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러닝이란 무엇인가
큰 마음을 먹고 뛴다. 숨이 찬다. 얼마나 뛰었을까? 어라, 10분도 안 지났잖아?
러닝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경험이다.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운동이지만, 그만큼 지루하고 힘든 게 러닝이다. 계획은 깨라고 세우는 게 계획이라 했던가, 새해를 맞아 야심찬 운동 계획을 세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장벽을 깨지 못하고 삼 일도 못 채우고 운동을 그만둔다.
트레일 러닝은 피곤하고 재미없는 기존 러닝에 지친 이들을 위한 새로운 운동법이다. 용어부터 낯설다. 그러나 그리 낯선 운동은 아니다. 트레일(trail)은 길, 러닝(running)은 달리기. 말 그대로 길을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길이어선 안 된다. 포장되지 않은 길, 산길, 초원, 언덕을 자유분방하게 달리는 것, 그것이 트레일 러닝이다.
러닝보다 트레일 러닝이 좋은 이유 1. 지루하지 않다
러닝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지루함이다. 러닝을 해 본 사람이라면 운동을 포기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정신적 스트레스라는 것을 실감할 것이다.
특히 트레이닝 센터의 러닝 머신을 달리는 사람들은 10분만 뛰어도 마치 한 시간은 운동을 한 것 같은 피로감을 느낀다. 이를 극복하려고 TV를 틀어놓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야외에서 뛴다면 훨씬 낫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루하다. 패턴이 단조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레일 러닝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매 길이 모두 다른 패턴의 코스가 될 수 있다. 시간 단축 외에는 특별한 목표를 세울 수 없는 일반 러닝과 달리, 오르막과 내리막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새로운 코스와 패턴에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 등 다양한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
오르막과 평지, 내리막이 반복되는 다양한 패턴은 지루함을 덜어줄 뿐 아니라 운동 효과도 더해준다. 특히 오르막의 경우 평지에 비해 근육에 더 큰 부하를 일으키기 때문에, 평지 달리기에 비해 운동 효과가 더 뛰어나다. 오르막에서 힘을 쏟아내고 평지에서 가볍게 뛰다가 내리막에서는 조심스레 쉬어가는 식으로, 근육 강화와 관절 보호에 최적화된 패턴을 스스로 찾아내 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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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보다 트레일러닝이 좋은 이유 2. 건강에도 좋고 자연을 즐길 수 있다
관절은 소모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운동할수록 단련되는 근육과 달리, 충격을 받을 때마다 고스란히 갈려나간다는 이야기다. 포장되지 않은 길은 일견 거칠어 보이지만, 오히려 부드럽고 탄력이 있다.
매끄럽게 매만져진 길이 아니라는 게 근육에 부담을 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종아리 안팎 근육을 균형적으로 발달시키고 하퇴부의 안정성을 강화한다.
트레일러닝의 또다른 장점은, 자연을 그대로 느끼며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탁한 먼지와 매연으로 가득한 도심 속을 벗어나 맑은 공기로 가득찬 산 속 오솔길을 달리는 건 단순히 신체의 건강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스트레스 관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트레일 러닝을 위한 준비
여느 러닝이 그렇듯 특별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강점이다. 편한 복장과 신발이 있다면 그걸로 일차적인 준비는 끝. 그리고 동네 뒷산이나 언덕 오솔길을 걸으면 된다. 적당히 걷다가, 인적이 드문 곳이 나오면 적당히 뛰기 시작하고, 힘들면 적당히 쉬어가면 그만이다. 그게 트레일 러닝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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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좀 더 본격적으로 트레일 러닝의 세계에 들어설 참이라면 아주 조금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땀, 열 배출 기능을 갖춘 러닝복을 갖추는 것이라든가, 눈을 보호하기 위해 시야를 크게 방해하지 않는 러닝 선글라스를 구하는 일이라든가.
개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신발이다. 러닝에 신발이 중요하다는 말에 반대하실 분은, 혹시 없겠지? 사실 좋은 신발 한 켤레면 입문 준비는 다 끝났다고 봐도 좋을 정도.
특히 야외의 거친 길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의 특성상 신발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트레일 러닝은 노면이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같은 흙길도 흙의 곱고 거침에 따라 노면의 상태가 다르고, 자갈이나 잡초, 물웅덩이가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런 거친 길은 하퇴의 근력과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미끄러지거나 다칠 위험성도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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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좋은 깔창(인솔)과 중창(미드솔)이 필요하다. 러닝용인만큼 무게가 가볍고, 노면이 불규칙한 만큼 쿠션감과 안정감이 충분한 것이 좋다. 밑창(아웃솔) 역시 충분한 마찰력을 가진 소재에 등산화처럼 우둘투둘한 패턴으로, 미끄러짐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
신발의 소재도 중요하다. 내구성이 높아야 하고, 가벼워야 한다. 두 번 말하면 입만 아플 당연한 얘기. 여기에 또 한 가지 체크할 사항은 유연성이다. 발의 움직임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이렇게 이것저것 체크해놓고 사이즈가 안 맞으면 의미가 없다. 마지막으로 내 발에 잘 맞는지 사이즈까지 꼭 체크할 것.
