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취노동을 줄여야 한다: 비트는 왜 ‘스트리밍’을 겨냥했나?
리: 안녕하세요. 이승환입니다.
박: 안녕하세요, 박수만입니다. 만박이라고도 해요.
리: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박: 국내최초 광고기반 음악스트리밍 서비스인 “비트”를 운영하고 있는 비트패킹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어요.
리: 수많은 음악 서비스 중 비트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박: 원래 회사 만든 이유가 앞으로 인류는 스마트폰으로만 음악을 듣는다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2012년에 이 아이템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왜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음악앱이 다 이 모양이지?’라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현재 비트 사용자가 600만 명인데, 아직도 3천만 명 이상이 남아 있다 생각해요.
리: 웹 서비스는 아예 없나요?
박: 없어요. 스마트폰에서만 갈 길이 먼데 웹은 무슨…
리: 그래도 n스크린 열풍이 한두 해도 아닌데…
박: 그쪽에는 이미 많은 국내 사업자가 있잖아요. 그리고 설문조사 해보면 여전히 스마트폰 사용자 80%가 다운로드 받은 MP3 파일을 돌려 들어요.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졌고 음악 안 듣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실제 월정액 스트리밍 가입자 수는 600만에 불과하잖아요. 웹까지 힘을 들일 이유를 아직까지는 찾기 힘든 거죠.
리: 멜론 사용자가 얼마나 되죠?
박: 월정액 결제자가 35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어요. 사실 멜론 같은 모델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빠른 모델이었어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는 ‘스포티파이’가 초창기에 이야기한 게 ‘한국을 봐라’는 것이었거든요. 유료 음악시장 70%가 스트리밍으로 듣는다고, 그게 음악의 미래라고… 제 생각에도 멜론으로 대표되는 월정액 음악 결제자 수가 800만까지는 무난하게 갈 것 같아요.
리: 비트와 명확한 차별지점이 있다고 보는지요?
박: 출발점이 좀 달라요. 우리는 인류가 음악을 스마트폰으로 들을 텐데, 합법적으로 들을 방법이 월정액이라는 모델에 그쳐서는 안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합법적으로 들으려면 월정액 결제만 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선택권이 없는 거에요. 분명 예전 라디오나 길거리에서 복사 테이프 사던 시절보다는 합법적으로 결제해서 듣는 비율이 많이 늘어났지만 충분하지 않아요. 지금 어떤 서비스 쓰세요?
리: 저는 벅스 써요. 월 정액 스트리밍 + 다운로드 모델.
박: 음악 애호가네요.
리: 아뇨. 저는 자주 안 듣는지라… 한 달에 10시간 듣나? 어차피 저는 앞으로 다운로드 자체가 사라질 거라 생각하는지라, 딱히 음원 소유욕도 없고…
박: 맞아요. 스트리밍이 대세가 된다는 표현의 의미가 바로 그거라고 생각해요. 굳이 MP3를 다운받지 않아도 되는.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카세트테이프가 향수를 자극하듯, 아마 10년 뒤에는 과거 MP3를 복사해서 들었다는 게 추억으로 남을 때가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지요.
리: 월 4000원만 내면 거의 무제한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데, 굳이 스트리밍 서비스가 필요할까요?
박: 예전에 CD도 많이 사던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월정액 스트리밍 서비스가 너무 좋지만, 예전에도 1년에 CD 몇 장 안 사던 상당수 사람들은 한 달에 몇 시간 듣고 끝이잖아요. 이 사람들은 월정액 결제를 망설이게 돼요. 월정액 서비스 가입자 수는 결국 모든 스마트폰 이용자 인구 중에 일정 비율까지일 거라서 월정액제 서비스 외에 이런 사람들을 위한 합법적인 스트리밍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리: 그런데 비판도 있습니다. 다운로드보다 스트리밍 쪽이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다는 거지요.
박: 비트 서비스를 시작한지 벌써 2년이 다 됐어요. 2014년 3월에 출시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멜론, 지니 등 월정액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계속 성장하고 있어요. 또 신기한 게 저희 같은 광고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도 함께 성장해요. 월정액과 광고기반 스트리밍이 동시에 성장하는 건 이미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해외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느 쪽을 막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둘 다 커지는 게 음원 사업자들의 수입에도 유리하다는 것이죠.
리: 즉, 월정액과 광고기반 스트리밍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다?
박: 저는 음악 소비자를 몇 단계로 구분하고 있어요. 하나는 앨범을 사고 모으는 열혈 청취자층이죠. 다음은 음악에 관심은 있지만, 큰 돈을 지불할 의향은 없는… 현재 월정액 사용자 다수가 여기에 속하겠죠. 마지막이 음악에 돈 쓰기는 아까운데, 음악을 들을 의향이 없지는 않은… 이들 다수는 지금도 MP3를 불법으로 다운받아 돌리고 있어요. 즉 불법 영역에 있는 분들이죠.
리: 4천원도 아깝다 하는 헬조선의 현실.
박: 사실 다수 스트리밍 서비스가 다운로드를 지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다운 받는 것도 귀찮다며 이걸 사용하지도 않고, 그냥 불법 다운로드로 만족하는 거지요. 저는 이걸 ‘청취 노동’이라 불러요. 음악은 듣고 싶은데, 그래도 돈 쓰기 아까운 분들은 스트리밍을 통해 합법 영역으로 끌어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리: 결국 해소하고자 하는 핵심 문제는 ‘청취 노동’을 없애는 건가요?
박: 그렇죠. 사실 차 안에서는 라디오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잖아요. 좋아하는 채널 맞춰두고 가만히 있으면 되니까. 그래서 앱을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었어요. 기존 웹 기반 월정액 사용자들은 다양한 취향을 맞추려고 노력 중인데, 우리는 그냥 편하게 듣고 즐기라는 것이죠.
2. 음악에 미쳐 컴공과 수업을 포기한 학생 “병특이 저를 살렸어요”
리: 원래 컴공 출신인가요?
박: 네. 90학번이요.
리: 왜 갔어요?
박: 성적 맞춰서요.
리: 전형적인 꿈도 미래도 생각도 없는 고3이었군요.
박: 사실 한국에 PC가 막 들어온 시기가 80년대 말이었어요. 물론 70년대에도 PC는 있기야 했겠지만 거의 볼 일이 없었죠. 전 그냥 음악만 엄청 좋아했어요. 피아노학원 가는 거 좋아하고, 지금도 회사에 피아노 있고… 마침 전기에 떨어졌는데, 아버지 친구가 컴공, 그때는 전산과(전자계산학과)를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좋다 싶어서 멋모르고 갔죠.
리: 하니까 재밌던가요?
박: 아뇨. 어렵기만 하던데요.
리: ……
박: 어차피 공부와 담 쌓은 스타일이라 학교도 안 갔어요. 2년간 학점이 1.7이었나… 대학 가서 수업도 잘 안 들어가니까 시간 여유가 많아져서 밥 굶으며 레코드 사며 음악만 주구장창 들었죠. 종로에 가서 판 사고, 대학로 올댓재즈 가서 연주 보고, 수요예술무대 보면서 김병찬 베이스 연주 녹화해서 카피하고…
리: 그런데도 개발로 밥을 잘 벌어먹고 사는군요.
박: 제가 원래 대학교 2학년 마치고 군대를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교수가 저를 따로 부르더라고요.
