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에 치러진 ‘중화민국 제14대 총통-부총통 및 제9대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 대만 대선 이후로 한국인들에게 매우 큰 주목을 끌었던 선거였다. 많은 이들이 중화권 최초의 여성 민주 지도자의 등장과 정권교체, 그리고 선거 3일 전에 터졌던 이른바 ‘쯔위(子瑜) 사건’ 등에 주목하겠지만, 사실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으로의 정권교체는 2014년 11월 전국지방선거서부터 예측되었던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몇 가지 특징적인 모습이 보이기에 이를 기록하고자 한다.
대만의 대표적 사회균열은 역시 ‘국가정체성’이다
국가정체성이라는 것은 대만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규정하는지, ‘대만인’으로 규정하는지, ‘중국인이자 대만인’이라는 이중정체성으로 규정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1987년 대만의 민주화 이후부터 측정해왔던 국가정체성은 1996년을 기점으로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대만인들이 크게 감소하였고 ‘대만인’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으며, 이중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점차 늘었다.
2000년, 대만 역사상 첫 번째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던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은 8년의 집권기 동안 이를 이용하여 급격한 대만화 정책과 대만 독립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 대만의 경제력은 경쟁국인 한국에 쳐지기 시작하였고, 경제는 무너졌으며, 결정적으로 천수이볜 일가의 부정축재사건이 벌어졌다.
2008년 3월에 있었던 총통선거에서 국민당(國民黨)의 마잉주(馬英九) 후보는 기존의 사회균열이었던 ‘국가정체성’을 주제로 내세우지 않고 ‘경제이슈’를 주로 내세워 당선되었다. 이로써 많은 학자들은 대만에서의 투표행태가 ‘국가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비합리적 투표에서 ‘경제이슈’를 중심으로 하는 합리적 투표로 바뀌었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는 그 이전의 천수이볜 정부가 추진했던 너무나도 급진적인 독립정책에 대한 반작용과 그에 대한 심각한 경제 실정, 그리고 천 씨 일가의 부정부패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미 ‘국가정체성’ 이슈에 대한 피로도가 급증한 상황에서 전 정부의 가장 큰 실정이자 국민이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경제이슈를 국민당이 선점했다는 것은 선거 전략상 이를 잘 이용했다는 것이지, 대만국민들의 투표행태가 완전하게 합리적 투표행태로 변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마잉주 총통은 국가정체성을 다시 내세웠으며, 재선 이후에 급진적인 친중정책은 오히려 대만국민들의 반발을 사게 되어 2013년의 학생운동단체들의 대만국회 점거, 25만 명이 총통부 앞에 집결한 ECFA 반대시위로 이어졌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만인이라는 국가정체성을 강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만판 지역구도의 일시적(?) 해체
대만에는 국가정체성에 기반한 지역구도가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1949년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난 이후 유입이 되기 시작한 외성인이 비교적 많은 타이중(台中) 이북지역(대표적으로 타이베이(台北), 신베이(新北), 지룽(基隆), 타오위엔(桃園))은 국민당이 우세하며, 청나라 초기인 17c부터 대륙에서 대만으로 유입된 본성인이 비교적 많은 타이중 이남 지역(대표적으로 타이난(台南), 가오슝(高雄), 핑동(屏東))은 민진당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2012년 총선─대선까지 확실하게 지켜졌다. 그러나 2014년 지방선거에서 북부지역인 타이베이시장, 지룽시장, 타오위엔 시장이 야권계열 후보(지룽시장과 타오위엔 시장은 민진당 후보가 당선되었으며, 타이베이시장은 무소속 야권 단일후보가 당선되었다.)가 당선되며 허물어지는 듯이 보였고,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의 전통적 강세지역인 화롄(花蓮), 타이동(台東)의 동부지역과 우리나라의 서해5도 지역에 해당하는 진먼(金門), 롄장(連江)만 제외하고 모두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우세했다.
대만 지역 대부분이 초록색으로 물든 이 선거는 대만 역사상 매우 특이한 선거로 해석될 수 있으며, 그동안 마잉주의 실정이 얼마나 대만국민들을 격앙시켰는지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년 정도에 일어난 일이기에 지역구도의 해체가 완전히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일시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측하기가 힘들다.
쯔위(子瑜) 사건은 선거에 영향을 미쳤는가?
