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악인가, 선인가?
삼성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상징하는 Samsung 로고? 외국에서 살다가 삼성이나 현대차를 만나 본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삼성은 자부심의 원천일 것이고, 김용철 변호사의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삼성은 대한민국 부패의 진원지일 것이다. 나에게 삼성은 그 둘 다를 의미하는 존재이다. 삼성은 회색지대에 존재한다. 우리는 회색지대의 삼성을 밝은 곳으로 향하게 만들 권리와 의무가 있다.
올해 초, 모 조직의 연수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전국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어느 정치활동가와 토론하던 중 참여정부 이야기가 나왔다. 그 활동가는 “이광재가 삼성에 놀아난 것 아닌가, 그것이 참여정부의 본 모습이다.”라며 참여정부를 성토했다. 삼성은 활동가들에게는 거악(巨惡)의 상징이다. 삼성과 어느 정도의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비난할 만한 근거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삼성은 내가 살던 외국 어느 곳에서는 중국인과 일본인을 우습게 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다.
가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의 생활정보지 구인구직코너를 유심히 보곤 한다. 가장 많은 급료를 주는 곳이 삼성 하청 회사, 특히 삼성 핸드폰 하청 회사다. 단순생산직이 연봉 2,500에서 3,000이다. 이런 곳에 취직하면 한 가정의 생활을 별다른 기복 없이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삼성은 고마운 곳일 것이다. (물론 전에 어느 분은 “연봉3,000으로 생활이 되냐”며 황당해 하시더라.)
삼성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삼성을 중심으로 한 지식생태계 형성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삼성을 경계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레이건은 미국 보수주의운동이 배출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공화당 출신의 닉슨조차 “우리는 모두 케인즈주의자다.”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루스벨트로 시작된 진보의 물결이 케네디, 린든 존슨을 거치면서도 조금도 사그러 들지 않았다. 지금은 좌우간의 싸움이 격렬하지만, 당시는 좌우파간에 거의 차별이 없을 정도로 진보가 대세였던 시절이었다. 미국진보파들이 늘상 그리워하던 그 시절이다.
이런 흐름을 뚫고 미국의 보수파지식인들은 가장 먼저 연구소와 매체에 자신들의 힘을 집중한다.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의 보수주의 연구소들은 80년대 들어 맹활약하게 된다.
레이건의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기업규제를 없애는 것과 복지를 줄이는 것, 이 두 가지다. 연구원 10명에 지나지 않던 맨하탄 연구소는 이념 공작의 선두에 나선다. 그들은 찰스 머레이라는 39세의 무명 정치학자가 쓴 소논문에 주목했다. 이 논문의 주장은 미혼모 수당이 미혼모의 독립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3만불이라는 거금을 지원해 이 논문을 유명 출판사의 단행본으로 출판한다.
레이건이 소파에 앉아 이 책을 읽는 사진이 실리자, 이 책은 50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량을 기록한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공적 지출은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이후에도 보수주의 연구소들은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그 연구소들의 활동이 두드러질수록 인민 대중의 삶은 쪼그라들었다.
위대한 진보의 시대를 끝낸 것은 보수적 정당이나 대중의 열정적 운동이 아니라 소수의 수구적 지식인들이 지원한 연구그룹이었다. 사회주의적 또는 진보적 운동이 뿌리 없이 부유하고 있는 한국에도 일어날 개연성이 있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그래서 김상조교수는 삼성그룹 중에서 삼성경제연구소가 가장 두렵다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문고본이 출판되는 것을 잘 모른다. 나는 혹시 개인적으로 참고할 만한 경제계 이야기가 있을까 싶어서 서점에 들르면 삼성경제연구소의 책들을 유심히 본다. 이 문고본들은 저자들이 평소 이야기해 오던 내용을 짜깁기기 하거나 약간 재가공해 만드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100쪽 남짓한 책에 대한 대가로 삼성은 500만원을 지불한다. 지식을 팔아 먹고 사는 사람에게 500만원은 상당한 돈이다. 내 지인은 책XX문고에서 단행본을 출판했지만 받은 돈은 40만원이 전부였다. 요즘 글값이 저렇게 싸니, 삼성경제연구소의 문고본이 다양해지면 질수록 삼성에 마음의 빚을 지는 지식인의 숫자도 늘어갈 수밖에 없다.
삼성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경제전문가이며 여러 연구소에서 일해본 경력을 가진 Y는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아는 대한민국 웬만한 사람 거의 전부 삼성의 자장 안에 들어가 있다.”
인간에게는 선한 면과 악한 면이 동시에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 집단인 삼성도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 두 가지를 함께 갖고 있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권력의 크기가 커지면 자기제어가 잘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든 일반 회사나 조직의 리더든 원리는 마찬가지다.
커진 권력은 거대한 칼과 같다. 그리고 그 칼을 이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명철함과 극기 수준의 자기절제력이 없고서는 그 칼은 반드시 화를 불러 일으킨다.
삼성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삼성이 나빠서도 사악해서도 아니다. 삼성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커진 권력에 비례하는 명철함을 보여준 집단은 드물었다”는 역사가 보여주는 일반법칙 때문이다.
작은 지식인그룹과 연구소가 거대한 미국의 보수화를 이끌었다. 삼성을 경계하라 ! 이 시대 제1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