리: 재능을 발견한 건가요?
박: 아뇨. 넌 왜 이렇게 공부 안 하느냐고. 그럴 거면 학교 나오지 말라고.
리: ……
박: 그래서 군대 다녀와서 열심히 하겠다 했죠. 그러니까 병역특례를 알려주는 거에요. 그럴 바에야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원 가면 병특으로 군대 안 갈 수 있다고. 듣고 보니 군대도 가기 싫어서(…) 3학년부터 좀 열심히 공부했어요. 일단 대학원은 들어가야 하니. 사실 그때도 별 재미는 없었는데 대학원 때부터는 재밌더라고요.
리: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박: 대학원에서는 거의 논문 읽고 실험하고 발표하고… 이런 연속이었어요. 그런데 그때가 딱 변혁기였던 게, 윈도우 95가 나올 시점이었어요. 윈도우 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는 패러다임이 들어오며, 객체지향과 GUI가 굉장한 핫이슈였어요. SW 공학도 새롭게 재조명되면서, 자연스럽게 병특까지 이어졌죠.
리: 병특은 어디서 했나요?
박: 코스닥 1호인 서울시스템에 들어갔어요. 당시 신문사 마켓쉐어의 85%를 차지한 회사였어요. 요즘은 CMS(콘텐츠 관리 시스템; Content Management System)을 이야기하지만, 당시는 CTS(컴퓨터 조판 시스템; 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으로 신문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했거든요. 편집부터 출력까지 관리해주는 시스템이었죠. 운이 좋았던 게, 타이밍이 절묘해서 회사에 객체지향, 윈도우 프로그래밍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선배들에게 깨지거나 한 일이 거의 없이, 각종 일을 도맡아 했죠.
리: 천재 개발자 취급받은 건가요?
박: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해본 선배들이 별로 없어서(…)
리: 그렇게 행복한 직장인이 된 거군요.
박: 그런데 마침 또 금방 웹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닷컴버블도 왔어요. 회사 경쟁력도 줄어들며, 병특을 한국정보공학으로 옮기게 됐죠. 여기서 또 운이 좋았던 게, 여기서는 검색엔진, 교육용 솔루션, 문서관리 시스템, 보안 등 웹 기반을 빠르게 잡은 곳이라 또 많은 걸 배웠죠.
3. 우연과 재미가 낳은 서비스: 미투데이
리: 뭔가 잘 나가는 직장인 생활 표본 같군요.
박: 네. 그런데 우연찮게 블로그를 접하게 됐어요. 아마 2002년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이야 블로그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지만, 그때는 정말 생소한 존재였어요. 사람들끼리 이건 블로그다, 아니다… 이건 어째야 한다, 저째야 한다… 등등 말들이 많았죠. 저는 문서관리 시스템 다루다 보니 좀 더 나은 CMS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창업을 생각하게 됐죠.
리: 그때 많이 쓰이던 게, 아마도 MT(무버블 타입)였나요?
박: 맞아요. 식스 어파트에서 만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트랙백이니 이런 거 다 거기서 정립했죠.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2003년에 블로그 컨퍼런스 보러 보스턴까지 날아갔는데, 그때 결정했죠. 한국은 싸이 열풍 등에 힘입어 사진이 쏟아져 나오니 사진을 관리할 수 있는 일종의 사진 블로그를 만들기로. 그래서 서울시스템에 연락해서 분사 형태로 창업했어요.
리: 성공했나요?
박: 그냥저냥이었죠. 그때 디카 보급률이 얼마나 됐다고…
리: ……
박: 그래도 폭망하지는 않았던 게… 사진 서비스를 하다 보니, 의외로 사진 인화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더라고요. 그걸로 월 1억 매출을 낸 적도 있으니, 매출 자체는 적지 않았어요. 근데 그러다 보니 블로그는 자꾸 뒷전으로 밀리는 게 아쉽기도 하고 그랬죠. 어떻게 매출을 더 올릴까 고민하던 참에, 같이 일하던 꽃띠앙 님이 번아웃 상태에 빠지더라고요. 나름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여기에 얽매이면 그저 그런 회사에 그칠 것 같고… 그래서 고민 되게 많이 하고 설득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더 큰 일 같이 하자고, 잠깐 쉬고 있으라고 했어요.
리: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박: 그냥 접었어요. 아무래도 시장이 계속 커질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사진 블로그 서비스를 했지만, 점점 느낀 게 일반인은 사진 공개 니즈가 적더라고요. 친구들에게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로 보여주는 걸로 충분하잖아요.
리: 인스타그램이 잘 되고 있지 않습니까?
박: 아… 그런 거 말고, 자기가 찍은 사진을 세밀히 관리해주는 서비스요. 나름 시도는 많았는데, 큰 성공 사례를 본 적은 없어요. 아무튼 그래서 지분 넘기고 독자적으로 회사를 만들게 됐어요.
리: 미투데이가 첫 아이템으로 등장한 건가요?
박: 그건 아니에요. ‘더블트랙’이라는 솔루션 회사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하던 게 도둑질이라 비공개 사진, 동영상 공유 서비스를 만들었죠. 설명이 좀 어려운데, 지금 생각하면 사진과 동영상을 위한 드롭박스 느낌에 가까웠어요.
리: 반응은 어땠나요?
박: 예상하다시피 별로… 열심히 SI로 버티면서, 또 다른 뭘 할까 고민했죠. 일단 회사 홍보차 짬날 때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리: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무엇을?
박: 만들어두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
리: ……
박: 그래서 그냥 심심함을 달랠 겸, 해외에서 몇몇 블로거들이 하던 링크 블로그를 슬쩍 넣었어요. 링크 하나에 본문 하나씩. 근데 그게 당시 블로그에서 재밌다고 순식간에 퍼졌어요. 그래서 사진 공유 서비스 대신 미투데이를 밀게 된 거죠. 휴대폰에 문자 보내면 포스팅 되는 간단한 컨셉으로.
리: 당시는 피처폰 시절이었는데, 왜 문자로 발송 기능을 넣은 거죠?
박: 제가 원래 기억해야 할 게 있으면 저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리: 카메라로 찍으면 되잖아요.
박: 어, 그렇네?
리: ……
박: 아무튼…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다른 사람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제가 당시 블로그에 미쳐서 거의 모든 서비스를 다 파헤쳤는데, 태터툴즈 등 설치형 블로그는 네트워크 형성이 힘들잖아요. 그래서 문자를 토대로 한 짧은 블로그에, 네트워크를 엮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탄생한 게 미투데이고.
리: 처음 나왔을 때 트위터 베꼈다며 말들이 많았는데, 진실은 어떻습니까?
박: 그건 아니에요. 트위터는 나올 때까지도 잘 몰랐어요. 자이쿠는 내놓기 직전에 나와서 좀 참조했고요. 사실 트위터와 형식이 좀 많이 달랐잖아요. 댓글 등을 넣은 것도 처음 홈페이지에서 했던 링크 블로그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리: 문자 제한 150자 때문에 의심 받는 구석이 있습니다.
박: 아, 그건 150자 원고지 때문에 나왔을 거에요.
리: 원고지는 200자입니다만(…)
박: 어, 우리 왜 했지… 150자 아닌가? 150byte였나… 벌써 10년 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무튼 트위터는 참조 대상이 아니었어요.