컬럼비아 몬트레일의 칼도라도는 발이 삐지 않도록 발 중간 아치 부분의 쿠션을 X자 형태로 단단하게 조성하여 발이 접질리지 않도록 설계됐다. 또 내구성은 강하지만 무거운 등산화와 달리, 200g대 수준으로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을 갖춘 트레일 러닝에 최적화된 신발이다. 바닥에 사방으로 돌출된 돌기는, 미끄러짐 없이 달릴 때 추진력을 유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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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러닝 시작하기
근래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면, 균형감을 키우는 간단한 운동을 선행하면 좋다. 아주 간단한 운동이다. 한 발을 지면에서 떼고 한 발로만 서 있는 것이다. 한 번에 30초씩, 매일 5 분 정도만 해도 균형 감각이 발달하고 무릎과 발목의 안정성도 높아진다. 딱딱한 바닥에서 하는 게 익숙해졌다면 바닥에 매트나 요 등을 깔아두고 수행하면 더욱 좋다.
처음 달리는 사람들은 트레일 러닝의 자유분방함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부상 위험을 막기 위해, 처음에는 가벼운 워밍업 개념으로 걷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워밍업이 끝나면 직선 주로는 가볍게 달리되, 커브 구간이나 오르막 구간은 무리하지 않고 걸어가며 트레일 러닝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다.
같은 페이스로 계속 달릴 필요도 없다. 5분 이하의 시간동안 충분히 걸은 뒤 천천히 페이스를 올리는 게 낫다. 한 번에 올릴 필요도 없고, 약 2-3단계에 걸쳐 천천히 올렸다가, 5분 쯤 후에는 다시 걷는다. 중간 중간 걸으며 페이스 조절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장시간 트레일 러닝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눈호강하며 즐길 수 있는 트레일 러닝 코스 3선: 제주도, 지리산, 거제
트레일 러닝 코스란 게 따로 정해진 건 아니다. 포장된 도로가 20% 미만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건 대회를 공인하기 위한 규정일 뿐, 포장된 도로를 21% 달렸다고 해서 갑자기 트레일 러너로서 실격당하는 게 아니니까. 당신이 어딜 달리든 바로 그곳이 트레일 러닝 코스이다.
물론 트레일 러닝 코스를 찾아보려는 초심자들에겐 사실 하나마나한 소리. 한국의 유명 트레일 러닝 코스로는 몇 군데가 꼽힌다.
누구나 제 1순위로 꼽는 곳은 역시 제주도다. 2011년 트레일러닝 대회가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국내 최대급 규모의 트레일 러닝 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서는 올레길, 한라산 주변, 서귀포 가시리의 갑마장길까지 100km 구간을 달리는데, 초심자들을 위해 5km부터 20km 까지 비교적 짧은 코스만 참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보통 10월 경에 열린다.
제주도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거제지맥도 유명한 트레일 러닝 코스다. 산을 달리면서도 동쪽으로 너른 바다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여기에서도 4년째 트레일 러닝 대회가 열리고 있으며, 올해도 열릴 예정이다. 매니아들을 위해서는 70km의 풀코스가 준비되어 있고, 초심자들은 10km의 짧은 코스를 달릴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지리산도 트레일 러닝 코스로 유명하다.
서울에서도 트레일 러닝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꼭 지방으로 내려가야만 트레일 러닝 코스가 있는 건 아니다. 특히나 막 트레일 러닝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제주도나 거제, 가까워도 동두천까지 찾아가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위의 목록은 가장 유명한 트레일 러닝 코스들일 뿐, 꼭 저 코스들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서울 / 경기도권에서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곳을 꼽자면 동두천이 있다. 여기에서는 KOREA 50K라는 트레일 러닝 대회가 열린다. 올해로 3년 째 개최되는 이 대회는 동두천 종합 운동장에서 출발해 칠봉산, 천보산, 해룡산, 왕방산, 어등산을 거친다. 풀 코스는 60km(대회 이름은 50K인데!), 짧은 코스는 10km 정도.
주변에서 트레일 러닝 코스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둘레길’을 검색하는 것. 많은 지자체에서 산책로로 제주도 올레길과 유사한 둘레길을 조성하고 있다. 서울의 ‘서울둘레길’은 대표적이다. 관악산부터 북한산, 도봉산까지 서울의 명산을 망라한 8개 코스가 조성되어 있으며, 사이트에서 지도도 배포하고 있으니 참고하자. 그야말로 도시 트레일 러너들에게는 최상의 조건이다.
이건 트레일 러닝을 처음 시작하려는,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초심자들을 위한 하나의 가이드일 뿐이다. 굳이 올레길을 달려야만, 산을 달려야만, 둘레길을 달려야만 트레일 러너의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다. 어딜 달리든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트레일 러닝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어디든 필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트레일 러닝의 진짜 매력이니까 말이다.
트레일 러닝 즐기는 법 “그냥 즐기세요”
세계적으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트레일 러닝이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조깅 인구조차 그리 많지 않은 나라에선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향유 인구가 없는 건 결코 아니다. 김지섭 씨는 맨즈헬스, 아웃도어 지 등에서 소개된 바 있는 울트라 트레일 러너다. 2013년 고비 사막 레이스에서 종합 3위에 입상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맨즈헬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레일 러닝을 이렇게 묘사했다.
“다양한 풍경의 길이 있는 곳이면, 물통하나 손에 들고 풍경을 쫓아 달리세요.”
반드시 대담하고 거친 산악 지형에 도전하거나, 그가 해낸 것처럼 백 시간 넘게 고비 사막을 헤쳐 나가야만 트레일 러너라고 자칭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어쩜 우린 모두 트레일 러너일지도 모른다. 늘 다른 풍경 속을 달려가고 있으니까.
물론 아웃도어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고비 사막에서 밤하늘의 풍경을 올려다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낭만적이긴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