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하는 투자도 있지만 대표라는 사람을 믿고 본인들의 젊음이란 시간을 걸고 스타트업 초기에 합류하는 창업 멤버들이야 말로 가장 큰 투자자들인 셈이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그들의 시간은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초기, 자금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결국 서비스나 제품을 만드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모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1. FFF (Family, Friends, Fools)
흔히들 스타트업 초기 자금조달은 FFF(Family, Friends, Fools)로부터 구한다고들 한다. 자금뿐 아니라 사람 역시 그렇다. 이제는 잘 알려진 회사인 배달의 민족, 스피킹맥스, 데일리호텔, 펀다 역시 대표님와 가족이란 관계의 초기 멤버들이 함께 공동 창업한 사례이다.
왜 가족들과 함께하는지 이유는 단순하다. 대표 빽? 흔히들 안 좋게 생각하는 특혜나 낙하산이 아니다. 조그마한 빈 사무실에서 정말 아무것도 없이, 심지어 사무실도 없이 시작하는 게 스타트업이고 그런 조건과 환경을 함께 해줄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주변을 찾아봐도 함께할 수 있는 멤버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선택,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대표를 믿고 과감하게 본인의 경력을 걸고 죽음의 계곡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co-founder에게도 큰 위험이 따르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학연, 지연에 얽혀서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실력으로 인정 받고 평가받음을 인용할 수 있는 FF 창업 멤버들이라면 충분히 그 장점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내의 일부 재벌들의 세습경영이 문제가 되기에 밖에서 보기에 무조건 좋은 시선만 받을 수는 없다는 단점이 분명 존재한다.
2. 동생 (Family)
아들 둘인 집안에서 서로 다른 이력으로 사회생활을 했다. 난 개발자로 직장생활을 했고, 부대표인 동생은 보험영업과 중소기업에서 회장님을 모시는 일을 했었다. 서로가 하는 일은 다르지만 창업에 대한 욕구와 목표만큼은 일치했다.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직군에 종사했기 때문에 같이 창업을 한다면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내리라 생각했다.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긴 것이 부대표, 홍대 길거리에서 누구보다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던 것 역시 동생인 부대표였다. 팀의 절반 인원이 미국으로 건너가 ‘500스타트업(500 Startups)’ 배치에 참가하던 시기에 묵묵히 한국 팀을 지키고 메인 업무인 B2B 영업을 지속 하면서 담당자들과 인맥을 쌓고 끈질기게 1년을 매달렸다. 미국팀이 복귀할 시점 대기업들과의 대규모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개발자 출신인 나는 할 수 없는 영역에서 공동창업자로 한몫을 든든하게 해냈다. 함께 창업하면서도 서로의 R&R은 명확하게 나누었다. 대표로 나가서 바깥일을 하는 아버지로, 부대표는 안살림을 챙기는 어머니로.
또한 초기라고 해도 투자금이 들어온 시점부터는 큰돈이 오가기 때문에 믿을만한 사람에게 회사의 자금을 맡겨야 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신뢰할 사람이 있다는 점이 정말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우리 회사가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버는지 등 자금에 관한 부분은 아직도 부대표 말을 듣고 있다. 회사가 찢어지게 가난하고 아픈 시기를 겪을 때부터 함께 이겨내고 내공을 쌓아와 돈을 조금씩 벌기 시작한 지금도 알뜰하게 운영 잘하고 있다.
3. 동생의 후배 (Friend)
처음 둘이 창업을 하자고 결정을 내렸고 첫 번째 투자사인 본엔젤스의 투자도 어느 정도 가시화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서로의 친구나 선후배 중에 함께 할 만한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고 그들의 장점에 대해서 공유했고 각자 한 명씩을 데리고 오기로 결정을 했다. 다양한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 영업 이외의 분야에서 경력이 있는 친구들 위주로 찾았다. 말로는 다양한 경험이지 모든지 다 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친구를 찾는 게 목적이었다.