리: 낙장불입은 왜 넣은 겁니까? 꽤 위험하다 생각했는데.
박: 한참 미투데이 만들때 공동창업자인 꽃띠앙과 매일 출퇴근을 같이 했는데, “이건 공중에 텍스트를 날리기는 하지만 메신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 수정이 안 되는 게 맞는 거 같다”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막 고민하다가 “그럼 삭제도 안 되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라고 했고, 그 순간 저는 너무 충격적이었죠. 사용자 콘텐츠 삭제가 안 되는 걸 과연 해도 되나 싶은. 근데 그게 모든 서비스는 초기 유저층이 중요하잖아요. 그걸 옹호하는 사람들이 열혈 유저 중에 많았어요. 덕택에 탈퇴, 재가입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죠. 지울 수 있냐고 연락 오는 경우도 있었고.
리: 지워줬나요?
박: 바쁜데 신경 쓸 겨를도… 거의 안 지워줬어요…
4. 전설로 남은 네이버 인수: 척박한 당시 투자 업계
리: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빴나요?
박: 돈이 없었으니까요. 5천만 원으로 창업했는데, 먹고 살아야 하니 따로 일을 계속 했어요. 느꼈던 점은 외주로 살아남는 건, 그만큼 회사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그래서 본업에 충실해서 키우려 노력을 했지만 쉽지는 않았죠.
리: 그래도 나름 핫한 서비스였으니, 투자 유치 제안도 꽤 있지 않았나요?
박: 사실 당시에 투자하겠다는 대기업이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조직개편으로 얘기가 이어지지 못하게 됐죠. 그 이후는 저도 정말 사재까지 남은 돈 다 털어서 그냥 버텼어요. 5개월간 모든 돈 탈탈 털어서 고생하다가… 2008년 4월경 본엔젤스 만나서 숨통이 좀 트이고 서비스 방향도 다잡고 나아갈 수 있었죠.
리: 투자는 받았는데 왜 팔았죠?
박: 복잡했지만, 결국은 네이버에서 서비스를 키울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리: 좀 더 빨리 투자 받았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없는지요?
박: 지금 생각하면 그렇죠… 그런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투자라는 게 그냥 추상적인 걸로만… 어찌 할지 모르는… 투자 개념도 별로 없어서 몇 천만 원 줄 테니 지분 수십 퍼센트 달라는 곳도 있었고, 사채처럼 황당한 이율을 요구하는 곳도 있었고… 돌이켜보면 지금 환경은 뭐 하기 참 좋긴 해요.
리: 미투데이는 어떻게 유사 서비스들 사이에서 성장할 수 있었나요?
박: 그게 그냥 일이라기보다는 발로 뛰면서 같이 놀았던 게 커요. 미투데이 나오고 업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졌어요. 웬만한 회사 담당자 다 알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특강해 달라 했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회원으로 이어졌는데, 거의 5천명쯤 만났던 것 같아요. 솔직히 닉네임과 얼굴이 매칭되는 사람만 그 정도에요.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었잖아요. 서울 와서 혼자 사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직장인들이 토요일 오전에 다 미투데이에 붙어 앉아서 포스팅하고 댓글 달고 놀았어요.
리: 지금 침대에서 카톡이나 페이스북 하는 것과 비슷하군요.
박: 네. 지금은 스마트폰 나오고 해서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게 스마트폰 붙들고 살지만, 미투데이를 붙잡고 살았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에요. 그러다가 미투데이 사용자들끼리 번개가 늘어났는데, “우연한만남” 이라는 태그가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어요. 사실 다 연락해서 만난 건데, 그거 보고 자연스럽게 사람이 늘어나는 번개가 이뤄진 거죠. 그러면 저도 같이 끼어들고… 기억나는 자리가 미투데이 만들고 100일째 되는 날, 압구정동에서 100일 잔치를 했는데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왔어요. 금방 친해져서 3박 4일 붙어 놀던 사람도 있고… 나름 얼리 어답터라 그런지, 다들 지금 잘 돼서 뿌듯해요. 얼마 전 사진을 보니, 애니팡, 원티드 등등 창업자들도 있고…
리: 왜 그렇게 잘 된 걸까요?
박: 솔직히 잘 됐다고 하기는 뭣해요. 그래도 사용자들이 굉장히 인터랙션이 잦았어요. 그러니까 그만큼 잘 되는 것처럼 보이고, 또 실제 사용자도 늘어나고 그랬죠. 하지만 회사는 언제나 빡빡하게 굴러갔어요.
리: 늦게나마 투자를 받지 않았습니까.
박: 투자 받은 지 5개월 만에 네이버에 팔렸으니까 제대로 여유 있게 굴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봐야죠.
리: 어쩌다가 네이버에 인수된 건가요?
박: 그래도 그 몇 개월 사이에 서비스 발전이 꽤 있었어요. 2008년 9월에 몇개 인터넷 대기업에 제휴 제안을 던졌어요. 미투데이에 링크 많이 올라오니, 검색 결과 반영하자는 이야기 등등의 제안이었는데… 그때 네이버와 얘기 진도가 제일 빠르게 나갔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인수합병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됐죠.
리: 아무튼 나름 한국에서는 기록에 남을 딜이었지요.
박: 안타까운 건 사실 다른 곳 추가투자 이야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상황이 좀 좋지 않았어요. 한국에는 아이폰도 늦게 들어와서 앱 비즈니스를 할 수도 없었고, 마친 불황도 시작될 참이라… 한편으로는 그래서 제가 키운 서비스가 네이버의 힘을 받으면 더 클 수 있다는 생각도 가졌고요.
리: 인수될 때 미투데이 유저 수는 얼마나 됐죠?
박: 그때? 음… 한 3만명?
리: -_-;;;;;;
박: 아니다… 한 3만 5천 명 됐을 거에요.
리: …….
박: 네이버 들어가서 첫 번째 프로모션을 했는데 하루 10만 명이 가입하더라고요. ㅋㅋㅋ
리: ㅋㅋㅋ GD와 함께한 그 프로모션 말씀이시군요. 허무하지 않으셨나요?
박: 그렇죠. 몇 년간 고생해 모은 유저의 몇 배가 며칠만에… 2년 반 동안 3만 명이었는데… 이건… 큰 틀에서 봤을 때 네이버에서 있었던 4년 반 동안 인터넷 사업으로서의 숫자에 대한 개념, 타 회사 제휴, 사업개발… 이런 개념이 확실히 생겼어요. 그 전에는 정말 모르고 해왔던 것 같고…
리: 사실 많은 스타트업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죠.
박: 지금 스타트업 처음 하는 창업하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생각해요. ‘우리 유저가 몇 명까지 늘 수 있을까?’, ‘몇 명 있어야 사업을 확장하고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굉장히 쉽지 않은 문제거든요.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했고, 상 받았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 레벨에서 어느 정도 유저를 모을 수 있는지, 그들을 얼마나 커버할 수 있는지… 이런 질문을 수시로 던져야 해요. 그래도 그때는 미투데이 생활 재밌어서 만족하고 살았지만.
리: 미투데이로 돈 한 푼도 못 벌었나요?
박: 네. 2년 넘게 의미있는 돈은 못 벌었어요. 사실 서비스로 돈 번 건 비트가 처음이에요.
