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 무늬 옷을 입은 뿔 달린 도깨비의 모습이 일본 동화 속의 ‘오니(鬼, おに)’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것은 일본 오니의 모습이고 한국 도깨비의 원래 모습은 이러이러한 것이다”라는 여러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괴물 백과 사전에서 짧게 다뤄 본 도깨비 이야기를 좀 더 파헤쳐서 정말로 도깨비 이야기가 어떻게 내려온 것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일본 전설 속에서 무서운 괴물로 등장하는 ‘오니’는 일찌감치 자리 잡았고, 많은 일본 고전 그림을 통해 그 모습도 다양하고 선명하게 퍼졌습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활발하게 일본 대중문화에서 응용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가 되자, 이런 일본의 ‘오니’에 대한 그림, 이야기, 문화가 한국으로도 넘어왔습니다. 그러면서 ‘오니’에 대한 번역어가 필요하게 되었고, 1920년대 무렵이 되면 일본의 ‘오니’를 한국에서는 ‘도깨비’로 번역해 부르게 됩니다. 당시 이미 ‘괴상하고 알 수 없는 것’을 널리 통칭해서 부르는 말로 ‘도깨비’가 널리 쓰이고 있었으니 이는 있을 만한 일 같습니다.
‘오니’ 즉 ‘鬼’를 ‘도깨비’로 번역하는 것은 1930년대에는 완연히 자리 잡아 굳어진 듯합니다. 예를 들어 ‘술래잡기’ 등의 놀이에서 ‘술래’ 역할을 일본에서는 ‘오니’라고 하는데, 일본의 어린이 놀이를 소개하면서 ‘오니’를 ‘도깨비’로 번역해 소개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1932년 1월 28일 동아일보 기사의 어린이 놀이 소개 기사 등이 그 사례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옛날 전설 중에 ‘鬼(귀)’가 등장하는 여러 이야기도 대거 ‘도깨비’로 번역해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었던 것에는 일본 ‘오니’를 ‘도깨비’로 번역하던 버릇의 영향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이런 방향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서 1970년대까지도 많은 전설 속에서 ‘귀’라는 말로 기록된 괴물들이 ‘도깨비’로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야기는 복잡해집니다.
반전이 일어나는 것은 1980-1990년대 전후입니다. 이 무렵 한국인에게 당시 가장 친근했던 동화 속 ‘도깨비’의 모습이 일본 동화의 ‘오니’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점이 널리 홍보됩니다. 그러면서 이후 그 반감으로 이제 역으로 일본의 ‘오니’와 어떻게든 다른 상반된 ‘도깨비’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이 많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조선 시대 이전의 한국 옛 전설, 기록, 그림 속의 ‘도깨비’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한국 기록, 그림 속의 ‘귀’들을 찾아낸 다음에 그게 “전부 다 도깨비다”라고 부르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저는 이때 상황이 좀 꼬였다고 생각합니다. ‘오니’가 아닌 ‘도깨비’를 찾기 위해 ‘귀’ 이야기를 찾는 상황인데, 제가 보기에 ‘귀’를 모두 ‘도깨비’라고 여기는 것이 다름 아닌 ‘오니’를 ‘도깨비’로 번역하다가 생긴 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고유의 도깨비 얼굴은 ‘귀면와(鬼面瓦)’ 기왓장에 새겨진 귀신 얼굴 모양에 나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사실 일본에서 ‘귀와(鬼瓦)’를 ‘오니가와라(おにがわら)’라고 읽어 ‘오니’의 얼굴이라고 부릅니다.
‘귀’와 ‘도깨비’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조선 초기의 ‘훈몽자회’에서부터 최근의 옥편까지 다수의 옥편에서 ‘귀’라는 말 자체의 뜻을 바로 ‘도깨비’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조선 시대 성리학자들은 ‘귀’나 ‘귀신’을 주제로 사람의 혼령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긴 글을 여럿 쓰기도 했는데 이런 글을 읽어보면 ‘귀’가 그대로 ‘도깨비’라는 의미는 분명히 아닙니다.
게다가 기록 속의 많은 ‘귀’를 보면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도깨비’와 닮은 것도 있지만 아주 다른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들짐승이나 새 모양의 괴물을 ‘귀’로 지칭한 사례도 많고, 불교 설화 속에 나오는 다양한 마귀들을 ‘귀’로 지칭한 사례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흔히 생각하는 ‘도깨비 이야기’ 속의 도깨비와 닿지 않습니다.
그러니 감히 좀 과장하면 1990년대의 “우리 도깨비 모습을 찾자”는 연구는 이런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귀’가 나오는 한국 기록 중에 그냥 ‘왠지 연구자가 보기에 도깨비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대강 고른 것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게다가 선배 학자가 한번 이렇게 딱히 엄밀한 근거 없이 ‘이게 한국 도깨비 이야기다’라고 밝히면 후배 학자는 그것을 치밀히 따지는 대신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을 덧붙이는 듯했습니다.
