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변질되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반기문이 시작이었다. 대통령 선거 출마 포기 발표를 하루 앞둔 1월 31일 “촛불 민심이 변질됐다”면서 “다른 요구들이 많이 나오고, 그런 면은 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쪽에서 곧바로 “촛불 민심이 변질됐다는 의견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정우택 원내대표가 거들었다. 그 뒤 몇몇 매체에서도 ‘촛불이 처음의 순수성을 잃고 다수의 폭거로 일탈되거나 정권 쟁취의 수단으로 전락될 우려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1. 구호가 변질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촛불 민심은 전혀 변질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국정농단 주범·부역자 처벌 그리고 적폐 청산이 여전히 핵심이다. 물론 ‘다른 요구들이 많이 나오고’ 하는데 이는 변질의 증거가 아니고 다양성의 표출이다.
새누리당과 일부 매체는 변질의 증거로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무죄 석방’ 구호를 들먹인다. 하지만 이는 그 전부터 제기되어 온 주장이다. 게다가 대다수 촛불은 옳고 그름을 떠나 촛불 반대 세력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공감도 동의도 하지 않는다.
2.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참여 인원이 줄어드는 바람에 촛불 변질 ‘우려’가 커진 측면도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촛불집회에 꾸준히 나가고 있다. 창원광장은 박근혜 탄핵 국회 가결 전후(12월 10일과 18일) 1만과 2만으로 최대였다가 24일 1,000명, 그 뒤에 300~500명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탄핵 가결 이후에도 계속 100만을 웃도는 촛불이 모인다면 오히려 그게 비정상이 아닐까. 국면이 한 고비를 넘었으니 규모도 당연히 줄게 마련인 것이다. (반대로 만약 헌재 탄핵 기각 같은 사태가 생기면 촛불은 다시 엄청나게 모일 것이다)
3. 시민의 참여는 여전하다
이렇게 줄면서 광장에는 운동권만 남지 않았나 여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지난 12월 24일 1,000명으로 적어졌을 때 30년 넘는 경력의 한 운동권 인사가 “인자는 운동권만 남는 기 아인가 모르겠네예”라 했고 나도 그럴까 봐 걱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집회가 시작되고 보니 아니었다. 규모만 줄었을 뿐이고 구성은 앞서 1만~2만일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낯익은 운동권 인사도 드문드문 보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았다. 고등학생 같은 친구들,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들, 입성이 단정한 70~80대 할머니·할아버지, 이젠 촛불과 집회에 익숙해진 나 홀로 참여 아저씨들, 아이들 데리고 나온 30~40대 아줌마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는 술도 한 번씩 같이 마셨지만 9년 전 이사하고 나서는 만날 일이 없었던 옛날 살던 아파트 형님과 누님까지. 성격이 수굿한 형님은 혼자 나왔고 평소에도 신명이 넘치던 누님은 이웃과 함께였다. 누님은 나중에 보니 앞에 나가 자유발언까지 했다.
촛불집회에 나가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촛불은 변질되지 않았다. 규모는 줄었지만 활기가 넘친다. 활기는 운동권이 아닌 일반 시민에게서 나오고 남자보다는 여자에게서 더 많이 나온다.
원문: 지역에서 본 세상 / 필자: 김훤주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2월 7일 데스크칼럼으로 실은 글에 중간중간 소제목을 달아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