정치적으로 확전되었던 쯔위 사건은 의외로 선거에는 그리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선에서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는 56.12%를 득표하며 당선이 되었는데, 이는 선거 1달 전 펼쳐졌던 여론조사 지지도 61%를 한참 밑도는 득표율이며, 선거 10일 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의 55%보다 1% 정도 상승한 득표율이라고 볼 수 있다. 국회 의석 수 역시 민진당이 개헌선인 2/3을 넘을 것으로 예측하였지만, 정작 113석 중 65석을 얻으며 과반수 확보에는 성공했으나 개헌선 확보에는 실패했다.
선거에서 양측 진영의 지지가 팽팽하고 하나의 사안에 대해 양측 진영이 큰 차이를 보일 때 단기적 이슈가 선거에 막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번 대만 대선의 경우 이미 선거 초반부터 차이잉원 후보가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상황이었다. 양측 진영은 물론이고 마잉주 총통까지 쯔위 사건에 대해서는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이 이슈가 급속하게 부상하게 된 때는 황안(黃安)이 쯔위 비판 글을 올렸을 때부터가 아니라, JYP에서 쯔위의 사과문을 올린 때로, 이때는 이미 선거가 12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15일 밤에서야 각 대만 언론에서 속보로 이를 타전하며 이슈가 급부상하였고 정치인들이 나서기 시작하였다. 이 이슈가 적극적으로 반영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총통 후보 토론회에서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와 친민당(親民黨)의 쑹추위(宋楚瑜) 후보가 대만독립 문제를 가지고 차이잉원을 몰아붙였는데, 차이잉원 후보가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지지율 하락이 있었다. 이 사건이 중도층들의 이탈을 불러왔고, 선거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든 후보들이 쯔위 사건에 대해 언급하였고, 차이잉원이 선거에 당선되자마자 쯔위 사건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것으로 보았을 때, 향후 양안정책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는 이 사건이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진보정당 후보의 약진
대만에는 수많은 정당이 존재하지만, 국회에 진출한 정당은 약 4~5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 역시 국가정체성에 따라 국민당 중심의 ‘범람연맹’과 민진당 중심의 ‘범록연맹’으로 나뉘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상당히 특이하고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바로 시대역량(時代力量)이라는 당이 지역구 3석, 전국구 2석을 차지하며 국회에 진출한 것이다.
2013년 대만에서는 마잉주의 양안서비스협정의 날치기 통과, 경제실정, 중국으로의 경제 예속화, 지나친 친중정책을 비판하며 헌정 최초로 학생운동 단체들이 20여 일 간 국회를 점거한 이른바 ‘해바라기학생운동(太陽花學運)’이 일어났다. 시대역량이라는 정당은 바로 이 ‘해바라기학생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학생운동단체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다. 기존의 범람과 범록에 전혀 연관되지 않고 기존 정치와 연관되지 않은 순수 운동단체들이 국회에 진출한 것이다. 물론 대만에도 노동당과 녹색당 등의 진보정당이 존재하고 심지어 중화민국 공산당까지 존재하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특히 시대역량의 국회진출이 더욱 유의미한 까닭은 우리나라와 같이 야권연대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역구에서는 50%에 가까운 지지율을 확보하며 당선되었고, 전국구에서도 5%의 지지율을 자기 스스로 얻은 것이다.
또한 당선된 사람의 면면도 화려하다. 타이베이 제5선거구에 출마하여 5선의 국민당 원로를 제치고 당선된 린창줘(林昶佐) 당선인은 활발히 반중국, 티벳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적 메탈밴드 Chthonic의 리더 Freddy Lim이며, 타이중 제3선거구에서 53%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홍쯔용(洪慈庸) 당선인은 2013년 핸드폰 소지를 이유로 제대 1개월 전 군기교육대에 갔다가 혹독한 군기교육으로 인해 사망한 홍중추(洪仲丘)하사(원래 상병이나 1계급 추서되었다.)의 누이이다.
이른바 홍중추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홍 상병의 죽음을 대만 국방부가 은폐하려고 했다가 총통부 앞에서 20만이 모이는 시위로 전화되었다. 결국 마잉주 총통은 홍중추의 빈소에 찾아가 유족들 앞에서 직접 사과하고, 하사로 1계급 특진시켰으며, 국방부장관을 경질시켰다.
그만큼 마잉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크게 일어났고, 기존의 정치세력이 아닌 정말로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러한 운동세력의 ‘새정치’는 앞으로 5명의 시대역량 소속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국민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생명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정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집권여당이 된 민주진보당의 의사를 따르는 데 급급하다면 그저 ‘범록연맹’의 한 정당으로서 국민의 실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