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때때로 성매매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의 원리에 따라 옹호되고는 합니다. 자유지상주의란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도덕적 행위의 단위라고 생각하는 사상입니다. 자유지상주의의 기본원리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주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어떤 행위가 개인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선택에 기초하고 있다면, 그 행위에 타인이나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일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성매매’도 성 구매자와 성 판매자 사이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동의(free and voluntary consent)’에 기초하고 있는 이상, 국가가 나서서 금지하거나 개입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얼마 전에 인권법을 가르치는 모 대학교 로스쿨의 교수님께서 ‘성매매에는 피해자가 없다,’ ‘성매매는 한국의 실정법상 비합법적이긴 해도 비윤리적이라고까지 하긴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아마 자유지상주의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유지상주의는,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성매매 합법화론자들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제 대답은 ‘글쎄요’입니다.
2.
일단 흔히 혼동되는 ‘자유주의’와 ‘자유지상주의’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유지상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들 역시 ‘자율적인’ 개인의 선택을 강조하긴 합니다. 하지만 둘은 과연 ‘성행위’를 자율적인 거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 대부분은 인간에게 ‘양도불가능한 권리들(inalienable rights)’이라는 게 있다고 말합니다. 이 권리들은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서도 거래될 수 없습니다. 주로 생명권이나 자유권, 재산권 같은 것들이 이러한 권리의 사례로 언급됩니다.
‘양도불가능한 권리’라는 전제에 비추어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임금제 노예계약’이나 ‘피해자가 동의한 고문/살인’ 등의 행위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봅니다. 특히 자유주의자들 중에서 자신의 성에 대한 통제권을 잠시도 양보할 수 없는 양도불가능한 권리 중 하나라고 보는 사람들은, 성행위를 거래하는 행위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에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인간에게 ‘양도불가능한 권리’ 따위는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들은 사람들 간에 이뤄지는 어떠한 행위라고 해도,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이뤄진 ‘동의’에 기초하고 있는 경우에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성매매나 대리모 계약 같은 것은 물론이고 고문이나 살인까지도 동의에 기초한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자유지상주의는 성매매 옹호론자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아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했다면 제가 이 글을 쓸 일이 없었겠죠.
3.
요컨대 자유지상주의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 간에 이뤄지는 ‘동의’에 기초한 행위에 대해서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다고 믿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과연 여기서 ‘동의’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떤 행위가 ‘진정한’ 동의의사의 표현으로 간주되기 위해선 무슨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할까요?
자유지상주의가 말하는 동의(consent)에는 세 가지 구성요건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1) 사전에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은 상태에서(well-informed), 2)의도적이고(intentional), 3)자발적으로(voluntary) 표현한 동의만이, ‘진정한’ 동의의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동의의 세 가지 필수적 구성조건을 ‘성매매’의 사례에 적용한다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요? 과연 우리는 성매매를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간의 ‘진정한’ 동의에 기초한 행위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자유지상주의가 말하는 동의의 세 가지 구성요건은 성매매의 전면적 합법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기보다, 현재 성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형태의 성매매 행위를 비판하는 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봐도 현행의 성매매는 ‘진정한’ 동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이 세 가지 구성요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찬찬히 살펴보지요.
3-1.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은 상태에서(well-informed)
동의의 첫 번째 요건은, 동의 의사를 표할 사람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관련 사실관계나 정보를 명확하게 전달받은 상태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소리입니다. 뭔가에 동의하려면 자신이 과연 어떤 행위에 대해서 동의를 표현하고 있는 건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겠죠.
자신이 무슨 행위를 하게 될지/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하는 상황에서 표현한 동의의사는 제대로 된 동의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동의의사를 스스로 명시적으로 표현했더라도, 그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거나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판단했다면 동의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약관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보험계약이 무효가 되는 경우를 사례로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 같습니다.