조심스럽게 하는 이야기로 막상 ‘일본 ‘오니’가 아닌 한국의 진짜 전통적인 도깨비’ 모습이라고 나온 것이 역설적으로 1990년대 몇몇 학자들의 막연한 고정관념에 의해 임의로 꾸며진 것이 적지 않았다는 느낌을 저는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옛 기록에 ‘도깨비’라고 남아 있는 ‘도깨비’의 모습은 어떻겠습니까?
많은 경우 ‘도깨비’에 대한 초기 기록으로 꼽는 것은 조선 초기에 나온 ‘석보상절’ 제9권에 나오는 ‘돗가비’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불경의 ‘약사경’ 줄거리를 써 놓은 대목으로 사람이 비명횡사하는 9가지 경우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이 부질없이 ‘돗가비’에게 “수명이 연장되기를 빈다” “기원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돗가비’가 무슨 신령 같은 것처럼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대상이고 수명, 즉 사고나 질병과 관계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불교를 칭송하는 ‘석보상절’과 ‘약사경’의 성격상 대단한 신령은 못 되는 부정적인 것이 ‘돗가비’라는 어감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석보상절’의 이 대목에서 ‘돗가비’에 해당하는 ‘약사경’의 원문은 ‘망량(魍魎)’입니다. ‘망량’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귀신, 괴물의 한 종류인데, 그러니까 ‘석보상절’을 쓰던 시기에는 이 ‘망량’이 도깨비와 비슷하다고 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슷한 어감의 도깨비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옵니다. 1745년 2월 13일 기록 등에는 ‘독갑방(獨甲房)’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 내용은 ‘차섬’이라는 무당이 자신의 별명을 ‘독갑방’이라고 했고, 독갑방이 주술을 써서 궁전 사람들을 저주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독갑’은 도깨비라는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독갑방’은 나중에 ‘이매방(魑魅房)’이라고도 언급됩니다. 이 ‘이매’라는 한문 어구 역시 중국 고전의 귀신, 괴물 한 종류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선 시대 기록 중에 ‘이매(魑魅)’ ‘망량(魍魎)’이라는 한문으로 기록된 이야기 중에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도깨비와 비슷한 것을 지칭한 경우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도전이 쓴 유명한 ‘사리매문(謝魑魅文: 도깨비에게 사과하는 글)’에 묘사된 ‘이매망량’의 경우 우리가 막연히 갖고 있는 도깨비에 대한 상상과 상당히 인상이 비슷하기도 합니다. ‘사리매문’에서는 ‘이매망량’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며 흐릿한 것도 아니고 또렷한 것도 아니다‘라는 언급이 나옵니다.
‘독갑방’에서 ‘방’은 ‘심방’ 등의 말의 예처럼 무당이라는 뜻일 테니 ‘독갑방’이라는 말은 ‘도깨비 무당’이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실록의 전후 기록을 보면 차섬은 ‘독갑방’이라는 별명을 쓰기 전에 ‘호구방’이라는 별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방’이 무당, 귀신 부리는 사람이라는 뜻은 들어맞아 보입니다. ‘호구방’은 ‘호구’ 그러니까 ‘천연두 신’ 무당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걸 보면 역시 도깨비가 신령스러운 소원을 비는 대상이되 좀 음침한 느낌이 들고 주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납니다.
좀 더 구체적인 기록은 ‘성호사설’의 ‘기선(箕仙)’ 항목에 나옵니다. 이것은 중국 고전에 언급된 ‘기선’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소개된 ‘기선’과 유사한 부류는 오래된 쓰레받기, 빗자루, 절굿공이에 붙은 귀신 같은 것으로, 사람이 부르면 오는데 사람처럼 행동하며 대화도 하고 시도 짓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괴이한 짓을 하는 것을 ‘독각(獨脚)’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독각’은 ‘도깨비’의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도깨비들은 모두 자기의 성을 ‘김’ 씨라고 한다는 말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빗자루, 절굿공이 등이 나무라는 성질과 ‘쇠 금(金)’ 자 ‘김’ 씨라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언급합니다.
역시 겉모습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 흉내를 내고 사람과 같이 어울리기도 하고 본 모습은 절굿공이나 빗자루이고 김 씨 성을 쓴다는 것은 현대까지 이어진 도깨비 이야기 중 상당수와 닮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8년 일본의 우스다 잔운(薄田斬雲)이 펴낸 ‘암흑의 조선(暗黒なる朝鮮)’에도 도깨비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조선의 독특한 ‘요괴 귀신’ 중에 ‘이매망량’과 ‘독각’ 둘을 묶어 소개하면서 둘 다 “김 씨 성을 쓴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매망량’은 불덩이로 휩싸인 모습의 사람보다 커다란 악마 같은 것으로 우연히 흘린 사람 피가 변한 괴물이라고 되어 있고 유명한 도깨비 씨름을 한다는 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한편 ‘독각’은 피가 묻은 빗자루 따위에서 생긴 괴물이라고 되어 있고 사람에게 많은 돈을 가져다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도깨비란 나무, 오래된 물건 따위에 붙은 신령스러운 것으로 사람이 부를 수 있고 사람이 빌기도 하는 신령스러운 것인데, 같이 놀 수도 있는 약간은 친근한 면도 있지만 음침하고 주술적이고 왜인지 스스로 자기 성을 김 씨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 짐작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도깨비는 애초에는 서울, 경기 등지에서 무당이나 주술 하는 사람들이 섬기는 작은 신령의 일종이었던 듯합니다. 그랬던 것이 점점 널리 퍼져 나가면서 나중에는 좀 장난스럽고 알 수 없는 기괴한 일을 하는 것의 상징으로 전국에 자리 잡은 것 아닌가 합니다.
