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2시 마산 오동동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위한 마창진 구국행동 시민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맞불집회, 태극기집회다. 서울에서는 이런 집회를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에서 하는데 마산에서는 ‘마창진 구국행동 시민연합’이 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참여할까? 심정은 어떠할까? 진행은 어떻게 할까? 무슨 발언이 나오고 무슨 노래를 부를까? 돈 받고 참여한다는데 사실일까? 신문·방송을 보면 말과 행동이 난폭하다는데 실제 그럴까? 난폭하다면 어느 정도일까?
오랜만에 오동동 나가 점심도 먹고 책도 산 다음 위안부 소녀상 있는 데로 시간 맞추어 옮겨갔다. 위안부 소녀상이 있는 바로 앞이 1660년 3.15의거-이승만 정권 부정선거 항의 시위가 시작된 발원지이고 바로 거기서 구국행동 시민집회가 열린다고 예고되어 있었다.
1. 생각보다 훨씬 많은 참여
갔더니 넘치는 사람들로 길이 막혀 더 나아가기 어려웠다. 집회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현장이 이렇게 붐비고 있었다. 들어가 둘러보니 연단 바로 앞에 의자 150개는 모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경찰관들이 들고 있는 폴리스라인 바깥으로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2시 20분 정식 집회가 시작될 때까지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었다. 줄잡아도 500명은 넘고 넉넉하게 잡으면 1000명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무대에서 떨어져 있을수록 아무래도 좀 더 산만했지만 마음이 앞쪽과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는지 아니면 어제도 그제도 만난 사이인지 모르지만 둘씩 셋씩 마주 보며 웃고 얘기하느라 분위기가 어수선할 뿐이었다.
2. 돈 받고 동원된 것은 아닌 듯
여러 가지 구호가 적힌 목걸이 시위용품과 종이 태극기 등을 쌓아놓은 탁자에서는 성금도 받고 있었다. 태극기 하나에 2,000원을 받는데 이윤 창출 개념은 아니었다. 1만 원을 내면 태극기 다섯 장을 주는 식이었으니까.
일당 받고 동원된 사람 같지는 않았고 집회 취지에 동의해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싶었다. 어떤 조직·단체가 구성원들한테 참여하라고 다그쳤을 수는 있겠지만, 싫은데도 강압을 못 이겨 억지로 참여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대 아래에 자리 잡은 이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70대나 80대로 보아도 무방하겠다 싶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반면 무대 위 사람들은 대부분 50대로 보였다. 40대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무대 위와 무대 아래의 이같은 나이 차이는 과연 무엇을 뜻할까?
3. 박정희 코스프레까지 준비
정식 집회의 시작은 애국가가 알렸다. 애국가는 트럼펫(색소폰인가?)이 반주했다. 무대에는 트럼펫을 연주하는 사람이 올라와 있었다. 트럼펫은 애국가뿐 아니라 국기에 대한 맹세나 묵념 따위에도 따라붙었다.
정수라가 불렀던 ‘아! 대한민국’도 연주되었다. 따라 부르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든 사람이 이리저리 오가면서 부르는 확성기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제목은 모르겠는데 박근혜를 옹호하고 위로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노래도 흘러나왔다. 마찬가지 연단 위 마이크 소리가 웅장했고 따라 부르는 소리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옛날 노래이거나 무슨 공식 행사에서 쓰는 노래나 연주였다.
무대 바로 아래에는 ‘박정희 코스프레’도 있었다. 박정희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차림을 하고 있었다. 군복을 입고 군모를 쓰고 선글라스를 꼈다. 군화도 당연히 신었겠지. 최대한 박정희랑 비슷한 사람을 고른 것 같았으나 나이가 당시 박정희보다 훨씬 많아 보이기는 했다.
4. 과거 박정희로 현재 박근혜를 덮는
이렇듯 전체적으로 보면 잘 기획되어 있는 짜임새였다. 진행은 매끄러웠으며 장면 전환은 재빨랐고 빈틈도 없었으며 여러 소품도 잘 배치되어 있었다. 장소를 넓지 않고 좁은 데로 잡은 것도 영리해 보였다. 어지간한 인원으로도 꽉 차 보이니까.
무대 뒤쪽 스크린에는 박정희의 얼굴이 자주 비쳤고 더불어 박근혜도 등장했다. 박정희는 팔을 뻗어 멀리 가리키는 모습이었고 박근혜는 공룡 앞발처럼 두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 같다. 과거를 불러내어 현재를 가리는…….
그러나 그런 것을 인정하거나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다. 박정희가 아무리 잘 했다 한들 그게 어떻게 딸 박근혜의 잘못을 덮을 수 있느냐는 것이고 그거는 그거고 이거는 이거라는 얘기다.
