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실화로 알려진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 조작사건은 국가의 잘못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1972년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서 정원섭 씨는 경찰의 고문과 조작으로 인해 15년간이나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 후 무죄가 밝혀졌음에도 손해배상조차 받지 못하는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두 번째 상처를 받았지만 권력에 대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 그리고 실화
1972년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을 실화로 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은 2013년에 개봉하여 1,281만 명의 관객 동원을 한 영화입니다. 장편 소설인 『뿔』이 줄거리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영화의 실화는 흔히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9세의 어린 소녀가 끔찍하게 사망한 사건으로, 당시 전 국민의 분노를 끓게 만든 사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조작사건의 핵심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사람은 감옥살이를 하고, 진범은 법의 심판을 피해서 도망가게 해 준 것에 있습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줄거리도 비슷합니다. 경찰서장의 딸이 살해되고 범인을 잡지 못하자, 경찰이 분풀이로 지적장애 남성을 범인이라며 체포합니다. 그리고는 남성의 딸의 안전을 들먹이며 협박합니다. 지적장애 남성은 부성애가 넘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딸을 보호하려고 거짓자백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형을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줄거리에서는 그 딸이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변호사가 되어, 재심 재판에서 억울함을 풀어 줍니다.
그러나 실화인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에서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15년이나 옥살이를 한 후에도 손해배상마저 받지 못하는 비극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현실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손해배상소송 기한이 10일 초과했다며 지급을 거절당한 것입니다. 누명을 쓴 피해자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부인은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고, 아버지가 감옥에 간 결정적인 증거물의 증인이 된 아들은 평생 고통 속에 살며 본인의 인생도 처참하게 망가졌는데 말입니다.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의 이름은 ‘정원섭’ 씨입니다.
누명을 쓴 정원섭 씨는 1972년 당시 38세였습니다. 그는 53세에 감옥에서 출소할 수 있었고, 77세에 이르러서야 무죄 확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신문기사를 찾아보면 1972년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의 범인은 혈액형이 A형이라고 발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원섭은 B형입니다. 당시 경찰, 검찰, 국과수가 모두 이를 알고도 정원섭을 죄인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인 것입니다. 영화 <7번방의 선물> 속 권력기관의 협박 앞에 무기력한 개인의 모습은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춘천 성폭행 살인 조작사건의 사연
1972년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은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춘천경찰서 파출소장의 아홉 살 된 딸이 실종된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TV를 보러 만화방에 간다던 모습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당시는 TV가 많이 보급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화방에서 돈을 내고 TV를 보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후 어린 소녀는 성폭행을 당한 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끔찍한 소식에 온 국민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으로 만화방 주인인 정원섭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신학교를 포기하고 만화방을 운영하던 가장이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해당 사건을 내무장관이 보고하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을 불러 불호령을 내리며 열흘 안에 잡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정말로 열흘 만에 사건의 범인이라며 정원섭 씨를 체포하였습니다. 하지만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유일한 증거물은 현장에 있던 정원섭의 아들 것이라는 연필 한 자루였습니다.
후에 밝혀지기를, 경찰이 현장에 연필을 던져 놓고는 ‘네 연필이냐’고 아들에게 물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결국 정원섭 씨는 파렴치한 범인으로 전국에 보도되었고, 재판을 통해 무기징역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원섭 씨는 재판 도중에도 경찰의 협박과 고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일명 ‘비행기 태우기’, ‘통닭구이’ 등의 고문을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을 하면 고문을 한 경찰이 다시 와서 또 협박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목격자들이 법정에서 사실대로 진술을 다시 말하면 검사가 윽박지르며 다시 진술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바른대로 진술한 증인은 ‘위증죄’로 징역형을 받았고, 증인 중에도 고문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으로 흘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교도소 출소 후,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의 범인이 된 것이 너무도 억울했던 정원섭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법정 투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계속 재심을 기각시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참여정부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를 통해 놀라운 진실들이 밝혀졌습니다. 법정에서 계속 외면하자 마지막 심정으로 ‘진실화해위’의 문을 두드렸는데, 이 시기에 담당 수사관의 고문 사실 인정과 혈액형 의문 증거 등이 나온 것입니다.
진실화해위는 노무현 정부가 과거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기 위해 설립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귀를 기울여 주어 마침내 재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정원섭 씨는 2011년 대법원에서 최종적인 무죄선고를 받아냈습니다.
손해배상이 0원이 된 억울함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 사건은 권력기관이 억울한 개인을 협박하고 고문하여 15년간의 옥살이를 하게 만든 사건인데, 독재정치가 얼마나 독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권력기관이 거짓 수사를 했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 그로 인해 실제 범인이 법의 심판을 피하게 됨으로써 누명을 쓴 피해자뿐만 아니라 딸의 부모인 파출소장에게도 끔찍한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 두 번째 문제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에도 보수권력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화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화해·진실을 위한 과거사 위원회는 힘없는 개인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한을 풀 길이 없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 때 설립된 위원회입니다. 이 위원회의 권고로 다시 열린 재심에서 정원섭은 39년 만의 한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정원섭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춘천 강간살인 사건을 조작하여 감옥에 넣은 경찰관들을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용서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어려운 형편을 이겨내고 목사님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의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배상신청기한이 겨우 10일 지났다고 해서 지급을 기각당한 것입니다. 39년 후 다시 시작된 상처입니다.
이렇게 된 것에는 보수 기득권의 치졸한 흉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통상 무죄 확정 이후 3년 이내에 처리되던 국가보상을 ‘6개월 이내’로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보상액은 당시 최저임금의 5배 이내에서 구금된 날짜 수를 곱한 금액으로 정하기 때문에 1심까지만 해도 26억 원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심을 받는 동안 법이 바뀌어 버렸고,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한 푼도 지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으로 인생을 망쳐버린 정원섭은 형사보상에서 받은 돈으로 민사 손해배상을 진행했는데, 형사보상 지급 자체가 띄엄띄엄 나왔기 때문에 민사소송도 기간이 밀려서 더욱 억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개인이 기관을 상대로 6개월 이내에 모든 소송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행위로 인해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 뿐 아니라, ‘도가니 사건’ 등에서도 소멸시효로 인해 피해자들이 그대로 묻히는 결과들이 벌어졌습니다.
보수진영에서는 “왜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하냐”는 반론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를 보는 시각이 좁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잘못한 정권을 꾸짖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른 역사가 되려면 손해배상이 일어나게 한 국가권력이 비판받고, 이를 교훈 삼아 미래에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어떤 국민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원문: 키스세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