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조선시대에 한반도를 지도로 옮긴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다. 어떤 이들은 김정호가 당시 흥선대원군에 의해 억압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을지 모르겠다. 적에게 조선의 지형을 상세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위험한 물건을 제작했다는 까닭에서다.
하지만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로 탄압받았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일제가 날조한 얘기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로부터 2세기가 흐른 오늘날 지도를 둘러싼 규제와 대립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한국의 지도를 사이에 두고 갈등 중인 구글코리아와 우리 정부의 줄다리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구글코리아와 정부의 주장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보도된 최근의 논란을 쟁점 별로 정리해봤다.
1. 한국의 지도 데이터 달라는 구글코리아
구글은 6월 초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에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신청서를 제출했다. 국내법상 한국의 지리 정보는 국외로 반출할 수 없다.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한 것이다. 해당 조항은 다음과 같다.
제16조(기본측량성과의 국외 반출 금지)
① 누구든지 국토교통부장관의 허가 없이 기본측량성과 중 지도등 또는 측량용 사진을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외국 정부와 기본측량성과를 서로 교환하는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3.3.23.>
② 누구든지 제14조제3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기본측량성과를 국외로 반출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국토교통부장관이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하여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국방부장관, 안전행정부장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및 국가정보원장 등 관계 기관의 장과 협의체를 구성하여 국외로 반출하기로 결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4.6.3.>
③ 제2항 단서에 따른 협의체의 구성 및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신설 2014.6.3.>
구글의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신청은 해당 법률 중 2014년 6월 개정된 부분 덕분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국방부장관, 안전행정부장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및 국가정보원장 등 관계 기관의 장과 협의체를 구성하여 국외로 반출하기로 결정한 경우’에는 갖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정부가 허락하면 갖고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제기된 규제완화 기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구글은 지도 데이터를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는 자신들의 서버에 저장하고 싶어 한다. 국외 반출은 이를 의미한다. 클라우드로 구축된 구글의 데이터센터에 한국의 지도 데이터를 넣고, 국내에서도 전세계와 똑같은 수준의 구글지도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현재 한국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용 구글지도 앱에서는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일부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 구글이 대한민국의 지도 데이터를 직접 갖고 있지 않아서다.
2. 구글은 정확히 무엇을 원하나?
구글이 갖고 나가고자 하는 지도 데이터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지도’라는 낱말을 들으면, 그림이나 위성 사진으로 이루어진 영상정보를 떠올리기 쉬운데, 구글이 원하는 것은 영상정보가 아니다. 지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각종 수치 데이터가 구글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도 데이터에는 ‘관심점(POI)’이라고 불리우는 요소가 있다. 도로 이름이나 건물 이름, 지역의 명칭, 주소 등 지도를 구성하는 세밀한 데이터가 포함돼 있다. 내비게이션의 원리는 마치 수학에서 한 끝점과 다른 끝 점을 잇는 최단구간을 구하는 것과 같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수학 문제다.
점은 노드, 도로는 링크로 구분되고, 노드와 링크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지도 데이터다. 그동안 구글은 위성사진만 갖고 대한민국에서 구글지도를 서비스 했다. 내부를 구성하는 지도 데이터(점, 선)가 없으니 내비게이션 등 부가 기능을 국내에 적용할 수 없었다.
구글 지도의 이 같은 맹점은 서비스의 한계와 직결된다. 지금 당장 스마트폰에서 구글 지도 앱을 열어 아무 목적지를 검색해보자. 도보나 운전자 경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공공정보로 오픈돼 있는 대중교통(버스) 노선 정보만 뜬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 시청역에서 명동성당을 찾아가기 위해 구글 지도를 이용한다고 가정하면, 각종 건물과 골목을 직선으로 뚫는 경로안내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3. 가져가도록 허락하면 되는데, 잡음은 왜?
반출 협의체에서 구글이 지도 데이터를 국외로 갖고 나가는 것을 허락하기만하면, 잡음이 나올 일은 없다. 정부 관계 부처에서 외부 반출을 쉽게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구글에 내건 조건이다. 조건은 다음과 같다.
[현재 전세계에 서비스 중인 지도의 영상정보에서 대한민국의 주요 시설을 보안처리 할 것]
보안처리는 지도의 영상 데이터에서 청와대나 군 시설, 발전소 등 중요한 위치를 블러나 모자이크로 가려주는 일을 말한다. 글로벌(Google.com)에서 서비스 중인 구글 지도 영상정보에서 대한민국의 주요 시설을 가려주면, 지도 데이터를 갖고 나가도록 해주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정부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주요 기반 시설의 위치를 가리는 일은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아직 휴전 중인 전세계 유일한 분단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안보 위협에서 주요 시설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목표다.
따라서, 정부의 조건부 반출 허가는 그동안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온 과거에 비해 퍽 전향적이다. 구글은 지난 2007년에도 지도 데이터를 국외 서버에 저장하고자 시도했지만, 정부와 관련 법 때문에 가로막힌 경험을 했다.
4. 가리라는 정부, 못 가린다는 구글
하지만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구글이 갖고 나가려 했던 것은 지도 데이터인데, 정부가 보안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영상정보이니 말이다. 다시말해, 구글은 A를 갖고 나가려 했는데, 정부는 B를 수정해주면 A를 내주는 것을 생각해 보겠노라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구글이 우리 정부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구글이 국외로 반출하려는 지도 데이터는 영상정보와 관련이 없으며, 한국 정부가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게 구글코리아의 의견이다.
