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티비즘(Craftivism)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한 번쯤은 들어본 듯한, 그러나 무언가 어색한 이 단어는 ‘수공예(Craft)’와 ‘행동주의(Activism)’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한 땀, 한 땀. 천천히 세상을 바꾸는 방법. 크래프티비즘을 소개합니다.
크래프티비즘
크래프티비즘이라는 용어는 2003년 크래프티비스트 벳시 그리어(Betsy Greer)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어에게 크래프티비즘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개인의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이 강한 목소리를 내고, 깊은 연민을 일으키며 꾸준한 사회 정의 실현 방법을 찾을 수 있게 한다’고 정의합니다.
크래프티비즘은 반 전쟁, 양성평등, 환경, 반자본주의, 사회정의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룹니다. 여러 수공예 방법 중 많이 활용하는 방법은 뜨개질과 자수인데요, 공예 활동가들은 관심 있는 주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야기합니다.
수공예라면 어떤 사회 문제를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굳이 거대한 사회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실현함이 중요합니다. 그럼, 작게는 사람들의 관심을 끈 프로젝트부터 크게는 실질적인 변화를 만든 몇몇 크래프티비즘 프로젝트를 보겠습니다.
버스에 따뜻함을 더하다
버스를 포함한 대중교통수단은 낙서와 기물 파손으로 고통을 겪습니다. 파손의 흔적에서는 종종 삭막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핀란드 직물 예술가 비르삐(Virpi Vesanen-Laukkanen)는 코바늘 뜨개질 작업으로 버스에 따뜻함을 더합니다.
헬싱키 시내를 오가는 버스의 좌석을 형형색색의 뜨개질 작업으로 꾸몄습니다. 코바늘 뜨개질이 가진 일상의 따뜻함과 즐거움을 승객들에게 전하고, 더 많은 사람의 대중교통 이용을 권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실행했는데요, 승객에게 뜻밖의 즐거움을 전한 프로젝트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멸종 위기의 앵무새를 알리다
뉴질랜드 토종 앵무새인 카카포(Kakapo)는 세계에서 가장 무겁고 날지 못하는 앵무새 종입니다. 70년대 단 18마리만 남았던 카카포 새는 동물보호단체의 노력으로 2014년, 126마리까지 개체 수를 회복했습니다. 카카포 새의 멸종 위기 문제를 알리기 위해 호주의 예술가 세라핌(Sayraphim Lothian)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게릴라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126마리의 카카포 새를 상징하는 봉제 인형을 만들어 사람들이 찾기 쉬운 도심 곳곳에 두었습니다.
10일간의 프로젝트 동안 사람들은 카카포 새 인형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카카포의 멸종 위기에 관해 이야기했고, 또 다른 장소에 숨기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인형을 만드는 워크숍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2011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크라이스트처치 시민들이 도심에서 카카포 새 인형을 발견하며 즐거움과 함께 ‘회복’이라는 희망을 품길 바라기도 하였습니다.
생활 임금을 올리다
영국의 사라(Sarah Corbett)는 ‘크래프티비스트 콜렉티브(Craftivist Collective)‘를 운영하며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크래프티비스트입니다. 사라는 리버풀의 저소득층 지역에서 태어나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사회 운동가가 되어 7년간 옥스팜 등 여러 기관에서 사회 문제를 다루며 일했는데요, 사회 운동을 위해 종종 피켓 시위를 하고 구호를 외치는 방법은 내향성이 강한 그녀에게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긴 기차 통근 시간에 뜨개질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은 사라는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사회 운동 방법을 실행에 옮깁니다.
사라가 생각하는 크래프티비즘의 중요한 부분은 ‘연결’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피켓을 들고 소리를 지르거나 잘못을 탓하는 방법은 서로를 더 멀리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데요, 대신에 작은 수공예품을 통해 자기 생각에 상대가 관심을 가지도록 합니다.