리: 비트는 얼마나 벌고 있죠?
박: 월 3억 정도요.
리: 와, 돈 많이 버시겠네요.
박: 아니요. 매출보다 까먹는 돈이 훨씬 많아서 부가세 환급이 억대(…)
리: (…) 미투데이는 이후 사용자가 쭉쭉 늘었나요?
박: 네. 네이버 플랫폼 도움을 많이 받았죠. 네이버에서 서비스 되면서부터 노출도 늘고 API 로그인 기능도 생기며, 회원가입은 1700만까지 갔어요. 국내 SNS 열풍 시기에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이렇게 3가지 얘기에는 계속 들어가서, 스타/기업/관공서/정치인까지 정말 엄청나게 많이 만나서 미투데이에 대한 설명도 하고…
리: 하지만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네. 계속 고민했던 문제가, 미투데이는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만큼 왜 실질 성공을 못했을까… 이거였어요. 제가 좀 착각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우리는 블로그 오래 했으니까 서로 ‘님’ 붙이는 게 기본이잖아요. 미투데이 하던 얼리 어답터들이야 이걸 재밌게 받아들이죠. 그런데 일반 대중이 스마트폰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내가 친하고 관심 있는 사람, 아는 사람과 이야기하기도 시간이 부족해요. 인터넷에서 새로운 사람 만나는 시간은 2순위다… 이게 결론이었어요.
리: 하긴 트위터가 장사가 안 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한 것 같군요.
박: 서비스의 네트워크 특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투데이는 블로그처럼 찾아 들어갔을 때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 알고 지내고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쓰기에는 적응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서 스마트폰 넘어오면서 미투데이가 밀린 것 같아요.
리: 연예인 마케팅은 효과가 별로였나요?
박: 단기적으로는 있었죠. 그런데 하필 팬 관리와 소통 측면에서는 트위터가 또 강했고… 그래서 미투데이 좋아하던 사람들이 서비스 특유의 따뜻함을 이야기했지만, 대중적 숫자로서의 성공으로 가기에는 좀 갭이 컸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당시 네이버 전체가 카카오 스트레스에 시달렸죠. 때문에 회사 밖에서는 네이버 망한다는 이야기도 많았고. 저는 또 미투데이 떄문에 콤플렉스까지 좀 있었어요.
리: 아무리 그래도 시가총액 기준으로 네이버는 계속 카카오보다 우위 아닙니까?
박: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는 네이버 사람들이 나와서 만든 카카오스토리가 출시 2주 만에 천만 다운로드를 이룬 거에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묶은 지인 네트워크가 엄청난 힘을 보인 거죠. 미투데이는 어느 정도 원형만 보여주고 좌절하게 됐고… 이미 카카오톡이 네트워크를 선점한 순간 카카오스토리의 성공은 예견됐다 생각했어요.
리: 정작 지금은 잘 안 되잖아요?
박: 처음 나왔을 때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날 밴드를 해야겠다 생각이 불쑥 든 거죠.
5. 밴드의 시작: 한 줄의 생각의 힘 “아이러브스쿨을 모바일로”
리: 확실히 밴드는 네이버와는 뭔가 생소한 아이템이었죠.
박: 네이버는 그간 대부분 어디서 봤던 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죠. 새로운 게 나오는 경우는 좀 드물었고요.
리: 하지만 카카오톡이 보여줬듯, 네트워크를 장악하는 데에는 역시 메신저가 최고 아닙니까?
박: 전 모바일에서 메신저는 절대 안 된다 생각했어요. 스마트폰 접하기 전 생긴 고정관념이죠. 작은 화면에서 뭘 두들기냐, 비동기로 가야 한다… 미투데이도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이었고… 돌아보면 네트워크의 특성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저 역시 피처폰 시절부터 사업을 하다 보니 그릇된 생각을 고집으로 가지고 있었던 거죠. 지금은 가장 안타까운 일인데, 아니면 애초에 다른 일을 제대로 벌였겠죠.
리: 그래서 밴드를 한 건가요?
박: 제 생각에는 그랬어요.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이 카카오스토리와 카카오톡으로 그대로 넘어오는 거였죠.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면 아이러브스쿨의 대박이 있었잖아요. 왜 여기에 대응하는 앱은 없나…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죠.
리: 의외로 심플한 생각에서 출발했네요.
박: 오프라인에서 아는 지인, 실제 친구는 이미 카카오톡이 다 끌어들인 상태였어요. 그렇다면 예전 친구 네트워크를 끌어들일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어요. 네이버 있으면서 매주 주간회의를 했는데, 한 임원이 캘린더와 주소록을 통해 그룹 기능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회의를 몇 달간 참석하면서 이걸로 해결이 될까? 어떻게 해야 해결이 될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앞뒤가 바뀐 거에요. 그룹이 먼저 모여야, 주소록과 캘린더가 돌아가는 거잖아요.
리: 그렇죠. 문제는 그 그룹을 어떻게 모이게 할 것이냐…
박: 저는 예전에 모임마다 엑셀파일 소팅해서 프린트했어요. 그런 수작업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동으로 모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요. 그러다 떠오른 게 아이러브스쿨이에요. 이게 처음 나올 때 반응이 아주 뜨거웠잖아요. 그때도 누군가가 고등학교 몇 회 졸업생 모임을 만들어 두면, 아는 사람 한 명 부르고, 또 그 사람이 데려오고 데려오고… 그러다 보면 초등학교 동창도 생겨나고… 이런 바이럴 루프가 생겨났어요. 이 방식을 모바일로 잘 옮겼죠.
리: 그리고 네이버 이사가 됐군요.
박: 그건 미투데이 매각할 때부터-_-;;; 아무튼 밴드로 인정받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이거 되겠냐는 반박이 많았거든요. 카카오그룹대화도 있고 웹에서는 기존 카페도 있는데, 이게 어떻게 되겠냐… 그래도 저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카카오톡 그룹대화는 이미 연결된 애들이 하는 거고, 카페는 익명 아이덴티티의 모임이잖아요. 같은 그룹이라 해도 컨셉이 명확히 달랐어요. 반면 알고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끼리 묶는 서비스는 없었어요.
리: 회사에서 성과급은 좀 주던가요?
박: 그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분명한 건, 네이버는 잘 챙겨주는 회사였어요.
6. 40대 늦깎이의 꿈의 창업: 예쁜 쓰레기를 만들었다는 평을 듣다
리: 그런데 회사를 왜 나왔습니까?
박: 네이버에 있으면서 느낀 게… PC에서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었는가와 상관 없이, 모바일은 1등 먹을 수 있다는 거에요. PC에서 1등인 게 모바일로 이어진 건 검색 외에 그리 많지 않거든요. 이래저래 판세가 다져지고 남은 건 콘텐츠인데 다른 건 모르고 음악은 해보고 싶더라고요. 훌쩍 뛰어서 이야기하자면… 이거는 나가서 할까… 이런 생각이 든 거죠.
리: 왜 네이버 안에서 왜 안 했죠?
박: 네이버가 밴드를 분사했어요. 사무실도 같이 알아보고 다니고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투데이가 그래도 한 7-8년 했어요. 서비스 한 번 만들면 그 정도 가는데, 이번에 회사 안에서 일을 하고 서비스가 그만큼 지속되면 다음 창업은 힘들 나이가 되겠더라고요. 또 하나는 모바일 앱은 새로 만들면 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다행히 ‘밴드 만든 사람이오’라고 할 수 있는 커리어도 있을 때니까요. 마지막 창업 기회를 잡고 싶었죠.
