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오고 있다. 산업혁명은 산업에 대단히 큰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첫 번째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계화, 두 번째 산업혁명은 공장식 대량화, 세 번째 산업혁명은 컴퓨터에 의한 자동화, 그리고 네 번째 산업혁명은 가상화에 의한 분산화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을 가상화에 의한 분산화라고 생각한다. 가상화와 그로부터 가능하게 된 분산화가 기존의 컴퓨터 자동화를 뛰어넘어서 생산과 소비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부분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가상화라는 것은 실존 또는 실체를 추상화하여 실체가 없는 객체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실체가 없는 객체이지만 가상화 기술에 의해서 그 객체는 실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령 비트코인이라는 새로운 화폐의 등장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비트코인은 어떤 국가나 기관에서 발행한 화폐도 아니고 금덩어리나 철광석처럼 실체가 있는 자원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비트코인은 오직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의 연결망에 담긴 정보에 의해 정의된다. 만약 전 세계의 컴퓨터가 꺼지거나 인터넷이 끊긴다면 비트코인은 사라진다.
조선 시대의 상평통보나 로마 시대의 금화는 실물로써 그런 화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실체가 전혀 없으며 굳이 실체를 찾는다고 한다면 비트코인에 관한 수학적 이론을 처음으로 제안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그 존재에 대한 이야기일 뿐 우리가 비트코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분명 우리는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으며 사기당하지 않는 한 구매한 물건은 확실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된다.
이것이 기술의 발전에 의해 나타난 가상화의 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가상화는 우리가 사는 세계 그 자체를 넓힌다. 현실 세계는 여러 법칙에 의해서 제약받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법칙이란 물리적 법칙, 생물학적 법칙 등 자연법칙을 비롯해 인간의 법, 특정한 규칙 등 각종 규칙을 포함한다. 법칙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동시에 세계에 의해 정해져 있고 그것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상화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 세계는 실제 세계에 영향을 주고, 동시에 가상 세계의 법칙은 얼마든지 쉽게 바꿀 수 있다.
가상화에서 법칙을 쉽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어째서 중요한가? 만약 우리가 날씨를 마음껏 조절할 수 있다면 농업 생산성이 크게 늘어날 것이고 식량난은 사라질 것이다. 또 물리 법칙을 바꿔서 초광속 통신이나 초광속 여행이 가능하다면 땅 걱정할 필요 없이 온 우주를 다니면서 널찍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물리 법칙에 기반 둔 세계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런 것들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상세계 역시 실제 세계 위에 만들어져 있으므로 실제 세계의 법칙을 어길 수는 없다.
실제 세계의 법칙을 어길 수 없다는 제약 조건은 오직 가상세계가 실제 세계에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즉 가상 세계가 실제 세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태로 남아있는 한 가상 세계는 얼마든지 그 법칙을 바꾸고, 그 모습을 바꾸며 변할 수 있고, 우리가 마음껏 변화시킬 수 있다. 이 특징은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실제 세계에 영향을 줄 때 같은 영향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통신 매체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전자우편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이것이 우리 생활에 가져온 변화는 매우 놀라울 정도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실체가 있는 편지를 사용한다면 최소 몇 시간에서 며칠씩도 걸리는 것이 매우 당연하지만 전자우편을 사용한다면 1초 이상 걸리지 않는다. 여기서 시간이라는 자원이 절약되며 남는 자원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다른 자원도 마찬가지다. 현실 자원을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제공하고 같은 자원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가상화는 곧 분산화를 가능하게 했고 바로 이 부분에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다. 가상화는 물리적 실체의 구체적 상태나 위치 등에 영향받지 않고, 현실의 요소에 영향받는다 해도 그에 맞춰서 가상 세계의 법칙을 고칠 수 있으므로 그 객체는 변함없이 존재할 수 있다. 이 자유로움을 잘 활용하면 가상 세계에서 하나의 큰 덩어리로 존재하는 객체가 실제로도 꼭 연결된 연속체일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분산화이며 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자원의 낭비는 해당 자원이 목적을 위해 사용될 때,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도 않으면서 다른 곳에도 사용할 수 없는 자원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토막을 깎아서 밥그릇을 만들어 낸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은 밥그릇에 해당하고 깎아낸 톱밥은 낭비되는 자원이다. 분산화가 가능해지면 나무토막에서 밥그릇을 만들어 낸 후 남는 톱밥을 다른 곳에 보내 비료의 재료나 난방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가상화를 통한 분산화는 쪼갤 수 없었던 것들을 쪼개어 낭비되는 자원을 줄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택근무의 일상화이다. 재택근무가 가진 장점은 분명하다. 출퇴근으로 낭비되는 시간이 없고, 사무실 임대 및 관리 비용이 줄어들고, 교통비가 절약되고, 업무 시간이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업무’라고 하는 것의 특성상 쪼개기가 매우 어려웠으며 업무는 다들 회사, 사무실에 모여서 수행하는 것이 당연했기에 재택근무가 대중화·일상화될 수 없었다. 여기에 가상화를 도입하면 현실에서 쪼갤 수 없었던 업무를 가상적으로 쪼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나눠진 업무 중 자신이 처리해야 할 분량만을 가져다가 자신의 집이나 편한 장소에서 처리해 결과물을 반환하면 가상 세계에서 결과물이 다시 합쳐져서 현실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또한 가상화는 가상의 처리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바로 인공지능의 등장이다. 기존에는 현실 세계의 객체나 사건을 다루려면 반드시 그와 연관된 물리적 실체가 필요했고 그 실체를 설계하거나 운전하기 위해 지능이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사람이 필요했다. ‘지능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의 법칙이기에 어길 수 없었다. 가상 세계에서는 지능을 가진 객체가 반드시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없으며 그 부분을 프로그램이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재택근무를 다시 가져오면 분리된 업무 덩어리 중 인공지능이 처리할 수 있는 것들을 인공지능에게 맡긴다면 업무 처리에 필요한 사람 수가 줄어들고 사람들은 그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4차 산업혁명도 결과적으로 이 세계에서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부분이 줄어들게 된다. 사람이 개입해야만 하는 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 없어지는 것이고, 동시에 사람은 자유를 얻게 된다. 만약 사람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기에 가치가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은 사람들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행복을 빼앗아 갈 것이다. 하지만 사람 존재 자체로써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면 4차 산업혁명은 그 사람이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기회를 줄 것이다.
원문: MELOTO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