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주 : 아마 여성 중에서 최고 엘리트라고 할만한 앤 마리 슬로터 교수는 국무부 일을 그만둔 후 일과 가정을 양립시킬 수 없었다는 점을 고백하며 각종 자료를 근거로 미국의 최고위 자리들에서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장벽이 존재한다는 점을 주장하여 대논쟁을 촉발하였다.
이 글은 논쟁에 대한 필자의 소감으로서, 여전히 여성의 권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으며 전인류의 과제라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아마 슬로터 교수가 최근 한국의 현황을 알았으면 기겁을 하며 특별히 언급했을 것 같다.
▶무엇이 여성들을 가로막는가(What’s Stopping Women)?
내가 애틀란틱지(紙) 7,8월 호에 “왜 여성은 여전히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가?” 라는 제목의 표지기사를 썼을 때, 나는 나와 같은 세대이거나 더 나이든 세대에 속한 많은 미국의 커리어 우먼들로부터의 적대적인 반응과 25-35세 사이의 연령대 여성들로부터의 호의적인 반응을 예상하였다. 젊은 세대 남성들 역시 강한 반응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얼마나 많은 젊은 남성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고, 아내의 커리어를 지원하고, 자신의 계획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고려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또한 내가 제시한 해법들-업무 장소의 유연성 확대, 맞대면을 하여 업무를 처리하거나 “시간 마초짓(time machismo)” 문화의 종식, 직장을 떠나 있었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부모들이 복귀하였을 때 높은 자리로 승진하기 위한 평등한 경쟁을 허용할 것-이 실현 가능한지, 아니면 몽상에 불과한지에 대해 기업 대표자들의 반응을 듣기를 기대했다.
전지구적으로 다른 세계의 여성 문제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반응의 속도와 규모와 더불어 반응의 전지구적 확산이었다. 일주일 동안 거의 백만명의 독자들이 글을 읽었으며, TV, 라디오, 블로그 토론장들에서는 내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많은 반응들이 나왔다.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네덜란드, 브라질의 언론인들과 인터뷰를 하였으며,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볼리비아, 자메이카, 베트남, 이스라엘, 레바논, 캐나다, 그리고 많은 다른 국가들에서도 내 기고문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국가별로 반응은 달랐다. 내 기고문은 확실히 여러모로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평등으로 나아가는 진화 도정 상에서 개별 국가들이 어느 정도에 위치하는지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예를 들어 인도와 영국은 각자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와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라는 강력한 여성 수상을 배출하였지만, 이제는 여성의 성공에 대한 전형적인 “명예남성” 상(像)을 해소해야 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전 세계의 여성들이 자신들을 여성이 성공적인 경력을 가진 전문가와 엄마가 동시에 될 수 있게 만들고, 남성 역시 동등한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무하고 기대하는 사회경제적 정책의 선구자로 본다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민간 부문에서 미국만큼 많은 여성 관리자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최고위 직급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독일인들은 극심하게 분열되었다. 독일의 한 주요 잡지는 논쟁에 대한 나의 공헌은 “커리어 우먼이 집에 있는 것이 낫다는 점을 시인했다”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또 다른 잡지는 (좀 더 적절하게) 내가 여성이 동등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심대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강력히 요구한 것을 강조하였다.
프랑스인들은 “페미니즘”을 반여성적인 미국인들의 창작품으로 취급하여 거부하면서도 국제통화기금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와 같이 능력있으면서도 우아한 여성 지도자들 배출하려고 애쓰는 국가답게, 신중한 냉담함 내지는 약간의 경멸을 유지하였다. 물론 그녀의 전임자인 도미니크 스트라스 칸(Dominique Strauss-Kahn)의 사례나, 꽉막힌 미국에서는 명백한 성추행으로 간주될 프랑스 남성들의 행태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은 프랑스에서 페미니즘이 좀 더 유용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유럽을 벗어나보자. 일본 여성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가차없이 남성중심이고 성차별적인 문화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탄식하였다. 오늘날 중국의 교육받고 자율적인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남편(그리고 시어머니)이 자신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 때문에 어쨌든 결혼은 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였다.
브라질 여성들은 자랑스럽게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대통령을 내세우지만, 여전히 얼마나 많은 차별들이 존속되고 있는지를 강조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들은 일과 생활에 대한 활기찬 토론과 함께 최초의 여성 총리인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의 성공을 지목하였지만, 그녀는 자녀가 없다는 점도 함께 강조하였다(독일의 최초 여성 지도자인 앙겔라 메르켈 수상 역시 자녀가 없다).
여성의 문제는 사회경제적 문제
이런 논쟁이 전지구적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는 사실은 적어도 세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보여준다. 첫째, 조세프 나이(Joseph Nye)가 말한대로 “소프트 파워”가 “다른 사람들도 네가 원하는 걸 원하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전 세계의 여성들은 3세대 전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이 투쟁을 시작하며 얻고자 했던 것과 같은 것을 원할 것이다.
둘째,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은 다른 국가들의 논의, 법, 문화적 규범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한다. 많은 다른 국가들에서 여성은 미국에서보다 더 빨리 정치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실제로 미국은 단 한번도 여성이 대통령, 상원 다수당 원내총무, 재무장관, 국방장관이 된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이런 문제들은 “여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제라는 점이다. 인구의 절반이 가지는 경험과 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발견하고 여성과 동반자들이 그들의 가족에 투자할 수 있게 만든 사회는 전지구적 지식/혁신 경제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물론 전 세계의 수억명의 여성들은, 내가 썼던 문제들이라도 겪어보기를 소망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지난주에는 잇따른 파키스탄 여성권 활동가들의 피살, 이집트 군부가 카이로의 타히르 광장에서 여성들이 시위하는 일을 단념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폭행을 활용하였다는 증거, 뉴욕에 근거지를 둔 여성 미디어 센터가 발간한 시리아 정부군의 성폭력과 윤간에 대한 소름끼치는 보고서, 탈레반 지휘관이 동료 군인들과 마을 사람들의 응원 속에서 여성을 간통 혐의로 잔혹하게 처형한 비디오에 대한 뉴스들이 전달되었다.
이런 일들은 많은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물리적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들이다. 세계적으로, 10억명 이상의 여성들이 교육, 영양, 의료, 임금 등에서 끝도 없이 계속되는 공공연한 성차별에 직면하고 있다. 여성의 권리는 가장 중요한 전지구적 사안이며, 필히 최악의 폭력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만 진지하고 신뢰받는 미국의 잡지들로부터 나온 사무적인 보고서들을 검토해보자. 내셔널 저널지(紙)는 “워싱턴의 여성”이라는 기사에서 미국의 수도에서 여성들은 출세하였지만, “여전히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과 마주하고 있으며, 가족을 가지는 것이 최대의 장애물이 되곤 한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가족을 가지는 것”이 남성에게는 장애물이 아니지만, 여전히 여성에게는 장애물이 된다면, 이는 여성의 권리 문제이며 따라서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일, 가족, 성평등의 가능성에 대한 전지구적 논의에서 어떤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