리: 그래서 뒤져보니 음악이 괜찮겠다…
박: 다른 걸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음악 서비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1년 전부터 쭉 가져왔어요.
리: 자본금은 얼마나 있었나요?
박: 2억 5천이었죠. 돈 넣은 건 2명이었고. 멤버는 미투데이 그대로였어요. 2013년 1월에 꿍님이 병특 끝났다고 인사 한다고 왔어요. 그때 나 회사 만들건데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같이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시작했죠.
리: 음악 사업은 돈이 적게 들기 힘든데 처음부터 투자를 염두했나요?
박: 그래도 밴드빨이 있어서, 본엔젤스와 네이버가 함께 창업 시드 머니로 5억 정도를 넣었어요. 우리 자본금하고 5억하고 합쳐서 첫 1년을 보내자는 생각으로 지금 회사를 시작한 거죠.
리: 그 첫 1년 반응은 어떻던가요?
박: 절망적이었죠.
리: 얼마나 절망적이었습니까?
박: 그나마 좋은 소리가 미리야님이 했던 ‘예쁜 쓰레기’였어요.
리: ……
박: 그나마 예쁘다는 소리 들은 게 좋을 수준이었죠…
리: 뭣 때문에 그렇게 망한 건가요?
박: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았던 거죠. 초기 서비스의 핵심은 음악에서 소셜 기능을 강화하는 거였거든요. 처음에는 어릴 때 믹스테이프나 CD에 좋아하는 음악을 담아서 친구 보내주듯, 음원을 사서 앨범에 담아 보내줄 수 있는 서비스를 생각했어요.
리: 딱 봐도 망할 것 같은데요?
박: 그렇죠? 그런데, 테스트 기간 쓴 친구들은 좋다고 했어요. 하지만 테스트를 한 사람들은 이미 음악에 관심이 많은 코어 유저였던 거죠. 애초에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거에요. 또 이거 하나 만드는 데에도 월정액만큼 돈이 들어가니, 거부감도 컸을 거에요. 애초에 다운로드 기반이었다는 점에서부터, 저도 시대에 좀 뒤떨어져 있었던 거죠.
리: 망하고 나니 기분이 어떻던가요?
박: 반응들이 섬뜩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소리 나는지 모르겠어… 이거 하려고 회사 그만 둔거야? 예쁜 쓰레기… 그야말로 멘붕이었어요. 12월 한 달간 회사 왜 관뒀을까… 이런 생각에 빠져 살았어요. 밤마다 맥주에 영화 2편씩 보고 잠들었죠. 가장 힘든 건, 그 와중에 초창기 직원 2명이 그만둔 거였어요. ‘만박님 믿고 왔는데 이 일이 아닌 거 같아요’라고 하는데, 막을 재간도 없고… 그래, 그런가 보다… 이럴 수밖에 없었죠.
7. 예쁜 쓰레기에서 200억 투자까지
리: 흔한 스토리대로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겠군요.
박: 그렇죠. 그나마 다행인 건 초반에는 사업 규모가 작아서 비용이 그리 많이 들지 않은 거였어요. 일단 까먹을 돈은 남아 있으니… 그때 변화의 계기가 있었는데, 제가 트렌드 읽고자 CES를 매년 갔어요. 2014년 1월에 미국에 가서 튠인(TuneIn) 모바일 라디오 서비스와 판도라 등 모바일 라디오 서비스들이 여러 군데서 눈에 밟히더군요. 호텔에 짐 풀고 이것 저것 노트북에 정리하는 동안 이 앱들을 깔아보고 음악 틀어놓고 있는데 너무 좋은 음악이 계속 나온 거에요. 돈도 안 냈는데 미국 땅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거죠. 왜 한국에는 이런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리: 갑자기 사업모델 변경인가요?
박: 다음 날 CES 돌아다니며 보니 온통 튠인과 판도라 관련 이야기가 가득하더라고요. CES니까 자동차 회사들도 많았는데, 온갖 스티커가 붙어 있어요. 행사 후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 회사 이야기 같이 하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친구가 판도라가 다운로드 아닌 스트리밍이라 욕 먹고 있지만, 이게 미래니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어, 우리 지금 유통사 계약한 거 기반으로 살짝 방향 전환하면 바로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무서운 속도로 기획서를 썼어요. 이렇게 바꾸자고. 돌이켜보면 저는 중요한 기획서를 대부분 비행기 안에서 썼는데 인터넷이 안 되는 10시간의 생산성이 이렇게 엄청나요.
리: 아주 신이 났군요.
박: 네. 당시 사람들도 나가고 저도 심적으로 많이 흔들리는 상태였는데… 반대로 조인할까 말까 망설이는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과 새로운 그림으로 가보자는 욕심이 들었어요. 돌아온 게 1월 첫째 주였을 텐데. 곧 2달 동안 졸라 만들어서 3월 18일 출시했어요. 그야말로 엄청 빠르게 만든 거죠. 스트리밍과 채널을 엮어… 그러고나니 사람들도 이번 건 좀 쓸만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리: 제 기억에 라디오를 밀었던 걸로 아는데…
박: 네. 컨셉을 잡아야 하니, 뭐라고 불러야 하나 엄청 고민하다가 “선곡할 필요없고 무료다”라는 의미를 전하는 라디오를 그대로 사용하고, 인터넷 스트리밍 방식이라는 표현을 넣어서 “무료 스트리밍 라디오”라는 이름을 붙여 출시했어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비트 이전에는 “스트리밍 라디오”라는 표현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리: 하지만 이 경우는 기존 사업자와 마찬가지로 돈이 많이 들 텐데 어떻게 감당했나요?
박: 스트림당 7.2원이 들었어요. 처음에 함께 일하는 친구들 몇 명은 앞으로 이 가격으로 서비스 사용자가 많아지면 감당 못할 단가인데 어떻게 하냐고 반대의견을 냈어요. 하지만 이것 외에는 돌파해 나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죠. 솔직히 처음에는 걱정 안 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비트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 앱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전에는 한 달에 10만, 20만 곡 트는 수준이었는데, 서비스 변경하고 좀 지나니 수백만, 수천만으로 막 늘어나는 거에요. 이게 밖에서 보면 참 좋은데, 우리는 당장 망할 지경에 처한 거죠.
리: 또 투자로 해결했군요.
박: 네. 2014년 8월에 YG엔터테인먼트, 알토스, 캡스톤으로부터 30억을 투자받았죠. 사실 지금도 그래요. 성장세가 가파르다 보니, 어떻게든 돈을 빠르게 수혈 받아야 하고… 그래도 2013년 12월에 방향전환할 수 있었던 건 캡스톤이 2013년 12월에 5억 투자하고 팁스로 5억 매칭해서 10억이 들어와서 시간을 좀 벌었기 때문이에요. 그거 없었으면 진짜 더 투자 받지도 못하고 회사가 끝났을 수도 있겠죠.
리: 서비스가 어찌 그렇게 빨리 성장했죠? 마케팅 때문인가요?
