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시절. 언론이 하나둘씩 질식하기 시작했다. 매체를 통해 유통되는 모든 정보를 정부가 통제하려 했다. 주변부인 인터넷 실명제를 비롯해 공중파 방송 장악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국가에선 도저히 이념이나 공무적 발상으로 여길 수 없는 후진적 패악이 고안되고 실행됐다.
대통령이 언론에 노출되기만 하면 조롱감이 되다 보니 기자들과의 접촉이 없는 일방적 라디오 발표가 대국민 스킨쉽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꽤나 이어졌으며, 시사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의 성격이 바뀌고 방송 토론수준이 초등학교 교실에 가까울까 말까 했다.
나중엔 아예 언론이라 부를 만한 특징을 가진 매체 활동 환경의 씨가 말라가서, 먹고 살자고 사실왜곡과 권력비호에 목숨을 건 불쌍한 인생들이 기사소스가 될만한 갈등을 일으켜서 언론 중심부에 풀어놓고 다시 자기들 논거로 되돌려 받는, 그야말로 태평양을 떠다니는 거대한 쓰레기 부유섬이 주변 쓰레기들을 끌어모으며 몸집을 불려가는 식의 난장판이 돼 버렸다. 종북장사로 한 몇 년 밥값 벌었겠다.
이 아수라장이 될까 봐 미리 몸으로 막으며 저지하던 기자들은 노트북 놓여있던 책상에서 건물 밖 부대시설로 조성된 스케이트장 관리인으로 내몰리는가 하면, 아예 갖가지 이유를 들어 내쫓기기도 했다. 해직 기자들이 그나마 힘을 합쳐 뭐라도 해보려 해왔지만, 여전히 언론지형의 힘의 균형은 거대한 장벽을 이루었고, 막막한 현실에 심신이 따라주지 않아 중병에 걸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넘어가는 동안, 우리 사회가 맞닥뜨려 왔던 수 많은 부조리함은 주류 언론들의 흐릿한 기사와 흐릿한 태도로 인해 제대로 조명되지 않아 왔다. 현상의 세밀한 결들을 파고들어 취재하는 것은 오히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1인 미디어들의 영역으로 상당 부분 넘어갔다. 전국민 대다수가 접하는 언론들은 제 할 일이 뭔지를 잊어버린 기억상실증 환자 같았다. 정말이지 하나하나 열거하다 보면 화면의 스크롤이 1mm가 될 것이다.
그들이 할 말이 없어서 노트북만 보고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 정점을 우리는 2012년 대선국면에서 봤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다 표현이 안 될 TV대선 토론은, 토론의 일정과 절차부터가 지극히 규제 일변도의 의지를 담은 듯 제한적이라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를 민주사회의 시민권익 보장을 위해서라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이슈로 만들어 내는 곳이 없었다. 토론이 시작되자 봉숭아학당에서나 나올 법한 맹구와 선생님의 대화가 오갔음에도 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언론사가 없었다.
정부와 혼연일체가 된 보수언론과 입 닥친 공중파의 막강한 장악력 때문에 뜻이 있더라도 어려움이 많았던 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같은 전 국민이 목격한 피의 사실은 하루에도 몇 건씩 터져 나온 것에 비해,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중대하나 골치 아프고 지루한 그러나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이야기들에 대해선 언론의 중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집단인 양 손을 떼고 멀거니 바라만 봤다.
그들이 멀거니 있는 것은 비단 책상 앞에서 뿐만이 아니라 국가원수나 고위관료와 한자리에 있을 때도 이어졌다. 조용한 교실도 그보다 조용할 수 없을 것 같은 대통령 기자회견장은 너무나 익숙하다. 우리는 수 많은 기자들이 질문 할 게 없어서 얌전히 노트북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부디, 살아남은 언론인이라면 ‘염치’를 알기를
때로 자신에겐 주관적으로 합당하고 남에겐 객관적으로 비판적인 자세로 목숨을 챙겨야 살아남는 것은 기자나 일반 시민이나 비슷하다. 잠깐의 비겁함으로 전세 대출 이자를 갚아나갈 수 있으니까.
물론 사내에 남아서도 분루를 삼키며 하루하루를 어떻게 자기방식으로 버티고 투쟁해 나갈지 고민하던 사람이 왜 없었을까. 그러나 언론사의 월급을 받아 자식들 학비를 대고 밥을 먹이던 그 손, 사회를 향해 정론직필을 키보드 부서지도록 힘주어 꼭꼭 때렸어야 할 그 손으로 허공에 빈 그림만 그려야 했던 억울한 자신을 동정하려면, 최소한 입바른 소리 하다가 일상이 파괴된 동료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 동료들 못지않게 존엄에 위협을 받으며 파괴되어 가던 국민들에게 딱 한 가지 마음은 들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바로 부끄러움, 염치다.
염치가 별건가. 자신에게 당연한 권리와 몫 앞에서 잠시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이걸 내가 가져도 되는가. 소리 내도 되는가. 표정 짓는 게 맞는가. 그렇게 주변을 살피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편한 존재이므로 쉽게 간과할 수 있다. 때문에 염치 없는 사람 되는 건 한순간이다.
그리고, 그러니까, 그래서, 인간사회를 그려 나가는 언론인은 달라야 한다. 보수 정권 10년 동안 살아남은 언론인이라면 염치라는 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의식해야 한다.
문재인 전담 기자들의 자칭 보도통제 항의 성명이란 걸 보고 그들에게 느꼈다.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