조선 후기쯤 되면 도깨비는 구체적인 어떤 종족이나 특정한 괴물이라기보다는 막연한 알 수 없는 괴상한 일을 하는 것의 통칭으로 널리 쓰이게 되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17세기 말의 사전인 ‘역어유해’에는 버드나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柳樹精)뿐 아니라 불교의 괴물인 ‘야차(夜叉’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夜叉精), 여우나 살쾡이의 정기에서 생긴 괴물(狐狸精)도 모두 ‘독갑이’로 번역해서 싣고 있습니다. 참고로 불교의 괴물인 ‘야차’의 경우 조선 초기에도 ‘도깨비’로 번역한 사례가 있습니다. ‘월인천강지곡’에는 사리불과 노도차가 서로 요술 대결을 하는 불경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 노도차가 ‘야차’로 변신했을 때 한글로 ‘돗가비’로 변신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 이후로는 누가 하는 것인지 모습이 안 보이는데 물건이 날아다니는 움직임, 요즘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두고 ‘도깨비의 짓’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1924년 11월 14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황금정에 있는 한 집에 한밤에 정체불명의 것이 문을 쾅쾅 두드리고 벼락 치는 소리를 낸다는 데 그것이 모습은 안 보여서 ‘독갑이’ 짓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식의 “누가 하는지 도무지 안 보이지만 자꾸 집에 뭘 던지고 해코지한다”는 ‘도깨비 집’ 이야기는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사례도 꽤 됩니다. 심지어 집값을 떨어뜨리려고 부동산 사기꾼들이 몰래 밤마다 돌을 던지고는 ‘도깨비 집’이라는 소문을 냈다는 식의 사건 기록도 있습니다.
이런 ‘도깨비 집’ 이야기에 해당하는 도깨비들은 조선 시대 설화 기록 속에 ‘귀’로 기록된 이야기 중 일부와는 잘 맞아 떨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오니’ 이야기와는 어느 정도 구분되어 보입니다. ‘어우야담’에 나오는 신막정 집의 ‘귀’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보면 원래 일본의 ‘오니’보다 더 범위가 넓은 것이 도깨비이고 도깨비보다도 더 넓은 범위를 지칭해서 조선 시대 한문 기록에서는 ‘귀’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생각해볼 만합니다.
한편 ‘도깨비 집’의 도깨비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신비로운 것을 널리 일컬어 ‘도깨비’로 통칭하는 사례 역시 흔했습니다. 예를 들어 1941년 작 할리우드 영화로 명콤비 코미디언인 애봇과 코스텔로의 영화인 ‘Hold that Ghost’가 1949년 한국에 개봉할 때 번역 제목을 ‘도깨비 소동’으로 썼습니다.
제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례로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1947년 7월 25일 동아일보에는 유명한 공산당 선언의 문장이 실려 있습니다. 보통 요즘에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인데 당시에는 “한 독갑이가 구주를 배회하고 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결국 이런 많은 이야기를 돌아보면 한국 도깨비는 원래 뿔이 2개이네, 1개이네, 없네, 또 한국 도깨비는 방망이가 쇠로 되어 있다느니, 나무로 되어 있다느니, 야차와 도깨비는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느니 등등의 이야기는 좀 무의미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도깨비는 모습이 분명하지 않은 알 수 없는 것을 두루두루 부르는 말에 가까웠으니, 그 본 모습을 엄밀하게 따지면서 그게 아니면 한국 도깨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상상해 보는 도깨비 이야기는 나무로 된 생활용품에 달라붙는 괴물이라는 옛 기록을 그대로 살려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육청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교체해 주지 않아서 학교에 가장 낡아 빠진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책상이 있는데, 그 책상에 앉는 운 없는 학생은 도깨비를 부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또는 여러 가지 다양한 특징을 가진 도깨비들을 불러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그런 다양한 재주를 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손수레나 트럭에 온갖 낡은 빗자루, 당구대, 야구 방망이 따위를 잔뜩 싣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상상해 봅니다. 그런 것을 구하기 위해 고물상으로 위장하고 살고 있는 도깨비 방(독갑방), 도깨비 부리는 사람 이야기도 따라붙을 만합니다.
조선 영조 때에 저주 소동으로 붙잡힌 사람 때문에 남은 기록이기는 하지만 도깨비를 부리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도깨비 방’ ‘독갑방’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재밌지 않습니까?
원문: 곽재식의 옛날 이야기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