
고로, 기업에 F1은 필요가 없다. F1에서 얻어갈 수 있는것은 F1 팬들에게 비춰지는 이미지… 즉, 감성밖에 없다. 가령 현대가 F1 차를 만들어서 1등한다고 하면 중장기적으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
A: 차 뭐살꺼야?
B: 제네시스 쿠페 살려고 해.
A: 왜?
B: 현대잖아.
음? 당연히 물음표를 띄웠을 것이다. 그럼 아래를 보자.
A: 차 뭐살꺼야?
B: 520D살까 고민중
A: 왜?
B: BMW잖아…
이건 수긍하지? 이게 바로 감성이라는 것이다. 지금 현대-기아 마케팅 쪽 사람들이 가장 고민하는 게 이거다. 솔직히 현기차 졸라 좋다. 근데 그 돈 주고 현기차를 사는 건 ‘손해’라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수입차가 저렴해지고 국산차의 가격이 치솟기 시작하면서, 이제 한국에 자동차 오너 중 1/10은 수입차다.
따라서 성능과 감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전혀 상관 없는 야구나 축구팀을 운영하는게 아니라 반드시 모터스포츠를 해야한다. 여기에는 좀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현대자동차만 출전할 수 있는 스피드페스티벌로는 이런 이미지를 갖출 수 없으니 좀 더 기다려봐야 할 문제다.
그렇다면 현대차가 F1에 돈을 쓸 이유가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F1을 시작해서 그 투자비용을 회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 길고, 너~~~~~~무 길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오랜 시간 뒤에 회수 가능하다는 확신도 없다. 일단 드라이버도 없잖아(…) 현대 F1레이싱팀에 베텔이나 알론소 보고 오라고 하면 오겠냐? WRC에 다시 도전하는 모습에 조심스런 재기를 기대해보는 중일 뿐.
5. 현명하게 수퍼볼을 선택한 현대차
현대차 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기업은 확실한 타겟이 있다면 F1에 스폰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이걸 가로막는다. 한국은 수출 중심국인데 그 비중이 미국과 중국에 쏠려 있다. 미국은 대부분 순수출이고, 중국은 크로스다. 중국에서 물건을 만들어 가져온 뒤 한국에서 마케팅을 하고 다시 중국으로 완제품을 수출하는 형태다. 여기서 문제가 터진다. 미국과 중국, 이 두 나라에서 F1을 보지 않는다. 미국의 모터스포츠는 나스카와 드리프트다. 중국은 인구가 원채 많아서 착시가 일어나는 것 뿐, 인구대비 모터스포츠 팬은 거의 없다.
이러니 현대차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바로 슈퍼볼 광고! 슈퍼볼 광고에서 열라 굿 써비스 광고로 히트! 나스카에 돈을 박기엔 이기지 못하면 본전도 못찾는다는 점을 아니까 너무 큰 약점이 있었고, 슈퍼볼은 돈이 크게 들어가기는 해도, 확실한 노출 수를 100% 보장하니 “HYUNDAI”를 알리는데 적절했다. 솔직히 만약에 현대차가 나스카 나갔다가 79등… 이지랄 떨면 더 망신이다. “역시 현대차 쓰레기!” 이런 소리 듣게 될테니.
결론은 F1은 기술적인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데 감성마케팅도 불가능하고 오직 답도 없는 무차별 노출 밖에 그 기능이 없다는 뜻이다. 2010년 부터 한국F1중계를 보면 대한민국의 LG가 보인다. 아니, 그래서 여러분들이 LG U+ LTE 살꺼야? 안 산다고. 나는 싸이가 CF찍었길래 이번에 LG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봤다. 싸이가 광고에 나오니까 진짜 LTE가 전국에서 가장 잘터질 것 같더라구(ㅅㅂ 결국 낚였지만..캠프 내 방에서도 안터진다.. 중계기 달았는데도!)
6. 일반인들에게도 접근성이 떨어지는 F1.
한국사람들에게 F1이라는 프레임은 어떠한 ‘좋다고 할만한’ 연결고리가 없다. 비틀즈의 음악과 스타크래프트를 예로 들어보자. 물론 음악을 듣는, 게임을 하는 인구를 F1 좋아하는 인구와 비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들처럼 대중성이 없는 F1에 돈을 부어서 열심히 전국민들에게 노출시킨다해서 그게 미국인들 앞에서 제기차기, 탈춤 광고하는거랑 뭐가 다를꺼라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공감대가 없어도 너무 없다. 여자애들 앞에서 비틀즈의 yesterday 한 곡 제대로 불러주면 여자가 따른다!!! 심지어 스타크래프트나 LOL도 잘 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남자들 사이에서 영웅이 된다. 이게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노래와 게임을 좋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누군가 프로가 되어 더 잘하면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지 않나?
그런데 F1은.
그 차를 평생 타볼 가능성이 없다. F1에 대해서 알면 알. 수. 록. 구경만 하는 우리들과의 괴리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래서 통상 로드레이스에 푹 빠져 사는 남자들은 박스카 레이스를 훨씬 더 선호한다. 더욱이 F1에서 쓰이는 파츠들은 지금 내 차에 끼울 수 있는 게 한 개도 없다. 뭔가 지금 내 차에 튜닝을 하고 싶은데 F1의 테크놀러지가 적용된 제품은 쓸 수 없다. 심지어 그런 게 있지도 않으니 무관심이 싹틀 수밖에.
7. 마무리
모터스포츠를 흥하게 만드는 기본 집단은 본인이 직접 모터스포츠를 해 봤던 사람들이다. 그 사람은 반드시 ‘튜닝을 하는 사람’의 집합 안에 존재한다. 그러니 F1이 흥할 리가. 그나마 한국인 선수도 없고, 심지어 우리 세금까지 뜯어가면서 전남도를 신용불량자 위기로 (FOM본의 아니게) 몰아 넣고, 기업들에게 모터스포츠의 신뢰를 낮추기까지 하는데 어찌 F1이 즐겁겠는가?
F1과 깊은 관계는 없지만, 모터스포츠로 밥벌이하다보니 이 업계에서조차도 나만큼 관심 있는 이를 많이 보지 못했다. 경기장이 밥벌이가 아닌 사람들은 장미빛 이야기나 늘어놓고 있다. F1에 대한 관객이 얼마네, 흥했네, 관객들이 열광했네… 이런 이야기들은 전부 날조다. 열광했으면 매년 관객이 늘었어야지…
F1이 진짜 재미있는 이벤트였다면 지금까지 쓴 글은 모두 개소리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F1이 스타크래프트보다 확실히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 현실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