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와 함께라서 모든 날이 좋았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오후 9시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곤 했다. MBC 뉴스데스크를 보기 위해서였다. 9시에 하는 뉴스를 처음부터 보고 싶은데 학교가 9시에 끝나니 매번 뉴스 시작 후 20분 정도는 보지 못했다. 그래도 나머지라도 보겠다고 집에 뛰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나 MBC 뉴스만 챙겨봤는지 기자 목소리만 듣고도 어떤 기자인지 알 정도였다.
MBC 뉴스의 매력은 앵커가 뉴스 마지막에 하는 클로징 멘트에 있다. 클로징 멘트가 얼마나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는지 엄기영 앵커가 말했던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멘트를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의 절정은 신경민 앵커의 촌철살인 앵커 멘트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때의 MBC는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로 시청자의 가슴이 시원해질 뿐 아니라 신영철 대법관 촛불 이메일 파문, 재판 개입 사건 등을 집요하게 파던 송곳 같은 뉴스였다.
그런 MBC 뉴스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신경민 앵커가 갑자기 뉴스데스크에서 내려간 순간부터다. 그때부터 앵커들은 클로징 멘트를 하지 않았다. 하루는 뉴스 첫 꼭지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사고를 전했는데 앵커가 클로징에서 관련 코멘트는 하지 않은 채 그저 활짝 웃으며 시청해주셔서 고맙다는 말만 뱉고 뉴스를 마무리한 날이 있었다. 뉴스가 이상해졌다고 느낀 것은 그때부터였고 그 후론 MBC 뉴스데스크를 잘 챙겨보지 않게 됐다.
MBC가 정말 끝났다고 느낀 순간은 그 후에도 자주 찾아왔지만 정말 결정적인 사건은 2012년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이었다. MBC는 선거방송에서 단연 선두주자였다. 2010년 6월 2일 MBC 지방선거 방송은 30~40대 여론 주도층이 압도적으로 시청했다는 조사가 나왔고 최첨단 그래픽 등이 재밌었다며 시청자들이 극찬했던 방송이었다.
이랬던 MBC 개표방송은 2012년 대통령 선거 때 매우 끔찍했다. 후보들의 사진을 억지로 붙여넣은 듯한 그래픽 등으로 개표방송이 1990년대로 돌아갔나 싶을 정도였다. 개표방송이 끔찍했던 이유는 방송을 제작하고 진행해야 할 고급 인력들을 파업이 끝난 후 이른바 ‘신천교육대’ 등으로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뉴스를 제작해야 할 인력들을 서울 신천에 있는 MBC 아카데미에서 브런치 교육이나 받게 만들었으니 방송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뜨겁게 사랑했던 MBC 뉴스를 다시는 보지 않았다.
MBC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박상권 앵커가 자진 하차한 후 보복성 인사발령이 있었다는 기사를 접하고부터다. 그 기사를 보고 생각했다.
‘앵커 할 거 다 해놓고 이제야?’
그 기사를 보고 몇 주 뒤 이번에는 MBC 기자들의 성명서를 접하게 됐다. 그때도 나는 냉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이미 망했는데?’
MBC 소식을 접하면서도 다시 응원해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MBC 막내 기자들이 올린 반성문 영상과 그 영상을 보고 선배 기자들이 회사 측에 보내는 경위서 영상을 봤다. 고등학교 때 MBC 뉴스를 보기 위해 집에 뛰어갔을 때 뉴스로 만났던 기자들의 모습이 나왔고 ‘이제까지 뭐하셨나요? 이제라도 다시 힘내주세요.’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MBC 기자들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접했지만 안타깝게도 MBC 뉴스는 더욱더 망가지고 있는 듯하다. MBC 뉴스를 망친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사장이 돼서 MBC를 더 손쉽게 망가트리고 있는 모양이다.
권력을 향해 비수를 들이대고 비판해야 할 MBC는 그것을 포기하고 계속해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기로 작심한 듯했다. 그들이 찬양했던 정권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3일 밤 방송 예정이던 ‘MBC 스페셜’ “탄핵” 편을 불방시키고 담당 PD가 방송 제작을 할 수 없는 부서로 전보됐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MBC 임명현 기자가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에서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MBC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냈다 한다. 2012년 파업 이후 MBC 기자들이 수치심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회사 측의 각종 폭력에 무감각해졌다는 게 논문의 내용이다.
사실 MBC 기자뿐만 아니라 MBC 뉴스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이 비슷한 것을 경험하고 있다. ‘MBC는 이제 안 돼, 나도 요즘 MBC 안 봐, MBC를 누가 봐? 무한도전 빼고?’라는 말이 나온 지 벌써 5년이 됐다. MBC 기자들이 회사 측의 폭력에 무감각해졌듯 MBC 뉴스가 더 심하게 망가지고 있음에도 시청자 역시 무감각해졌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약 10년간 MBC 기자의 팬카페를 운영하고 10년째 되는 날 그만둔 사람이다. MBC 뉴스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자랑이었다.
대학 때 쓴 리포트 제목도 모두 MBC 뉴스였다. ‘앵커와 뉴스 시청률의 상관관계 – MBC 뉴스를 중심으로,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한 방송뉴스의 위기 극복방안 – MBC 탐사보도부를 중심으로’, ‘국내 방송사 국제부 점검 – MBC를 중심으로’ 얼마나 MBC 뉴스를 좋아했으면 대학 때도 MBC 뉴스만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MBC 기자들은 그동안 자신이 정보 제공 및 사회 곳곳을 감시하는 기사를 생산하며 MBC 뉴스의 가치를 만들어냈다는 것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들이 열심히 날카로운 뉴스를 만들어 냄으로써 그것을 본 누군가는 미래를 꿈꾸었다는 것이다.
가끔 나의 성장 과정을 다시 훑어보고 싶을 때면 팬카페에 들어가 본다. 그곳에 나의 모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MBC 뉴스는 그냥 뉴스가 아니라 인생이자 추억이자 행복이었다. 뉴스 오프닝 음악만 들어도 두근댔던 적이 있다.
MBC 뉴스데스크 오프닝 모음(1976-). (필자가 정확히 어느 시대 분이신지 몰라서…)
MBC 기자들이 수치심과 무력감이 올 때마다 이런 팬들의 인생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MBC는 한때 정정당당 MBC였고 승리의 MBC 아니었는가. 그동안 MBC를 지배했던 권력이 무너졌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 엠빙신으로 남을 것인가, 다시 사랑받는 마봉춘으로 돌아올 것인가.
원문: 낙서협동조합 BIG 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