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답부터 말하자면, 물론 “아니오”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의 성적 사생활이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는 아마 ‘왕좌의 게임’에나 나올 법한 지옥같은 중세시대에나 어울리는 사람일 것이다. 혹, 어젯밤의 자위행위를 죄삼아 신이 당신에게 불벼락을 내려도 엄격한 신의 심판이라며 감동하여 지옥행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거나.
오답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이유로 이런 당연한 답을 거부하곤 한다. 지난 30일 국민일보의 기사는 이런 반(反) 이성의 한 극단이라 할 만 했다. 남성 동성애자 데이팅 앱에 현역 군인들이 자신의 프로필을 올린 것을 취재(?)하여 “엄격하게 금지”된 “부도덕한 성행위” “위험한 성행위”로 “위헌여부를 헌재에서 심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노답
사실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워낙 엉터리라 비판할 가치도 없는 잡문에 불과하지만, 또한 다수 대중의 몰이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아니, 다수 대중의 몰이해가 아니라, 사회 엘리트들, 입법자들, 심지어 과거 헌법재판관들의 몰이해마저 반영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에 있어, 한국은 여전히 노답이다.
기사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에서 군인은 동성간에 성행위를 하면 처벌받는다. 군형법 제 92조의 6,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법률에 의해서다. 이건 같은 군형법 제 92조의 1~5까지가 규정하고 있는 강간이나 강제추행의 죄와는 다르다. 폭행이나 협박, 위력 행사가 없더라도, 양자가 합의하에 관계를 가졌더라도, 항문성교를 하면 처벌받는다.
세상에 이런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법률이라니. 사실 국민일보 기사 중 맞는 부분도 있긴 하다. 이런 전근대적인 법률은 “위헌 여부를 헌재에서 심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인 것이다.
사실 이런 노답인 법률인 까닭에 이 조항은 끊임없이 위헌 논란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있다. 헌법재판소가 계속해서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답답
왜 헌재는 이런 노답인 법률에 계속해서 합헌 결정을 내렸는가? 군 관련 문제마다 헌재가 꺼내드는 전가의 보도, ‘군대의 특수성’이 여기에서도 그 위용을 드러낸다. 가장 최근 내려진 합헌 결정(2008헌가21)을 살펴보자. 헌재는 결정요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확립을 목적으로 동성 군인간의 성적 만족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형사처벌하므로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정성이 인정된다.”
“군대는 동성 간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섭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고, 상급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동성애 성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방치할 경우 군의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동성 간의 성적 행위만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한다고 볼경우에도, 그러한 차별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되므로 동성애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만일 군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확립을 목적으로 한다면 남성간의 관계 뿐 아니라 남-녀간의 성관계도 처벌함이 마땅하다. 합의된 성관계가 내부 징계가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도 물론 문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애당초 헌재가 동성애에 대한 몰이해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살펴보면 –
“(주: 군형법상의) “기타 추행”이란,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로서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
“군대는 동성 간의 비정상적인 성적 교접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고”
쌍팔년도도 아니고 2011년에, 헌법재판소가 결정주문에 혐오발언을 쓸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나. 아무리 정치적 입장이 끼지 않을 수 없다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다.
해답
국민일보는 모 교회와의 관계 때문인지 개신교계가 적대하는 이슈들, 특히 동성애 이슈에선 워낙 수준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좋은 기사가 종종 나오더라도 특정 이슈에서 이렇게 이성을 내던진 모습을 보인다면 신문 전체의 품격이 현저히 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다.
형법이 그렇고 군 형법 또한 그러하듯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성행위를 강제한다면 그건 강간이다.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하든, 남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하든,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하든 상관없이 말이다. (한때, 그것도 꽤 최근까지, 한국의 법 체계는 멍청하게도 남성의 강간 피해를 인정하지 않기도 했지만.)
당연하게도 강간은 처벌할 수 있다. 동성애를 금하는 법이 없으면 강간이 횡행할 것이라는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마치 이 사회에 이성애를 금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강간이 횡행한다는 것처럼 몰지각하게 들린다.
예수는 “너희 중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고 말했지만, 우리 사회, 특히 개신교계는 정확히 그 반대로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간, 강제추행, 성매매가 횡행하고,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차별이 아무렇지 않게 포장마차의 술자리와 짐짓 점잖다 자부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지배한다. 이렇게 성윤리가 바닥에 떨어진 가운데, 다만 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애정을 범죄로 규정짓고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죄악들로부터 눈을 돌린다.
정답은 간단하지만, 다들 오답을 선택한다. 심지어 엘리트들도 노답이다. 이러니 답답한 일이다.
원문: 임예인의 새벽 내리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