자, 그렇다면 성행위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남성에게 제공하기로 한 여성은, 자신이 어떤 행위에 동의하고 있는지 관련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전달받은 상황일까요? 성매매 시장에 진입한 많은 여성들이 처음에 자신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자유지상주의의 원리에 충실하자면 이런 성매매 관행은 원천적으로 불법화되어야 합니다.
개별 고객과 성매매 여성 간의 관계를 살펴보죠. 우리나라의 성매매 관행을 보면 남성고객이 정당하게 행할 수 있는 행위의 범위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고객이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를 요구하거나, 심지어 여성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시도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처음에 동의한 조건을 들이밀면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애초에 구매자와 판매자가 구체적으로 합의한 조건이 없었기 때문인데, 이런 행위들은 동의의사를 표현할 사람들에게 미리 관련 정보를 충분히 알리지 않았으므로, 제대로 된 동의에 기초한 관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자유지상주의는 이런 성매매 관행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3-2. 의도적이고(intentional)
동의의 두 번째 구성 요건은 행위자의 동의의사가 확실한 ‘의도’를 갖고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선 1) 행위자에게 분명한 선택지가 주어져야 하고, 2) 행위자가 오해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게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동의의 첫 번째 조건(관련정보가 충분히 사전에 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을 때, 행위자가 오해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동의의사를 표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무언가에 대한 동의의사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어떤 선택지에 동의하고 있는 것인지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동의하고 있는 행위의 시공간적 범위와 제약이 명확히 규정된 다음에야, 성매매 여성의 동의 표현(예컨대 계약서에 서명하는 행위 등)은 ‘의도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데 동의했다고 해서 해당업소에 요구하는 모든 행위들에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의 동의는 흔히 애매하기 짝이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해 ‘동의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은 ‘명확한 의도성’이라는 동의의 두 번째 구성요건을 위반한 것입니다. 자유지상주의의 원리는 이러한 성매매 관행을 결코 정당화해줄 수 없습니다. 명확하게 규정된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두루뭉술하게 표현된 동의는 무효입니다.
3-3. 자발적인(voluntary) 동의
진정한 동의를 구성하는 세 번째 필수요건은 자발성입니다.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동의를 표현할 수 있으려면 1) 그에게 거부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고, 2)거부의 비용이 지나치게 비합리적으로 높지 않아야 합니다. 3)또한 어느 지점부터 거부를 표현할 수 없게 되는지도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거부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성매매의 현장으로 들어옵니다. 뉴스에서 접하는 사례들만 봐도 가출한 미성년자 여성들이나, 채무관계와 같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고통 받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취약한 상황을 악용하는 포주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포주들은 이렇게 취약한 상황에 있는 여성들을 정당한 대우로 도와주기보다, 더 큰 채무관계로 옴짝달싹 묶어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부의 경우에는 신체적인 감금이나 감시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듯 많은 성매매 종사 여성들은 제대로 거부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지 못합니다. 최초에 시장에 진입할 때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만, 개별고객의 관계와 관련해서 보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업주에게 약속된 돈을 지불하는 이상, 성매매 여성이 특정 고객에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성매매 여성들은 포주의 협박이나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거부의사의 표현에 드는 비용도 비합리적으로 높습니다. 어떤 여성이 성매매 행위를 거부하는 대가가 심각한 신체적 상해나 경제적 보복이라면, 이 여성에게 자발적인 동의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긴 힘들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지상주의의 원리는 ‘자발성’에 기초하지 않은 성매매의 관행들을 정당화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관행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4.
자, 다시 묻지요. 자유지상주의는 성매매 옹호론자의 편일까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성 판매자인 여성이 1) 사전에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은 상태에서(well-informed), 2)의도적이고(intentional), 3)자발적으로(voluntary) 동의를 표현했다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성매매와 실제 한국의 성매매 관행 사이에는 십억 광년 이상의 거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자유지상주의의 원리는 현행의 성매매가 제대로 된 ‘동의’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어떤 이념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문 : 김성준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