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을 위해 민주당사에 도청기를 설치하다가 발각된 닉슨 진영은 한동안 큰 홍역을 치렀다. 국민에게 연일 난타당한 끝에 결국 그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불명예스럽게 탄핵당할 바에 차라리 죄를 뉘우치고 허물을 안고 가겠다는 뜻이었다.
바다 건너 한반도에선 국정농단 스캔들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최순실 일당과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드러나는 와중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퇴임했다. 탄핵 인용은커녕 기각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도처에 퍼지고 있다. 스스로 사임해도 모자를 판에 탄핵이 기각되는 것은 국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헌재의 현명한 결정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탄핵 인용은 필연적이다. 언론의 보도와 검찰, 그리고 특검 수사를 통해 이미 박 대통령의 범죄 행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월호가 침몰할 동안 그는 구중궁궐의 관저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이 기업에 강제 모금했다는 사실도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을 통해 밝혀졌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례가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이 중 몇 개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난다 해도 탄핵 결정을 내리는 데는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재단 관계자와 문체부 관계자들 다수가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발언을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모든 걸 다 떠나서 국가 시스템이 망가진 와중에 대통령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무능도 잘못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 측은 지저분하게 탄핵 재판에 임하고 있다. 검찰 기소장 등에 자세히 나와 있어 굳이 부를 필요 없는 증인들을 무더기로 신청하는 게 그 예다. 탄핵 심판을 지연시켜 이득을 보려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3월 13일 이정미 재판관마저 퇴임한다. 그러면 7인 체제로 돌입하게 되는데 이 중 2명만 반대해도 탄핵 재판 자체가 무효가 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국민 앞에 사죄하기는커녕 계속해서 꼼수를 부리고 있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있으니 여전히 헌법을 농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탄핵당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졸속으로 탄핵 심판을 진행하라는 게 아니다. 또 대통령 측의 방어권을 뺏으라는 얘기도 아니다. 국운이 걸린 만큼 심판은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 대충 판결하다간 또 다른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주주의 사회이기에 잘못한 사람에게도 방어권을 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라는 뜻은 아니다. 죄를 지은 게 명백하다면 이를 넘어가는 것 자체가 반헌법적인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국민의 80%가 대통령의 탄핵을 원하고 있다. 민심에 이반하는 결정은 헌재의 존엄성 역시 위협할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 애티커스 핀치는 “사람을 이해하려면 피부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광장은 헌법을 농단하고 국민을 능욕한 대통령과 그 부역 세력의 퇴장을 원한다. 재판관들도 결국 시민이기에 이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하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핀치 말대로 헌재가 국민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 옳은 결정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원문: 시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