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매체에서 스위스에선 비슷한 사양의 슈퍼컴퓨터를 고작 20억 원을 주고 샀는데, 한국의 기상청은 무려 550억 원을 주고 샀다며 엄청난 비리가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길래 한번 계산해보았다.
전 세계 슈퍼컴퓨터의 500대 순위를 1년에 두 번씩 매기는 사이트 Top500에서 손쉽게 기상청 슈퍼컴퓨터에 대한 제원을 얻을 수 있다. 기상청 슈퍼컴퓨터 4호기는 모두 3대의 컴퓨터로 우리, 누리, 미리라는 예쁜 이름이 붙어있다. 각각 현재 전 세계 슈퍼컴 순위 396위, 37위, 36위이다.
CPU는 모두 2.6Ghz로 동작하는 인텔 제온 E5-2690 v3로 코어가 12개인 도데카 코어 제품이다. 이 제온 CPU의 가격은 현재 280만 원 정도이다.
이 중 ‘우리’는 CPU 코어가 10,752개로 12코어 제온 CPU 896개로 구성된 슈퍼컴퓨터이다. CPU 가격만 해도 25억 원 정도이다. 동급인 누리와 미리는 CPU 코어가 각각 69,600개로 12코어 제온 CPU 5,800개로 구성된 슈퍼컴퓨터이다. CPU 가격만 해도 각각 162억 원 정도이다. 두 대이니 162×2=324억 원이다.
기상청 슈퍼컴퓨터 4호기 세대는 CPU 가격만 따져 보아도 350억 원이란 얘기다. 더구나 컴퓨터는 CPU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다. 여기에 메인 보드와 고속의 시스템 메모리와 대용량 저장장치 등 온갖 부품들을 더하면 가격은 500억 원을 족히 훌쩍 넘게 되리란 걸 쉽게 추산할 수 있다.
모 매체는 스위스의 슈퍼컴퓨터가 단돈 20억 원이라 이야기한다. 이 슈퍼컴퓨터는 인텔 제온 CPU E5-2670을 사용하는데 총 5,272개를 합치면 CPU 가격만 이미 90억을 넘는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CPU로만 구성된 스위스의 슈퍼컴퓨터에 엔비디아 테슬라 K20X GPU를 추가해서 업그레이드하는 계약을 땄다는 크레이의 보도자료를 보면 업그레이드 비용만 얼추 350억 원 이상이다. 즉, CPU 90억, GPU와 업그레이드 비용에 350억, 다른 부품까지 더하면 가격이 족히 500억 원은 넘는 슈퍼컴퓨터이다.
결론, 스위스의 슈퍼컴퓨터가 20억원 짜리라는 건 사실무근이다.
그럼에도 스위스에게서 배울 점은 있다. 구형 슈퍼 컴퓨터를 350억원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원래 100위권 밖에 있던 걸 무려 8위로 만들었으니. 반면 한국은 비슷한 돈으로 36위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게 되었으니, 엄청 비싸게 준 셈이기는 하다.
즉, 한국은 GPU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에 가성비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그저 하드웨어 성능만 높인다고 좋은 게 아니다. 또 하드웨어를 갈아 끼운다고, CPU에서만 돌던 기상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GPU에서 돌아가게 만들 수는 없다. 저렴한 비용의 슈퍼컴퓨터 구축을 위해서는 GPU 프로그래밍과 프로세서 쪽으로의 역량이 필수이다.
GPU는 사실상 게임에서 나왔다. 스위스는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GPU의 진가를 잘 알아서 잘 활용하니 세계 8위의 슈퍼컴을 보유하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기상청은 GPU를 제대로 활용할 능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550억 원을 지불하고도 세계 36위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바로 게임을 무시하는 나라의 업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