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지난 10월 묘한 다큐멘터리 하나가 조용히 등장했었다. ‘충격다큐’라 스스로 이름 붙인 그 영상의 제목은 <나는 더 이상 게이가 아닙니다>. 제목부터 느낌이 온다. 호모포빅한 기독교개독교인들이 돌려보며 “아이 동성애는 참 나쁘네! 탈동성애로 게이들을 구하자! 와!” 하기 딱 좋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이 다큐와 관련된 공식 보도는 5건이었다.
하지만 문란한 성생활은 다른 말로 하면 남의 사생활이다. 아무리 문란해도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고 반대할 문제가 아니다. 또한 어떤 동성애자들이 문란하다면 어떤 이성애자들 역시 그렇다. 에이즈는 보균자와의 성 접촉에 의해 발생하지, 동성 간 섹스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다. 탈동성애가 아니라 콘돔 사용이 필요할 뿐이다.
그럼에도 다큐는 그냥 ‘됐고, 목사님이 그렇다면 그렇다’는 모토 아래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데 집중하는데, 이런 놀라운 논리를 구사하는 이들에게는 역시 놀라운 논리로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12월 8일 천조국의 모 한인 교회에서 열린 이 다큐의 시사회를 기념하여, 반도의 ㅍㅍㅅㅅ에서는 <호모포비아가 꼭 보아야 할 문화콘텐츠 11선>을 선정해보았다. 주변의 호모포비아들과 좋은 콘텐츠를 나눠보자.
탈 호모포비아를 위한 ㅍㅍㅅㅅ 추천 문화콘텐츠 11선
1. 웹툰 <썸남>
이 웹툰으로 말할 것 같으면 호모포비아들이 탈 호모포비아 콘텐츠의 세계에 입문하기에 아주 적절한 작품이라 하겠다. <썸남>은 우연의 장난으로 한 집에 살게 된 두 남자 기제와 규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둘이 원치 않게 자꾸 엮이게 되는 과정에서의 불편함과 어색함을 주요한 개그 포인트로 삼고 있어, 작품 초반부에는 호모포빅한 콘텐츠로 오인하기 쉽다.
그런데 묘한 것이, 보다 보면 BL의 B자도 모르고 GAY의 G자도 모르던 독자들마저 차차 기제와 규태를 응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연은 얄궂다. 엮이고 나면 둘 다 남자라는 사실은 작을 수도 있는 것이다.
2.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썸남>으로 나도 모르게 남남 커플을 응원하며 서사를 따라가는 새로운 경험을 해보았다면, 이번에는 명작 퀴어무비를 이어 감상해 보자.
10년 전 작품임에도 퀴어무비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후 조커역으로 이름을 날린 히스 레저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한국 개독 뺨치게 호모포빅한 동네 와이오밍에서 태어난 두 카우보이가 산에서 양을 치며 한 철을 보내는 사이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게 되나, 호모포빅한 동네 분위기로 인해 20년 간 몰래 사랑을 이어가다가, 결국 둘 중 하나가 동네 호모포비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그라믄 안대… 게이 싫다고 죽이고 그라믄 안대…
거기다 게이라고 고추 뽑아 죽이는 살인자 호모포비아와, 그걸 또 호모 되지 말라고 어린 아들에게 보여주는 아빠 호모포비아가 나오니 자연스레 호모포비아-포비아가 될지도 모를 일. 그야말로 반(反) 호모포빅한 영화라 하겠다.
3.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
문학적 서사를 통해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 또한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동성애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모두에게 완자가>는 고등학교 시절 야부를 만나 10년째 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레즈비언 완자가 우리 모두를 향해 건네는 이야기를 담은 웹툰이다. 완자와 야부가 둘 다 여자라는 것과, 가끔 동성애에 관한 사회의 시선과 이에 대한 완자 자신의 입장을 다룬다는 것 외에 일반적인 연애생활툰과 큰 차이가 없어 허들이 낮다.
완자와 야부의 달달한 에피소드를 보다 보면, 이런 사랑에 대해 우리가 돌 던질 자유가 어디에 있나 하게 될 것이다. 사랑은 한 가지 모습이 아니다.
4. 영화 <필라델피아>
당신은 어느새 호모포비아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동성애자들이 받는 시선과 차별이 온당한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제 <필라델피아>를 감상할 시간이다.
지금은 동성결혼마저 합법화된 미국이지만, 1993년에는 그곳도 그리 녹록치 않았다. 톰 행크스가 분한 앤드류는 포모포비아들이 가득한 법률 회사에서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변호사 일을 하다 들켜 해고를 당하게 되고, 흑인 변호사와 함께 힘을 모아 자신의 해고가 부당함을 입증해낸다.
명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이 영화에서 톰 행크스는 에이즈 환자고 그가 에이즈에 감염된 경로는 보균자였던 다른 동성애자와 성 접촉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그게 해고와 같은 부당한 처우의 이유일 순 없다. 톰 행크스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보며 새기도록 하자.
5.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이번에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국내작들을 다시 보며 자신의 지난 입장을 반성해보는 시간을 갖자.
김수현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형식 속에 동성애 문제를 녹여 넣어 공중파 주말드라마의 새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와 함께, 개독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전체관람가 드라마였던 만큼 표현 수위는 높지 않았으나(일부 시청자는 태섭과 경수가 연인 사이인지 모르기도…) 동성 간의 사랑이 표현된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이냐…는 절절한 호소에 이어 내 아들 드라마 보고 에이즈로 죽으면(…) 책임지라는 놀라운 발언도 터져나왔다.
