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남들이 다 해놓은 걸 일단 배우는 것이다. 요즘 창의력 중심의 교육이라든지 토론 중심의 교육이라든지 이런게 유행인데 이런 것들은 공부에서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만 하더라도 2천년이 넘는 수학 연구의 산물인데 피타고라스, 아르키메데스, 뉴턴, 가우스, 오일러, 페르마가 한 반에 있지 않고서야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토론’한다고 스스로 알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스럽게도 남이 해놓은 것을 배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가 잘 되어 있어서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정도인지는 분명히 답이 나와 있다. 그 답을 만화 “슬램덩크”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1. 슛 2만 번이 보여주는 반복학습의 중요성
지역 예선을 통과하고 전국 대회를 1주일 앞둔 북산고. 그러나 북산고의 다크호스(?)인 강백호는 뛰어난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풋내기인지라 할 줄 아는 것은 리바운드, 골밑 슛, 레이업 슛, (가끔) 덩크슛 정도 밖에 없다. 따라서 골밑을 벗어나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는 게 강백호의 약점. 안 선생님은 1주일 안에 강백호에게 2점 슛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렇다면 강백호는 무엇을 해야할까?
남들이 해놓은 걸 공부한다는 것은 곧 남들이 해놓은 걸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어떤 방식으로 학습하고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는 광어와 도다리와 함께 신경망의 꿈을에서 설명한 바 있다(요약하자면 새로운 경험에 민감한 단기 기억에 먼저 학습이 되고 그 후에, 그 정보를 둔감한 장기 기억에 연타로 보내서 적당한 속도로 학습이 이뤄지게 만든다는 것 -편집자 주-)
어떤 정보를 접하면 우리의 뇌는 반드시 이를 기억한다. 다만 주의, 처리의 깊이, 다른 지식과 관계 등에 따라 기억의 강도가 다를 뿐인데 약하건 강하건 같은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이 되면 기억은 점점 강해지게 된다. 따라서 학습의 제1원리는 ‘반복’이다.
어떤 학습법도 이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학습법이란 반복을 효율적으로 하거나 덜 지겹게 해주는 것 뿐이지 반복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반복학습은 신경망 자체의 특성이기 때문에 뇌를 직접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라도 있지 않는한 우리는 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번역되고 나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사실 이 ‘법칙’은 매우 오래전부터 관찰된 것인데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역시나 ‘반복’이다.
2. 안선생님과 친구들의 피드백과 한국교육
그렇다면 무조건 반복만 많이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강백호가 2만 번의 슛을 연습하는 동안 안선생님과 친구들이 무엇을 했는지 보자.
안선생님과 친구들은 수행에 대한 측정, 기록, 평가(동영상 촬영, 슛 성공 기록), 즉각적인 피드백(“팔꿈치가 벌어지면 모두가 주의를 줘요”), 잘못된 부분의 교정(“이렇게.. 조이면”) 그리고 그림에는 없지만 적절한 칭찬이나 목표 제시(“북산의 비밀병기”), 경쟁(서태웅)을 통한 동기부여로 강백호의 슛 연습을 보조한다. 이런 형태의 반복 학습이 가장 효율적인 학습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프레임으로 현재의 한국 교육을 바라보자.
안선생님이 슛을 던지고 강백호는 구경만 한다 (교실강의)
강백호 혼자 슛 연습을 한다. 기록도 평가도 피드백도 없다 (‘자율’학습)
시험을 보아 골의 개수만 세서 보상이나 처벌을 한다 (내신, 수능)
그러면 흔히 사교육에 대한 저렴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EBS 수능강의와 같은 정책은 어떨까?
안선생님이 슛하는 모습을 녹화해서 보여준다 (EBS 수능강의)
3. 학급규모 감축이 아닌 개인 교습이 중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강백호의 슛 연습을 도와주는 사람은 6명(안선생님, 소연이, 호열이, 해동중학 트리오)이나 된다. 그렇다면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어쨌든 학급 규모를 줄이는 게 선행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아니 꼭 그렇지 않다. 학급 규모 감축에서 핵심은 ‘학급 규모’ 자체가 아니라 ‘개인 교습’에 있다. 그리고 이 ‘개인 교습’이란 단순히 1:1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측정, 기록, 평가, 피드백, 교정, 동기부여 등등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위해 꼭 학급 규모가 감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 따르면 학급 규모를 30명에서 15명으로 줄이나, 학급 규모는 그대로 두고 교사를 2명으로 늘리나 학업 성취도에는 별 차이가 없다. 학급 규모 감축 정책에서 예산의 대부분은 시설 확충에 소요되는데 돈을 생각하면 교사를 늘리는 편이 효율적이다. 물론 좁은 공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탁한 공기는 학급 규모를 줄여야만 해결되지만 여기서는 일단 제쳐두자.