박: 그런 말이 있잖아요. 광고는 잘 될 때 하는 거지, 안 될 때 해봐야 헛돈이라고. 솔직히 서비스가 좀 커지고 나서 올해 중순쯤부터는 마케팅의 힘을 좀 받았어요. 그런데 그 전에는 마케팅할 돈도 별로 없었어요. 실제로 효과도 그리 좋지 않았고…
리: 이후 투자가 계속 이어진 거군요.
박: 네. 작년 7월 시리즈A로 30억, 올해 1월 시리즈B로 130억…
리: YG에서는 왜 투자한 건가요?
박: 아무래도 월정액 외에도 새로운 카테고리가 뜰 거라는 기대감이 있으니까요. 마케팅에서도 여러 도움을 주고 있고… 요즘 기획사들도 새로운 기회를 많이 보고 있어요. 윤종신이 이끄는 기획사 미스틱도 이미 들어와 있어요. 다음 펀딩에서는 200억대 투자를 받을 계획인데…
리: 200억! 드디어 부자 되는군요!
박: 네… 그런데, 우리 서비스가 빠르게 지금은 한 달에 4-5억 곡 틀고 있으니까… 음원비만 월 10억 이상 내고 있어요. 훨씬 더 들죠…
리: 뭐가 갈수록 힘들어지는군요.
박: 그래도 다행인 게 부가세 환급으로 분기에 몇 억씩 받아요.
리: ……
박: 그런데 투자를 받기 시작하면, 정말 안 될 때보다 더 힘들어요. 시간이 굉장히 촉박한데, 깐깐하게 검토하는 투자자들 설득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8. 엄청난 투자 속 엄청난 위기는 계속되고…
리: 그런데 이대로 버틸 수 있나요?
박: 비용 구조에 대한 설명을 해 보면 이해가 될 거에요. 우리가 어떻게 될지, 또 어떻게 방향을 바꾸며 성장했는지… 사실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계속 들여다 보니 이게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리: 왜 한국에는 비트 이전에 광고기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었던 거죠?
박: 국내 온라인 음악 서비스 사업자들이 지난 10년간 많은 시도를 해봤다고 생각해요. 그 중에 광고기반 음악 서비스도 있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최종적으로 이 분야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 상태가 지속되어 온 것 같아요. 제가 만난 대부분 음악 서비스 회사 사람들도 광고를 붙인 음악서비스 사업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어요. 즉, 그 아이템으로는 사업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거죠.
리: 비트 망하겠군요.
박: ……
리: 아무튼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박: 저는 음악 서비스가 헬스클럽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 달에 얼마를 내놓고 열심히 운동을 하는 사람은 본전을 뽑는다는 생각으로 잘 이용하지만, 며칠 가고 끝난 사람은 헬스클럽 다시는 안 가잖아요. 합법적인 음악 스트리밍을 듣는 방법이 월정액제밖에 없다는 건, 운동하는 방법이 월정액 헬스클럽밖에 없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얘기에요.
리: 그건 했던 이야기고… 돈이…
박: 그렇죠. 결국 사업성이 중요한 거니… 이를 위해서는 먼저 매출과 원가 비용구조를 이해해야 해요. 광고 기반 스트리밍의 비용은 청취자가 듣는 음원 사용료가 대부분을 차지해요. 그리고 매출은 청취자가 보는 모바일 광고로부터 나오게 돼요. 즉, 청취자가 보는 광고 매출로 음원비를 내고도 이익을 낼 수 있느냐가 비용구조의 핵심인 거죠.
리: 그게 안 나오니 대표님이 부가세를 수억씩 환급 받는 거 아닙니까(…)
박: 지금은 그렇죠. 그런데 시장이 성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비트의 첫 번째 비전이 ‘앞으로 인류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가장 많이 듣는다’이고, 비트의 성장이 보여줬듯, 스트리밍 기반 음악 사용자도 늘어날 거에요. 사이즈가 커지며, 광고기반 스트리밍의 환경도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기존 음악사업자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을 때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는 거에요.
리: 좀 더 자세히 견적을 때려 보지요.
박: 라디오와 비슷한 식으로 생각해 보지요. 비트 라디오 청취시간 1천시간당 광고매출을 RPM(Revenue per Mille)이라고 부르고, 청취시간당 음원 원가를 LPM(Licensing costs per Mille)이라고 불러요. 즉 (RPM – LPM)은 1천시간 당 매출총이익이에요.
리: 그렇죠. 그리고 여기서 까먹고(…)
박: 그래서 처음에는 사업성이 없다는 평가를 많이 들어, 투자에서도 난항을 겪었어요. 근데, 반전이 있었어요. 비트 라디오는 오디오앱이니까 오디오 광고로 돈을 벌겠다는 게 처음 사업계획이었어요. 그리고 이 계획이 완전히 엎어졌어요.
리: 수익이 안 나오는 거야 예상한 거 아닙니까?
박: 그게 아니라, 인터넷 오디오 광고주도 없고 상품도 없고 대행사도 없고…
리: ……
박: 그때는 정말 막막했어요. 사용자라도 많으면 우리가 직접 상품을 구성할 텐데, 그때는 그런 사이즈도 아니었거든요. 그러다가 누군가가 “동영상 광고를 비트에 붙이면 좋을 거 같은데요?”라는 제안을 했어요. “오디오앱에 무슨 동영상 광고야, 왠 미친 소리야…” 했다가 막상 보니까… 스마트폰에서 MP3 파일 청취할 때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때의 사용자 패턴이 다르더라고요.
리: 어떤 차이가 있지요?
박: 라디오채널 띄울 때 동영상 화면을 보는 비중이 생각보다 높았어요. 곡 정보도 봐야 하고, 가사도 봐야 하고… MP3야 뻔한 음악이 나오니까 화면을 볼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내가 가진 곡이 아니라 새로운 곡이 나오니, 가사나 사람들 반응을 보는 사용자가 많아요. 그래서 앱 처음에 들어갈 때 풀스크린 배너에서 시작해서, 디스플레이 광고 상품을 지속적으로 늘려갔어요. 각 광고상품이 청취 1천시간당 어느만큼 노출되는지 측정을 잘 해보니, 다양한 광고상품이 가능하더라고요.
리: 하지만 그런 상품군으로도 여전히 큰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박: 2015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광고 시스템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첫 달 RPM(1천시간 청취당 매출)이 14,000원에 불과했어요. 그리고 매달 이걸 올려서 2015년 10월에는 45,000원선에 이르게 됐어요. 2016년 중에는 RPM 10만원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고요. 즉, 광고를 틀 수 있는 월간 청취시간 1천만 시간이면 광고매출이 10억원을 한다는 얘기에요.
리: 판도라는 얼마나 벌고 있나요?
박: 미국 판도라 라디오가 작년 매출 1조원을 했는데 RPM이 50,000원 선이에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목표를 꽤 높게 잡은 거죠.
9. 떼 쓰는 게 아니라, 당연한 요구: 왜 스트리밍 음원비 조절이 필요한가?
리: 최근 기사를 보니, 폐업 위기설까지 나오던데, 가능할까요?
박: 이 회사를 설립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모델이 2015년에야 정리가 됐어요. 1천시간 청취당 음원비가 13만원에 달해요. 즉, 현재 RPM이 5만원 정도에 와 있으니 청취 1천시간당 매출총이익은 커녕 매출총손실이 8만원에 달하는 미친 비용구조인 셈이죠. 2016년도 목표인 10만원을 달성해도 손익분기는 요원한 비용구조인 걸 2015년 초 들어서 알게 됐어요.
