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한국이 부러워하는 나라들은 그렇게 좋은 나라인가?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귤화위지
귤화위지라는 말이 있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인데, 안자춘추에 나오는 말이다. 제나라 재상인 안자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초왕이 그를 모욕을 주기 위해 굳이 제나라 출신 죄인을 불러다가 심문을 했던 것에서 비롯된 고사이다. 제나라 사람은 참 도적질을 잘하지 않느냐는 초왕의 말에 안자는 “강남의 귤은 강북에 오면 탱자가 된다. 모름지기 살아있는 것은 그 환경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고 하여 제나라 사람이 도적질을 한 것이 초나라 탓임을 말하여 반박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 말을 통상 육아나 교육에서 사용하는데, 종종 사회 제도에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법인세가 지속적으로 인하되었다. 통상 법인세 대폭 인하는 해외로부터의 투자가 촉진되어 결과적으로 국민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관점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렇다면 법인세 인하로 결과적으로 해외 투자가 촉진되었는가? 증가하기는 했지만 기대 수준에 훨씬 미치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대표적인 것이 언어와 회계준칙의 차이다.
전세계 투자의 큰 손인 영미권 투자자들에게 한국은 언어가 완전히 달라서 시장 및 사회 상황을 잘 알기도 어렵고, 거기에 덧붙여 회계준칙과 보고서 양식도 현격하게 달라서 도대체 기업 상황을 들여다보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투자의 미래 전망도 중요한 요소이다.
당시 한국은 어쨌든 굉장히 살기 힘든 상황이었고 언제 경제가 복구될지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위험을 둘러 쓰고 투자를 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법인세 인하는 당시의 유동성 위기 문제와 맞물려(즉, 모든 기업이 더 많은 이윤과 현금을 서로 일단 갖고 있으려고 하는 분위기에서) 경제 체계 내에서 그 순간 힘을 가진 쪽에게 과도하게 이윤이 쏠리게 되는 이후의 현상을 조장하는데 일부 기여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법인세 인하는 당시 선진국 거의 모두가 동행적으로 이룬 일이지만, 소수 대기업으로의 과도한 이윤 집중 현상은 그 시점 이후의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법인세 인하가 투자를 촉진하는 것은 명백하지만, 전후 사정을 살피지 않고 단순히 한 제도의 공과만을 보고 제도를 도입한다면, 그 제도 하나를 둘러싼 다른 제도들 때문에 이상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레짐(Regime)의 톱니바퀴
이런 식으로, 제도 도입이나 혹은 기존 제도의 개선은 그 제도 하나만 봐서는 문제를 도리어 가중시킬 가능성이 항상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현 시점의 제도들이 모두 변화가 없다고 한다면 대충 사람들은 거기 적응하여 살기 시작하게 되고, 그 제도들은 각각 다른 제도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갖고 톱니바퀴처럼 움직이게 된다. 이 상태를 이전에는 통칭하여 제도라고 불렀는데, 편의상 개별 제도와 전체 제도를 나눠 말할 필요가 있을 때 곤란하기 때문에, Regime 내지는 Social Regime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이같은 레짐은 국가나 사회마다 서로 형편이 다른데, 그 형편에 맞춰서 제도 개선이나 도입이 고려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다른 국가에서 너무 좋은 제도가 있다, 라고 해서 다른 나라에 그대로 도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개 이상의 단위 기관이나 사회의 전체 재정 지출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A라는 새로운 사상에 따른 지출을 늘리려고 해도, 기존 사상들로 채워진 다른 지출은 쉽게 줄어들지도 않고 줄일 수도 없다. 결국 A 사상 자체가 이상하게 변질되기 마련이다.
다음과 같은 예를 생각해보자. 미국에서는 아파트 등 공동생활건물을 건축할 경우 주차공간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서 대략 가구 당 3.3석 이상의 주차공간을 확보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아파트 주차난을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도입하면 어떨까?