사라는 2015년, 영국 소매유통업체 막스앤스펜서(Marks & Spencer)에 매장 직원의 생활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크래프티비즘 캠페인을 실행합니다. 25명의 캠페인 참여자들은 14명의 이사진에게 건넬 손수건을 만들었습니다. 각자가 맡은 이사에 대해 조사하고 좋아하는 색, 취미, 평소에 옷 입는 스타일 등을 분석해 손수건 색상과 자수 디자인에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이사가 어떤 일을 했는지도 조사해 그동안 해온 일을 칭찬하는 손편지를 썼습니다. 더불어 생활임금 인상을 승인해 더 멋진 업적을 남기기 바라는 메시지도 손편지에 담았습니다.
사라의 공예 운동은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손수건을 만드는 작업은 막스앤스펜서 매장 앞에서 진행했습니다. 소풍을 콘셉트로 한 이 평화로운 시위는 매장을 방문하는 많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생활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알렸습니다.
14장의 손수건은 연례주주총회 때 이사진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사라는 생활 임금 인상 메시지를 실크인쇄한 250장의 손수건 키트도 만들어 주주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이사진은 기존 사회 운동과는 다른 사라의 방법에 감동했고, 스스로 손수건의 내용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집으로 가져간 손수건을 보고 궁금해하는 자녀들에게 손수건에 관해 설명하면서 생활 임금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레 시작했다고도 하는데요.
사라는 계속해서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데이에 생활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손편지를 보냈습니다. 일 년이 지난 2016년 5월, 막스앤스펜서는 2017년 4월부터 생활임금재단이 정한 기준을 조금 넘는 9.65 파운드(14,150원)를 시간당 최저 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변화를 위한 마음가짐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고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의 하나인 크래프티비즘은 조용하지만 느립니다. 그리고,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서로의 문제를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하는지, 서로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크래프티비스트 콜렉티브의 크래프티비스트 선언문을 통해 배웁니다.
크래프티비스트 선언문
우리의 손과 마음, 이성을 연결한다. 우리는 진정 변화를 만들 수 있다.
1. 거북이가 되라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크래프티비즘은 사려 깊은 방향성을 담은 진지한 행동이다.
2. 수공예는 도구이다
크래프티비즘은 효과적이면서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수공예는 우리가 말하려는 주제와 잘 맞아야 한다. 수공예 자체가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3. 동정이 아닌 연대를
연대를 표현하는 수공예품을 만들어 타인의 존엄성을 지킨다.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면 상대의 방법도 이해할 수 있다. 행동주의는 일방적인 자선활동이 아니다.
4. 사색에서 편안함을 찾는다
한 땀 한 땀 천천히 만드는 수공예의 본성을 활용한다. 사색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함의 복잡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주어진 문제의 복잡성을 생각해보면 상대와 상대의 방법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5. 공감은 절대 비판하지 않는다
모두의 시각에서 보도록 한다. 모두 각자, 자신의 입장이 있다. 입장에 따라 문제를 달리 볼 수 있다. 상대를 공격성을 가진 적으로 보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객관적인 비평을 하는 친구로 바라보라.
6. 작지만 아름다운
아름다움과 사랑의 영감을 담은 작은 것들은 세상이 아름답게 변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완벽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걱정하지 마라. 작은 것들은 사랑스럽다.
7. 겸손함이 열쇠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바뀌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거시적 관점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라. 상대에게 등지지 말라. 마음을 열고 함께 일하라.
8. 강요하지 말고, 흥미를 일으켜라
절대 소리 지르지 말고, 격려해라. 당신의 수공예품으로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하라. 관심과 행동을 이끌 것이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공예 운동은 영감을 준다. 절대로 상대를 억압하지 않는다.
9. 긍정적인 면을 품어라
용기를 북돋는 표현을 해라. 냉소적인 표현은 쉽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연민이 담긴 시각에는 꿈과 사회 운동을 키울 힘이 있다.
10. 보고 싶은 변화를 만들어라
우리가 세상을 아름답고, 친절하고, 정의롭게 만들기 원한다면, 우리의 행동도 아름답고, 친절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바늘과 실을 집어 공예에 참여하라. 한땀 한땀. 우리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원문: 슬로워크 / 필자: 노길우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