그 당시 기준은 C 레벨은 ‘가장 적게 받거나 가장 적게 받는 직원과 동일하게 시작하자’였다. 급여를 적게 책정했기 때문에 내가 데려오고 싶던 선배와 동기는 모두 현실적인 문제로 합류하지 못했다. 그때 동생이 학교 후배 녀석 중에 똘똘하고 믿을만한 친구가 있다며 만나보자고 제안했다. 에이전시에서 행사나 프로모션 기획 일을 해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도 있고 영어도 곧잘 한다고 했다.
“만땅” 서비스를 시작한 홍대의 어느 카페에서 동생의 소개로 희재라는 친구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나누었던 몇십 분간의 대화를 통해 이 친구는 함께 해도 좋겠다는 결정을 속으로 내렸다.
나는 대화를 하면서 말도 안 되는 미친 이야기를 늘어놨었다.
“우리는 오토바이로 배달도 할 거고, 전단지도 뿌릴 거고, 길거리 노점도 당분간은 계속해야 해. 시작은 이렇지만 앞으로 열심히 해서 꼭 성공하는 회사를 만들 거야.”
앞으로의 목표는 그렇지만 우선 현실은 길거리 노점이고 심지어 급여는 말도 안 되게 적다는 부분을 이야기해줬다. 본인은 다 괜찮다며 돈은 중요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형들과 함께하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달라고 했다.
시간이 몇 주 흘러 술에 취해서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3번째 멤버의 합류가 정해졌다. 같이 일해보기 전까지는 꼼꼼히 오래 보는 성격에 첫 직함을 대리로 줬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그 당시 직함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기분상 대리는 너무 했다고 술자리에서 가끔씩 대표님이 나 처음에 입사하고 대리로 명함 파줬다고 정말 서운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회사에서 그나마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비런치 2014(beLAUNCH 2014) 행사의 피칭 대회에 나가서 Top 10에 들어 500스타트업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 발표와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그해 겨울 500스타트업 투자와 실리콘밸리 본사 배치 참가라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지금은 마케팅 이사 업무를 충실히 해내고 있고 미국에서 엑셀러레이터 기간 동안 배워 온 경험을 토대로 스푼 서비스 지표에 대한 분석과 마케팅 실무를 모두 도맡아 총괄하고 있다.
4. FF를 넘어서
스타트업은 초기 죽음의 계곡을 넘어 성장을 해나가면서 많은 멤버가 합류하게 된다.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의 업무효율을 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중에서도 초기 멤버들, 즉 직함에 C가 붙는 멤버들의 비중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창업 전 또는 창업 후 초기 나를 믿어주고, 내가 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들 말고는 없기에 그 FF를 대상으로 사업 아이템을 이야기하고 설득을 얻는 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해당 과정을 통해 초기 자금의 조달이나 공동창업자로 이어지는 것이다.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도 설득이 안 되는 서비스나 제품이 시장에서 사용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많은 스타트업이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와 공동창업을 하게 된다. 믿을 수 있는 사람 하나만으로도 FF라는 장점은 정말 크다. 폐업 위기 때 급여 없이도 같이 살 기회와 재도전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회사가 어려운 시절 대표, 부대표, 이사 3명의 급여를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줄이면서 초기 멤버들의 업무부터 피벗팅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각자의 돈을 털어서 넣기도 했다. 더 힘들어져서 멤버들의 급여를 먼저 챙겨주기 위해 급여를 함께 미루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힘든 시기를 이겨 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의지할 수 있는 이런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가족이나 친구(선후배)들과 창업을 하지만 조직이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오고 어우러지면서 FF라는 단점이 생기기도 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진 조직에서는 초기에 기여를 많이 했지만 회사 성장을 따라오지 못하는 초기 멤버와 실력이 좋아 성과를 내는 후기에 합류한 멤버들 사이의 갈등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 조직 역시 객관적으로, 또 실력으로 회사에서 성과를 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임을 다들 알고 그렇게 운영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모든 멤버들이 내부적으로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누구나 C 레벨이 될 수 있는 합리적인 회사로 만들고 싶다. 대표인 나조차도 회사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 자리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나뿐 아니라 초기 멤버들 역시 최선을 다해 개인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을 함께하고, 그 위치와 상황에 맞게 의미를 찾아가는 구성원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원문: 최혁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