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총선이 이제 얼마 뒤면 끝난다. 선거에선 본디 최근의 주요 사회적 문제 및 관심사들이 쟁점이 되기 마련이다. 요즘 가장 논란이 되는 키워드는 단연 ‘헬조선’이다.
헬조선이란 단어의 유래, 그리고 용법 등에 대해서는 수많은 글이 이미 인터넷에 존재하니 여기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이 단어가 청년 계층이 느끼는 이 사회구조의 부조리를 한데 함축한 단어라는 것이다. 일상 대화에서,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헬조선이란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에 단 하루라도 이 단어를 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을 정도이다. 실제로 오늘날 청년들의 삶은 전 세대보다 각박하며, 희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 정도로 절망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이야기하는 헬조선
그러한 세태에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선거에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선거즈음 해서 청년층에 헬조선의 책임을 묻는 이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테면 아래 사진과 같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청년이라고 하면 기성세대가 만든 질서에 갓 진입한 사람들일 것인데, 그 사회 구조에 대한 책임을 청년들에게 전가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사실 꽤 많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헬조선이 된 것은 투표를 하지 않은 청년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한국 청년들은 투표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청년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발생한 청년들의 어려움은 청년들의 탓이라는 것이다.
투표율뿐만 아니라, 헬조선과 유사한 속어인 ‘노오오오력’도 있다. 청년들의 어려움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며, 나약하고 배가 불러 불평만 한다는 논리이다. 특히 전후 세대에게 이 논리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한낱 불평불만으로 평가 절하하는 만능 논리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사람들은 올해 30살인 필자에게, “너는 노력 했니?” 또는 “너는 투표 했니?”라고 물은 뒤 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너같이 젊은 애들’을 통틀어 한 번에 손가락질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지, 실제로 대상이 노력을 했는지, 얼마나 열심히 투표를 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불만이 담긴 주장은 철이 없어서 나오는 것이며, 나약함의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젊은 것들’에 담긴 메시지다.
즉, 이들에게 ‘청년’이란, 하나의 낙인이다. 청년이란 노력하지 않고, 투표하지 않고, 정신이 나약해서 현실의 어려움을 (자신처럼) 이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총칭인 것이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낙인들을 역사에서, 사회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불만을 낙인으로 찍어누르는 사회
일례로 ‘상놈’이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는 반상의 구분이 없어진 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비하의 의미를 가진 비속어다. 계급 사회에서는 상민이 아무리 타당한 지적을 하여도 그것이 상민의 입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상놈의 무식한 소리로 치부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조선 시대에 수많은 사회적 불만들이 불거져 나오고, 민란이 발생을 해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은 것은 이러한 공식적, 사회문화적 계급의 구분의 영향이 크다.
요즘 논란이 되는 것 중 하나로 유사한 현상이 ‘여혐’이 있다. 여성 경력 단절 문제, 임금 격차 문제, 취업률 문제, 가정 내 다양한 성차별 문제, 혐오 범죄, 성범죄 등등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수많은 불이익을 단순히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불만은 절대 근거 없거나 터무니없는 불만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남성들의 응답은 그들에게 소위 ‘김치녀’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었다.
이러한 낙인 찍기는 문제의 본질을 덮을 수 있게 만든다. 헬조선을 만든 문제들, 여혐 사회를 만든 문제들은 엄연히 사회에 실재하는 문제들이며, 개선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이를 개선할 의지가 없는 이들은 문제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그저 ‘불만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것이 일부 불만을 가진 자의 목소리이므로 그 불만 세력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이 문제들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불만 세력이라는 낙인이 독립투사들에게,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붙은 바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다시 헬조선 문제로 돌아가 보자. 만약 어느 날 모든 청년이 열심히 투표를 하고, 생활력을 발휘해 노력을 산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될까? 그럴 리 없다. 인간이 사는 사회는 언제나 다양한 문제가 있고, 청년층은 갓 사회에 진입한 경험이 부족하고 확립된 지위를 가진 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그런 청년들의 말을 중·노년층은 귀담아들어 줄 것인가?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투표나 노력이 아닌 다른 문제점을 찾아내어 청년층의 불만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불만이라는 근거를 찾아낼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청년들의 어려움은 기성세대의 배려와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해소가 될 수 있다. 그들이 만든 사회 질서에 신규 진입하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정치인, 기업인, 지식계층, 전문직 등 영향력을 가진 모든 이들은 기성세대이고, 청년들의 부모 친척들 또한 기성세대이다. 청년들은 언제나 힘이 약한 세대일 수밖에 없다. 그런 청년들에게 자구책을 찾지 못하는 무능한 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 기성세대가 청년층을 도울 의지가 없기 때문에 통용된다.
진정 투표율이 중요하고, 청년들의 자구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정치인들의 대다수가 장년층 이상이고, 100대 부자에 창업 부자가 손꼽을 수준인 이 나라에서, 오바마나 저커버그가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해 청년을 이끌게 될 수 있을까? 이 나라 청년층에게 주어진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쟁취할 수단도 요원하다. 그런데, 그런 청년들에게, 우리에게, 변화를 만들라고 이미 힘과 수단을 가진 자들이 요구를 하고, 그렇지 못한다고 그들이 손가락질을 한다면, 청년층은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대 총선이 곧 끝나는 오늘도 청년들은 억울하고, 무력하다. 우리의 소중한 한 표는 또 한 명의 기성세대 정치인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우리에게 철이 없다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