당연히 안된다. 한국은 수도권 특히 서울지역 과밀이 심각하고, 이 경우 주차공간을 그만큼 확보하라는 지시는 신규 주택에서 건물 건축에 쓸 수 있는 대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초고층 아파트를 짓지 않는 이상 서울 시민들을 서울 외곽으로 더 밀어내게 될 것이다. 둘째로 한국은 미국과 같은 저유가 사회가 아니다. 개인 승용차가 필수적인 국가도 아니다. 이 사회에서 자동차 보유에 따른 암묵적 비용을 저감시키는 정책은 당연히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내게 될 것이다. 이런 교훈은 조금 더 섬세한 부분에도 대입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근래에 한국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 의무휴일제를 도입하는 것 때문에 크게 논란을 벌였다. 캄보디아에 대형마트 의무휴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캄보디아의 농축수산물 유통 구조가 굉장히 불투명하고 신뢰가능한 물품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입장에서 대형마트를 주 1회나 격주 1회를 닫으면 그 기간에도 다른 소상공인을 위한 소비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모두를 위해 안좋은 규제가 될 것이다.
모병제는 어떨까?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미군이나, 후기지수인 중국과 일본은 모두 모병제를 통해 군대를 유지한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모병제를 통해 국방의 사회적 비용을 드러내고 또한 군대를 정예화해서 청춘저당을 중지하자는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그럴까? 국방전략상의 장단점은 판단이 어려우니 차치하고 보더라도, 이 경우 소요 비용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세수 부담이 현격히 증가하는 한편 대량의 무기도입이 불가결할텐데 이 자체가 이미 감당 가능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MD논란이나 혹은 신규 군기지 건설의 마찰이 굉장히 큰 편인 사회인데, 모병을 통한 정예화는 달리 말하면 대량의 신규 시설을 가동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고, 이 말은 새로운 기지를 더 필요로 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기존 기지들은 전시 예비군 동원을 위한 시설로 쓰면 썼지, 신규 장비들은 그 기지에서 감당가능한 게 아니다. 당장 전차만 해도 단순 보병에 비해 훈련 및 정비를 위해 요구되는 면적이 다르다) 최저가격기준 낙찰제도를 정부 구매에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한국의 경우 중소기업 물건을 중심으로 납품받아 단가후려치기와 저품질의 물품이 납품되는 결과가 나타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저가를 입찰한 다른 회사의 가격 정보를 뇌물을 낸 회사에 알려주는 한편, 써낸 최저가에 별개로 현물 등의 방법을 통해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부패가 거대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대기업간의 담합이 나타났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히 한 제도가 좋아보인다고, 모든 나라가 그 제도를 그대로 도입가능한 것도 아니고 도입한 뒤에 똑같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어떤 레짐을 적용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조금 넓게 생각하면 이런 시사점도 얻어낼 수 있다. 레짐이 붕괴하고 제도들이 격변하게 되면 모든 제도들이 이전과 다르게 움직이고, 모든 구성원들은 기존의 제도들부터 하나하나를 재검토하게 되며, 모든 생활이 바뀌고 따라서 적응 비용이 급격히 증가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삶의 질곡이 깊어질 것이다. 한국은 바로 98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98년 외환 위기 이전까지 복지와 경제 체제에 대한 레짐을 사회과학자들은 세가지로 나누어 보곤 했다.
첫째는 미국식. 개인 자구적이거나 혹은 자경(neighborhood watch)적인 복지를 중심으로 하는 체계이다. 둘째는 유럽식. 사회가 개인 자유를 상당히 제한하고서 직접 개개인을 돌보는 체제. 셋째는 일본식. 기업이 거의 전 국민을 각각 포섭하고, 각 기업이 개인 복지를 책임지며, 국가는 기업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1970, 80년대의 미국이 일본에 대해 공포를 느끼던 시절의 분석들은 바로 이런 기업중심적인 체계에 대한 공과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과 96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로 붕괴하였고, 원래 평생고용과 기업복지로 작동하던 이 복지체제는 바로 그 평생고용이 포기되면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한국이 지금 10년이 넘게 경험하고 있는 복지 체계에 대한 연구는 현재 한국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는 레짐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럽이 지금 느끼고 있는 공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동아시아식 복지는 평생 고용과, 전체 고용이 가장 기본적인 얼개였다.