한 걸음 더 나가면 굳이 교사를 늘리지 않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교육은 가능하다. 강백호의 경우도 교사를 늘리는 대신 친구들이 교사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토론 학습이나 협동 학습의 경우 토론이나 협동에 어떤 마술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학생들이 서로에 대해 개인 교습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적인 것이다. 그런 기능이 없다면 토론이나 협동 학습은 시간 낭비다.
4. 강의의 질보다 중요한 것이 교사당 학생 수
이런 학습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할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같은 문제집을 반복해서 풀어라”거나 “오답노트를 만들어라” 같은 충고를 한 번 쯤 들어봤을 텐데 이것도 같은 이유다. 다시 말해 원리는 하나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교육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교육을 둘러싼 인센티브가 변하지 않아서이고(학벌주의 등), 또하나는 교육에 대한 선입관에 얽매여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입관 중에 제일 큰 문제가 교육을 강의로 등치시키는 것이다. 사교육에 대응하기 위해 EBS 수능강의를 한다는 발상이 왜 나오겠는가? 그러나 강의는 아주 비효율적인 교육 방법이다.
위 그래프[1]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교습 방법을 달리 했을 때 학생들의 성적 분포. conventional은 30명 규모 학급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업을 한 경우이고, tutorial은 1대 1 개인 교습을 한 경우이다. 즉 전통적인 교실 강의로 50% 수준인 학생을 개인교습을 하면 2%까지 상승한다. 동영상 강의는 좀 더 좋은 강의일 뿐이지 전문 과외 선생을 이길 수는 없다.
5. 원리 없이 남의 교육정책 베끼기에 앞서…
보통 교육정책에 대해 우파는 경쟁의 강화, 좌파는 재정의 확대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쪽이든 교육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핵심과는 동떨어져있기는 마찬가지다. 경쟁은 동기를 부여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지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 재정 확대는 이미 여러 번 얘기했지만 일단 들이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지만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학업 성취도 향상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이런 수단들이 아니라 앞에서 설명한 근본적 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핀란드 교육 방법이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언론 등을 통해 일별한 바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의 걸 베끼더라도 원리를 알고 베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바마 한국 교육 따라하듯”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원리 없이 그저 베낀 교육 정책의 한 가지 사례가 바로 “수능”이다. 수능은 미국의 SAT를 베낀 것이고, SAT는 지능검사다. 일반적으로 지능, 특히 수능에서 측정하려는 유동지능은 언어 지능과 수리 지능으로 나누고 수능도 이 틀을 그대로 받아들여 언어 영역-외국어 영역과 수리탐구I-수리탐구II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수능이 처음 시행되었을 때 “이게 무슨 IQ검사냐?”와 같은 비판을 받았다. 아닌게 아니라 원래 지능검사인데 말이다. 그 결과 수능은 점점 산으로 가서 이제는 “학교 수업을 잘 들으면 잘 볼 수 있는 시험”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결국 문제 유형만 조금 바뀐 학력고사로 돌아간 것이다.
다시 원래의 얘기로 돌아와서 학습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 핀란드식 교육을 베낀다면 내 예상으로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미국의 구성주의 교육이나 일본의 유도리 교육, 또는 한국의 ‘이해찬식’ 교육의 재탕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6. 친절한 요약
글이 길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효율적인 학습이란 측정, 기록, 평가, 피드백, 교정, 동기부여 등이 이뤄지는 가운데 무수히 반복을 하는 것이다.
학급 규모를 꼭 줄이지 않더라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런 교육은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교육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요즘 핀란드식이 뜬다니 그걸 베끼자”라는 태도로는 안된다. 이런 원리의 교육을 실현시키기 위해 ‘저렴한’ 수단들은 얼마든지 있으며 이런 수단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 블로그의 방문자들 중에 IT 쪽에 발을 담그고 있거나 관심있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님 말고) 보통 IT를 활용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하면 동영상 강의를 생각하는데 앞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것처럼 원리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더 좋은 교육 방법이 가능하다. 다음 글에서는 보론 격으로 이러한 방법에 대해서 다뤄보고 이 시리즈를 마치도록 하겠다.
- Bloom, B. S. (1984). The 2 sigma problem: The search for methods of group instruction as effective as one-to-one tutoring. Educational Researcher, 13(6), 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