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가 뜨겁다.
개봉 둘째날인 8월 1일 목요일 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사상 일일 최대관객수를 갱신했지만, 흥행 추이까지 장담할 순 없을 것 같다. 누군가는 대단한 만듦새의 수작이 나왔다며 호평하지만, 누군가는 중구난방이고 정작 재미가 없다며 혹평한다. 특히 같은 날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와 비교되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거운 논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 혹평 중에서도 특히 회자되는 것이 바로 고재열 씨와 최광희 씨의 혹평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사람의 혹평을 보며 오히려 ‘설국열차’를 열심히 변호해주고 싶어질 정도였는데, 이는 ‘설국열차’가 혹평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든 영화라서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의 혹평이 매우 잘못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 두 사람의 글을 링크한다.
최광희의 글: <설국열차> 개봉에 부쳐 /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의 차이
고재열의 글: <설국열차> 비추, <더 테러 라이브> 강추
최광희, “‘관념적 진보의 똥폼'”
최광희는 ‘설국열차’에 대한 글을 미디어 하이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매체에 의해 인위적으로 달궈진 분위기, 소위 ‘띄워주기’를 말하는 용어다. 아마 ‘설국열차’ 역시 그러다는 얘기겠다. 최광희는 CJ가 전면에 나선 흥행 전략에 대한 감상을 나열하다, 글을 맺는 문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영화 본편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는데, 그 첫 문장이 이거다.
“아무튼 나는 <설국열차>를 “관념적 진보의 똥폼” 혹은 “도끼질이 나오는 동화”라고 규정합니다.”
이건 영화평이 아니라 인신공격으로 보인다. 영화 얘기는 없고 CJ의 흥행전략에 대한 비판만 가득한 글에서, 겨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맞닥뜨렸더니만 보이는 게 뜬금없이 감독의 개인적인 정치성향을 겨냥한 듯한 막말이다.
사실 그가 진보를 언급하며 저런 ‘막말’로 이 영화를 평할 자격이 있나 묻고 싶을 정도다. 그는 앞서 트위터에서 ‘설국열차’를 두고 ‘신자유주의 비판을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영화는 사실 아무리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도 도저히 신자유주의를 읽을 만한 구석이 없다. 그가 영화나 신자유주의 중 어느 한 쪽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이 든다. (나는 후자에 혐의를 두고 있다. ‘설국열차’라는 우화는 영화평론가마저 오독할 정도로 어려운 우화가 아니다.)
또 그의 두 번째 글은 ‘설국열차’가 한국영화이면서도 한국어를 쓰지 않아 관객들에게 와닿지 않는다고 쓰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배우 틸다 스윈튼이 내한 인터뷰에서 한 말로 평을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국적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그런 질문들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예술을 하는 데 있어 누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
고재열, “영화에 대한 기만, 독자에 대한 사기”
한편 고재열 씨도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설국열차’를 혹평했는데, 본문 자체도 그리 좋지 않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자신의 글에 단 댓글에서 나왔다.
“제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평론가와 기자들이 <설국열차>에 대해서 정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건 영화에 대한 기만이고 독자에 대한 사기입니다. 기본이 안 된 영화에 대한 과잉해석과 자신이 찾지 못한 재미를 관객에게 떠넘기는 기사들이 너무 많더군요. 현대 저널리즘에서는 기사 안에서의 공정성만 공정성으로 보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적인 공정성도 함께 봅니다. 99개의 기사가 검사 말만 듣고 썼다면 1개의 기사가 살인범 말만 듣고 썼어도 사회적 공정성을 맞춰준 기사로 보는 것입니다. “
이건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다른 평론가와 기자들이 ‘설국열차’를 재미있게 보았는가 재미없게 보았는가 하는 것은 제 3자인 고재열이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 ‘디 워’조차 ‘객관적으로 재미없는 영화’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고재열은 ‘설국열차’를 객관적으로 재미없는 영화로 규정하고, 이를 호평했다는 이유로 평론가와 기자들에게 ‘기만’과 ‘사기’의 죄를 묻는다.
그는 ‘설국열차’를 혹평하며 대신 ‘더 테러 라이브’를 극찬하는데, 사실 이런 식이라면 나도 ‘더 테러 라이브’를 객관적으로 재미없는 영화로 규정하고 고재열에게 기만과 사기의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 있을 것이다. 거창하게 현대 저널리즘과 사회 전체적인 공공성을 얘기하는데 이 얘기가 ‘설국열차’와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겠다.
선입견
더 큰 문제는, 고재열이 이미 영화를 보기 전에 ‘설국열차’에 대한 평론가들의 영화평을 보고 “영화평의 행간을 보고 ‘이 영화 왠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언급했다는 점이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미 밝힌 셈인데, 이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하자 “후사리를 한그릇 먹었다” “내일 개봉하면 바로 챙겨보려고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누구든지, 어떤 분야에서든지 사람이 선입견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 일이고, 능력 있는 업계 기자라 해서 이는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본인의 선입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사람이 다른 평론가와 기자들을 향해 ‘독자에 대한 사기’를 운운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설국열차’와 비견하며 극찬한 ‘더 테러 라이브’는 개봉에 앞서 그가 트위터를 통해 시사회 응모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 영화다. 물론 이런 이유로 그가 영화를 평가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극과 극으로 갈린 그의 평가가 찜찜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피해자 만들기
한편 최광희는 ‘설국열차’의 CJ의 배급 공세에 대해 “영화의 흥행전략만큼은 매우 신자유주의적”이라 비판했고, 또 고재열은 “‘더 테러 라이브’가 배급력 때문에 앞심에서는 ‘설국열차’에 밀릴 지 모르겠지만 뒷심에서 곧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물론 설국열차가 영화계의 최대의 ‘큰 손’인 CJ의 배급 공세가 총동원된 영화임도 맞지만, ‘더 테러 라이브’의 배급사도 롯데다. 롯데가 CJ보다 못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신자유주의적인 흥행전략’과 ‘CJ의 배급력’에 억울하게 밀릴 위치의 영화는 아닌데, 두 사람의 비판에서는 이런 행간이 읽히지 않는다.
펜의 권력을 휘두르는 건 누구인가
물론 나는 이 두 사람이 나보다 영화를 본 경험도, 영화를 보는 식견도 더 뛰어나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그들의 ‘설국열차’에 대한 비평은 여러모로 잘못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영화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고,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그것도 오독이 심각하게 의심되는)와 영화사의 배급 전략을 뒤섞어 영화를 비판하는 소재로 사용한다. 영화를 ‘객관적으로’ 재미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이를 호평한 다른 사람들을 사기꾼으로 전락시킨다. 이것이 과연 영화에 대한 건설적인 비평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최광희는 블로그에서, 고재열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글을 썼을 뿐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블로그는 물론 공개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조차도 결코 ‘개인적인’ 공간이라 말할 수는 없다. 정부가 보는 트위터의 영향력이란 게 사안에 따라 축소되기도 하고 확대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만, 수십만의 팔로워들은 어쨌든 허수만은 아니다.
여담이지만 나는 설국열차를 대단히 재미있게 보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오히려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 영화는 무척 좋았다. 아마 내가 신자유주의를 싫어하는 좌파인데다 ㅍㅍㅅㅅ의 독자들을 기만하려는 사기꾼이기 때문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