이 같은 정부의 요청은 국제 서비스와 동등한 수준의 지도 서비스를 국내에 출시하고자 하는 구글의 목적과도 배치된다. 지도의 영상 정보는 우리 정부와 관련 없이 구글이 예전부터 구축해 온 자산이다. 한국 서비스만을 위해 글로벌 영상정보를 손 보는 일은 어렵다는 견해다.
또, 구글은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로 정부의 요청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얀덱스(Yandex, 러시아의 검색 서비스 업체)나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등도 글로벌 지도를 서비스 중이다. 다른 업체의 지도에는 청와대가 그대로 노출돼 있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는데, 왜 유독 구글의 서비스에만 보안처리를 요청하느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정부도 정부 나름의 견해가 있다. 우선, 지도 데이터가 반출돼 국내에서도 완전한 구글서비스가 이루어지면, 안보위협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영상정보와 지도 데이터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은 구글의 기술적인 사고방식일 뿐이고, 최종적으로 완성될 서비스는 그 두 가지 요소를 더한 구글 지도이니 말이다.
정부와 사용자 처지에서 보면 구글 지도는 그냥 구글 지도일 뿐이다. 심지어 구글이 앞으로 국내에서 주요 시설을 보안처리 하지 않고 서비스하게 될 지도의 축척은 5000:1에서 1000:1에 이른다. 5000:1은 작은 골목까지 구분할 수 있는 매우 정교한 수준이다.
또, 다른 업체의 다른 서비스에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부는 구글 지도의 점유율을 지목해 설명한다. 구글 지도 앱 전체 다운로드 건수는 전 세계 10억 건 이상으로 추정된다. 지도 시장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점한 서비스인만큼, 우선적인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지만, 만약 정부가 이번 구글과의 협상을 잘 풀어내면,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지도 서비스에도 유사한 요청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볼 수 있다.
5. 이스라엘은 가린 구글, 한국은 못 가린다고?
우리 정부는 이스라엘 사례까지 들어 구글을 설득하려 한다. 구글은 이스라엘의 요청에 의해 주요 시설을 모두 가린 구글 지도를 전세계에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례와 같이, 우리의 주요 시설도 가린 후 전세계에 서비스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실제로 그렇다. 구글은 전 세계 서비스 중인 구글 지도에서 공통적으로 이스라엘의 주요 시설은 보안처리를 해 서비스 중이다. 구글의 기존 견해로 미루어보면, 매우 파격적인 대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비밀은 이스라엘의 놀라운 외교적 노력에 있다.
미국 국회는 지난 1997년 ‘이스라엘에 관한 상세 위성 이미지 수집 및 배포 금지’ 조항을 핵심으로 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스라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미국 내 유대인과 이스라엘 커뮤니티가 이룬 외교적 성과라 부를 만 하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이 자국에서 서비스하는 것보다 더 배율이 높은 지도는 서비스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례를 내세워 구글에 특별 요리를 주문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억지다. 이스라엘은 정부와 정부 사이의 외교적 노력으로 원하는 바를 얻었다. 우리 정부도 미국이나 미국 업체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기업과 직접 다툴 것이 아니라 정부차원의 외교적 노력을 곁들이는 것이 옳은 일 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6. 구글이 한국에 서버 설치하면 안 되나?
구글이 국내에서 좋은 지도 서비스를 하고 싶으면, 국내에 서버를 직접 설치해 운용하는 것은 어떨까? 국외 반출 갈등을 빚을 일도 없고, 국내법을 준수할 수 있어 좋지 않을까. 일각에서는 구글 지도 서버의 국내화론을 꺼내들기도 하지만, 사실 이는 좀 어려운 문제다.
현재 구글 서비스의 대부분은 클라우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와 해당 데이터가 가리키는 지역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구글은 전 세계에서 일관된 정책으로 지도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한국에만 따로 서버를 만들어 지도 서비스만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 기술 상황과 맞지 않다.
결론.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어느 한 쪽을 당연하다는 듯 지지하긴 어려운 주제다. 한국의 관련 부처 처지에서는 한국의 독특한 안보상황을 고려해야 하는데, 산업계 쪽에서는 이 문제를 규제철폐 기조의 큰 도약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정부에게 규제를 해제하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정부와 미국 기업의 정치적 문제다. 국내법에 명시된 안보 문제도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반대로 무조건 막으라고 주장하는 것도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당장 구글 지도를 쓸 수 없어 얼마나 많은 사용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한 가지.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해당 법률이 지금의 기술 상황과 다소 동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전향적인 자세로 검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지도를 바탕으로 한 위치정보서비스(LBS)나 클라우드 서비스 등 세상의 IT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만 있는 규제로 의도치 않은 불편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주길 바란다.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를 논의하는 ‘공간정보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는 오는 8월25일까지 결론을 내 놓겠다는 계획이다. 협의체에는 미래부와 산업자원부, 행정자치부, 국방부, 국정원, 통일부, 외교부가 참석한다. 국토교통부는 간사로 참여하며, 간사 역할은 국토지리정보원 원장이 국토교통부에서 역할을 위임받아 수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