리: 빨리도 알았네요…
박: ……
리: 최근 비트 측에서 스트리밍 음원비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음악인들 사이에서의 반발이 큽니다.
박: 우선 ‘무료 스트리밍’이라는 말에 ‘불법 무료 서비스’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비트는 정당한 사용료 지불을 하는 모델이에요. 현재 한 곡당 7.2원을 사용료로 권리자에게 지불해요.
리: 그것도 그렇지만 가뜩이나 음원비가 너무 적다고 이슈인데, 왜 더 내리려 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박: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스트리밍과 월 정액, 그리고 다운로드 모델은 완전히 다른 시장이에요.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불법 다운로드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아요. MP3 파일 재생하는 월 사용자가 2천만에 달하는데, 이중 불법 유저가 적지 않거든요. 아이튠즈가 그러했듯, 불법 다운로드 듣지 말라는 구호는 큰 의미가 없어요. 그런 사람을 합법 모델로 음악을 듣게 하는 게 오히려 전체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해요. 또 음악가들은 이를 통해서 스트리밍 뿐 아니라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고요.
리: 하긴 점점 음악 하시는 분들도 음원보다 공연 등 다른 쪽 수입이 커져가고 있기는 하지요.
박: 맞아요. 광고기반 스트리밍은 그런 면에서 또 도움이 되는 게, 무료이다 보니 그만큼 많이 접하게 되잖아요. 이를 통해 1차적인 음원 재생 수입 외에도 부가적인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팬을 갖게 되는 거죠.
리: 그래서 툭 까놓고 뭐가 그리 불만입니까?
박: 현재 비트가 스트리밍 한 곡당 7.2원을 내고 있는 이유는 국내 음악사용료 징수규정에 월 정액제가 아닌 1곡당 스트리밍할 경우의 표준 단가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방식으로 시작하게 된 거에요. 그런데 이 기준을 적용한 곳은 모두 월 정액이에요. 현재 징수규정을 보면 스트리밍 서비스가 모두 “이용자가 돈을 내야만” 쓸 수 있는 조항만 가지고 있어서, “광고주가 돈을 내고” 이용자는 무료로 음악을 듣는 경우 어떻게 정산해야 할지 이야기가 빠져 있는 거죠. 비트는 그런 게 없이 광고기반, 즉 무료 베이스잖아요. 당연히 같은 규정을 적용 받으면 곤란하죠.
리: 해외는 좀 다른가요?
박: 올해 초 공개된 2011년 스포티파이의 계약서를 보면, 광고기반에 대한 정산방식이 스트림당 단가와 광고매출 60%를 기반으로 수익배분한 금액 중에 큰 금액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나와 있어요. 그리고 스트리밍 단가를 보면 광고기반은 1.6원 정도, 월정액제의 스트림 기준 단가는 7.7원으로 광고기반이 월정액제 기준 단가에 비해 매우 낮아요. 사실 기능에서도 광고 기반 스트리밍은 제약이 크잖아요. 월정액제에서는 청취자가 원하는 곡이나 플레이리스트를 마음껏 검색해서 들을 수 있지만, 광고기반 스트리밍은 광고를 봐야 하고, 이미 큐레이션된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는대로 들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리: 너무 복잡한데 요약 좀…
박: 이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한국의 월정액제 스트리밍 기준단가가 3.6원이니 광고기반은 0.72원이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요. 비트가 내고 있는 7.2원은 해외보다 무려 10배가 비싼 셈이죠. 올해부터 3.6원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내년에 반값으로 할인해 주는 것 아니냐는 의견은 현실을 왜곡하는 거에요. 비트의 요금을 낮춰주자가 아니라, 이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할 수 없었으니, 합리적인 단가의 규정을 신설하자는 얘기입니다.
리: 지금까지 조용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난리입니까?
박: 2014년까지는 사용자가 얼마 없어서(…)
리: ……
박: 저희도 린하게 운영하다 보니, 서비스 테스트를 많이 하는데 올해 중순부터 한 달에 2억곡 가까이 틀어서 10억을 훌쩍 넘는 정산료를 지불하고 있어요. 이제 사용자 600만명이 넘고 월 음원료 지급도 10억원을 훨씬 상회하는 서비스가 됐으니, 이제는 징수규정에 이런 내용이 당연히 반영돼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됐죠. 2014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할 때 “한 달 정산료가 3억이 넘을 수도 있어요!”라는 직원들의 걱정은 이제 오히려 귀엽기까지 한 상황이에요.
리: 생존을 위해 열심히 음악 단체들과 쇼부치고 있겠군요.
박: 네.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광고기반 서비스 단가를 월정액 스트리밍 기준 단가와 맞추는 선에서 시작하자는 의견을 제출했고, 많은 단체들이 이를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국내 스트리밍 시장의 99%가 3.6원 기준으로 정산되고 있고, 새로운 단가 기준을 만들기보다 한 가지로 맞추어 가자는 거에요. 사실 그렇더라도 해외 서비스보다 광고기반 스트리밍 단가는 여전히 높은 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리: 그래야 비트가 살고… 대표님도 살고…
박: 그렇죠. 또 이렇게 해야 음악시장도 성장할 거라 생각해요. 월정액 서비스만 있는 시장 구도에 모바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 모델이 추가되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규모의 자금이 음악시장에 들어가게 되니까요.
리: 그래도 음원료가 너무 낮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할 것 같습니다.
박: 인정해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스트리밍 방식으로 음악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면서 스트리밍 단가가 너무 낮은 것을 많은 음악인들이 지적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자리잡은 월정액제 단가도 여전히 낮고, 지난 10년간 수많은 합의와 논의를 해오던 문제에요. 저도 음악인들이 잘 됐으면 좋겠고, 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모든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협의해야겠죠.
리: 이왕 억한 심정 토로하는 거, 한풀이 좀 해보시죠(…)
박: 비트가 지금 엄청 적자 보고 있어요. 이제와서 해외는 판도라 같은 서비스가 엄청 흥했는데, 왜 한국은 비트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었을까 생각해 봤어요. 안 한 게 아니라, 광고기반 서비스에 별도 사용료 징수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나올 수가 없지 않았을까… 실제로 서비스를 출시하고 나서 이용규정에 없는 서비스이니 서비스를 중지하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어요. 저희는 멋모르고 어거지로 시작하고 여기까지 온 거죠. 매달 수억 곡을 틀고, 원하는 곡을 선택해서 듣는 것도 아닌 수동형으로 듣는 서비스 단가와 이용자가 원하는 곡을 한 곡씩 듣는 것과 어떻게 가격이 같을 수가 있어요?
리: 넘 길어진 듯한데, 그냥 나중에 기고 받을 테니 알아서 정리하십시오…
박: ……
리: 마지막으로 한 마디…
박: 이미 모바일 광고시장은 PC웹 광고시장 규모를 넘어섰고, 2018년에는 국내 모바일 광고시장 규모만 3조 원에 달할거라는 예측이 있어요. 음원 다운로드 규모는 차츰 줄어드는 추세고, 잘 성장하고 있는 월정액 서비스와 더불어 새로운 큰 자금을 음악시장에 가져올 광고기반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대로 서비스할 수 있는 원년이 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을 바랍니다…
10. 창업자들에게: 버티는 그 자체만으로 대단하고 의미가 있다
리: 대개의 스타트업이 니치 시장을 노리는데, 비트는 메이저 시장이에요. 왜 그랬나요?