유럽식 복지는 전국민에게서 얻어진 재원을 바탕으로 전국민에게 재정지원을 하는 형태, 즉 재정 안정성과 안정적인 국민체 유지가 핵심이다. 그리스에서 재차 촉발된 유럽 재정위기는 바로 그 한 축인 재정안정성을 위협한다. 그렇게 되면서 같이 우려되는 것이 바로 안정적인 국민체 유지 부분이 아닐까 싶다. 터키나 중동, 북아프리카와 남미로부터 유입되는 대량의 이민은 유럽의 재정에 기여한 바는 없으나 앞으로는 함께 혜택을 받게 된다. 재정이 탄탄할 때는 이들에게 주는 혜택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재정 전망이 불확실해지면 이런 소규모 집단에 들어가는 지출도 작지 않은 비용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유럽 지역의 재정이 결국 파탄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스웨덴과 영국의 외환위기가 한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90년대 초의 유럽 제 국가의 외환위기는, 재정위기로 연결이 되진 않았음에도 영국의 복지체계나 스웨덴의 재정지출 규모를 현격히 감소시키는 결과로 연결되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위기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몰라도, 만일 이들 국가로 위기가 연결된다면 어쩌면 전 세계는 선택가능한 복지레짐 대안을 미국식 하나만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관료주의적/ 혹은 가부장적인 국가주의적인 사고관을 가진 이에게는 복지 정책의 포기로 읽히는 게 당연할 것이다. 미국식 체제는 계속 유지가능할 것인가? 내 생각엔 미국식 체제도 핵심 기둥이 몇가지가 있어서, 그게 상실될 경우에는 유지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들은 선진국 중 최단 수준인 평균수명이라는 형태로(…..) 자기 체제를 잘(….)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평균수명이 100살에 달하는 프랑스가 예컨대 미국식 레짐을 적용해서 유지가능할까?
레짐의 전환기는 힘든 법이다
게다가 이런 류의 레짐 체인지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일례로 한국이 조선시대 중첩된 토지소유권제를 갖춘 농본적 계층제 사회에서 근대적 소유권으로 변화한 산업 중심적 공민권 사회로 바뀌는데 소요된 시간은 2번의 지배계층 붕괴(일제 철수를 포함해서)와 한번의 전쟁을 포함했음에도 50년 이상이 걸렸다. 정치체계나 소유권제보다는 경제복지적인 제도가 훨씬 적은 기간과 진통을 수반할 것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일본의 장기불황이나 유럽의 복지제도 선택 과정, 소련에서 현대 러시아로의 경제 체제 변화 양상 등을 보면 이것도 적게 잡아도 20, 30년은 걸리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언급한 것 중 가장 짧고 통증도 적었던 소련 -> 러시아의 변화는 20년이 걸렸고 독재적 정부 배경에서의 올리가르히 숙청이 이어졌으며, 쿠데타가 있었다. 군대가 붕괴했고 국가가 조각났으며 단합을 위해 이츠케리아 체첸의 희생이 필요했다. 아마 이런 변화를 독재나 유혈이 없이 이루려면 조금 더 긴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옳을 것이다)
그래서 살펴보면 이렇다. 첫째로 레짐 체인지 기간에는 모든 것이 변화하며 모두가 힘들다. 둘째로 구체적인 제도 한 두개, 혹은 수십개를 도입한다고 해서 레짐이 확실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 셋째로, 경험적으로 볼 때 레짐 체인지에는 상당히 긴 기간이 소요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제적, 복지적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지 싶다. 이것은 분명한 일이고, 반론할 수도 없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즉응적으로 바뀔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몇가지 제도를 빼고 더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추구할 목표가 현재 부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장 유럽식 레짐이나 미국식 레짐을 택할 수 있는가? 기존 동아시아식 레짐은 회복가능한가?
코포라티즘은 어떤가? 전사회적인 합의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빼고 더할 제도를 하위 목표로 손쉽게 도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인데(복고주의자 쿠데타 이후 러시아의 경우 자본주의화, 서구화라는 목표가 비교적 쉽게 합의되었고 그 방향으로 추진되었다고 들었다) 하물며 한국은 지금 그것조차 없다.
어쩔 수 없이 하나 하나 시험해보고, 천천히 고민해야 할 일이며, 그런 고통이 또한 우리가 변혁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일 것이다. 고통을 폄하할 이유도 없지만, 고통이 “한국 사회가 모자라고 어리석어서” 겪는 것이라 말할 일은 또한 아닐 것이다. 또한 “유럽 사회가 좋으니 우리 당장 그리로 가자”고 말해서 될 일도 아니고 “미국식을 도입하는 것이 글로벌 표준이다”라고 해서 우리가 거기 한번에 맞춰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주의깊게 조심스럽게 전방위적으로 검토해서 적응해 가냐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애초에 기업 중심적인 복지 레짐 자체가 우리가 만들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하다보니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