5. 거칠지 않은 무대 아래 사람들
사람들 옷차림은 다들 나쁘지 않았다. 입성이 험한 경우는 남녀 모두 거의 없었다. 여자분들은 화장도 곱게 하고 있었고 머리 매무새도 단정했다. 먹고살기가 힘든 노년은 거기 없었다. 밥집이나 술집, 주택가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선한 이웃 어르신과 다르지 않았다.
말투도 나긋나긋 고분고분했고 목소리도 높지 않았으며 행동도 거칠지 않았다. 과격한 말과 난폭한 행동은 대부분 무대 위에 있었고 무대 아래는 무대 위 요구에 화답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여기는 난폭함이나 과격함은 무대 위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다. 집회에 참여한 무대 아래 대부분은 그냥 정서적인 공감을 통해 현재 자기가 놓여 있는 정치적 외톨이 사정을 스스로 위로하는 정도일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던 것이다.
6. 한탄과 체념의 심정
심정은 어떤 것일까? 한탄 그리고 체념이라고나 할까? 1960년대에 청소년·청년기를 보낸 모양으로 60년대 어려움과 그 시절을 얘기하는 목소리들이 많았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 분이 바로 박정희인데 그거를 지금 애들이 어떻게 알겠느냐는 한탄이었다.
집회 참가한 이들 나이를 한숨과 더불어 입에 올리기도 했다.
하이고, 전부 우리 겉이 나이 든 것들만 나와 갖고는……. 이래 가 우야겠노.
60대 이하한테서는 자기네가 공감을 얻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체념이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은 자기 위안을 위해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이미 나를 버렸지만, 현실이 이런 우리 심정을 인정해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모이니 처지가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구나 하는.
그렇지만 무대 위 구호는 곧잘 따라 했다. 종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박근혜는 잘못 없다. JTBC 손석희가 원흉이다. 고영태를 구속하라. 특검을 특검하라. 탄핵을 탄핵하라.
헌재를 해체하라는 구호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7. 새누리당 관련들이 집회를 이끌고
집회를 이끈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는 얼굴을 알겠는 사람이 딱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시종일관 주최 쪽 시각에서 적어 내린 <시사우리신문> 기사를 보면 이런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서 발언했다.
천만수 집행위원장·호산 대한호국불교 경남승병단장 스님·김은영 시사우리신문 국회출입 정치본부장·박철종 마산살리기범시민연합 상임대표·최점식 유원대 교수·김옥주 새마음포럼 중앙회장·이은택 정의로운 사람들 대표(탈북자·제주 거주), 사회는 손종식 사무국장.
천만수씨는 경남팔각회 전 총재고 박철종씨는 마산예총 전 회장이며 손종식씨는 자기를 페이스북에서 새누리당 경남도당 디지털정당위원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나라당 또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지방의회에 한 번 나가보려고 했던 전력이 있는 이승일·정성동씨 등도 있었다. 선거운동하듯이 여러 사람들과 악수를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였다.
8. 진해 누리스타 국민행복봉사단?
이날 무대로 쓰인 트럭에 붙어 있던 플래카드도 단서가 된다. ‘탄핵 반대’ 구호가 적혀 있었는데 사진을 깜박 찍지 못했다. 거기에는 ‘진해 누리스타 국민행복봉사단’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누리’가 새누리당이고 ‘스타’가 연예인인 줄은 좀 생각해 보니 알겠더라. 돌아와서 2014~2015년 기사를 검색해 봤더니 누리스타 국민행복봉사단의 진해 단장은 김대재·강정득 둘이었다.
경남 차원에서는 권오송·조갑련 공동단장 이만기 자문단장 등이 있고 전국으로 보면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자유한국당 원내대표)·송재호 배우 등이 공동 단장이었다.
“누리스타 국민행복봉사단은 새누리당의 공식기구”였고 “누리스타 한 분 한 분이 새누리당의 자랑스러운 홍보대사”였으며 “새누리당과 소통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도록 기대되는 존재”였다.
9. 다 쓰러진 오두막에서 거둔 성공
무대를 꾸미고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집회를 주도한 이들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날 집회를 이끈 새누리당 50대들은 집회가 성공적이었다고 나름 스스로 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름 짜임새가 있었고 진행이 매끄러웠으며 참여 숫자 또한 적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그러나 다 쓰러진 오두막에서 이룩한 성공이다. <시사우리신문> 기사를 보아도 인정된다.
경남도가 어느새 야권세력으로 뭉쳐가고 있는 현실이다. 태극기 집회에 젊은 2030세대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은 공감하는 사람 별로 없는 맥빠지는 아우성이었다.
원문: 지역에서 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