박: 사실 음악뿐만이 아니라 니치에 큰 관심이 없어요. 처음 시작할 때 작은 영역에서 시작하는 건 맞다고 봐요. 그래도 다같이 100명, 1000명에서 시작하는 거지만, 커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서비스는 애초에 전국민의 50~60%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이고요.
리: 음악을 좋아하는 게 일에는 좀 도움이 됐나요?
박: 그건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좋아하지 않고 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스타트업에서는 너무 힘들죠. 저도 잘 모르는 분야 프로젝트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일로 느껴지면 한계가 있더라고요. 밴드 같은 경우도 제가 예전 친했던 동창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렜고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직접 모았는데, 그 친구들이 밴드의 극초창기 멤버였어요.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기존에 불편했던 점을 고쳐 나가는 에너지가 돼요. 다른 앱을 참조하는 게 아니라 “이래야 돼”라고 생각되는 우리가 하고 싶은 걸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 분명히 힘의 원천인 것 같아요.
리: YG에 이어 미스틱까지, 음악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박: 월정액제 시장이 여전히 성장하고는 있어요. 멜론도 2015년 한해동안 유료회원이 60만명이나 늘었다는 자료를 최근에 봤어요. 하지만 성장 가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고, 스트리밍 시장구도에 보완이 될 수 있는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했다 생각해요. 우리로서도 음악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여기에 대한 비전을 보고서 투자했다는 것 자체가 어떤 단순한 지지나 의사표명 이상의 좋은 의미이기도 하고요.
리: 아무튼 성공했는데,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 분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박: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무 생각이 없어서-_-;;;
리: ……
박: 아니, 누가 누구한테 뭔 이야기를 해요… 같이 현역이고 똑같은 입장인 것 같은데… 더군다나 제 경우는 이전에 했던 일이 있어서, 그분들보다는 편하게 시작한 것도 사실이고…
리: 그래도 뭐라도 짜내 봅시다.
박: 얼마 전 한 이야기인데… 스타트업 대표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받잖아요. 플랜B가 뭐냐, 플랜C가 뭐냐… 이렇게 물어보는데… 결국, 계획한대로 잘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이야기에요. 그런데 제 경험상, 아이디어는 실제로 벼랑 끝에 가 봐야 그때 나와요… 그러니까… 벼랑 끝에 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은 의미 없는 것 같아요.
리: 다 알면서 묻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 그렇죠… 그때 가면 뭐해야지 뭐해야지… 그런데 비트도 처음에는 지금 이런 모습이 될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하다가 여기까지 온 거에요.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닥쳐보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거고…
리: ……
박: 저는 일단 뭔가 하고 있는 분은… 이미 그 길로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요즘 같이 힘든 세상에서 대기업 부장하고 있는 친구들도 대단하죠. 하지만 어찌 될지 모르는, 벼랑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길을 택하고 실행하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봐요.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은… 계획대로 되는 건 없고… 벼랑 끝에 서서야, 빠져나올 방법이 생각날 거니 오히려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리: 정말 위안 안 되는 이야기군요(…)
박: 제가 요즘에 ‘객주’라는 드라마를 열심히 봤는데 내용이 그래요. 장사 때문에 이 새끼 저 새끼하며 막 죽이고 엄청 살벌하거든요. 그런데 드라마에서도, 죽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든 기지를 발휘하고 실행해요. 저도 힘들 때 혼자 맥주 마시면서, 왜 내가 회사 관둔다 했을 때 사람들이 안 말렸을까… 그랬죠. 그래도 어찌저찌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목에 칼이 들어오는 그 순간에 가서야 진짜 반전이 나오니까…
리: 이 글을 보는 스타트업 사람들이 울 것 같습니다…
박: 그래서 저는 지금도 오히려 VC나 엔젤투자하는 분들한테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사업을 시작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은 크건 작건 다 제가 이야기한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벼랑 끝에 아직 안갔는데 벼랑 끝에 가면 어쩔 거냐고 물어보는 거 의미 없다고 생각해요. 투자자나 언론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사업하는 사람 쳐다보고 쉽게 평론하는데… 부정적인 전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봐주고 응원해주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리: 본인도 사석에서는 잘 까지 않습니까?
박: 물론 저도 술자리에서야 까고 그러지만, 전망이 없어 보이고 안 될 것 같아도… 다 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그래도 제가 선배로서 하고싶은 말이라면, 이런 후배들을 좀 더 그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해달라는 거에요. 해보니까 저도 그냥 그 사람들하고 같은 입장이에요.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면 조금이라도 힘이 날 것 같아요.
리: 앞으로 음악을 넘어서 뭔가 이루고자 하는 비전이 있다면?
박: 저희 본업은 여전히 음악 청취에요. 2016년은 우리가 투자하고 해왔던 일에 결실을 맺는 거라 생각해요. 그 시작은 비트가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리고 흐름을 볼 때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리: 앞으로 음악시장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나요?
박: 옛날에는 대중가요라 하면 전국민이 다 아는 노래 위주였잖아요. 응답하라 1988 보면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서 사연 보내고 노래 듣고… 저는 디지털 들어오면 취향이 다양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음악에 대한 접근성이 더 떨어졌다 생각해요.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인구 전체의 5%라 하면, 예전에는 라디오 청취하는 2500만 중 5%였는데, 지금은 다들 자기 듣던 음악만 듣는다는 거죠. 이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비트가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인디 뮤지션도 공연도 팔리고 상품도 팔리고 할 테니까요.
리: 이를 어떤 식으로 구현 가능할까요?
박: 지금까지도 옥상달빛 등 다양한 가수들의 라디오 채널을 만드는 등을 소소하게 해왔는데… 2016년부터는 좀 더 취향을 맞춰주는 서비스를 내놓을 거에요. 사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알기 힘들잖아요? 분석을 통해 그 사람이 좋아할만한 가수와 음악을 추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뮤지션들이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메인스트림도 더욱 커질 테고.
리: 오프라인 행사 같은 건 관심이 없나요?
박: 그거는 이미 잘하는 분들이 있으니까요. 우리의 역할은 이 분들이 하기 어려운 분야를 맡는 거에요. 온라인에서 음악으로 뮤지션과 사용자의 접점을 많이 만드는 거. 음악 청취자가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뮤지션과 연결하는 게, 우리 본연의 업이라 생각해요. 판도라는 티켓플라이를 5000억에 인수했는데, 그들처럼 더 좋은 음악과 뮤지션에 연결할 수 있는 연결망, 계기를 비트가 수행하는 거죠. 더 이상 현수막 붙이는 식으로 홍보하는 게 아니라.
리: 더럽게 길었는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박: 저희가 서비스를 여러 차례 갈아 엎었는데, 그래도 ‘전 인류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핵심 메시지에서는 벗어나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벼랑 끝에 설 일이 넘치는 게 스타트업 쪽이지만, 다들 뛰어난 분들이니 창업했을 거고 버티다 보면 또다른 기회가 올 거라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이쪽 업계에 좀 더 따뜻한 시선을 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