실제 드라마는 김수현 가족드라마의 여러 장점들을 두루 가지고 있다. 사랑에 관한 사회통념적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평범한 가족이 동성애자 아들과, 그 아들의 사랑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따뜻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6.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줄여서 <두결한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흥행한 퀴어무비다. 10일 동안 3만2천 명을 모았다. 사회적인 시선과 가족들의 요구를 의식해 위장결혼하여 살아가는 게이,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다. 김조광수 감독의 영화답게, 밝고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가 물씬하다.
김조광수 감독은 2013년 청계광장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도그리고 19살 연하를 반려자로 맞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결혼식은 개독들이 난입하여 똥물을 퍼부은 것으로 유명하다.
7. 영화 <해피 투게더>
자, 이제 당신은 초보 단계는 모두 마스터했다. 동성애도 그냥 사랑일 뿐이며 차별 받을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됐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것이 ‘항문섹스’로 대표되는 동성애자들의 성생활이다.
그러나 남의 성생활에 내가 받아들이고 말고가 어딨는가? 그런 원론적 물음을 간직하며, 이제 게이들의 육체적인 사랑이 미학적으로 표현된 영화를 살펴보자.
보영과 아휘는 대책 없는 게이 커플이다. 홍콩에서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던 이들은 어쩐 일인지 지구 반대편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또 헤어진다(…) 여행은 왔는데 짝꿍이랑은 헤어졌고, 홍콩에 돌아가진 못하고, 각자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임시적 생활을 이어가는데, 그러다 또 만난다. 그 뒤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커플 뭐랄까, 참 대책이 없는데… 사랑이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8. 웹툰 <이게 뭐야>
이번에는 게이들의 육체적 사랑이 만화적으로 묘사된 작품을 보자. 네이버에 <모두에게 완자와> 다음에는 <이게 뭐야>가 있다.
하지만 <모완>이 레즈비언 완자의 알콩달콩한 연애일기를 보는 느낌이라면, <이게 뭐야>는 19금 웹툰답다. 알콩달콩한데 야한 게 갑툭튀…
참고로 <이게 뭐야>라는 제목은 남성들이 갑자기 므흣한 분위기에 돌입할 때 사용하는 ‘호모나 게이뭐야’ 짤에서 왔다고 한다.
9.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축하한다. 8번까지 마스터했다면 당신은 이제 호모포비아가 아닌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궁극의 벽, BL에도 도전해보자. 소프트한 것으로 시작하여 수위를 올려보기로 한다.
요시나가 후미의 <서양골동양과자점>은 순정과 BL의 경계에 걸쳐 있어 입문하기에 적절한 작품이다. 4명의 남자가 운영하는 제과점을 배경으로 이들의 인생 역정과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사연이 절묘하게 엮인다.
4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오노가 마성의 게이라 게이들의 삶과 사랑이 슬쩍 끼워져 있고, BL스런 감정선을 살짝 즐길 수 있긴 하지만 노골적인 묘사는 없다.
10. 만화 <라스트 마스터>
이제 슬슬 하드한 것으로 수위를 올려 보자.
<라스트 마스터>는 무려 SF BL이다. 안드로이드가 보편화된 미래가 배경이다.
도박장의 복서 타이가는 아버지로부터 라구엘이라는 안드로이드를 받게 된다. 인간을 위한 모든 능력을 갖춘 안드로이드 라구엘은 안드로이드 조직으로부터 공격 대상이 되고, 타이가는 그를 지키려 한다. 대충 이런 구도에서 안드로이드의 변한없는 충성심과, 안드로이드의 마음을 알아주는 주인의 다정한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SF에서는 흔한 소재이지만, BL로 풀어내면서도 안드로이드라는 소재의 특성이 옅어지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작가가 소재에 대해서 충분히 관심이 있고 조사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준다. 후속권이 계속 나올 예정이라 한다.
11. 웹툰 <잘먹겠습니다>
다시 한 번 수위가 올라갔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목부터 므흣하다. 뭘 잘 먹…?
주인공 도윤수는 실력있는 조리학과 학생이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 유건을 만났는데, 그는 여자친구에게 뚱뚱하다고 차인 충격으로 거식증과 우울증에 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윤수는 그런 유건을 데려와 재활을 돕는다. 유건은 윤수의 밥을 안 먹겠다고 버티다가, 어쩐 일인지 손에 묻은 스프를 핥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식사&스킨십… 정말 재활만이 목적인가, 이건 무슨 관계인가…
유건이 거식증까지 걸릴 정도의 상처와 살을 빼서 얻고 싶은 것,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식욕이 잘 표현되어 있다. 짧은 스토리 안에 유건의 재활과, 요리사로서 성장하는 윤수, 발전해가는 두 사람의 관계도 잘 담겨있다.
콘텐츠는 콘텐츠일 뿐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은 드라마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돌려내라(…)고 했지만, 그들의 우려와 달리 퀴어 콘텐츠를 본다고 동성애자가 되는 게 아니다. 동성애자는 이성애물을 봐도 동성이 좋고, 이성애자는 동성애물을 봐도 이성이 좋다. 다만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고,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이 생기는 것이다. ‘탈 호모포비아 콘텐츠’를 톺아본 건 호모포비아를 우롱하려고 그래서였다.
개독들의 프로파간다에, 내 편견에 갇히지 말고 널리 보고 멀리 상상하자.
<이 글은 만두코믹스에서 제공하는 네이티브 애드입니다>